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수다’에 대한 어떤 자유주의자의 생각
‘나는 가수다’에 대한 어떤 자유주의자의 생각
  • 미래한국
  • 승인 2011.06.19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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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라이벌은 자기 자신, 자유주의 가치 일깨워..

 

MBC의 버라이어티 쇼‘나는 가수다’가 국민적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아마추어가 아닌 정상급 가수들을 상대로 한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라는 사실 자체만 놓고 보더라도‘나가수’는 예사롭지 않다. 만일 방송학자들에게 이 방송 프로그램의 장르를 정의해 달라고 하면 아마 상당히 고민거리가 될 것 같다.분명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나가수’가 가수들의 노래를 그저 듣고 즐기는 순수 가요 프로그램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프로그램은 1회부터 시작해서 참여자들의 스코어를 유지하고 그들이 분발하거나 추락하는 과정들을 보여준다.

부진한 성적을 받은 가수들은 퇴출을 면하려고 각종 기발한 컨셉을 동원한다. 시청자들이 즐거운 것은 바로 이 점에 있다. 늘 보던 가수의 늘 듣던 노래가 아니라 늘 보던 가수의 새로운 면과 마주하는 것이다. 그것은 때로는 낯설고 때로는 아쉬우며 때로는 감동적이다.

가수들에게도 이 프로그램은 독특한 의미를 갖는다. 최근 1위를 하고 물러난 임재범은“내가 가수인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게 기뻤다”고 털어 놓는다. 물론 그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는 것은 순진하다. 임재범은 그 전에도 정상급 가수였고 그는 무엇보다 자기 연출에 능란한 엔터테이너다. 하지만 임재범이 그렇게 말하는 순간은 진심이었다.‘나가수’에서 임재범이라는 존재가 정상을 차지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임재범도 한 물 갔다’라는 평가에 다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실 임재범의 출연 내내 그의 가창력이 다른 가수들 보다 뛰어나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연출된 컨셉으로 이를 극복했다. 그가 1위를 차지했던 3주차에서 임재범은 윤복희의‘여러분’을 부르는 중에 청중들 앞에 무릎을 꿇었다. 오죽하면 같은 출연자인 윤도현이“ 노래 중에 음이탈 같은 것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고 했을까.

 

진정한 라이벌은 자기 자신

임재범은 1위를 차지한 후‘나가수’출연을 포기했다. 표면상으로는 건강의 문제였지만 사실‘박수칠 때 떠나라’라는 컨셉의 의혹을 지울 수 없다. 소속 기획사 나름대로 매니지먼트 계산이 있을 수 있겠지만 어쨌든 우리는 계급장 떼고 출연한 임재범으로부터‘왕의 귀환’을 보았다.

‘나가수’가 돋보이는 이유는 이 프로그램이 가수들의 최선을 이끌어 낸다는 점에 있다. 일부 진보를 자처하는 진영에서는 이 프로그램을‘신자유주의’적 프로그램이라고 힐난한다. 가수들 간에 경쟁을 부추기기 때문이라는 거다. 작가 이외수 씨 역시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예술에 점수를 매기는 것은 천박하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나가수’출연자들 중에 자신이 예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가수도 없거니와 제작 PD나 시청자 역시 자신들이 예술을 제작하고 감상한다는 생각은 아닌 것 같다.

제작 PD는 재미와 감동이라는 제작원칙에 충실할 뿐이고 청중과 시청자들은 거기에 만족해 한다. 매번 새로운 노래, 그것도 자신의 노래가 아닌 다른 가수의 노래를 소화해야 하고 청중들을 감동시킬 컨셉을 개발해야 하는 출연자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놀랍도록 진화한다.

