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개혁 ‘하르츠’에 답이 있다
비정규직 개혁 ‘하르츠’에 답이 있다
  • 정용승
  • 승인 2015.01.05 16: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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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최씨 아저씨. (중략) 아저씨. 아저씨가 자꾸 헛소리를 하면 우리는 순순히 애를 낳아주지 않을 겁니다. 다른 정치인 분들 다 마찬가집니다.

자꾸 청년을 ‘봉’으로 알고 선거 때만 빛깔 좋은 개살구를 던질 경우, 순순히 연금을 내주지도, 집을 사주지도 않을 거란 말입니다. 아시겠습니까?(중략) “일자리를 인질로 잡고 있으니 순순히 정규직 이놈들 권리를 순순히 내놓아라.” 해고의 절차적 요건 합리화를 통해 고용을 유연화하겠다는 뜻이다,

그렇게들 해석해주는 걸 들었습니다. 아저씨. 저는 고용이고 노동시장이고 잘 모릅니다만 직관적으로 기업들이 ‘겁이 나서’ 인력을 뽑지 못한다는 말이 이해가 안 갑니다. 기업들이 “이놈을 한 번 뽑으면 해고하기가 힘드니까 뽑지를 말아야겠어.” 이게 채용공고를 안 내고들 버티는 이유입니까?>

대자보가 다시 나타났다. ‘안녕들 하십니까’ 이후 1년만이다. 위의 글은 미스핏츠가 ‘최씨 아저씨에게 보내는 협박편지’라는 제목으로 지난 3일 연세대 중앙도서관 앞과 고려대 정경대 후문 앞에 붙인 대자보의 일부분이다.

미스핏츠는 ‘20대가 말하는 젊은 미디어’라고 소개하고 있는 단체다. 그리고 이 대자보는 최경환 부총리가 지난 달 25일 “정규직에 대한 과보호 때문에 기업들이 겁이 나서 인력을 뽑지 못하고 있는 만큼 노동시장의 개혁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발언을 한 것에 대한 미스핏츠의 입장이다.


국민 대부분 노동시장 개혁에 동의

이 대자보의 용어나 내용은 차치하고서라도 단지 미스핏츠만이 이런 입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소위 ‘취준생’이라고 불리는 취업 준비생들도 이와 비슷한 의견을 가지고 있다.

한 대학생은 “안 그래도 정규직이 되는 길이 험난한데, 정규직이 돼서도 쉽게 해고가 되면 이렇게까지 고생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나”하며 억울하다는 식의 의견을 피력했다.

대학생이 아닌 일반 국민들은 어떤 의견을 가지고 있을까. 한국갤럽이 지난 5일 전국 성인 1003명을 대상으로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정규직 과보호’ 발언에 대한 공감 여부를 지난 2~4일까지 물은 결과 ‘공감한다’는 대답이 47%, ‘공감하지 않는다’는 36%였으며, 17%는 의견을 유보했다고 밝혔다.

국민의 절반 정도는 최 부총리의 발언에 공감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규직 해고 조건 완화 주장에 대해서는 ‘기업이 유연하게 고용할 수 있어야 일자리가 늘어나므로 찬성’ 43%, ‘좋은 일자리마저도 나쁘게 만들 수 있어 반대’ 46%로 찬반이 양분되는 양상을 보였다. 11%는 의견을 유보했다.

즉 국민들은 전반적으로 정규직이 과보호를 받고 있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지만, 해고를 쉽게 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공감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정규직의 해고 조건 완화는 정말로 좋은 일자리마저 빼앗는 정책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다’라고 할 수 있다. 정규직의 해고 조건을 완화하는 정책은 장기적으로 실업률을 낮추고 오히려 취업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어떻게 장담할 수 있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미 정규직의 과보호를 없앰으로써 실업률을 낮춘 성공적인 사례가 있다. 독일이 그 사례의 주인공이다. 그리고 이 법안의 이름은 ‘하르츠 개혁’(Harz Reform)이다.

하르츠 개혁은 독일이 2003년부터 2005년까지 실행했던 4단계 노동시장 개혁 정책이다. 이 정책에 대해 바로 알아보기 전에 당시 독일의 노동시장 상황을 살펴봐야 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왜 이 개혁안이 등장했는지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 피터 하르츠 위원장과 슈뢰더 전 총리

독일 ‘하르츠 개혁’과 노동시장 유연화

하르츠 개혁 정책이 실행되기 전, 독일은 높은 실업률 때문에 고민을 하고 있었다. 1995년 독일의 실업률은 8.2%였고 1997년에는 10%에 육박했다. 당시 실업자가 450만여 명에 이르기까지 했다. 통일의 후유증이었다.

높아지는 실업률을 우려하던 독일 슈뢰더 정부는 2003년 ‘아젠다 2010’을 내놓는다. 아젠다 2010은 국가 여러 분야의 개혁을 위한 국가개혁안이다. 하르츠 개혁 정책은 이 중 ‘노동개혁’ 부분에 들어가 있는 정책이다.

이를 위해 폭스바겐의 상임이사였던 피터 하르츠를 위원장으로 하는 하르츠 위원회가 만들어졌다. 각 분야 전문가 15명으로 구성된 하르츠 위원회는 총 4단계의 프로그램을 개발한다.

위원회의 우선적인 목적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실업률을 지속적으로 감소시키는 것. 하르츠 위원회는 첫째로 이 프로그램이 향후 3년 내 실업자 수를 200만명 정도 감소시킬 것이라 예상했다. 두번째는 실업자들이 정규 노동시장으로 복귀하는 것을 간편하게 하는 것, 그리고 세번째는 노동시장 제도의 현대화였다.

