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료의 빅뱅은 한국의료의 기회
중국의료의 빅뱅은 한국의료의 기회
  • 미래한국
  • 승인 2015.01.31 0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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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2주 전 미국의 중국방송매체인 CCTV America는 미국 시애틀에 있는 어느 회사가 중국의 동부 연안에 위치한 우시(Wuxi)와 장쑤성(Jiangsu)에 두 개의 병원을 세우는 데 2억 달러, 우리 돈 약 2200억 원을 투자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이 병원들은 질 낮은 공공의료서비스보다는 더 나은 서비스를 받기 원하는 이들, 즉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중국인들을 대상으로 진료할 목적으로 세워질 예정이다.

이처럼 미국 기업이 중국에 단독으로 병원을 세울 수 있게 된 것은 지난 2013년 중국 상무부가 베이징, 톈진, 상하이, 장쑤성, 푸젠성, 광둥성, 하이난성 등 중국의 주요 도시에서 외국 자본이 지분 100%를 보유한 단독 병원 설립에 관한 시범 사업을 허용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이들 7개 지역에서는 외국인이 중국인과 합작 없이 병원을 설립하거나 인수할 수 있다.

   
 

또 1993년에 설립된 북경YuanDa국제투자는 현재 중국의 30개 성 80개 이상의 도시에서 100개 이상의 병원을 경영하고 있으며 2012년부터 정부가 운영하던 국립병원들을 하나씩 인수하고 있다.

현재 연간 약 8000억 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이 회사는 향후 5년간 10개 이상의 국립병원을 인수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중국이 의료 발전을 위해 그동안 정부가 직접 운영하던 국립병원들을 민간에 이양하는 정책을 2012년부터 쓰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중국에서는 현재 사립병원(민간병원)들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2005년 약 3200개에 불과하던 사립병원의 숫자는 불과 8년이 지난 2013년 4배에 가까운 약 1만1300개에 달하는 숫자로 늘어났다.

무엇이 중국의 의료를 빠르게 바꾸고 있는가? 중국의 의료에서 벌어지고 있는 빠른 변화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던져주고 있는 것일까?


중국의료의 빅뱅과 중국의료 민영화

중국은 빠른 시간 안에 경제 발전을 이뤘다. 일부 도시에서는 이미 1인당 GDP가 선진국 수준에 도달했고 최근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의 1인당 쇼핑금액은 1400달러(한화 약 154만 원)로 다른 외국인의 4배 수준에 이를 정도다.

이처럼 중국의 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의료수요에 대한 욕구 또한 증가해 중국인들의 의료비 지출이 매년 약 18%씩 성장하는 등 의료수요가 폭발하고 있다. 13억 명이 쓰는 의료비는 2020년에는 1000조 원 규모가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러나 중국 정부의 고민은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데 있었다. 의료수요를 맞추고 의료의 질을 높이기 위해 중국 정부는 2009년부터 집중적으로 의료 개혁 작업을 시작했다.

건강보험료의 일부를 정부가 부담하는 등 건강보험의 가입률을 높이는 데 집중했고 2009년부터 2011년까지 3년간 2000개가 넘는 공공병원을 건축했다.

그러나 정부의 투자는 주로 하드웨어에 집중됐고 정작 의료의 질을 높이는 소프트웨어는 빠른 시간 안에 발달하지 못했다. 돈만 있으면 구매가 가능한 상품과 달리 의료의 질을 높이는 것은 질 높은 교육이 선행돼야 하고 질 높은 의학교육이 의료수준 향상이라는 결과로 나타나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중국의 국립병원에는 시설부족으로 항상 환자가 넘쳐났을 뿐더러 국립병원 기관 간에 경쟁이 존재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발전을 위한 의료진들의 동기부여도 부족했다.

결국 중국 정부는 짧은 시간 내에 의료의 질을 높이는 방안은 의료시장을 개방하는 것 외에는 없다고 판단하고 2012년부터 민간기업이 국립병원을 인수 또는 투자하는 것을 허용했다. 그리고 2013년에는 외국인 100% 소유지분을 인정하는 등 파격적인 정책을 도입한 것이다.


