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창의 가슴 아픈 기억
죽창의 가슴 아픈 기억
  • 미래한국
  • 승인 2009.06.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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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_최건차 수원 샘내교회 목사
▲ 최건차 목사
지난 5월 대전에서 있었던 민주노총 불법시위 현장에서 일부 참석자들이 대나무 끝을 뾰족하게 깎아 만든 ‘죽창’을 사용한 것이 밝혀져 논란이 되고 있다.

나는 죽창과 관련해 남다른 기억을 갖고 있다. 대나무 죽창은 6·25 전후 지리산 이남지역에서 활동하던 공비들과 월남전이 한창일 때 베트콩들의 무기였다.

나의 가족은 일제시대 일본에 건너갔다가 8·15광복 직후 귀국했는데 외갓집 인근인 전남 장흥군 유치면에 잠시 살았다. 나는 거기서 당시 ‘밤손님’으로 불리던 공비들이 죽창을 들고 설쳐대며 저지르는 끔찍한 사건들을 목격했다.

1946년 이른 봄 어느 날 밤 우리 가족이 살던 보림사 입구 삼거리 안 금성마을에 ‘밤손님’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일제 때 경찰관 아들을 두고 권세를 부리던 구장 박 씨 영감을 죽창으로 찔러 죽이고 옆방에서 자다 도망치는 경찰관 아들을 근처 냇가에서 붙잡아 역시 죽창으로 마구 찔러 죽였다. 이 무렵부터 경찰관, 공무원, 지주들을 죽창으로 찔러 죽이고 이용가치가 있다 싶은 지식인들을 회유해서 강제로 입산시키는 사건이 빈번해졌다.

1947년 초 아버지는 장흥재판소에 다니는 외삼촌 때문에 불똥이 튈까 전전긍긍하다 가족의 안전을 위해 지서에서 가까운 송정리 강동 마을로 이사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해 공비들에게 살해된 이웃 지서 경찰관의 장례식에 참석하러 유치면 지서장과 면장일행이 스리쿼터를 타고 상가가 있는 영암군 금정면으로 가는 도중 공비들의 습격을 받았다.

일행은 구구식 소총으로 무장하고 있었지만 공비들이 쏜 몇 발의 총탄에 제압당했고 죽창에 찔려 살해된 채 차량과 함께 불태워졌다. 이후 광주에 주둔하고 있던 국방경비대 1개 중대가 유치면에 상주하면서 공비소탕작전을 펼쳤다.

그 무렵 공비들은 학교 관사에 사는 사촌 외숙인 교감을 입산시키려고 밤마다 내려와 회유했다. 먼저 입산해 지역 공비 두목이 된 순천경찰서 간부 출신 작은 숙부의 공작이었다. 사촌 외숙이 거절하자 어느 날 밤 죽창을 든 부하공비들을 시켜 강제로 끌고 갔다. 결국 외숙도 공비로 활동하다 지리산에서 빨치산으로 최후를 마쳤다는 후문이 들려오고 가문도 몰락했다.

1950년 6·25가 나자 유치면 산간지역은 한동안 적의 해방구에 속해 있으면서 군경토벌대의 격전장이 되었다. 1951년 이른 봄에는 지서를 요새화하기 위해 돌담을 쌓아 아래바닥에 끝이 예리한 짧은 죽창들을 쫙 박아 물을 넣어 해자를 만들고 그 외곽으로는 큰 대나무를 겹으로 엮어 울타리를 만들었다.

1951년 이른 봄 어느날 초저녁부터 빨치산 해방구에서 강제로 동원된 산속 주민들이 화적떼처럼 죽창에 횃불을 들고 몰려 나왔다. 횃불이 사방 숲 속에서 나타나면서 징이 울리고 꽹과리 소리가 요란해지기 시작했다. 톱과 도끼 낫을 든 자들이 징과 꽹과리를 쳐대는 무리들을 따라 내가 살던 집 근처의 지서외곽을 돌며 좁혀 들어갔다. 공비들은 실탄이 바닥 난 경찰관들을 죽창으로 살해하고 장비와 물자를 약탈해 갔다.

1952년 초반까지 군경을 상대로 무모하게 투쟁하던 공비들과 죽창을 든 무리들이 비참하게 되는 것을 보면서 우리 가족은 무사히 그 지역을 벗어났다.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하였던가. 최근 파출소에 화염병을 던지고 경찰 차량에 불을 지르더니 이제는 경찰관들에게 죽창을 휘둘러대는 장면을 TV에서 보면서 수십 년전 골수좌익분자들의 선동과 회유에 철부지 학생들과 일부 계층의 사람들이 죽창을 들고 인명을 살상한 장면이 떠올랐다. 어찌됐든 선동을 한 자나 회유를 당한자의 최후가 하나같이 비참했다는 것이 나의 역사적 체험이다. #

최건차 수원 샘내교회 목사
(베트남 참전유공자, 예비역 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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