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최대격전 장진호 전투, 무대에서 만난다
6·25 최대격전 장진호 전투, 무대에서 만난다
  • 미래한국
  • 승인 2011.06.24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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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미래포럼 기획, 여성 배우들이 영어로 공연 주목

 

미국에서 6·25는 곧 ‘장진호 전투’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이 전투는 인상적인 작전이었다. 장진호 전투는 함경남도 장진호 지역으로 진격한 미 해병 1사단이 압도적으로 우세한 중공군의 포위를 뚫고 후퇴하면서 오히려 중공군에게 막대한 손실을 입힌 싸움으로, 6·25 전쟁에서 아군이 가장 영웅적으로 분전한 전투로 꼽힌다. 이 전투가 현재까지 전쟁사의 전설로 기념되고 있는 이유는 ‘후퇴는 곧 패배’로 여겨지는 기존의 전투와는 달리 마지막 순간까지 적에게 심각한 타격을 주어 승리를 이끌어 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당시 중공군과 싸우던 미군 해병 1사단의 상황은 열악했다. 함경남도의 장진호를 점령하려던 계획은 실패하고 393명의 사상자와 수많은 부상자, 실종자들을 잃었다. 설상가상, 혹한의 날씨 속에 군화 속 두 발은 동상에 걸려 썩어가고 식량은 모두 꽁꽁 얼어 붙었다. 부상자를 위한 모르핀마저 녹여 써야 하는 형편이었고 잠시 눈을 붙일 때조차 10배나 수가 많은 적의 기습을 대비해 침낭의 지퍼조차 잠그지 못했다. 실로 전투보다 처절한 후퇴의 현장이었다.

당시 뉴스위크지는 ‘진주만 피습 이후 미군 역사상 최악의 패전’이라며 비아냥 거렸다. 해병대가 흥남을 향해 출발하기 전에 영국인 기자가 사단장 올리버 스미스 소장에게 “흥남으로의 이동은 결국 후퇴 아니냐?”고 냉소적으로 물었을 때, 스미스 소장이 “후퇴라니, 말도 안 돼 ? 우린 다른 방향으로 진격하는 겁니다 (Retreat, hell ? we’re attacking in another direction)”라고 대꾸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사실 장진호 전투의 성공은 스미스 사단장의 철저한 준비와 결단력 덕분이었다. 그는 1950년 10월 북진 당시 다른 아군 부대와는 달리 후방의 안전을 확보한 뒤에야 부대를 이동시켰다. 덕분에 중공군 기습으로 큰 타격을 입은 타 부대와는 달리 스미스 소장의 해병 1사단은 건재했다.

이후 병력을 철수하기 위해 비행장을 확보하라는 상부의 지시에 따르면 중공군에게 무기를 빼앗길 수 있기에 일부만 철수 시키고 나머지 병력으로 끝까지 교전하며 후퇴했다.

 

미국 역사에 길이 남을 최고의 전투

당시 상황은 심각했지만 오늘날 장진호 전투는 미국 역사에 길이 남을 최고의 전투로 기억되고 있다. 후퇴하는 상황에서도 끊임없는 교전으로 중공군 전사자 5만 명을 냈을 뿐 아니라 이때 번 시간 덕분에 피난민들이 무사히 대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장진호 전투’는 생소한 이름일 뿐이다. 과거의 역사 뿐 아니라 현재 한국의 방위를 위해 한국과 오키나와에 주둔한 미군 장병들의 존재조차 한국 시민들은 잘 모르고 있다. 특히 오키나와에 주둔 중인 미 해병대는 유사시 한반도에 맨 먼저 투입되는 미군 부대다. 이렇듯 한국의 방위에서 긴요한 역할을 맡았음에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장진호 전투의 의미를 알리고 미군 해병대를 초청해 공연을 열자는 계획은 소설가 복거일 씨가 세웠다. 자금을 모으고 시나리오까지 집필하는 열정으로 한편의 뮤지컬을 만들어 냈다. 2011년 5월 26일 용산아트홀에서 열린 영어 뮤지컬 ‘다른 방향으로의 진격 (Attacking in Another Direction)’의 제목은 부대를 이끈 스미스 사단장의 전설적인 명구 “우리는 철수 하는 것이 아니라 적을 격멸하고 후방을 향해 새롭게 공격하는 것이다”에서 착안했다고 한다.

