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전 세계를 상대로 야심차게 추진해 온 중화문명의 선전대인 ‘공자학원’이 미국 의회에 의해 잇달아 폐쇄되고 있다. 이유는 학교를 내세운 스파이 조직이라는 것. 지난 4월 2일 미국의 명문대인 텍사스주립대(Texas A&M University)는 이 학교에 고급교육과정을 개설한 공자학원의 2개 클래스를 폐쇄하는 조치를 발표했다.
시카고대와 펜실베니아주립대 역시 유사한 상황에서 대학 캠퍼스에 설립된 공자학원을 폐쇄 조치한 바 있다. 지난 3월에는 공화당 마르코 루비오, 톰 코튼 상원의원과 조 윌슨 하원의원이 외국대리인등록법(FARA)에 의거해 공자학원 등의 등록을 의무화하고 감시를 확대할 수 있는 ‘외국 영향력 투명화 법안’을 공동으로 발의하기도 했다.
FARA는 1938년 독일의 나치가 미국에서 로비활동을 벌이는 것을 금지할 목적으로 제정됐다. 실제로 미국은 사회주의자들과 투쟁한다는 나치에 대해 초기에 호감을 가졌는데 이는 전적으로 괴벨스의 전략이었다. 연방수사국(FBI) 크리스토퍼 레이 국장은 지난 2월 상원 정보위원회 청문회에서 공자학원이 중국 공산당 사상의 정치 선전과 중국 정부의 스파이 활동에 악용되면서 ‘수사 대상’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레이 국장은 공자학원이 미국 내 중국 유학생과 중국 민주화, 인권 활동에 관계한 재미 중국인의 동향을 감시하는 거점으로도 쓰이고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대학교수협회는 2014년 공자학원이 ‘학문의 자유’를 위협하고 있다며 각 대학에 관계 중단을 권고하기도 했다.
루비오 상원의원은 공자학원 규제법안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공자학원이 미국의 100개가 넘는 대학들과 협력 관계를 체결하면서 캠퍼스 안에 설치됐고 그 활동에는 중국 정부가 미국에서 영향력을 확대시키려는 목적이 있다고 지적했다.
법안은 각 미국 대학에 외국 기관과 단체 등에서 5만 달러 이상의 기부와 계약, 사례품 등을 받을 경우 공시를 강제하도록 관련 법령을 개정하는 것 등을 요구하고 있다. 루비오 상원의원은 2월 남부 플로리다주의 여러 대학 등에 공자학원과 관계를 끊으라고 요청했다.
공자학원은 중국 교육부가 세계 각국의 대학과 연계해 중국어와 중국 문화를 전파하기 위해 세운 비영리 교육기관이다. 한국에도 다수 설립돼 있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공자학원은 중국의 것일 뿐 아니라 세계의 것이다”라는 말을 강조했다. 공자학원은 2004년 서울에 처음 설립한 데 이어 123개국 475곳으로 늘어났다.
유럽이 158곳으로 가장 많고 다음이 미국(152곳)이다. 각국 초·중학교에 설치된 ‘공자학당(교실)’ 730곳까지 합치면 1200곳이 넘는다. 여기서 교육받은 학생만 345만여 명이다. 중국이 공자학원을 세계에 적극 구축하려는 이유는 무엇보다 반중 정서를 완화하기 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종의 소프트외교 전략으로 중국 공산당이 공자학원에 매년 거액을 투자하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 공산당은 공자학원 설립 때 100만 달러(약 10억 원)를 주고 매년 10만~15만 달러의 운영자금을 지원한다. 재정 부족에 시달리는 대학들의 입장에서는 중국어 강좌와 강사 양성으로 벌어들이는 수입 때문에 공자학원 유치에 적극적이다.
문제는 이러한 공자학원이 상대국에 중국 공산당 사상을 선전하거나 심지어 정부 관련 정보까지 불법으로 입수하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2월 13일 미 연방의회 상원 정보위원회 청문회에서 크리스토퍼 레이 FBI 국장이 증언한 공자학원의 스파이 혐의는 구체적으로 진술되지 않았으나 레이 국장과 함께 청문회에 출석한 댄 코트 국가정보국(DNI) 국장은 “중국 측은 매우 똑똑하게, 효율적인 방법으로 움직이고 있다”며 중국 공자학원의 스파이 활동에 대한 경계심을 드러냈다.
