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북한인권운동, 폭설을 녹이다
국제 북한인권운동, 폭설을 녹이다
  • 이상민 기자
  • 승인 2015.03.09 10: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현장] 유엔 COI 보고서 1주년, 워싱턴 북한인권 대토론회

UN의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Commission of Inquiry on Human Rights in DPRK) 최종보고서 발표 1주년을 맞아 지난 2월 17일 미국 워싱턴DC 내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서 ‘북한인권, 나아갈 길’이라는 주제로 국제토론회가 열렸다.

연세대 휴먼리버티센터와 CSIS, 미국 북한인권위원회, 조지부시연구소가 공동 주최한 이날 토론회에는 혹한과 폭설로 연방 정부가 문을 닫는 등 도시 전체가 마비된 상황에서도 UN, 한국, 미국, 캐나다 등의 정부 관계자와 북한인권 전문가 및 활동가들과 언론인 등 200여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특히, UN 뉴욕 주재 북한대표부가 전날 이 토론회 개최 중단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여는 바람에 이날 토론회는 국내외적으로 더 많은 관심을 모으며 시작됐다.

커트 캠벨 전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개회사에서 “지난 한해(2014년)는 UN 북한 인권조사위원회(COI)의 북한인권 보고서 발표로 북한인권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이 대폭 커지는 해였다”고 평가했다. UN인권이사회 47개 회원국 만장일치로 2013년 3월에 설립된 UN COI는 2014년 2월 17일 북한인권 침해 실태를 조사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UN 총회는 이 보고서에 기초해 2014년 12월 18일 북한인권 문제를 국제형사재판소(ICC)에 회부하는 조항을 담은 예년보다 강력한 내용의 북한인권 결의안을 채택했고 UN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는 며칠 뒤인 12월 22일 북한인권 문제를 정식 의제로 채택했다.

안보리에서 정식 의제로 채택되면 3년 동안 안보리 내에서 이 문제를 상시적으로 다룰 수 있어 북핵과 함께 북한인권은 북한에 상당한 부담이 되고 있다.

이날 행사를 주관한 이정훈 외교부 인권대사(연세대 휴먼리버티센터 대표. 미래한국 부회장)는 환영사에서 “UN COI의 보고서는 북한인권 침해에 대한 국제사회의 엄중한 메시지를 북한에 전달했다”며 “다른 곳이 아닌 UN이 직접 나서 1년 동안 조사를 했고 북한인권 침해를 인류에 반하는 범죄로 규정했다는 것이 이번 보고서의 가장 큰 의미이자 북한인권 침해를 억지하는 가장 강력한 조치”라고 말했다.


올 3월 새로운 UN 북한인권 결의안 채택

마르주끼 다루스만 UN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은 개막 기조연설에서 “UN 인권위원회는 2015년 3월에 북한인권 상황에 대한 새로운 결의안 채택을 고려하고 있다”며 “국제사회가 북한의 인권 침해를 얼마나 우려하고 있고 이를 자행하는 자들을 정의의 심판대에 세우려 한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해 북한인권에 대한 UN의 고삐를 늦추지 않겠다는 것을 명확히 했다.

마이클 커비(호주), 소냐 비세르코(세르비아)와 함께 UN COI 대표 위원으로 활동해온 다루스만 특별보고관(인도네시아)은 “인권 침해를 당하는 북한 주민들과 평화로운 미래를 바라는 남북한 주민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며 “북한의 심각한 인권 침해를 고칠 수 있는 의미 있는 변화가 나오도록 두 배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해 큰 박수를 받았다.

이날 토론회는 UN 북한인권조사회원회 보고서에 대한 평가, 앞으로의 과제, 북한인권 상황과 정치적 문제 등에 대한 패널 토론 및 북한인권 침해 증언 등으로 이뤄졌다.

UN 북한인권조사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한 마이클 커비 전 호주 대법관은 “조사위원회의 북한인권 보고서가 UN 총회와 안보리에서 의제로 채택되면서 북한이 틀렸다는 것을 전달한 매우 강력한 목소리가 됐다”고 평가했다.

커비 전 위원장은 “북한 주민들에게 COI 보고서 내용과 국제사회가 북한인권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 필요하다”며 그 방법을 질문하기도 했다.

