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본적(神本的)으로 행동하는 지도자
신본적(神本的)으로 행동하는 지도자
  • 미래한국
  • 승인 2017.05.16 16: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영한 기독교학술원장 · 숭실대 명예교수

2012년 12월 김상철 장로를 천국으로 떠나보내면서 필자는 한국 사회가 소중한 인물을 잃었다는 아쉬움을 느꼈다. 그분은 가치관이 혼란한 시대에서 ‘시대를 바라보는 눈’이었다. 그분은 장로로서 신행일치의 삶을 살았다. 한국교회는 큰 족적(足跡)을 남긴 평신도 지도자를 잃었다는 손실감을 체감했다. 그 분은 우리 한국 교회와 사회에 거대한 신앙적 열정과 아울러 명석하게 사고하고 판단하고 분석해 내는 예리한 지성과 그것을 실천하는 결단력을 소유한 분이었다.

1. 서울교회 청년부와 장년부 시절

나는 1960년대 후반에 서울 문리대와 법대가 있었던 동숭동 대학 시절을 보냈고 총기독학생회 운동을 열심히 했으나 그 시절에는 그분을 만나지 못했다. 내가 그분을 개인적으로 알게 된 것은 유학 다녀와 협동목사로 봉사한 1990년대 서울교회에서였다.

김상철 장로가 이종윤 목사께서 개척하신 서울교회에 출석했기 때문에 필자는 협동목사로 서울교회의 청년부와 장년부 신앙강좌반을 지도하면서 그분을 알게 됐다. 그분은 신앙만이 아니라 독특한 지성과 국가관을 지니고 있었다. 법률을 전공해 고시에 합격하고 사법연수원을 나와 판사생활을 했고, 1980년대 어려운 시국에서 인권 변호사로서 우리 사회의 자유민주이념을 지키는 데 헌신하셨다.

나아가 그는 서울시장을 거치면서 우리 사회에 하나의 사회적 지도인사로서 자리매김했다. 그분은 서울교회 청년부와 장년부 부감과 부장을 하시면서 그 부서일을 열심히 했다. 서울대 법대를 수석으로 졸업한 헌법학 박사이자 고시에 합격한 변호사요 지식인이었으나, 교회 청년부와 장년부 활동에서는 주로 손과 발로 봉사만 하면서 경청하고 교역자를 옆에서 돕는 착실한 신자와 주일학교 교사 역할을 했다.

2. ‘미래한국’ 시절 회고

김상철 장로는 2002년 6월 애국 정론지요 보수언론지 ‘미래한국신문’(現격주간 ‘미래한국’)을 창간했다. 그분은 신학자인 나에게 ‘한국사회를 병들게 하는 좌파 사상에 대한 비판적 견해’에 대한 대담 인터뷰를 종종 했다.

그가 창간한 언론의 이름처럼 그는 한국의 미래를 향한 방향 설정과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지녔고 제시하고자 했다. 미래한국신문은 ‘사랑의 보수주의’와 ‘국가전략과 사회방향 제시’를 기치로 내걸고 있으며 사시(社是)는 ‘생명은 존귀하다.

사랑으로 화합하자. 미래를 준비한다.’의 세 가지를 내걸었다. 편집 방침으로는 ‘하나님이 한국을 사랑한다는 믿음 위에 선다. 비판이 목적이 아니라 해결책을 제시한다’는 원칙을 정했다. 또한 ‘우리는 기독교정신을 바탕으로 하나님께서 한국을 사랑하시고 우리에게 항상 희망이 있다는 믿음에 서 있다’고 밝히며 ‘기독교 교계신문이 아니라 기독교 양심세력이 만드는 시사신문이다’고 지향점을 분명히 했다.

나는 비판적 지식인이요 언론인으로서 활동하는 김상철 장로의 사회활동을 통해 교회에서보다 그분을 보다 깊이 알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나는 시사대담을 하면서 그분이 투철한 보수적 신앙을 가졌으며 대한민국의 정통성 세우기를 중시하는 명백한 민주적 자유주의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한미우호를 소중히 여겨 미국을 우방으로 알고 가까이 지내고자 하는 친미주의자라는 사실 또한 발견했다.

그분은 한미우호 강화와 대한민국 정체성 확립에 헌신하고자 했다. 평안북도 태천 출신으로 세 살 나이에 38선을 넘고 갖은 고초를 겪은 후 자수성가한 법조인으로서 인류 보편의 가치와 인권을 위해 헌신했다. 지식인으로서 아시아태평양시대의 도래를 바라보면서 1994년 태평양아시아협회를 창립했다. 나는 그분이 투철한 기독교 신앙에 기반해 창립한 시사언론사가 미래한국의 방향을 ‘자유민주주의의 국가’로 설정한 것에 대해 공감했다.

김상철 장로는 ‘인권 변호사’로서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에 처한 자들을 위해 변호하고 도움을 줬다. 그분은 2008년 초 판교 지역에 부지를 얻어 새로운 예배당을 신축하고자 했던 교회들이 당시 신도시 당국이 일방적으로 정한 주차장 면적비율에 대한 조례 때문에 난관에 부딪쳤을 때 이 조례가 상위법에 저촉된다는 법리를 천명했다. 판교 지역에 새로운 교회당을 신축하고 있는 모든 교회들에게 혜택이 가도록 법률적인 문제가 깨끗하게 해결되도록 해서 지역교회에 실제적인 도움을 줬던 것이다.

