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합리적 사고를 포기했는가
우리는 합리적 사고를 포기했는가
  • 미래한국
  • 승인 2014.10.28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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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환규의 청진기] ‘지적 사회’ 만들지 못하면 광우병 狂風은 다시 온다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1985년 대장의 폴립수술을 받기 위해 병원에 입원했을 때였다. 미국의 각 언론들은 이 소식을 전하면서 ‘대장의 폴립’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그림을 곁들여 상세히 보도했다.

그 덕분에 미국인들은 대통령의 수술 소식과 함께 ‘대장의 폴립’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 당시 의과대학 졸업반이었던 필자는 미국 언론들의 상세한 보도에 상당히 깊은 인상을 받았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나라 언론에서는 의학적 사실보다는 재미 위주의 의학적 뒷얘기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고 그것은 지금도 다르지 않다.

1976년에 처음 아프리카에서 발생한 에볼라 바이러스질환은 높은 사망률로 악명이 높았지만 자연스레 진정되기를 반복했고, 아프리카 지역에 국한됐었기 때문에 그동안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2014년 들어 에볼라 바이러스 감염자와 사망자들이 급증하자 세계보건기구(WHO)가 지난 8월 8일 국제적 공중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각국의 특별 대응을 주문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다행히 나이지리아에서 추가 감염자가 보고되지 않는 등 에볼라가 진정 국면에 접어든 것이 아닌가 조심스럽게 점쳐지고 있는 가운데 최근 미국 땅에서 에볼라 바이러스에 감염된 환자의 최초 사망자가 발생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아프리카 라이베리아에서 입국한 환자가 뒤늦게 에볼라 바이러스 감염자로 확인됐고 9일 만에 사망한 것이다.

이 사망 사건은 아프리카 지역에 국한됐던 에볼라 질환의 대륙 간 확산을 의미할 수 있는 것이어서 의학자들의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국내 언론들은 이 사건에 대해 매우 잠잠하다. 남의 나라 이야기기는 하지만 미국인이 에볼라로 사망했다면 동일한 사건이 대한민국에서도 똑같이 일어날 수 있는 일인데도 정부도 언론도 조용하기만 하다.

더욱이 우리나라에는 에볼라 감염자에 사용할 수 있는 실험적 의약품과 에볼라 감염자에게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치유자의 혈액을 구할 수조차 없는 상황이다.

TV와 인터넷에서는 모 국회의원이 국정감사 도중 스마트폰으로 비키니를 입은 여성의 사진을 보았다는 기사로 도배돼 있지만 정말 에볼라가 무슨 질환인지, 왜 위험한지,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에 대한 보도는 찾기가 어렵다.

   
 

광우병 사태의 광풍, 어떻게 가능했는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2008년 봄 대한민국을 광풍으로 몰아넣었던 광우병 사태를 잊지 못할 것이다. 6년이 지난 지금 미국산 쇠고기를 먹으면서 광우병을 걱정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광풍이 물러간 이후 광우병 사태를 촉발시킨 PD수첩 제작진에 대해 공판의 결과가 사회적 관심을 끌었지만 정작 광우병이란 것이 어떤 병인지, 정말 위험한 것인지, 위험하다면 왜 위험하고 위험하지 않다면 왜 위험하지 않은 것인지에 대한 보도는 찾을 수 없었다.

광우병의 광풍이 불어 닥쳤던 2008년 봄, 국제수역사무국(OIE) 발표를 기준으로 당시까지 전 세계적으로 광우병에 감염된 것으로 확인된 소가 19만297마리였고, 그 중 18만5000여 마리가 영국에서 발생한 것이었다는 사실,

나머지 5700여 마리가 다른 24개 국가에서 발생했는데 일본에서는 34마리가 발생됐고 미국에서는 3마리가 광우병으로 진단받은 바 있다는 사실,

그런데 이 그 마리 중 1마리는 캐나다에서 수입된 소였기 때문에 미국에서 자생된 소 중 광우병으로 진단받은 소는 단 2마리였다는 사실이 광우병의 위험을 다룬 PD수첩은 물론 그 어떤 언론에서도 보도되지 않았다.

