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혈 보관사업,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제대혈 보관사업,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 미래한국
  • 승인 2015.03.16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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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환규의 청진기]

얼마 전 중국을 방문했을 때 어느 중국 기업인이 이런 말을 했다. “중국이 경제성장으로 이제 먹고 살만해졌는데 한 자녀 산아제한정책에 의해 거의 모든 가정들이 한 자녀만 갖다보니 집집마다 아이들이 가장 우선이다.

그래서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 하도 귀해서 그들을 황제라 하고 아이들을 상대로 하는 사업을 황제사업이라고 한다” 황제사업 외에 그리고 에어백사업이라는 말도 있다. 에어백은 위험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안전을 담보하는 제품이며 돈을 주고 구매하면서도 그 제품이 사용되지 않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제대혈은 황제사업이자 에어백사업

황제사업인 동시에 전형적인 에어백사업인 사업이 있다. 바로 제대혈 보관사업이다. 제대혈이란 태반과 탯줄을 포함해 태아의 순환계를 돌고 있던 혈액을 말하는데 통상 신생아 분만 이후에 탯줄에 남아 있는 혈액을 뽑아 보관한다.

제대혈 안에는 백혈구·적혈구·혈소판 등 다양한 혈액세포들을 만들어 내는 조혈모세포가 들어 있다. 뿐만 아니라 뼈나 연골, 신경이나 간, 표피세포 등 다양한 장기의 조직으로 분화가 가능한 잠재력을 가진 간엽줄기세포도 들어 있는 것이 확인됐다.

만일 아기가 자라 나중에 백혈병 등으로 타인의 골수이식을 할 필요가 있을 때 미리 보관해 둔 제대혈이 있다면 골수이식을 할 필요 없이 미리 보관해 둔 자신의 제대혈을 사용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제대혈을 보관사업을 하는 기업들은 아기의 건강한 미래를 위해 제대혈을 보관해둬야 한다고 홍보한다.

   
 

그런데 2000년대 초반 우리나라에서 시작된 이 제대혈 보관사업은 사실상 기이한 사업이다. 1990년대 중반 미국에서 시작됐지만 지지부진한 사업이며 유럽 전체와 일본만 해도 사업체가 몇 안 된다.

그러나 국내의 경우 2000년대 초반 제대혈 보관사업을 시작한 M사는 2003년 매출 360억원에 영업이익 61억원을 기록하는 놀라운 성장세를 보였고 현재도 십수개의 업체들이 과다경쟁 중이다.

외국에서는 찾기 어려운 서비스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중산층 이상의 거의 모든 산모들이 아기를 낳은 후 15년 보관에 100만원이 훌쩍 넘는 보관비용을 지불하며 아기의 제대혈 보관을 신청하고 있다. 평생 보관은 400만원이 넘어 든다.

보관비용이 부담스러워도 “아기를 위해 필요하고 좋은 것이라는데 내가 돈을 아끼려다가 혹시 아기에게 해를 끼치는 것은 아닐까?”하는 불안감에 제대혈 보관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다.

왜 선진국에는 없는 제대혈 보관사업이 우리나라에서는 10년이 넘게 이렇게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는 것일까? 과연 아기의 제대혈은 보관할 가치가 있는 것일까?


가족제대혈의 과대포장

제대혈의 보관은 통상 가족제대혈과 기증제대혈 두 가지로 나눈다. 가족제대혈이란 민간업체에게 돈을 주고 보관한 후 본인이나 부모, 형제 등이 난치병에 걸렸을 때 치료제로 사용하는 것을 말하고, 기증제대혈이란 다른 사람의 질병치료와 의학연구 목적으로 대가 없이 기증해 보관하는 것을 말한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01년부터 2013년 말까지 전국 16개 제대혈은행에 보관된 제대혈 보관 건수는 총 44만6290건이며 그 중 가족제대혈이 40만5500건(91%), 기증제대혈은 4만790건(9%)인 것으로 확인됐다.