“미군이 우리를 위해 목숨 바쳐 싸워줬는데 고맙다고 하기는 커녕 반미 운동을 벌이는 판이니… 미군 입장에서 보면 괘씸하겠더라구요. 그래서 이 연극을 만들기로 결심했죠. 전경련에서 1억6,000만원을 지원해 줬어요. 사실 지원 받기가 쉽지 않은데… 소재가 워낙 각별하니까 선뜻 지원해 주시더군요. 미군을 대상으로 하는 공연이라 영어로 써야 하고 덕분에 제작비도 몇 배로 들었어요. 영어 구사 능력이 뛰어난 배우를 섭외해야 하고 영어 지도 교사까지 둬야 했기 때문입니다.”

26일 공연은 미군초청공연 전에 시민들을 초청해 시사회처럼 마련한 자리였다. 각계 인사를 비롯, 장진호 전투에 참전했던 이병연 씨도 참석했다. 현재 변호사로 활동 중인 이병연 씨는 당시 통신병으로 활약한 유일한 한국군이라고 한다. 복거일 씨의 인사말을 시작으로 공연이 시작됐다.

줄거리는 미국 병사의 개인적인 이야기에 초점을 맞췄다. 한국이란 나라의 존재도 모르던 미국 청년 존과 로버트는 사랑하는 연인과 이별하는 아픔을 겪으며 전쟁에 지원한다. 그 부대가 바로 미국 해병 1사단이다. 막상 중공군의 공격을 받는 치열한 전쟁터에 가보니 상상으로만 그리던 모습과는 달랐다. 설상가상으로 로버트는 후퇴하던 중 총에 맞아 전사하고 만다. 살아남은 존과 부대는 피난민 대열을 만나게 되고 존은 가족을 잃은 소년에게 초콜릿을 주며 위로한다.

하지만 후에 얼음길에 죽어 있는 소년의 시체를 발견한다. 친구의 죽음과 전쟁의 참상을 겪으며 괴로운 마음으로 고국에 돌아온 존. 목사님과 사단장의 위로 속에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군인의 사명감을 확인하며 군가를 부른다. 암전 후 스크린에 뜨는 문구가 이 연극의 핵심 주제인 듯 오래 가슴에 남는다.
‘오랜 전쟁들은 끝나지 않는다. 그것들은 그저 사라진다. 노병들이 하나씩 죽어가면서. 기억하라! 기억하라!’

 

주한미군부대 순회하며 공연

사단법인 문화미래포럼 산하 ‘문미포 여성악극단’의 배우들은 모두 여자였다. 다른 주제도 아닌 군인들의 이야기를 여배우들이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지 의아했는데 의외로 색다른 무대였다. 힘차면서도 우아한 군무를 출 때는 군복 속에 숨겨진 자태가 드러나 전쟁터의 슬픔이 가녀린 몸짓으로 드러났다.
절정은 소년의 시체를 부둥켜 안은 존의 슬픔을 상징한 장면이었다. 흰옷을 입은 여인들이 둘러서서 ‘아베 마리아’에 맞춰 느린 동작으로 원을 그리며 돌 때, 동서양을 초월한 인간애가 죽음을 넘어서는 신의 섭리로 아름답게 승화됐다.

공연을 관람한 주부 최혜선 씨(56)는 “가슴이 뭉클합니다.요점만 딱딱 집어 전개도 잘했구요. 앞으로도 이런 역사적인 공연이 많이 열려 진실을 알리고 후세에도 길이 전해졌으면 합니다”하고 소감을 밝혔다. 
이후 공연은 6월 11일(토) 5시 동두천시민회관, 6월 22일(수) 5시 의정부 미군부대(레드크라우드)극장에서 열릴 예정이다. 또한 장진호 전투 이야기는 레드미디어 엔터테인먼트사에서 영화로 만들 예정이라 더욱 많은 이들에게 알릴 수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조진명 기자 jaduj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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