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심이 없는 시대
존경심이 없는 시대
  • 미래한국
  • 승인 2009.08.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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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소리] 김중석 사랑교회 목사
▲ 김중석 목사
오 헨리의 단편소설 ‘크리스마스 선물’에 이런 얘기가 나온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남편은 아내에게 아름다운 머리빗을 사주기 위해 자신이 가진 유일한 귀중품인 주머니 시계를 팔았고, 아내는 남편의 주머니 시계에 달아 줄 금줄을 사기 위해 자신의 길고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잘라 팔았다. 남편의 아내에 대한 사랑, 아내의 남편에 대한 존경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도 있는 것이다.

전병욱 삼일교회 목사가 이런 글을 썼다. 한번은 청소년들과 대화를 나누는데 아이들이 계속해서 ‘담탱이’가 어쩌고 하더라는 것이다. 전병욱 목사는 처음에 이 말이 ‘담을 타고 자라는 나무’를 의미하는 줄로 알았다. 그런데 이 말은 담임선생님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선생님을 별명으로 부르는 학생사회의 풍조가 어제 오늘의 일만은 아니다. 그렇지만 지난 10여 년 동안 한국에서 특별한 일이 벌어졌다. 한국사회의 모든 권위를 의도적으로 깨부수려는 시도가 있었다. 민주주의란 이름으로 모든 권위에 도전하기 시작한 것이다. 마땅히 존경되어야 할 권위마저 부정했다. 대한민국을 깨부수자! 학교를 깨부수자! 교회를 깨부수자! 직장을 깨부수자! 등의 구호가 난무했다.

인터넷에 올라오는 네티즌의 글 가운데 도저히 문화라고 말할 수 없는 온갖 욕설과 극단의 행동이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쏟아져 나오게 되었다. 청소년들은 대화의 상당 부분을 욕으로 한다. 욕이 아니면 대화를 못할 정도다. 초등학생들도 뜻도 모른 채 욕을 말인 줄 알고 쓰고 있다. 윗사람에게 뿐 아니라 어떤 존재에 대해서도 존경심이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한국교회가 도전 받고 있는 이유 중 하나도 여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사람들은 전혀 존경할 것이 없는데 어떻게 존경하느냐고 말한다. 하지만 그래도 존경심은 필요하다. 존경해야 할 마땅한 권위가 있는 것이다.

먼저 부모의 권위를 존중해야 한다.
부모가 특출 나서 부모가 되는 것이 아니다. 특출 난 부모가 혹 있겠지만 대부분은 평범한 부모다. 부모를 존경하고 순종하는 것은 부모이기 때문이지 특출 나기 때문이 아니다. 사람이 잘 되려면 가정에서부터 부모를 존경하고 순종해야 한다. 자녀들이 사춘기가 되면 부모에 대한 권위에 도전하기 시작한다. 이때 부모는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고, 육체적으로 부모 못지않게 성장한 자녀들을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

존경해야 할 권위 두 번째는 선생님이다.
가정에서 자라던 아이가 성장하면 학교에 간다. 여기에도 부모·자녀 관계와 똑 같은 존경과 존중이 세워져야 한다. 그런데 요즘은 학생이 대들고 선생님이 고발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참교육’이라는 말로 좌파 이념교육을 하는 전교조가 큰 문제이다. 교권 뿐만 아니라 교과서의 정체성도 바로 세워져야 한다.

존경해야 할 권위 세 번째는 직장 상사이다.
직원들은 상관에게 존경심을 가지고 상관들은 직원들을 존중히 여겨야 한다. 그런데 요즘 한국사회에서는 ‘내부고발’, ‘양심선언’이라는 것이 나오고 있다. 직장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사람이 가정에서 태어나 학교에 가고 그 다음 직장에 간다. 직장이 유지되려면 거기에 필요한 권위가 세워져야만 한다.

자본주의 시대, 약육강식의 논리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 우리는 약자를 존중하는 행위를 명백히 나타내야 할 필요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천한 자 귀한 자가 따로 없고, 악한 자 선한 자도 따로 없다. 귀한 자 선한 자에게는 존경심을 표하고, 천한 자 약한 자는 존중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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