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그들'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우리는 '그들'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 미래한국
  • 승인 2012.09.28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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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킹메이커>, 이미지로 덧칠된 한 정치인의 허상을 드러낸다
 

올 초 개봉했다가 조용히 내려진 할리우드 영화 중에 <킹메이커>라고 있다.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현장을 소재로 한 것이어서 연말 대통령 선거를 앞둔 우리나라에서도 시의성이 있는 영화였다. 특히 유명 배우 조지 클루니가 감독하고 주연까지 맡아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막상 개봉 후 관객들의 반응은 미지근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이 영화는 시간이 갈수록 한 장면 한 장면이 새록새록 생각나는 묘한 매력이 있다. 아무래도 미소를 머금은, 우리 대선의 예비 후보들의 얼굴이 이 영화의 잘생긴 주인공 모리스 주지사와 중첩되기 때문인 것 같다.

영화의 힘은 현실 정치를 매우 사실적으로 다뤘다는 데 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영화의 이런 장점은 정작 개봉했을 때보다, 우리나라 대선 열기가 점점 고조되면서 더욱 잘 드러난다.

먼저 완벽해 보이는 대선 후보 모리스 주지사. 민주당 소속인 그는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덕목인 정의와 정직, 성실의 상징처럼 그려진다. 게다가 배우인 조지 클루니가 실제로 그렇듯이 잘 생기기까지 했으니 누구라도 그를 찍고 싶을 만하다.

그러나 아쉽게도 모리스의 이런 ‘완벽함’은 그리 오래 가지 않는다. 요새 유행하는 모 후보의 “많은 사람을 오랫동안 속일 수 없다”는 명언처럼 말이다.

영화는 그 좋은 후보의 모습이 이제껏 본인과 측근들의 노력으로 얼마나 잘 만들어진 ‘허상’인지 하나하나 알려준다. 모리스도 역시 여자 문제가 발목을 잡는다. 충실한 가장을 자임하던 그가 사실은 여자 인턴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그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고심하던 중이었다.

이런 사실을 폭로하려는 그의 참모 마이어스(라이언 고슬링)와 모리스와의 협박과 거래가 영화 후반부의 줄거리. 이 과정에서 모리스가 이제껏 보여 왔던 완벽한 미국인, 깨끗한 대선 후보의 모습은, 본인과 ‘킹 메이커’들이 만든 이미지일 뿐이라는 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영화는 또 선거 정치 현장 이면에 있는 음모와 술수를 담아낸다. 언론과 인터넷을 활용한 네거티브 선거운동은 물론이고, 상대 진영 참모진의 회유, 당선 후 고위직 지명을 조건으로 한 지지선언 거래 등이다.

특히 오하이오주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제)에서 벌어지는, 이른바 ‘역선택’은 우리 정치 상황과 맞물려 눈길을 끈다. 영화에선 공화당 지지자들이 오픈프라이머리의 허점을 악용해 민주당 모리스 후보의 라이벌에게 몰표를 던짐으로써 본선 경쟁자인 그에게 타격을 준다.

그런데 재미 있는 점은, 한국 정치에선 이 오픈프라이머리의 역선택이 기발하게 ‘진화’했다는 주장도 있다. 역시 오픈프라이머리 방식인 민주통합당 경선에서 대선 후보의 양보를 가장 잘할 만한 인물이 보이지 않는 당 차원의 지원을 받고 있다는 식의 해석이다. 당적은 없지만 대선 경쟁력이 있는 제3의 후보와의 단일화를 위해서 말이다. 이대로라면 우리 대선에선 영화보다 한 발 나아가 후보를 정말로 만드는 ‘킹메이커’들이 있는 셈이다.

장난 같은 생각을 해봤다. 대선 전에 이 영화가 다시 개봉되면 어떨까. 그렇게 되면 지지하는 후보들이 ‘만들어진’ 허상인지 아닌지를 다시 한 번 찬찬히 볼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상상이다. 영화 포스터에서 타임지에 반쪽 얼굴만 나와 온화하게 웃고 있는 조지 클루니처럼 말이다. 과연 우리 대선에서의 모리스는 누구일까? (미래한국)

정재욱 기자 jujung1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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