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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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래한국
  • 승인 2010.09.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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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원의 편지 ]이성원 청소년도서재단 이사장


‘짝 잃은 거위를 곡하노라’ 옛 중학 교과서에 실렸던 오상순 시인의 글이다.

아내를 잃고 두문불출 오래 안 보이던 친구가 모처럼 모임에 나왔다. 1년여 힘겹게 견뎌온 사연을 그는 이렇게 얘기했다. 일생 해로해도 어차피 누군가 한 사람은 먼저 가야 한다. 모두가 숙연히 귀를 기울였다.

어둠이라는 것

“안 겪어본 사람은 모른다, 몰라” 하며 말을 시작했다.

내가 그렇게 전폭 아내에 기대 살고 있는 줄은 몰랐다. 모든 감각이 일시에 마비되고 정신이 멍해 판단력을 잃었다. 어제까지 바로 옆에 있던 사람이 어디론가 사라졌다. 왜 하필 내게 이런 고통을 주는 거야. 이 울화를 엇다 풀어야 속이 시원할까.

아아, 밉다 미워, 가버린 아내도 밉고, 너도, 나도 다 밉다. 하기야 내가 몹쓸 놈이지. 생사를 같이 하자고 맹서한 전우인데, 아무리 앞에 닥친 적과 싸우기 바쁘다 해도 그렇게 동료를 잊고 지내선 안 됐지. 고걸 살다 갈 걸 어쩌자고 이제까지 그렇게 소홀히 대해 왔지. 그래도 설마 아주 가버리진 않았겠지. 자, 이부자릴 펴놨으니 와서 자도록 해요. 이제 아침인데 나와서 같이 밥 먹자구.

아아, 너무나 외롭다. 이러다 내가 아주 도는 건 아닐까. 집안 조명이 왜 이렇게 어둡지. TV를 크게 켜 놔도 온 집안이 왜 이렇게 괴괴한 거지. 저 집 앞의 사람 발소리는 또 뭐야. 전에도 1주일씩 보름씩 집을 빈 적이 있는데, 왜 하루 사이에 이렇게 변한 거지.

그나저나 이제부턴 무슨 일이 잘 돼도 기뻐해 줄 사람이 없구나.내가 뭣 땜에 사는 거지. 뭘 해야 하지. 나처럼 불쌍한 놈이 세상에 또 있을까.


빛이라는 것

그런 어둠 속을 1년 쯤 헤맸을까. 그때 생각도 않던 손길이 뻗쳐 왔다. 한 외국인 신부가 자기가 주재하는 모임에 나와 보지 않겠느냐고 나를 집밖으로 끌어냈다.

그곳에는 나와 같은 고통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아, 이 많은 사람들이 나와 똑 같은 고통을 겪고 있었구나.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나도 모르는 새 그들과 어울려 농담을 주고 받으며 큰 소리로 웃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내가 그 지옥같은 자기 연민에서 벗어났을 때 무슨 계시같이 한 가지 생각이 번개같이 내 가슴 속에 자리 잡았다. 그렇다. 지금 바로 이 순간에도 출구를 찾지 못해 어두운 터널 속을 헤매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도 구원의 손길을 뻗쳐야겠구나.

그동안 제 몸도 가누지 못하리만큼 무기력해진 나를 그 깊은 수렁에서 건져낸 것은 뜻밖에도 이런 동병상련의 실천행동이었다.


인격이라는 것

우리는 보통 남에게 잘 보이려 가면을 쓰고 산다. 그러나 이렇게 격심한 고통에 빠지면 저도 모르게 가면을 벗어 던지고 본래의 제 모습을 드러낸다.

가면을 쓴 사람에겐 남이란 이용의 대상일 뿐이다. 그러나 가면을 벗은 사람들끼리의 사귐은 인격과 인격의 깊은 우정으로 발전할 수 있다. 아내를 잃은 사람들의 모임이 바로 그런 것이었던 듯하다.

Freude durch Leide! 이렇게 칠판에 커다랗게 쓰고 나서 젊은 독일어 선생님이 씩 웃었다. “‘비애를 통과한 환희’, 이제 너희들도 어른이 되면 이게 무슨 뜻인지 알게 될 날이 있을 거다.”

나는 그 모임을 통해 내 인격이 한 단계 향상됐음을 확연히 느낀다. 이게 그의 끝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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