 

이정훈 인권대사는 이어 환영사에서 “북한 주민 250만명이 휴대폰을 갖고 있다”며 “이를 통해 북한인권에 대한 국제사회의 움직임이 전달될 수 있다”고 답했다. 이 대사는 “북한에 풍선으로 정보를 보내는 것을 좋은 수단이라며 한국 내 친북 세력들이 이를 반대하지만 한국 정부는 풍선 사용을 반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북한이 전날 뉴욕에서 이번 토론회를 취소하라고 요청한 기자회견과 관련, 이 대사는 “2015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북한인권 국제심포지엄이 열리자 북한은 인도네시아 정부에 항의하는 등 비슷한 패턴을 보이고 있다”며 “우리는 오픈돼 있다. 평양에서도 열 수 있다. 정치범 수용소가 없다고 하는데 국제합동조사단을 구성해 확인해보자. 불평만 하는 대신 문을 열고 대화를 하자”고 북한에 촉구했다.

한편 로버트 킹 미국 북한인권특사는 “탈북민들 통해 조사해보니 북한 주민 30%가 라디오를 통해 한국과 미국의 방송을 듣는다”며 “라디오를 통해서 북한에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밝혀 주목을 받았다.

‘앞으로의 과제’를 다룬 두 번째 패널에서는 북한인권 이슈를 탈북민, 납치, 여성, 종교의 자유 제한, 해외 북한노동자 등으로 다양화하는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견들이 제기됐다. 특히 탈북난민들을 북한으로 강제송환하는 중국에 경고장을 보내는 등 중국에 대한 압박도 계속 돼야 한다는 의견이 강조됐다.


COI가 권고한 북한인권운동의 나아갈 길

이번 토론회를 공동 주최한 연세대 휴먼리버티센터는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그동안의 국제사회 움직임을 소개한 ‘Because of You’라는 제목의 영상을 상영했는데 북한인권 문제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의 역할이 변화를 위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보내 참석자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점심식사 이후 기조연설자로 나온 칼 거시만 민주주의진흥재단(NED) 회장은 COI 보고서의 권고 중 3가지를 강조했다. 첫째, 동남아시아 국가들처럼 북한에 원조를 제공하며 우호적인 국가들이 북한인권 문제를 제기하고, 둘째 헬싱키 프로세스와 같이 북한인권을 안보 문제와 연계시키는 동북아 집단안보체제를 발전시키며, 셋째 인류에 반하는 범죄를 저지른 북한 지도자들에게 책임을 묻는 전환기 정의의 심판(Transitional Justice)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거시만 회장은 특히 북한의 인권 침해가 워낙 광범위해 전환기 정의의 심판을 어떻게 할지 상상하기 어렵지만 먼저, 북한 지도자들이 자행한 많은 범죄 기록 증거와 문서들을 모으고 지난 30여년 동안 공산권 등에서 이뤄진 전환기 정의의 심판에 대해 미리 공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두번째 기조연설자인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는 “북한인권을 외면하는 것은 하늘에 죄를 짓는 것”이라며 “2004년 미국에서 북한인권법이 통과될 때 한국에서는 그렇지 못해 너무나 부끄러웠다”고 말했다.

김 전 지사는 “2005년 8월 11일 북한인권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는데 8년간 도지사를 하고 정치권에 돌아오니 10년 전에 발의한 북한인권법이 여전히 통과되지 않고 있었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북한인권을 말하면 화해와 평화가 깨진다는 말을 이해할 수 없다”며 “마지막 남은 사명인 북한의 민주화와 남북통일이 북한인권의 궁극적인 해법”이라고 강조했다.

마이클 커비, 소냐 비세르코, 마르주끼 다루스만 등 3명의 UN COI 조사위원들에게 북한인권 개선을 위해 애쓴 노고에 감사하는 상패를 수여하는 시간이 이어졌고 이들의 수상소감과 지난 1년간의 활동 소회를 듣기도 했다.


“신동혁 오류는 COI 보고서에 영향 없어”

이후 패널에서는 탈북민들이 북한에서 겪은 인권 침해 증언을 듣는 시간이 이어졌는데 이 때 화두는 최근 불거진 탈북민 신동혁 씨 증언의 신빙성 문제에 대한 것이었다.

