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 역사문화 기행④] 이건희의 또다른 유산 용인스피드웨이
[용인 역사문화 기행④] 이건희의 또다른 유산 용인스피드웨이
  • 고성혁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21.06.08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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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평생 수집한 세계적인 미술품이 세간에 화제다. 그 규모도 엄청나서 박물관 하나를 가득 채우고도 남을 물량이다.

그렇다보니 각 지방자치단체마다 이건희 미술관 유치 경쟁에 나서는 모습이다. 용인시도 5월 9일 이병철 회장이 만든 호암미술관을 인연으로 해서 이건희 미술관 유치 의사를 밝혔다.

이건희 회장이 기증한 미술품은 총 2만3000여 점에 달한다. 그런데 용인에는 이건희 회장의 유산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용인스피드웨이’다. 용인스피드웨이는 이건희 회장의 지시로 건설됐다.

이건희 회장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자동차 광’이었다. 자동차에 대한 조예도 깊었고, 특히 자동차 경주 실력도 수준급이라고 알려져 있다.

세계적 경제전문지 비즈니스위크는 1994년 2월 28일 삼성그룹을 특집으로 다루면서 이건희 회장을 표지 사진으로 올렸다. 노란색 포르쉐 스포츠카 옆에서 레이싱복을 입고 헬멧을 옆구리에 끼고 있는 젊은 이건희 회장 모습이었다.  

용인스피드웨이는 1995년 3월 삼성물산이 ‘용인 모터파크’라는 이름으로 에버랜드 주차장 옆에 포장 트랙을 만들면서 개장했다. 개장 당시에는 2.125km 길이에, 12개의 코너로 만들어진 한국 최초의 자동차 서킷이다.

자동차 경주장치고는 작은 규모였다. 2009년 확장공사를 해서 길이 4.5km까지 코스 길이를 늘렸다.

2009년 확장공사에 들어가기 전까지 용인스피드웨이에서는 많은 경주대회가 열렸다. 당시 국내 자동차 경주 시리즈로는 프로대회인 CJ오슈퍼레이스를 비롯 아마추어대회인 스피드페스티벌, 타임트라이얼, DDGT, RV챔피언십 등 5개 대회가 있었다. 이제는 용인스피드웨이 말고도 태백레이싱파크(2003년 개장)과 국제규격으로 건설된 영암KIC 스피드웨이가 있다. 

국내 자동차경주대회도 시설이 더 좋은 영암KIC나 태백레이싱파크로 옮겨 개최되고 있다. 그래도 용인스피드웨이가 국내 모터스포츠의 요람이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용인스피드웨이 개장으로 국내 유명 레이싱팀 및 관련 업체 40여 개가 생겼다. 이건희 회장이 국내 모터스포츠 산업의 자생력을 키우는 자양분 역할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용인스피드웨이는 메르세데스-벤츠社의 고성능 브랜드인 AMG 전용 트랙으로 이용되고 있다.

이건희 회장은 모터스포츠 불모지였던 국내에 처음으로 용인스피드웨이를 만들었다. 재벌을 적대시하는 일부에서는 용인스피드웨이에 대해 이건희 회장 개인의 취미로 만들었다고 혹평하기도 했다.

그러나 용인스피드웨이가 만들어지면서 국내에서도 본격적인 수준의 자동차경주대회를 개최할 수 있었다. 그전에는 자동차 경주를 영종도의 공터를 대충 만든 비포장 트랙에서 했다.

경기를 한번 하면 차들은 폐차 수준으로 망가지기 일쑤였다. 필자 역시 자동차광인지라 1986년 영종도까지 가서 자동차경주를 보곤 했다. 1986년은 사실 한국 자동차문화가 대중문화로 자리 잡기 시작한 원년이었다. 현대 엑셀, 기아 프라이드, 대우 르망으로 대표되는 한국의 승용차 시장은 급속히 커져갔다.

1986년 전국 자동차 등록 현황은 100만 대를 겨우 넘긴 수준에 불과했다. 이건희 회장이 용인스피드웨이를 만든 1995년에는 847만 대로 증가했다. 10년도 안 되는 기간에 자동차 증가는 10배 가까이 된 것이다.

