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한국 2PM] 대한민국은 "황해"를 검색했다
[미래한국 2PM] 대한민국은 "황해"를 검색했다
  • 이원우
  • 승인 2013.06.03 16: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13년 6월 3일 오후 2시 00분
 

- 포털사이트 NAVER 1위 -

- 개그는 개그일 뿐 오해하지 말자고, 말은 쉽지만 현실은 어떨까.

- 6월 3일 오후 2시 검색어 최상단에 오른 ‘황해’는 KBS <개그콘서트>(개콘)의 한 코너다. 2010년 개봉한 영화 <황해>를 패러디한 코너로 ‘어설픈 조선족 보이스피싱 사기단’을 다루고 있다. 어눌한 말투로 “많이 당황하셨어요?”라고 묻는 사기꾼의 실제 음원이 최근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바 있어 더욱 빠른 반응을 얻었다.

- 조선족과 한국인의 말투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뛰어난 연기를 보여주는 신인 이수지를 비롯, 개그맨들의 연기는 발군이다. 코너 말미에 등장하는 개그맨 이상구 역시 영화 <황해>에 출연한 배우 김윤석과 똑 같은 모습으로 분장해 포복절도를 유발한다. 순수하게 개그의 관점에서만 보면 매우 잘 만들어졌다.

- 하지만 높은 완성도가 뇌관으로 작용한 부분도 있다. 어제까지 단 2회 방송되었을 뿐인 이 코너는 ‘조선족 비하 논란’에 휘말렸다. 완벽하게 서울 말씨를 구사하던 주인공이 자신의 이름을 말하거나 숫자를 발음할 때 ‘조선족 티’를 내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조선족만의 특성을 결정적인 웃음 코드로 이용한 것만은 분명하다.

- 개콘의 서수민PD는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비하 의도가 없었기 때문에 비하라 볼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잘라 말했다. “그렇게 본다면 조직, 도둑, 거지도 나오는데 그것도 다 비하인가. (…) 코미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 최근 들어 몇몇 개그소재에 대해 당사자들이 발끈하는 사례가 있는데, 안타까울 뿐이다.”

- ‘황해’의 완성도에 비해 서PD의 논리는 빈약하다. 의도가 없었다는 말로 면죄부를 받을 수 있다면 세상 모든 성추행범과 스토커는 무죄다. “조직, 도둑, 거지도 나온다”는 말 역시 조선족을 그들과 ‘같은 급’으로 놓고 있다는 반박을 유발할 따름이다.

- 개콘이 지금까지 ‘코미디에 대한 높은 이해’를 보여준 것 같지도 않다. 한 번 웃고 나면 그만인 즉물적 감성코드, 유행의 패러디, 1차원적 정치 비하, 그리고 또 무엇이 있었는가? 다만 명성을 얻기 위한 개그맨들의 피나는 경쟁이 오늘의 개콘을 이끌어 왔을 뿐이다.

- 극사실주의를 표방한 영화 <황해>는 재한조선족들 사이에서 한 차례 뜨거운 반발을 야기했던 작품이다. 여기에 최근 사례를 덧붙여 개그 코드를 구성한 ‘황해’에 우리는 어디까지 웃어도 되는 것일까.

- 초상집에서 웃음이 터졌다고 마음 놓고 하하호호 웃을 수는 없는 것처럼, 맥락에 따라서 웃음은 유죄가 되기도 한다. 논란에 대응하는 제작진의 감수성은 너무 무딘 것은 아닌가? ‘웃기면 그만’인 것은 개그맨들의 덕목일 뿐, 지상파로 방송을 송출하는 제작진까지 출연자와 똑 같은 마인드를 가져서야 문제가 커질 수밖에 없다.

- 남북통일이 가까워올수록 남한 내에서 탈북자, 혹은 '북한 출신자'들을 발견하기는 더욱 용이해질 것이다. 남과 북이 분단되었던 가슴 아픈 역사의 스토리를 뒤로 하고서 우리는 그들의 말투와 행동을 특성 삼아 마음 놓고 웃을 수 있을까? 어떤 의미에서는 얼른 그런 날이 오는 게 좋겠지만, 모든 게 그렇게 생각처럼 쉽게 풀리진 않을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은 ‘황해’를 검색했다.

이원우 기자 m_bishop@naver.com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