그렇다면 돈을 내고 민간업체에 맡기는 가족제대혈이 치료 목적으로 사용된 것은 과연 몇 건이나 될까? 13년 동안 전체 가족제대혈 보관량의 0.04%에 해당하는 179건에 불과했다. 반면 기증제대혈이 이식 치료용으로 사용된 것은 711건으로 1.7%에 해당됐다.

   
 

기증제대혈이 가족제대혈보다 35배 더 많이 사용된 것이다. 약 25만 단위를 보관하고 있는 미국의 민간제대혈 업체의 경우에도 사용확률을 0.01%로 보고했으며 2006년 3월 국내의 한 연구자는 당시 기준으로 약 14만개의 가족제대혈 중 조혈모세포 이식용으로 사용된 제대혈은 9례에 불과해서 사용확률이 0.006%라고 보고한 바 있다.

이렇게 사용확률이 낮은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는 제대혈이 필요할 정도의 난치병에 걸릴 확률이 매우 낮기 때문이다. 둘째, 설사 그런 질병에 걸렸더라도 보관해놓은 제대혈을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보관해놓은 세포 숫자가 필요한 세포수에 이르지 못하는 경우가 많게 때문이다. 더욱이 백혈병 등 유전적 소인이 있는 질환은 자신이나 가족의 제대혈을 환자에게 이식하는 것이 의학적으로 도움 되지 않는다는 견해가 나오고 있다.

실제 미국소아과학회가 2007년 1월 발표한 ‘잠재적인 미래의 이식을 위한 제대혈 보관’(Cord Blood Banking for Potential Future Transplantation)에서 자신 혹은 가족이 사용할 목적으로 제대혈을 보관하는 것을 권장하지 않으며 공공의 사용을 위한 제대혈 저장은 권장했다.

그 이유는 만약 제대혈을 보관한 아이가 후에 자신의 줄기세포를 필요로 하는 악성종양이나 유전자 질환에 걸린다면 이미 보관해 놓은 줄기세포 안에도 그 잠재성이 내포돼 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형제 중에 제대혈 줄기세포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질환에 걸린 것이 확실한 사람이 있다면 보관할 가치가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100만원이 넘는 돈을 받고 가족제대혈 보관서비스를 제공하는 민간업체들은 그러한 사실들을 정확히 알리지 않는다.

민간업체들의 과대 선전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들은 “제대혈보관은 백혈병, 재생불량성빈혈 등 혈액 관련 질병치료를 위한 조혈모세포와 심근경색, 당뇨, 척수마비 등의 치료에 필요한 줄기세포를 같이 보관해 둠으로써 미래에 혹시나 걸릴지 모르는 질병에 대비하기 위한 생명보험이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홍보한다.

그러나 심근경색, 당뇨, 척수마비 등의 치료에 제대혈의 줄기세포가 이용된 사례는 아직 없고 앞으로도 요원한 일이다.


정답은 기증제대혈, 그러나 이것도 문제

선진국들은 기증제대혈이 활성화돼 있다. 자기 제대혈을 보관하지 않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제대혈을 기증해서 제대혈 은행에 보관해두면 제대혈이 필요한 사람이 생겼을 때 조직적합성에 부합하는 제대혈을 찾아 사용하는 방법이다.

우리나라에도 1997년 삼성서울병원과 가톨릭대학교에 기증제대혈은행이 설립됐고 2002년 부산경남제대혈은행, 2005년에는 서울특별시립 보라매병원 제대혈은행, 2007년에는 대구파티마병원 제대혈은행이 생겼다. 이 기증제대혈은행들은 공익 목적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해당 지자체에서 지원을 받는다.

