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6·3정읍선언 77주년을 맞아 
[이슈] 6·3정읍선언 77주년을 맞아 
  • 송종환  미래한국 편집고문·경남대 초빙석좌교수
  • 승인 2023.06.23 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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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은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곳이다. 이순신 장군은 1589년 정읍 현감이었으며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한 해 전 1591년 전라좌도 수군절도사가 되었다. 또한 1894년 1월 10일 전봉준 장군이 동학농민혁명을 일으켰다.

6월 3일 정읍에서 우남네트워크(상임대표회장 신철식)와 6.3정읍선언기념사업회(대표 강광)가 주최하는 또 하나의 큰 의미가 있는 이승만 박사의 6·3정읍선언 77주년 기념 행사에 참석했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이한 우리 민족은 그 기쁨을 채 가누지도 못한 가운데 냉전의 시작과 국내 정치세력의 분열이라는 국내외적 조건에 의해 38도선을 사이에 두고 분단되었다. 1945년 12월 17일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미‧영‧소 3국 외무장관회의에서는 한반도 통일과 독립 문제를 의제로 상정하여 구체적인 논의를 진행했다. 

이 회의에서 한국을 독립국가로 만들기 위하여 한반도에 민주주의 임시정부를 수립한다. 민주주의 임시정부의 수립을 돕기 위하여 미.소 군정의 대표자들이 모여 미소공동위원회를 개최한다.  미국, 영국, 소련, 중국 4개국이 공동으로 관리하며 최대 5개년 동안 신탁통치를 실시한다를 결정했다. 

모스크바 3국 외무장관 회의에서 최장 5년 기간의 신탁통치 결정은 해방과 함께 곧바로 독립이 달성될 것이라 생각했던 한국인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줘 거국적인 신탁통치 반대 운동으로 이어졌다. 이에 반해 좌익세력은 신탁통치를 지지하고 나섬으로써 한반도 국내정세는 일대 혼란에 휩싸이게 되었다. 

6월 3일 정읍에서 우남네트워크와 6·3정읍선언기념사업회가 주최하는 6·3정읍선언 77주년 기념 행사가 개최됐다.
6월 3일 정읍에서 우남네트워크와 6·3정읍선언기념사업회가 주최하는 6·3정읍선언 77주년 기념 행사가 개최됐다.

북한은 1946년 2월 사실상 정권 수립

1946년 1월 16일 예비회담을 거친 후 3월 20일부터 덕수궁 석조전에서 열린 제1차 미소공동위원회에서 소련은 미국과 민족지도자들이 주장해온 38선 철폐를 거부하고 이승만, 김구와 같은 남한의 민족지도자들은 신탁통치를 반대한다는 이유로 배제시키고 북한에 김일성 중심으로 만들어진 북조선인민위원회를 새로운 정부의 중심으로 삼으려 했다. 

제1차 미소공동위원회가 결렬되자 좌·우익 사이의 찬탁운동과 반탁운동의 대결이 더 극심해졌다. 오랫동안 통일된 민주독립국가 건설을 주장해온 이승만 박사는 새로운 구상을 해야만 했다. 

1946년 6월 3일 이승만 박사는 지방 순시 중 “지금까지 우리는 미소공동위원회를 통하여 한반도에 통일된 정부가 수립될 것을 기대했으나 이것이 실패로 돌아가고 무기 휴회된 미소공동위원회가 재개될 기색도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이제 남한만이라도 임시정부, 혹은 위원회 같은 것을 조직하여 국민들의 힘을 모으고 국제사회의 공론에 호소하여 한반도의 통일을 가로막는 소련을 몰아내어 통일된 대한민국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이것을 위하여 우리는 과거에도 민족통일기관을 만들려고 노력했으나 이제 서울에 올라가 다시 한번 우리 민족의 대표적 통일기관을 설치하려고 계획하고 있으니 여러분도 여기에 적극 호응하여 함께 활동해주시기를 바랍니다”라고 남한만이라도 단독정부를 수립해야 한다는 정읍선언을 했다. 

국제정치의 흐름에 정통하였던 이승만 박사의 정읍선언은 북한에 단독정권을 세우려는 소련의 의도를 간파했기 때문에 나왔다. 실제로 1945년 9월 21일 스탈린은 연해주군관구와 25군 군사평의회에 북한 단독정권을 수립토록 비밀지령문을 하달했다.

이 비밀지령문에 따라 1946년 2월 8일 북한 주둔 소련군은 김일성을 중심으로 하는 공산집단에게 인민정권형태인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를 조직하여 3월 8일 토지개혁을 비롯한 각종 개혁을 실시했으며 이어 같은 해 11월 3일 ‘북조선인민위원회선거’를 거쳐 1947년 2월 22일 ‘북조선인민위원회’라는 단독정부를 수립했다. 

소련은 1945년 12월 17일 모스크바 3국 외무장관회의에서 한반도 통일국가를 세우려는 척하면서도 이미 9월 21일 북한에 단독정권 수립 지령을 내렸고, 1946년 3월 20일 제1차 미소공동위원회 회의에서는 2월 8일 북한에 만든 단독 임시 정부 중심으로 한반도 통일임시정부를 세우려고 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발표된 이승만 박사의 정읍선언은 ①남한에 자유민주주의에 기초한 임시정부를 만들자는 것으로 오늘의 대한민국 건국 선언이며, ②북한에서 소련을 몰아내고 한반도 전체를 자유로운 국가로 통일해야 한다는 자유통일선언이며, ③이를 위해 국제사회의 공론에 호소하고 모든 국민이 힘을 모으자는 국민총력선언이었다. 

