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희망인가 재앙인가
다문화, 희망인가 재앙인가
  • 미래한국
  • 승인 2009.05.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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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진단_김성회 한국다문화센터 사무총장

▲ 김성회 사무총장
5월 20일은 한국정부가 세계인의 날을 제정한 지 2주년이 되는 날이다. 그래서 그런지 각종 다문화 행사가 줄을 잇고 있다. 특히 가정의 달, 어린이날 등이 겹쳐서인지 다문화 행사와 TV프로그램 제작 등이 쏟아지고 있다. 또, 각종 기관과 학회에서는 세미나와 토론회가 진행되고 있고, 각종 이벤트가 계획되고 있다. 이런 현상만 보면 한국은 호주나 캐나다 이상의 다문화 국가가 된 느낌이다.

그러나 그 깊이를 들여다보면 한심하기 그지없다. 전시 행정은 있어도 다문화 행정은 없다. 다문화는 부처가 사업예산을 따내고, 인력을 확충하기 위한 방편일 뿐이다. 다문화 가정을 위한다고는 하지만, 다문화 가정의 눈높이에 맞는 서비스는 없고, 지자체장이나 부처의 홍보, 캠페인만이 눈에 띌 뿐이다. 한마디로 한국의 다문화는 부처나 지자체에서 제공하는 주민들의 눈요기 거리가 되었다.

과연 이래도 되는 것인가? 다문화 관련 시민단체에서 일하면서 한국의 미래로 찾아오고 있는 다문화 사회를 생각하면 걱정스러울 뿐이다. 사회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다문화 사회가 되어가고 있는데 요란스런 행사만 벌일 뿐, 미래를 대비하는 차분한 준비가 없기 때문이다.

실제 한국의 다문화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빠르게 진전되고 있다. 얼마 남지 않은 2013년이면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한다. 그렇게 되면 노인사회라는 이야기인데, 결국 외국인 노동자 또는 이주민에 의탁할 수 밖에 없는 사회라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나라 보다 빨리 글로벌화를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의 다문화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빨리 진전될 수 밖에 없다. 지난해 제출된 유엔 보고서에 의하면 2020년 한국사회에서 이주민의 수는 인구의 10%를 넘어설 것(500만 규모)이며, 2050년에는 1,200만 규모가 될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빠른 속도로 진전되는 다문화사회에 대비하는 것은 요란한 행사가 아니다. 체계적인 실태조사와 그에 맞는 제도와 행정을 정비하는 것이다. 지금은 인구의 2.5% 정도를 차지하지만, 곧 10%가 될 이주민들을 향한 올바른 정책과 제도를 정착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법 제도는 어떻게 정비할 것이며, 다문화정책을 다루는 행정기구는 어떻게 설치할 것인지, 일관되고 체계화된 행정시스템을 구축하는 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해야 다문화 사회화에 대비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이와 같은 노력은 별로 없는 것 같다.

한국이 ‘다문화’라는 말만 떠들고 있는지는 정부의 정책이나 행정, 또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를 보면 알 수 있다. 지금 한국에서 다문화 관련법은 많다. 국제결혼중개업법, 재한외국인처우기본법, 다문화가족지원법, 외국인 고용에 관한 특별법(고용허가제법) 등이 있으며, 다문화진흥법, 다문화교육지원법 등이 입법 예고되어 있는 상태다.

하지만, 이중에서 미래를 예상하여 만들어진 법이 얼마나 될까? 국제결혼중개업법을 개정하여 인신매매와 같은 결혼중개업을 단속하겠다고 했지만, 여전히 결혼 브로커들은 활개를 치고 있다. 재한외국인처우기본법은 기본법이라는 명칭에도 불구하고 명칭과 대상이 한정되어 포괄적인 기본법 구실을 못하고 있다. 다문화가족지원법은 규제는 없고 권장사항만 나열하고 있어 법적인 효력에 의문이 든다. 외국인고용에관한특별법은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을 보호하는 데는 기여했지만, 불법체류자 양산을 막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다양하고 복잡한 법을 정비할 생각을 못하고 있다. 그 사이 각 부처는 경쟁적으로 다문화 이슈에 뛰어들고 있다. 외국인 출입국을 다루는 법무부, 다문화가정을 지원하는 보건복지가족부, 결혼이주여성을 지원하는 여성부, 외국인노동자 문제를 다루는 노동부, 다문화를 다루는 문화관광부, 다문화자녀의 교육을 담당하는 교육과학부, 지자체를 통할하는 행안부, 심지어 농촌 다문화가정을 돌보는 농림수산식품부까지… 각 부처는 다문화를 인력과 예산을 확충하는 계기로 활용하고 있다.

이런 다문화 행정이 어떠한 문제점이 있는가는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즉, 한국말도 서투른 외국인, 다문화인들에게 7~8개 정부부처를 찾아다니라는 행정이다. 이것이야말로 행정편의주의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수요자가 어떤 상태인지, 어떤 언어를 사용하는지 조차 파악하지 않고, 부처와 관련이 있는 사업이면 무조건 뛰어드는 식이다.

이렇게 각 부처가 비체계적이고, 경쟁적이며, 중구난방으로 뛰어들다보니, 다문화 가정에서는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일찍 한국에 정착하고, 정보가 빠른 가정, 특히 선진국의 복지나 행정, 볼런티어에 익숙한 다문화 가정은 정부의 복지 혜택을 빠짐없이 챙기는데, 그렇지 못한 저개발국 출신의 다문화 가정은 복지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한다. 그런데도 정부에서는 그 실태조차 파악하고 있지 못한다. 왜냐하면 각 부처가 일을 벌이다보니 종합적인 통계가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듯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다문화사회로 나아가고 있으나, 다문화 관련법과 제도, 행정은 제대로 정비된 것이 없다. 캠페인과 홍보만 있을 뿐, 체계적인 제도의 정착은 요원하기만 할 뿐이다. 도대체 지난 정부에서 설치돼 활동했던 저출산 고령화사회 위원회는 무엇을 했던 것인지? 2005년 다문화정책을 공식화하면서 준비한 대비책은 무엇인지 알 길이 없다. 그저 예산만 낭비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번 정부에서도 하는 일이라곤 캠페인성 홍보뿐이니… 참으로 걱정이다.

지금이라도 정부나 정치권, 여론주도층은 한국의 다문화 사회화에 대한 공동된 담론을 이끌어내야 한다. 서구의 다문화가 어떠니, 캐나다나 호주의 다문화주의가 무엇이니 하는 식으로 떠들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특징을 살피고 그에 걸 맞는 다문화정책과 다문화 사회화는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논의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다가오는 다문화사회는 국가적 재앙일 뿐이다.
다문화사회의 진전이야말로 우리 앞에 닥친 가장 큰 숙제이자 미래라는 것을 명심했으면 싶다. #

김성회 한국다문화센터 사무총장
(연세대 행정학과 졸업, 민관협력포럼 상임운영위원, 거버넌스21클럽 실행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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