1000만 대를 눈앞에 둔 시기 이건희 회장은 한국도 이제 본격적인 자동차 경주가 대중 스포츠로 자리 잡을 것을 예견했다. 그래서 만든 것이 용인스피드웨이다. 참고로 2020년 시점 전국 자동차 등록 댓수는 2400만 대로 인구 2명당 자동차 1대꼴로 완전 선진국형이 되었다. 

이건희 회장의 또다른 유산이자 한국 모터스포츠의 요람 용인스피드웨이 전경.
이건희 회장의 또다른 유산이자 한국 모터스포츠의 요람 용인스피드웨이 전경.

좌절된 이건희 회장의 꿈 

자동차 보유 댓수에 비해 한국내 자동차경주시장은 사실 매우 규모가 작다. 일반인들의 모터스포츠에 대한 인식이 프로야구나 축구 등에 못미치기 때문이다.

그저 일부 매니아층의 취미로 여길 뿐이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자동차경주대회는 올림픽, 월드컵과 함께 3대 스포츠 이벤트로 평가받는다.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모터스포츠 그 자체가 문화다. 특히 유럽에서는 자동차가 처음 만들어지기 시작할 때부터 자동차 경주가 있었다

. 모터스포츠의 최고봉은 국제자동차경주대회인 포뮬러 원(F1) 그랑프리다. 16개국을 돌면서 경기를 치르고 점수를 합산해 등수를 매긴다. F1(포뮬러1) 경기에서 우승한 자동차 메이커의 홍보 효과는 막대하다.

기술력을 전 세계에 홍보한 셈이기 때문이다. 메르세데스 벤츠, 포르쉐, 페라리 같은 유명 메이커는 모두 F1 경기 단골 우승 메이커들이다. F1 경기에서 입증된 기술이 양산차에 그대로 적용되면서 세계적 메이커가 되었다. 

유럽을 대표하는 자동차경주대회는 24시간 내구레이스로 유명한 ‘르망’ 경기가 있다. 80년대 대우에서 생산했던 승용차 ‘르망’이라는 이름도 바로 이 경기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미국 모터스포츠의 상징과도 같은 경기는 ‘인디애나 폴리스 500마일’이다. 흔히 ‘INDI 500’이라 불리는 이 경기는 미국에서는 슈퍼볼과 함께 상품성이 가장 높은 스포츠 경기다. 이상 거론한 경기는 ‘온 로드’에서 펼쳐지는 경기라면 일반 비포장 도로에서 열리는 자동차 경기도 있다. 

국제자동차연맹(FIA)이 주관하는 ‘WRC World Rally Championship’다. WRC에는 한국 현대기아자동차가 1998년부터 참가하고 있다. 지금까지 2번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WRC는 보통 한 시즌에 13개의 랠리로 구성된다. 처음부터 전문경주용차로 만든 F1 차량과 달리 WRC는 연간 2만5000대 이상 판매되는 양산차를 기반으로 경주용차로 개조한다.

메이커가 직접 경주에 참여하면서 기술을 축적한다. WRC에서 얻은 기술을 양산차에 적용해 고성능으로 만든 현대차가 바로 ‘N시리즈’다. 벨로스터N, I-30N, I-20N 등이다. BMW의 고성능 시리즈인 ‘M 라인업’과 같은 개념이다. 

자동차 경주와 자동차 서킷, 그리고 자동차산업은 함께 가는 3형제 같은 개념이다. 세계 자동차 선진국의 모습이 그랬다.

아마도 이건희 회장 역시 그런 모습을 그렸을 것이다. 그래서 IMF 직전 삼성그룹이 자동차산업에 뛰어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건희 회장은 자동차 메이커로서의 삼성의 꿈을 접어야 했다.

IMF 와중에 산업합리화조치로 말이다. 그런데 지금 전기자동차가 대세로 굳어지는 자동차산업을 볼 때 이건희 회장이 계속 삼성자동차를 경영했다면 아마도 한국의 자동차산업 위상은 완전히 달라지지 않았을까 상상도 해본다.

