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데커트 Louis Dechert 한미연합참전용사회 회장 · 한미연합재향군인회 회장
저는 젊었을 때 1953년부터 1954년까지 한국군 12사단 51년대의 동료들과 함께 한국인들의 자유를 방어하는 특권을 누렸습니다.
1970년 저는 남베트남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한국군과 함께 복무하는 특권을 다시 누렸습니다.
2004년 저는 한국전참전용사협회(KWVA) 전국 회장으로 활동하라는 동료 한국전참전용사들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 자격으로 저는 2004년부터 2009년까지 한국의 수많은 자유의 전사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당시 미래한국 발행인이자 국가비상대책협의회 의장인 김상철 박사님을 만났고 저희는 막역한 관계로 우정을 발전시킬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우정과 한미양국에 대한 공통의 관심은 태평양을 너머 수년 간 자라고 확대되었습니다.
김 박사님을 통해 저는 수많은 한국의 자유의 전사들을 만나는 영광을 누렸고 그들과 함께 상호 안보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뿐 아니라 우리 나라에서 자유라는 공통의 명분을 위해 일했습니다. 그렇게 만난 애국자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태식 주미한국대사, 당시 대통령 후보였던 이명박 전 대통령, 당시 국회의원이었던 박근혜 현 대통령, 경순창 장군, 박세직 재향군인회 회장, 지정갑, 강영훈 전 국무총리, 김홍의 제독, 김홍도 목사 김상태 장군, 김규 장군, 백선엽 장군, 한승수 전 국무총리, 임청근 박사. (성함이 틀렸으면 양해를 구합니다)
김상철 박사님은 동아시아에서 계속되는 전쟁과 오래동안 거론되었지만 지금은 무시되고 있는 1950년 UN의 목적이었던 한국 통일에 대해 제게 가르침을 준 끈기있는 멘토였습니다. 그의 촉구와 지원으로 우리는 2005년 한미동맹협의회를 설립했습니다. 유명한 한국 및 아시아 전문기자인 돈 컥은 이 협의회의 설립을 보도했고 중요한 정보들을 제공했습니다.
김상철 박사님은 재향군인회 간부들 모임에서 여러 차례 연설하셨고 제가 한국의 유력한 모임과 단체들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늦은 밤 혹은 이른 아침에 미국의 여러 호텔에서 김상철 박사님과 독대해 커피를 마시면서 김 박사님께서 제게 한국의 현 문화와 정부 간 관계들을 끈기있게 가르쳐주셨던 것을 기억합니다.
김 박사님께서는 돌아가시기 1년 전 한국에서 출판될 책과 관련, 제게 한국의 지난 60년 변화에 대한 저의 생각을 소개해보라고 제안하였습니다. 그 책의 제목은 처음에는 “해외에서 본 한국의 성장: 성공적인 국가 건설(Korea’s Growth as Seen from Abroad: Successful Nation-Building)이었지만 나중에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나라 한국(Korea Impossible to Possible)로 바뀌었습니다.
짧았지만 개인적이고 전문적인 우정 관계를 통해 본 김 박사님은 조용하셨고 지적이셨으며 잘 인내하시고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교사이자 리더였습니다. 김 박사님은 북한에 대한 자신의 뿌리와 친족들을 항상 마음에 두셨고 그들을 구원하는데 헌신하셨습니다.
김 박사님은 독실한 기독교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지금 천국은 그분의 존재로 더 풍성해졌지만 우리는 그분의 리더십과 격려를 잃어 더 가난해졌다는 것을 말입니다.
김상철 박사님은 친구이자 애국자이고 자유의 전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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