그분은 북한 동포와 탈북자 인권 문제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보이며 인권 신장을 위해 헌신적으로 활동하셨다. 1990년대 중반 북한 동포들의 대규모 아사 사태를 듣고 1999년 4월 탈북난민보호 UN청원운동본부장을 맡아 2년 반 만에 국내외에서 1180만 명의 서명을 받아 냈다. 2002년 무려 1180만 명이 서명한 ‘탈북난민 인정 청원서’를 유엔 본부와 미 의회에 내놓았다. 이것은 유엔에서 북한인권 결의안이 채택되게 하는 등 국제사회에 북한인권의 실태를 알리고 국제법에서 탈북민의 난민 지위를 인정하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3. 투병시절 회고

김상철 장로는 서울교회 신앙강좌 1부 부장으로 임명받은 해 2008년 12월 5일에 쓰러지셨다. 나는 신앙강좌 1부의 지도 목사로서 김상철 장로께서 부장으로 임명된 것에 대해 큰 기대를 가졌다. 어느 장로 못지않은 경건함 뿐 아니라 특히 탁월한 지성, 세상을 보는 혜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 신앙강좌 1부 회원들은 그분이 과로해 쓰러졌으니 좀 쉬다가 몇 주 후에는 다시 돌아오실 것을 기대하고 기다렸다. 그러나 그분은 돌아오지 못했다. 대신 임명된 신앙강좌부 부장집사와 부감과 함께 그분의 병실을 수차례 방문하고 나는 이렇게 간절히 기도했다.

“주님께서 장로님, 서울교회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가 필요로 하는 장로님을 회복하게 해 주십시오.”

우리는 주님이 그분을 기적적으로 소생시켜 주실 것을 간절히 바랐다. 마지막 투병시간까지 남편과 함께 하는 것을 감사해 한 부인 최원자 권사와 그토록 지성(至誠)을 다한 자녀들의 수발을 감동적으로 보았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지 아니하셨다. 4년이라는 투병 과정을 거치고 난 후 주님은 그분을 데려가셨다.

“선하신 하나님의 길은 어디 있습니까?”

“주님의 섭리를 알게 해 주세요.”

항의조의 기도를 드렸다. 여기서 목사요 신학자인 나 자신도 숨어계시는 하나님(Deus absconditus)의 모습을 발견한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경제입국을 하고 국민소득 2만 달러를 넘어섰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이념적으로 갈등하고 있으며 바로 잡아야 할 부분들이 산적해 있다. 대

한민국의 정통성을 확립해야 하고 사회적 소외와 격차를 완화시키고 통일한국을 이뤄야 하는 등 해야 할 일들이 많다. 이러한 중요한 시기에 소중한 인재를 데리고 가신 하나님의 뜻을 나는 잘 알지 못하고 인간의 머리로 도무지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묵상에 사로잡힐 때가 적지 않다.

4. 신본적(神本的)으로 행동하는 지도자

김상철 장로는 신본적(神本的)으로 행동하는 지도자였다고 특징짓고 싶다. 단지 열정적 복음주의 교회 지도자임을 넘어서 한국 사회를 향한 지도자였다. 특별히 복음적 신앙을 가진 지도자였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가야 할 자유민주사회와 통일된 한국의 확실한 비전을 가진 분이었다.

그는 자신의 비전을 실현할 구체적인 방법으로 보수적 의견과 정책을 결집시키는 싱크탱크 미래한국을 창간하고 이에 심혈을 기울였다. 선진 한국사회가 필요로 하는 사회 변혁과 실천에 대한 사상과 비전을 지니고 있는 인재였다. 그리고 그가 하고자 한 거대한 과제들을 이행하는 데 건강을 돌보지 않고 전력을 소모했다. 너무나 열심히 일에 헌신하셨다. 주일에는 교회 일, 주중에는 보수적 정론을 결집하고 세우는 일에 파묻혀 사시며 커다란 족적(足跡)을 남긴 것이다. 이 과정에서 김 장로는 과로로 쓰러졌다. 주님은 너무나 많은 일을 하신 그분을 사랑하시니 쉬라고 데리고 가신 것이다.

김상철 장로께서 쓴 ‘미래한국’의 칼럼의 제목대로 그분은 ‘시대를 보는 눈’이었다. 그분은 오늘도 말하고 있다. ‘생명은 존귀하다. 사랑으로 화합하고, 미래를 준비하자.’ 그분은 시대를 앞서 꿰뚫어 보는 밝은 눈을 남겼다.

이제 젊은 신앙의 후예들이 그분의 위대한 신앙과 사상과 실천을 배우고 새로이 발전시켜나갈 때다. 인간은 가나 하나님은 살아계시기 때문에 반드시 이뤄질 것으로 믿는다. 그가 위대한 유산(遺産)으로 남긴 ‘미래한국’이 그가 미처 이루지 못한 과업을 창조적으로 계승하기를 바란다.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그것은 바람이 지나가면 없어지나니 그 있던 자리도 다시 알지 못하거니와, 여호와의 인자하심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며 그의 의는 자손의 자손에게 이르리니, 곧 그의 언약을 지키고 그의 법도를 기억하여 행하는 자에게로다”(시 103:15-18).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