신동혁 씨는 평안남도 개천에 있는 ‘14호 완전통제구역 관리소’를 탈출한 유일한 탈북민으로 인식돼 왔다. 그는 정치범 부모를 둔 죄로 1982년 이곳에 태어나 23세 때인 2005년 전기 철조망을 뚫고 탈출해 성공한 뒤 이듬해 한국에 들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이야기는 미국 언론인 블레인 하든이 그를 2년여 동안 인터뷰해 2012년 발간한 영문 서적 ‘14호 수용소 탈출’(Escape from Camp 14)을 통해 국제적으로 소개됐고 그의 증언은 UN COI 북한 인권보고서에 일부 소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신동혁 씨는 최근 자신이 23세 때까지 14호에 수용된 것이 아니라 6세 때 18호로 옮겨졌다고 정정하면서 탈북민 증언의 신빙성이 논란이 됐던 것이다.

마이클 커비 전 UN 북한인권조사위원회 위원장은 “신동혁의 증언은 자신들이 만난 수백여명 탈북민들의 증언 중 하나에 불과하다”며 “COI 보고서에 영향을 거의 미치지 않았다”고 일축했다.

저자인 블레인 하든은 이날 토론회에 직접 나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그는 “신동혁은 자신이 일부 거짓을 말한 것에 대해 매우 창피해 하고 있으며 북한에 있을 때의 고문 등으로 정신적 트라우마가 생겨 그러한 결과가 일어났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편 발제자로 나선 한기홍 북한민주화네트워크 대표는 “신동혁 씨는 용기를 내서 진실의 벽 앞에서 서서 자신이 애초에 증언했던 이야기가 남에게 들은 것인지, 직접 경험한 것인지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한 대표는 “북한인권 운동에 대한 관심이 국제적으로 커지면서 북한인권 관련자들은 증거의 엄밀성과 정확성을 분명히 하면서 스스로가 도덕적 위기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인권의 정치’란 주제로 열린 마지막 패널에서 마이클 그린 CSIS 선임부소장은 “인권 이슈와 핵 이슈는 상충된다는 것이 그동안 모든 미국 행정부의 입장이었다”며 “하지만 꼭 그렇지 않다며 양자를 균형 되게 하는 일관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는 한국에서 북한인권법안이 10년 넘게 채택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한국 내 친북 세력의 영향이라고 밝혔다.

조 대표는 “한국인들을 10%는 핵심 친북, 20% 동조세력, 30%는 핵심보수, 나머지는 기회주의자로 분류할 수 있다”며 “북한 추종세력은 북한 지도자, 북한의 권력 계승, 북한 정치 시스템, 김일성 주체사상, 북한인권을 절대 비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조 전 대표는 “한국인들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보고 울었다.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을 할 때도 보고 울었다. 대화가 실패했는데도,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했는데도 믿지 않는다. 북한인권 문제는 한국에서는 지겨운 이슈인 것이다. 이런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이를 위한 전략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北 인권이 한국에서 외면 받는 이유는…

김태효 전 청와대 대외전략기획관은 “한국은 이념적으로 좌우로 분리돼 있는데 이들은 기회주의적인 다수의 지원을 얻으려고 경쟁하고 있다”며 “문제는 다수의 한국인들이 정확한 정보를 얻지 못하는데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북한 정권과 북한 인권에 대한 바른 정보를 이들에게 제공하고 민주주의를 강화시키는 것이 한국이 국내적으로 해결해야 할 주요한 도전”이라고 밝혔다.

이날 행사에 이어 다음날 18일 오전에는 북한인권 문제 해결을 위한 구체적인 향후 과제를 논의하기 위해 국내외 북한문제 전문가 30여명이 참여한 비공개 토론회가 CSIS 세미나실에서 개최됐다.

토론회에는 전날 패널 참석자들 외에 한국에서는 김범수 본지 미래한국 발행인, 김태훈 전 국가인권위원, 이미일 납북인사가족협의회 이사장, 이금순 통일연구원 북한인권연구센터장, 조정현 국립외교원 교수 등이 참여했고, 미국과 유엔에서는 데이비드 킹 북한인권특사, 빅터차 CSIS 고문, 그렉 스칼라튜 북한인권위원회 소장, 팰리스 가어 제이콥블라우스타인 연구소 소장, 존 브라우스 WFP 소장 등이 참여해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한편 17일 메인 행사는 KBS 9시뉴스와 SBS, YTN 뉴스 등에도 보도되는 등 많은 언론의 조명을 받기도 했다.


워싱턴= 글·사진 이상민 기자 proactive09@gmail.com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