레이 국장은 미국 정부기관인 ‘미 의회 산하 의회·행정부 중국위원회(CECC)’의 위원장을 맡고 있는 마르코 루비오(Marco Rubio) 하원의원의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전 세계에서 미국의 군사, 경제, 문화, 첩보 능력을 낮출 목적으로 중국은 국가 주도로 움직이고 있다”며 “이를 국가의 위협뿐만 아니라 사회의 위협으로 인식하고, 미국은 전면적인 대응을 펼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또 “중국의 세계적인 침투 공작을 조사하기 위해 이미 여러 기관이 조사를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과학원에 따르면 1월 말 베이징의 중앙 당국은 공자학원 관련 조직에 대해 전면적인 깊은 개혁과 새로운 시대의 발전을 위해 발맞추는 행동 등을 요구하는 통지를 발령했다.
심지어 지금까지 세계 146개 국가와 지역에 설치되어 있는 525개소의 공자학원을 2020년까지 두 배에 가까운 1000개소 설치 목표를 달성한다는 행동강령까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듯 중국이 야심차게 전개하는 공자학원에 대해 마셜 살린스 시카고대 인류학과 교수는 “공자학원에서는 대만과 티베트 독립 문제, 톈안먼 사태 등에 대한 강의나 학술행사를 열 수 없다”며 “이는 공자학원이 미국 대학 내 학문의 자유를 억압하고, 중국 공산당 이념과 정치 선전도구에 불과하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교수도 “전 세계 대학에 세워진 공자학원이 학문의 자유를 침해하는 등 교육기관 본래의 기능을 넘어선 활동을 하는 경우가 있다”고 지적했다. 공자학원은 2014년 미국과 캐나다에서 퇴출되기 시작하면서 2015년에는 스웨덴 스톡홀름대학이 공자학원 계약 만료를 선언함으로써 유럽에서 처음 퇴출되는 상황을 맞았다.
이에 대해 중국 외교부는 “중국은 각국의 중국어 및 중국 문화 학습 수요에 따라 교사와 교재 등을 지원하고 있을 뿐 학술적 자유를 전혀 간섭한 적이 없다”는 입장이다. 공자학원 운영 총책임자는 류옌둥 국무원 부총리로 공산당 해외 영향력 확대 기구인 통일전선공작부 부장을 지냈다.
공자학원의 다른 운영 간부도 모두 공산당 원로 간부가 맡고 있다. 공산당의 직접적인 통제를 받는 셈이다. 그러한 공자학원은 2004년 서울에서 처음 문을 연 후 경희대, 충북대, 원광대, 세명대, 제주 한라대 등 현재 전국 23개 공자학원이 대학 부설 또는 독립적으로 설치 운영되고 있다.
2017년 3월 우리 정부는 공자학원의 중국인 강사들에 대한 비자 발급을 거부했다. 이에 루캉(陸慷)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강하게 불만을 표시하며 “한국에 있는 공자학원은 모두 한국 각 대학의 요청으로 설립됐다”면서 “한국 측의 요청으로 선택된 인원들이 파견되기 때문에 비자 발급과 거류 수속 문제를 해결해줘야 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공자학원에 대한 스파이 혐의가 제기되는 와중에 국내 중국 6만여 유학생들이 중국 정보기관을 통해 지난 박근혜 대통령 탄핵 촛불시위에 동원됐다는 주장도 있었다. 중국 정보기관이 한국에 머물고 있는 6만여 명의 중국 유학생을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위한 촛불시위에 몰래 참여시켰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지난해 1월 25일 동아일보 편집국 위원인 이정훈 기자는 저널로그 안보마당에 ‘민주당의 사드 배치 반대는 자가 당착’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한국에 6만여 명이 넘는 중국 유학생이 머물고 있다”며 “중국은 이 유학생들을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위한 촛불 시위에 몰래 참여시켰다”고 주장했던 것. “우리 국민들은 모르지만 중국 정보기관이 박 대통령을 밀어내는 공작을 벌였다는 것은 정보 세계에서는 진실이다”라는 주장으로 크게 논란을 빚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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