이건희 회장이 건강이 안 좋아진 시기에도 용인스피드웨이에 들러 포르쉐를 몰던 모습이 언론에 포착되기도 했다. 그만큼 용인스피드웨이는 이건희 회장의 자동차에 대한 꿈이 담겼던 곳인 동시에 한국 모터스포츠를 키운 요람이었다. 

삼성화재교통박물관 전시장 모습
삼성화재교통박물관 전시장 모습

용인의 숨은 보물, 
삼성화재교통박물관

이건희 회장의 유산 중에는 미술품 못지않은 유산이 또 있다. 바로 자동차 컬렉션이다.

자타공인 자동차 매니아였던 이건희 회장은 생전에 무려 130여 대에 이르는 자동차를 수집했다. 클래식카에서부터 최고 스포츠카까지. 이건희 회장이 모은 자동차는 용인 삼성화재교통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 

현재는 코로나로 인해 임시휴관중이지만 언젠가는 다시 문을 열 것이다. 교통박물관에서는 어린이 교통사고 유형과 예방법 등을 설명한 ‘어린이 교통나라’ 등 다양한 체험 활동도 할 수 있다.

아이를 둔 엄마들의 필수 여행코스이기도 했다. 자동차를 좋아하는 아이들한테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또 차를 좋아하는 아빠나 엄마들의 눈요기도 만족시키는 가족 테마파크 역할을 톡톡히 했다.

삼성화재교통박물관 홈페이지에는 자동차박물관 설립 취지를 이렇게 설명한다. “삼성화재교통박물관의 소장 자동차 및 이와 관련된 유·무형의 문화 유산에 대하여 최적의 보존환경을 제공하며, 꼭 필요한 경우 이들에 대한 최소한의 보존처리를 통하여 후손들에게 원형의 유산을 전승합니다.”

이건희 회장이 수집한 자동차 중에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하이퍼카도 있다. 시가 26억이 넘는 ‘부가티 베이론’이다. 이 차는 일반 도로에서 합법적으로 주행할 수 있는 양산차 중 가장 고가이자, 가장 빠른 슈퍼카로 기록된 자동차이다.

W16기통, 8리터 엔진에 최고시속 407km를 기록했다. 이건희 회장이 생전에 탔던 마지막 차는 벤츠의 최고급 모델 마이바흐였다. 

삼성화재교통박물관에 전시하고 있는 주요 차량을 간단히 소개한다면 1886년 세계 최초의 가솔린 자동차 벤츠 모터바겐, 1923년 생산된 포드 모델 T, 1952년산 다임러DE36, 1972년산 벤트 600풀만, 1969년 롤스로이스 팬텀 IV 등이 있다.

한국의 최초 생산 차량 ‘시바ㄹ’과 기아마스터의 600CC 3륜 용달차, 신진 퍼블리카, 그리고 현대 포니1도 전시됐다. 특히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좋아하는 부스도 있다.

바로 ‘무비존’이다. 영화에 나왔던 자동차를 전시한 공간이다. 영화 ‘허비’에 등장했던 폭스바겐 비틀과 영화 ‘백투더퓨처II’에서 과거와 미래를 넘나들었던 들로리안 DMC-12도 전시됐다

1994년 2월 미국 비즈니스위크 표지 모델로 등장한 이건희 회장. 노란 포르쉐 옆 레이싱 복장에 헬멧을 들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1994년 2월 미국 비즈니스위크 표지 모델로 등장한 이건희 회장. 노란 포르쉐 옆 레이싱 복장에 헬멧을 들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 코로나 이전 개관 당시에는 야외 전시장에서 클래식카 시승행사도 실시했다. 과거 케네디 대통령이 타던 모양의 대형 리무진 오픈카 탑승 체험인데 매우 인기가 좋았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자동차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 용인 삼성화재교통박물관이다. 

용인시는 아이들을 위한 놀이 공간 에버랜드와 호암미술관, 모터스포츠의 요람 용인스피드웨이, 자동차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삼성화재교통박물관 그리고 현대 전자예술 창시자 백남준 선생의 백남준아트센터가 모두 있는 종합 테마파크 도시다. 놀이와 예술, 그리고 자동차가 한데 어울리는 종합 문화가 용인에 모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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