하르츠 개혁 정책은 이런 목적을 위해 시행됐다. 그렇다면 하르츠 개혁은 어떤 프로그램으로 구성됐을까.

2003년 1월 시행된 하르츠Ⅰ의 내용을 살펴보자. 하르츠Ⅰ의 핵심 내용은 실업자와 취업알선 기관과의 연결고리를 강화시키는 것이었다. 취업알선을 위한 고용 서비스 제공기관을 활성화했다.

이를 위해 △구직 등록의무 강화 △실업자가 고용서비스기관과 적절히 협력하지 않을 경우 제재 강화 △취업알선 및 직업훈련 수단들에 대한 바우처 시스템 도입 등의 정책들을 시행했다.

하르츠Ⅰ과 같은 시기에 진행된 하르츠Ⅱ는 유연한 노동형태를 장려하기 위한 대책을 담고 있다. 이를 위해 미니 잡(Mini-job)과 미디 잡(Midi-job) 같은 일정 소득 이하의 소규모 일자리에 대해 근로소득세나 보험료와 같은 사회보장분담금을 면제하거나 경감시켰다.

미니 잡은 정기적인 월 근로소득이 400유로를 초과하지 않거나 연간 근로일수가 2개월 혹은 50일을 초과하지 않는 단기 고용을 가리킨다. 미디 잡은 월 401~800유로의 일자리를 말한다. 미디 잡에 대해서는 구간에 따른 감면혜택을 부여했다. 이와 동시에 정부는 창업보조금을 지원해 창업을 장려했다.

2004년 1월 시행된 하르츠Ⅲ는 실업자들에게 원스탑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했다. 기존의 연방 노동청을 고용센터(Job-Center)로 전환시켜 이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또한 고용주에 대한 서비스 제공을 확대했다.

고용센터는 기존 연방노동청의 기본적인 업무 외에도 노동시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자문서비스 및 보호서비스를 통합적으로 제공했다. 이를 통해 구직자는 한 명의 고객으로서 일정한 평가기준에 따라 관리되고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었다.

이와 같은 고용서비스를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실업자의 유형을 구분하고 이들에게 제공되는 서비스를 구체화했다. 이를 위해 기존 취업알선담당자들이 1인당 약 400명의 구직자를 관리해오던 업무 부담을 개편 후 75명 수준으로 낮추는 등 전반적인 구조조정을 감행했다.

마지막으로 시행된 하르츠Ⅳ는 2005년 1월에 시행됐다. 하르츠Ⅳ는 전반적인 노동 및 복지 정책에 대한 개혁안이었다. 하르츠Ⅳ를 통해 기존의 실업급여는 지급기간이 최대 32개월에서 일반적으로 12개월, 고령자의 경우 18개월로 단축하는 실업급여Ⅰ로 전환됐다.

새로 신설된 실업급여Ⅱ는 경제적 지원이 필요한 근로가능한 자로서 기여기반 급여인 실업보험급여 수급권이 없거나 소진된 자에게 주어졌다. 그러나 이를 제공받기 위해서는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했다. 즉 정말 필요한 사람에게만 복지의 혜택을 주겠다는 의도였다.


우리나라도 하르츠 개혁 본받아야

하르츠 개혁 법안의 핵심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고용서비스와 향후 정책 조치 강화 △실업자들의 재취업 활성화 △노동시장의 규제를 완화함으로써 기업들의 고용수요 상승이다.

하르츠 개혁의 효과는 2008년 세계적인 경제위기 속에서 효과를 드러냈다.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다른 주요 나라들은 실업률이 상승한 데 반해 독일의 실업률은 줄어들었다.

2011년에는 6.0%로 2005년 11.3%의 거의 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현재는 6.7%를 기록 중이다. 프랑스 9.6%, 스페인 23.7%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치다.

우리나라의 상황으로 돌아와 보자. 통계청이 발표한 우리나라 실업률은 현재 10.1%로 집계되고 있다. 공식 실업률은 3.2%지만 취준생, 아르바이트생 등 주 36시간 미만 근로자 중 추가 취업 가능자, 4주간 구직활동을 하지 않은 잠재구직자, 구직활동을 했지만 육아 때문에 당장 일을 할 수 없는 주부 등 잠재취업가능자 등을 포함한 ‘고용보조지표’상으로는 10.1%를 기록하고 있다.

공식 실업률은 현재 한국 사회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다는 지적이다. 고용보조지표에 의하면 현재 실업 상태에 있는 사람은 300만명에 육박한다.

노동시장의 개혁이 절실한 시점이다. 최 부총리의 발언은 노동시장 개혁을 이끌어 냈던 하르츠 개혁을 염두에 두고 말한 것이 아닐까. 그런 의도가 아니었더라도 현재 우리나라의 노동시장은 유연해질 필요성이 있다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다.

노동시장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서는 실업자들의 재취업이 쉬워져야 하고, 나가고 들어가는 취업의 문턱이 낮아져야 한다는 의미다. 물론 단기간의 혼란은 감내해야만 한다. 개혁은 고통이 수반되기 때문이다.

개혁(改革)은 ‘고치다, 바뀌다’는 의미가 담긴 개(改)와 ‘가죽, 피부’를 뜻하는 혁(革)으로 이루어진 단어다. 피부를 바꾸기 위해서 고통은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새 것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인 것이다.


정용승 기자 jeongys@futurekorea.co.kr

※이 기사는 ‘성장-고용의 선순환과 독일의 사회제도적 기반(한병철, 2013)’ 경희대 석사논문의 자료를 이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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