그 이외에도 대학병원 등과 같은 의료기관을 중심으로 자체적인 예산으로 운영되고 있는 기증제대혈은행이 다수 있고 민간 제대혈은행에서 회사의 이미지 개선 혹은 기업이윤의 사회 환원 등의 명목으로 가족제대혈은행 프로그램과 함께 기증제대혈은행 사업을 운영해오고 있다. 그리고 각 은행에 보관된 제대혈의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중앙제대혈데이터센터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문제는 보관과 운영이다. 지난 해 10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박윤옥 새누리당 의원이 보건복지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3년 말까지 최근 3년간 기증받은 기증제대혈 2만4056건 중 부적격 판정을 받은 기증제대혈이 1만4615건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기증을 받아 보관된 제대혈의 60.7%가 사용이 불가했다는 것이다. 부적격 사유로는 세포수 부족이 1만2869건으로 가장 많았고 오염이 107건, 바이러스 감염이 74건 등이었다고 발표했다.

부적격 기증제대혈 중 1만2000여건은 폐기됐고 1700여건은 용도가 치료용에서 연구용으로 바뀌었다. 박 의원은 체계적인 관리를 주문했다. 그렇다면 가족제대혈은 다를까? 보관된 제대혈을 사용하지 못하는 가장 큰 경우는 세포수 부족인데 이것은 가족제대혈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기증제대혈의 운영 또한 도마 위에 올랐다. 2013년 10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신의진 새누리당 의원이 복지부로부터 국감자료를 제공받아 분석한 결과 서울시제대혈은행(보라매병원), 대구파티마병원 제대혈은행, 가톨릭조혈모세포은행 등 3개 국가지정 기증제대혈은행들이 국고 지원을 받으면서도 제대혈을 관리하는 이식·공급 비용을 10배 이상 부풀려 환자에게 부담을 떠넘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 의원에 따르면 제대혈 기증과 활용을 활성화하기 위해 재료비, 인건비 모집, 검사, 보관 등 필요한 모든 항목을 국가에서 지원하고 있는데도 관리 원가가 67만~84만원에 불과한 제대혈을 1인당 600만~800만원씩 받았다고 지적했다. 신의진 의원은 기증제대혈은행들이 기증받은 제대혈로 장사를 한 것이라고 기증은행들과 관리기관인 보건복지부를 맹비난을 했다.


솔직한 해법을 찾을 때

결론적으로 가족제대혈 보관서비스는 아기의 형제 중에 제대혈 이식이 필요한 병에 걸린 경우가 아니라면 돈을 내고 이용할 필요가 없는 서비스다.

제대혈이 필요하다면 기증제대혈 은행에서 아기에게 맞는 것을 찾아 이용할 수 있고 아기에게 병이 생긴다고 해도 아기가 미리 보관해 둔 제대혈이 도움이 되지 않거나 사용하지 못할 확률이 매우 높다.

또 제대혈 내에 들어있는 간엽줄기세포는 아직 원하는 형태의 세포로 분화시키는 기술이 마련돼 있지 않고 현실화되기에는 아직 요원하다. 이 때문에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민간사업인 가족제대혈보다는 공공사업인 기증제대혈은행의 육성에 집중하고 많은 경우 국가가 관리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국가적 관리가 이뤄지기 전 상업적 목적으로 제대혈 보관사업에 뛰어든 업체들이 난립함으로써 가족제대혈 보관이 기형적으로 많아지게 된 상태이고 정부는 관리에 손을 놓고 있었다.

그 사이 제대혈 보관 서비스를 이용했는데 정작 보관한 제대혈을 사용하지 못하게 된 환아의 가족들이 크게 절망하는 사례들이 늘어나고 있다. 상품에 대한 정확한 설명을 하지 않거나 상품의 가치를 부풀려 과도한 기대를 갖게 해서 상품을 판매하는 것은 사기에 가깝다. 터지지 않는 에어백을 판매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소비자는 그 에어백이 터지지 전까지 제대로 된 상품인지 확인할 길이 없다. 더욱이 에어백을 구매한 소비자가 에어백이 터지지 않기를 바라는 것처럼 큰 돈을 지불한 아기의 가족들도 제대혈 보관 서비스를 이용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그러나 사고 시에 에어백이 반드시 작동해야 하는 것처럼 보관한 제대혈은 반드시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양심적 기업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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