만일 이승만 박사와 같은 투철한 자유민주 애국자가 없었다면 오늘날 세계에 우뚝 선 대한민국이 건국될 수도 없었을 것이고 한반도 남쪽에 사는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낙후한 공산세습노예제도국가에서 신음하면서 살고 있을 것이다. 

좌파들과 그들에 세뇌된 40~50대 중 많은 이들은 소련이 북한에 1946년 2월 8일 임시 단독정부를 수립했고 3월 20일에 개최된 미.소 공동위원회를 통해 38선 이남까지 공산주의체제를 확장하려 한 사실을 외면하고 이승만 박사의 정읍선언 때문에 한반도 분단이 고착되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좌파들은 그것도 모자라 미국이 이승만 박사를 앉혔다고 주장하기도 하며 미국의 꼭두각시라고 비난한다. 전혀 사실이 아니다. 미국은 미국의 의도에 따르지 않고 오로지 우리나라만을 생각하는 애국자 이승만 박사를 탐탁지 않게 여겼다.

미국은 초대 대통령으로 다른 지도자를 생각했으나 이승만 박사는 오직 치열하게 국민을 설득하고 정치투쟁을 하여 대통령이 되었다. 

미국은 대한민국의 건국과 안보에 절대적 도움을 주고 많은 경제적 원조를 한 고마운 나라이고 앞으로도 혈맹 우방이다. 그러나 미국은 동맹국들에게 미국이 정한 국제질서를 지킬 것을 요구하고 잘못된 판단도 하고 때로는 미국의 국내 정치만을 생각하면서 동맹국 입장을 어렵게 한다.

특히 대한민국이 압도적 힘을 가지는 것을 경계한다. 예를 들면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국방예산 감축과 미군 감군으로 지상 병력이 부족하게 되자 1949년 4~6월 4만5000명을 철수시키고 7월 482명의 군사고문단을 남겨뒀다. 그 후 미국은 남북한 간의 군사적 불균형과 북한의 남침 징후를 알고도 이승만 대통령의 한국군 증강과 군사원조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이승만 대통령, 미 의회에서 공산주의와 대결에 합심할 것을 호소

미국이 6·25전쟁을 빨리 끝내고 철수하려 하자 이승만 대통령은 반공포로의 일방적 석방과 북진통일 계속 주장으로 1953년 10월 1일 한미상호방위조약(1954년 11월 18일 발효)을 맺도록 압박하여 6·25전쟁 이후 북한의 재남침에 대한 확실한 대비를 세웠던 것이다. 

오늘에 사는 모든 대한민국 국민들은 대한민국을 태어나게 한 이승만 박사의 정읍선언 77주년 기념식을 계기로 이 선언의 정신을 올바로 알고 각오를 새로이 해야 하겠다. 

1954년 7월 28일 당시 79세의 이승만 대통령(1875~1965)은 미국 상하원 합동 회의에서 영어로 연설했다. 1953년 기준 1인당 국민소득 67달러에 불과한 가난한 나라의 대통령이었지만 당당하고 단호한 어조였고, 짧은 연설 중에 기립박수가 33차례나 터졌다. 

“소련의 수소폭탄은 파괴된 우리나라의 도시 위에 떨어지기보다 오히려 먼저 미국의 대도시에 떨어질는지도 모를 일인 것입니다.”  “한국 전선은 우리가 승리하고자 원하는 싸움, 아시아를 위한 싸움, 세계를 위한 싸움, 자유를 위한 싸움의 일개 소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아시아의 자유를 안정하게 하기 위한 여러분의 중대 결정이 지금 필요합니다.” 

지난 4월 27일 윤석열 대통령은 ‘한미상호방위조약 70주년 기념 미국 상하원 합동 연설’을 했다. 역대 일곱 번째 한국 대통령 연설이었다. 44분 동안 매끄러운 영어 연설 중 ‘자유’를 46회 언급했고, 기립박수 26차례를 포함해 56차례 박수를 받았다. 

70년의 시차를 둔 이승만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연설의 공통분모는 자유였다. 윤석열 대통령의 연설은 한미동맹의 비전 공유를 잘 밝힌 것으로 미국 의회와 국민은 물론 한국 국민을 감동시켰다.

주요 부분은 “자유는 평화를 만들고 평화는 자유를 지켜줍니다.” “대한민국은 미국과 함께 세계시민의 자유를 지키고 확장하는 ‘자유의 나침반’ 역할을 해나갈 것입니다.” “한미동맹은 자유·인권·민주주의라는 보편적 가치로 맺어진 가치동맹입니다. 우리의 동맹은 정의롭습니다. 우리의 동맹은 평화의 동맹입니다. 우리의 동맹은 번영의 동맹입니다. 우리의 동맹은 미래를 향해 계속 전진할 것입니다”이었다.

좌파로부터 정권을 찾아 윤석열 정부 출범 1년이 지났지만 한국의 운동장은 여전히 좌파로 기울어져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성공해야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의 양대 축인 이승만 건국 대통령의 건국 정신이 펼쳐지고 자유민주통일을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국민들에게 이승만 대통령의 6·3 정읍선언의 취지를 널리 알려 오늘에 사는 국민과 후손들이 올바른 역사 인식을 갖도록 적극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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