중국과 한국의 다른 의료 시스템

중국과 대한민국 정부 모두는 공공의료를 표방해왔다. 그러나 두 나라가 표방한 공공의료의 내용은 크게 다르다. 중국은 최근 국립병원들이 민간병원으로 전환하고 또 순수 민간병원들의 설립이 크게 늘어나고 있지만 오랫동안 전체 의료기관의 90%가 넘는 대다수 의료기관이 국가가 소유하고 직접 운영하는 국립의료기관들이었다.

경쟁이 없는 상황에서 적은 수의 의료기관이 늘어나는 의료수요를 감당하다보니 환자가 항상 물밀듯이 밀려오는 상황이다. 심지어 환자들이 많으니 진료실에서 담배를 피우며 진료를 하는 의사들이 있을 정도다.

이렇게 대다수 병의원이 국립병원이어서 경쟁을 할 필요가 없는 데다 환자까지 많으니 중국의 의료 발전이 제대로 이뤄질 리 없었다. 중국은 뒤늦게 2009년 이후 수십조 원의 돈을 쏟아 부으며 의료기관의 숫자를 늘리고 있지만 여전히 병의원의 숫자와 의료 인력이 부족하고 의료의 질 개선이 숙제로 남아 있다.

중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정부가 직접 운영하는 단일건강보험제도를 채택하면서도 전체 의료기관 중 94%가 민간의료기관으로 구성돼 있다. 즉 민간의료기관이 공공의료를 떠받쳐 온 셈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정부가 운영하는 단일공적의료보험이 ‘원가 이하의 저수가제도’의 원칙을 고수해왔다. 이런 제도 아래에서 전체 의료기관의 94%를 차지하는 민간의료기관이 치열한 경쟁을 해야 했다.

또한 저수가 제도 아래 생존하려면 보험의 적용을 받지 않는 다양한 비급여 상품들을 만들어야 했다. 시대적 상황도 있었지만 성형시장의 급속한 확대의 이면에는 낮은 보험수가라는 큰 요인이 있었다.

의사들이 정부의 강압적인 낮은 보험수가를 피해 보험이 해당되지 않는 성형분야로 몰리면서 공급이 수요를 창출하게 된 것이다.
로봇수술의 발달도 마찬가지다.

전 세계에서 로봇수술 기계의 일종인 다빈치의 밀집도가 최고이며 국내에서 로봇수술을 가장 많이 하는 모 대학병원의 경우 그 병원에서 만드는 원칙이 로봇수술의 세계적 표준이 될 정도가 됐다.

정부의 투자 없이 오히려 의료를 억압하는 정책 속에서 의사들은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해 의료수준을 발전시켰고, 국민건강 증진에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중국 의료시장 개방과 우리의 문제점

그 결과 우리나라 국민의 평균수명은 OECD 평균을 넘어섰으며 영아사망률도 선진국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평균수명은 지난 50년간 29.1년이 늘어나 OECD국가 중 가장 빠르고 크게 늘어난 나라가 됐다.

대한민국의 의료 발전은 아이러니하게도 정부의 억압정책에서 오로지 자력으로 생존하기 위한 의사들의 노력에 의해 이뤄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나라의 의료 발전은 이제 그 한계에 다다랐다.

중국이 의료 발전을 위해 과감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 반면 우리나라는 정치인들의 포퓰리즘 정책으로 저수가제도는 유지하면서 비급여를 축소함으로써 병원의 경영이 크게 악화되고 있다.

   
 

대학병원들조차 생존을 위해 교육에 대한 투자를 줄이고, 교수들의 진료시간을 늘리느라 사실상 전공의 수련도 포기하는 병원이 속출하고 있는 상황이다.

가까운 나라 중국의 의료시장 개방은 우리에게 큰 기회가 아닐 수 없다. 이미 중국의 의료시장이 급속히 팽창했지만 GDP 대비 중국인들이 사용하는 의료비용은 약 5% 정도로 여전히 매우 낮은 수준이어서 앞으로 증가할 여지가 충분하다.