지난 5월 22일 방송에서 탈락한 김연우는 6월 24, 25일 양일간에 예정된 콘서트가 전석 매진되는 기염과 함께 그의 노래가 온라인에서 판매 1위를 달성하는 기록을 세웠다.
김연우는 방송에 출연하는 동안 계속되는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탈락하던 그날 김장훈의‘나와 같다면’을 자신의 새로운 기량과 창법으로 소화해 당당하게 4위에 랭크됐다. 객석의 환호는 대단했다. 비록 누적된 종합점수 순위로 인해 김연우는 방송에서 탈락했지만 그의 팬들은 새로운 김연우와 만나게 됐고 김연우 스스로“다시 태어난 기분”이라고 소감을 피력했다.

‘나가수’ 프로그램은 서바이벌 형태지만 출연자들의 진정한 라이벌은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1위를 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가능성을 재발견하고 좀 더 나은 모습으로 스테이지에 서기 위해 혼신을 다한다. 1위는 그러한 노력의 선물일 뿐이다.

나 가수, 자유주의 소중함 일깨워

출연자 이소라는 “매번 나가수 무대에 설 때마다 꼬이는 부분이 있다”라고 한다. 또 다른 출연자 박정현이 여기에 맞장구를 친다. 늘 자신들에게 익숙했던 노래, 적당히 불러도 넘어 갈 수 있는 그런 무대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런 출연자들의 고백은 시청자들에게 많은 암시를 준다. 도전과 창조와 변화는 결코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부단한 노력 속에서만 가능하다는 메시지다.

진정한 성취는 자신과의 힘겨운 싸움에서만 이뤄질 수 있다는 생생한 증언이다. 그렇기에 시청자들은 이 코믹 버라이어티 서바이벌 뮤직쇼로부터 귀중한 교훈을 얻는다. 누구를 탓하고 누구를 질시하기 이전에 자신을 돌아보고 훈련하고 연습하는 것이 발전의 원동력이라는 자유주의 철학의 가르침을 부지불식간에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좌파코드로 볼 때 이 프로그램은 왠지 거북하고 부담스럽다. 경쟁을 통해 발전하고 성취하고 감동을 주는 그런 것보다는 서로 적당히 눈치껏 타협해서 나눠먹는 데 익숙한 자들에게‘나가수’는 불안하고 불경스러워 보이는 거다. 그러니 이 프로그램을 두고‘신자유주의’니‘예술에 먹칠’이니 하는 이야기가 나오는 배경이다.

지난 5월 29일 방송에는 옥주현이 새로 참여했다. 그녀는 이승환의 ‘천일 동안’으로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옥주현은 핑클이라는 아이돌가수 출신이다. 그녀의 나가수 참여는 대단한 용기와 모험을 요하는 것이었지만 옥주현은 자신의 가창력으로 정면 승부했다.

옥주현은 노래를 끝내고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는‘감사하다’고 했다. 그녀는 또 다시 진화는 중이다. 그러면서 다른 출연자들도 진화시킬 것이다. 옥주현 그녀가‘내 노래는 이런 거거든’하는 자세로 노래를 불렀다면 어쩌면 청중들도 옥주현 자신도 그저 그랬던 한 무대에서 만나고 헤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옥주현은 이승철이라는 낯선 코드의 노래를 소화해야 했고 노래하기 전에 “꼴찌만 안했으면 좋겠다”라고 했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녀를 인도했을까? 옥주현은 자기 앞의 진실과 마주한 것이다.

그녀는 한 번도 불러보지 못한 이승철의 노래를 연습하면서‘내가 진짜 가수일까?’하는 물음을 던져 보았을 것이다. 그러면서 꼴찌를 기록하는 자신을 상상해 보았을 것이다. 옥주현은 노래하기 전에 무대 뒤에서‘관객과 만나게 해달라’라고 기도했다고 한다.

프로들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감동을 준다. 그런 프로의 모습을 보고 관객도 가수도 스탭도 눈물을 훔친다. 그래서 코믹 버라이어티 뮤직쇼‘나가수’는 작은 부흥회다. 자유주의의 소중한 가치를 알려주는 작은 부흥회 말이다.

한정석 편집위원 / 前KBS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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