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교수 ‘마케팅’을 말하다
심리학 교수 ‘마케팅’을 말하다
  • 이원우
  • 승인 2012.10.04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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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민 교수 신간 <대통령과 루이비통>
 

제목에 ‘정치’와 ‘명품’을 함께 배치시킨 것은 황상민 교수가 투표와 쇼핑을 ‘소비’라는 하나의 개념으로 묶어내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람들은 정치기사를 읽다가 구찌가 가격을 인하했다는 뉴스를 읽고, 새로운 명품백에 대한 사용 후기를 읽다가 정치기사에 대한 코멘트를 SNS에 올린다. 신문에서 정치면과 경제면이 따로 분류돼 있다고 해서 그것들이 개개인에게 미치는 삶의 여파까지 개별적이지는 않다.

‘개인’이라는 웅대한 우주 속에서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는 공존하고 융합된다. 비슷해 보이는 소비행동일지라도 알고 보면 제각각의 이유는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황상민 교수는 그간의 경영학·심리학적 조사방법이 품고 있는 한계를 지적하며 새로운 트렌드 분석을 야심차게 제안한다.

책의 전반부는 기존의 방법론에 대한 비판을 위해 상당량을 할애한다. 그의 분석을 거칠게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개인이 중요하다.”

사람의 마음이란 너무도 복잡하고 오묘한 것이기 때문에 ‘최고의 것’을 찾겠다는 마케터들의 시도는 필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황 교수의 논지다. 뿐만 아니라 소비자들은 스스로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

무턱대고 “무엇을 원하십니까?”라고 질문을 던져봐야 별다른 수확이 없을 것이라는 주장에도 공감이 간다. 개개인의 마음에 좀 더 귀를 기울이고, 다양성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그의 주장에는 충분한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비판이 뜨거운 만큼 예리했다면 좋았을 대안 제시에 있어서 이 책은 취약한 모습을 보인다. 황 교수는 책의 2부 부터 그가 직접 담당한 분석사례들을 제시하며 소비자들의 마음을 해석하는 과정에 독자들을 동참시킨다.

그러나 심리적 부분의 유사성을 기준으로 사람들을 묶어내는 ‘마음 MRI’ 기법이 기존 마케팅 이론의 ‘시장 세분화’와 어떤 부분에서 큰 차이를 갖는지 명확하지 않다. 결국엔 마음 MRI도 세분화의 한 종류일 뿐인 것은 아닌가? 개인을 중시하자고 주장해 놓고 결국엔 ‘유형화’를 좀 더 성실히 하는 것뿐이라면 그간의 비판이 머쓱해진다.

책의 제목에서 루이비통과 대등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대통령’의 비중도 막상 책 안에서는 희미하다. 제목만 보고 ‘18대 대선에 임하는 유권자들의 마음’에 대한 통찰력 있는 해석을 기대한 독자라면 실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대통령 얘기는 책의 에필로그에 가서 간략하게 다뤄져 있을 뿐이고 그나마 지나간 대선에 대한 얘기가 주를 이룬다. 심리학 교수가 현실정치에 대한 코멘트를 할 의무는 없겠지만, 그렇다면 책 제목을 <대통령과 루이비통>이라고 짓는 것도 곤란한 얘기다. 정작 독자들의 소비심리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더해진다.

대형사고로 100명이 사망했을 때 우리는 무심하게도 그것을 ‘100명이 죽은 하나의 사건’으로 인식한다. 허나 실은 한 사람이 죽은 사건이 100건 일어난 것이다. 모든 것은 개인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개인주의적 시각의 각성을 위한 하나의 계기로써 활용되길 자처하지만 그리 멀리 가지는 못했다. 하지만 국가주의와 공동체주의가 새로운 돛을 올리고 있는 지금 시점에서는 이 작은 관점의 전환도 그리 나쁘지는 않아 보인다. (미래한국)

이원우 기자 m_bisho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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