중국 위생부가 발표한 ‘건강 중국 2020 전략 연구보고’에 따르면 의료비가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20년에는 6.5~7%를 차지하고 연간 의료비 지출규모가 1000조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또한 2012년 의료서비스의 질 향상을 위해 국립병원에 대한 민간투자를 개방함으로써 사립병원의 확대를 꾀하고 있는 중국 정부는 2015년까지 사립병원의 의료서비스가 전체 의료서비스의 20%에 달하도록 한다는 목표를 정하고 사립병원 설립지원 정책을 펴고 있다.

이렇게 중국의 의료가 팽창하는 가운데 우리나라는 어떤 기회를 잡고 있을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실로 초라하다. 대중 의료기 수출이 빠르게 늘고 있지만 그 규모는 실로 미약하다.

중국으로 수출되는 의료기를 모두 합쳐도 2012년 기준으로 아직도 1.75억 달러 수준이다. (중국으로부터의 수입은 연간 1.3억 달러이나 무역 흑자는 고작 0.45억 달러이다) 그리고 앞선 의료기술을 이용해서 현지에 의료기관을 세우거나 중국인 내방객을 상대로 하는 의료관광을 한다고 하지만, 대다수가 여전히 성형 분야에만 머물러 있다.

   
 

급속히 팽창하는 중국의 의료시장을 놓치지 않기 위해 전 세계의 의료 관련 기업들이 앞다퉈 중국으로 몰려 들어가 이미 연간 수백 조에 달하는 시장에서 치열하게 싸움을 벌이는 것과 대조적이다.

빠른 경제성장으로 충분한 자본을 보유한 상태에서 병원을 고급병원, 사립체인병원, 사립종합병원, 혁신공립병원, 산후조리원과 양로원 등 기타 의료서비스기관, 그리고 병원그룹 등 6대 분야로 분류하고 혁신을 꾀하고 있는 중국이 가장 고민하고 있는 부분은 바로 의료교육과 의료의 질이다.

바로 우리가 앞선 분야다. 그러나 중국에 불고 있는 한류바람은 여전히 엔터테인먼트와 성형분야에만 머물러 있다.

아기가 태어나 한 살 이전에 사망하는 비율을 영아사망률이라고 한다. 대한민국의 영아사망률은 1000명당 3명으로 선진국 수준이며 이 수치는 중국의 약 1/4 수준이다.

OECD가 매년 발간하는 OECD Health Data를 살펴보면 대한민국 국민의 건강지표는 대부분 우수하다. 그것도 OECD 평균의 2/3에도 못 미치는 저비용으로 얻어낸 성과다.


중국 의료시장 개방 기회 놓치지 말아야

이처럼 앞선 대한민국의 의료기술은 비단 성형 분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며 특히 심장과 암치료 등 생명과 직결된 분야에서의 의료기술이 매우 뛰어나다. 그러나 그 사실은 중국에 알려져 있지 않다. 홍보가 크게 부족한 것이다.

그 역할은 누구의 몫이 돼야 하나? 정부의 저수가 정책(낮은 보험수가) 때문에 비정상적인 진료 활동을 통해 생존해야 하는 민간의료기관들은 그 기회를 잡을 여력이 없다.

전공의 교육과 수련조차 포기하면서 수익창출에 매달려야 하는 상황에서 다른 데 눈을 돌릴 틈도 없는 것이다. 지금 앞선 의료기술을 표방하고 높은 수준을 자랑하고 있지만 대한민국 의료는 내리막길을 앞두고 있다.

팽창하는 중국의 의료시장에서 기회를 놓치지 않고 앞선 기술을 앞세워 국내 의료산업이 진출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 이는 바로 정부다.

그런데 그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보건산업진흥원의 활동은 정작 찾아보기 어렵다. 중국 현지에서 성형 분야 외에 진료 분야에서 대한민국의 의료 한류가 일어날 수 있도록 치열하게 뛰어야 하는 이들의 활동이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참여할 수 있는 중국의 의료 개방의 기회는 그리 오래가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해외의 자본과 기술을 들여오기 위한 중국 정부의 해외민간병원 설립완화정책이 빠르게 효과를 거둘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이미 과거의 중국이 아니다.


노환규 편집위원·전 대한의사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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