‘호텔 캘리포니아’와 대한민국
‘호텔 캘리포니아’와 대한민국
  • 미래한국
  • 승인 2014.06.03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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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명곡으로 극찬 받고 있는 이글스(Eagles)의 ‘호텔 캘리포니아(Hotel California)’는 한 편의 서사 구조로 돼 있다. 주인공은 어느 사막의 고속도로에서 따뜻한 마리화나의 향을 맡고 희미한 빛을 보게 된다. 정신이 혼미해지고 시야가 흐려진 그는 희미한 빛이 반짝이는 곳에서 하룻밤을 묵기로 한다. 마약에 살짝 취한 채 그 희민한 빛을 따라 호텔 현관에 들어간 그는 교회의 종소리를 들으며 현실(지옥)과 가상(천국)의 구분 능력을 상실한다. 호텔에서 방종에 가까울 정도로 자유분방하게 즐기는 투숙객들을 본다.

곡의 마지막 부분은 투숙객들 모습의 절정을 보여준다. 만찬을 즐기러 모인 방에서 투숙객들은 환각에 취해 자신들을 옭아매고 있다는 괴물을 죽이겠다고 사방으로 칼을 휘두르지만 괴물은 죽지 않는다. 공포를 느낀 주인공은 자신이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기 위해 도망치지만 경비는 그를 제지하며 “당신은 영원히 이곳을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라는 섬뜩한 말을 남기고 곡은 끝난다.

사실 이 곡은 1960~70년대 포스트모더니즘과 히피 문화를 묘사하고 비판한 곡이다. 당시 캘리포니아는 마약에 취한 부유한 히피들과 범죄자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유명했다.

세월호 사고 이후 한 달이 지났다. 많은 시민들은 슬픔과 분노를 가슴에 묻은 채 조용히 일상으로 복귀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슬픔과 분노를 통제하지 못하겠다는 이유를 내세우며 정치적 목적을 위해 광장에 나와 거리 투쟁을 일삼는 세력들, 그리고 그들을 따라 자신의 모든 슬픔과 분노를 국가에 돌리는 사람들을 보면 내 눈엔 ‘호텔 캘리포니아’의 모습이 중첩돼 아른거린다.

혁명 구호와 함께 점점 지저분하고 격화되고 있는 미성숙한 정치투쟁세력들의 살풀이는 유가족을 위해서도 다른 시민들을 위해서도 더 이상 용인되기 어려운 지경까지 왔다.

정치투쟁세력들에게 국민과 유가족의 슬픔, 사고 희생자들의 가슴 아픈 운명은 “박근혜 퇴진”이라는 그들의 본색적인 구호 밑으로 사라졌다.

공권력과 일반 시민들의 삶을 흔들 정도로 사회적 긴장감을 불러 일으키는 정치투쟁세력들은 마치 스스로 환각에 취해 괴물을 죽이겠다고 사방으로 칼을 마구 휘두르는 ‘호텔 캘리포니아’의 투숙객들과 같아 보인다. 차이가 있다면 이 노래의 투숙객들은 마약에 흠뻑 취해 있었다는 점이고 정치투쟁세력들은 마약 대신 그들의 제어되지 않은 권력욕과 천박성(淺薄性), 부도덕성에 흠뻑 취해 있다는 것뿐이다.

시민들이 다른 사건들보다 세월호 사고를 보고 특히 더 강한 슬픔과 분노를 느낀 이유는 사고 그 때문만이 아니다. 사고와 깊이 연관됐던 어느 기업가의 비리, 관료들의 무능함과 마피아적 성향과 행태, 오류와 혼란의 반복이었던 초동 대처 등 구석구석 엉망이 아닌 부분이 없기 때문이다.

누구의 탓이라고 몰아세우기에는 한국 사회가 안고 있던 고질적인 문제들이 봇물처럼 터져 나온 복잡하고 비극적인 사건이다. 진정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서로를 탓하며 무책임한 태도를 보이는 대신 지금의 슬픔과 분노를 기억하고 다시는 이런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대처 방식과 시스템, 의식을 전반적으로 개선하는 것이다. 고통스러운 노력을 통해 지금보다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한국 사회를 만드는 것이 우리가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에게 해줄 수 있는 진정한 마지막 예의다.

 

 

 

 

황성훈 건국대 철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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