1992년 3만7316마리, 1993년에 3만5140마리에 이르던 광우병 진단소의 숫자가 반추동물에게 반추동물 사료를 먹이는 것을 금지시킨 이후 크게 줄어들어 2000년에는 1956마리, 그리고 2007년에는 전 세계적으로 141마리에 불과했다는 사실,

그래서 대한민국에서 광우병의 광풍이 불 때 정작 광우병의 본거지였던 유럽에서는 광우병이 소멸단계에 이른 것으로 판단하고 있었다는 보도도 없었다. 언론이 사실을 사실대로 보도하지 않고 국민에게 제한된 정보만을 제공하는 경우 제한된 정보를 접한 국민들은 그 한계를 뛰어넘을 수 없다. 집단지성이 아니라 집단최면이 가능해지는 순간이다.

10여 년 전 중국발 사스(SARS : Severe Acute Respiratory Syndrome 우리말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에 대한 공포가 전 아시아를 휩쓸었을 때 의료와 전혀 관련이 없는 비전문가였던 어떤 이가 신문에 칼럼을 썼다. 그는 칼럼에서 “중국에서 창궐한 사스가 우리나라에서는 맥을 못 추는 것을 보니 어쩌면 우리가 먹는 김치에 그 원인이 있을지도 모른다”라는 표현을 했다.

다른 언론들이 앞 다퉈 이 보도를 인용하자 불과 수일 만에 “김치가 SARS 억제에 효과가 있다”는 것이 기정사실처럼 다뤄졌었다.
그리고 얼마 후 “김치 SARS 예방효과가 과학적으로 입증됐다”라는 기사가 주요 일간지와 공중파 방송에 보도됐다. 김치의 대표적인 유산균 2개의 게놈지도 초안이 만들어졌는데 이 유산균들이 녹농균과 살모넬라에 대한 강력한 항균 효과를 보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SARS를 일으키는 원인 물질은 박테리아가 아닌 바이러스다. 오보를 낸 것이다. 그러나 오보를 지적한 이는 아무도 없었고, 지금까지도 김치는 SARS뿐 아니라 조류독감에도 예방과 억제효과를 가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국민에게 필요한 것은 사실(fact)이다

여의도에서 일하고 있는 어느 필자의 지인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정치인들은 사실(fact)에 대한 관심보다 그 사실을 포장했을 때 활용할 수 있는 정치적 효과에 대해 더 관심이 많다”고 말한 것이다. 이 말을 언론에 대입해 보면 어떨까. 어쩌면 언론 역시 ‘사실 그 자체에 대한 관심보다 보도가 가져올 국민적 호응도’에 더 관심이 많은 것은 아닐까.

100세 시대를 바라보는 지금 건강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더 커져가고 있다. 그런데 건강에 대한 정확한 사실,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는 언론은 찾아보기 어렵다. 무엇을 먹으면 어디에 좋다거나, 의사 혹은 한의사들이 출연해 경쟁적으로 자신만이 아는 비법처럼 치료법을 소개한다.

그 내용이 신비해 보일수록 사람들의 관심은 커져간다. 그래서 방송은 홍보만 무성할 뿐 정확한 지식을 전달해 주지 않는다. 그런데 자신의 질병에 대해 교육을 받은 환자는 교육을 받지 않은 환자들에 비해 훨씬 더 건강하다는 것은 수많은 연구보고를 통해 입증된 바 있다. 교육을 받은 만성신기능부전 환자는 교육을 받지 않은 환자들에 비해 요독증으로 입원하는 확률이 1/3에 불과하다.

지식과 정보를 많이 알수록 환자는 자신의 건강을 더 잘 지킬 수 있고 결국 건강도가 증가함에 따라 의료비는 줄어들게 된다. 교육을 받은 만성질환자들의 외래 진료일수는 늘어나지만 중증의 합병증 발생이 줄어들어 입원비가 크게 줄어드는 것이다.

의학적으로 지적 사회가 되는 경우 건강도의 향상과 의료비 감소의 득을 얻는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똑똑한 환자’를 만들기 위한 노력은 별로 찾아보기 힘들다. 다른 건 몰라도 적어도 건강에 관해서는 정확한 사실 보도와 정보 제공이 중요하다. 목숨이 달린 일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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