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케어, 의사들은 왜 반대하나?
문재인케어, 의사들은 왜 반대하나?
  • 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 회장
  • 승인 2018.05.28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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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케어의 배경, 내용, 그리고 반론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8월 9일 서울성모병원에서 문재인케어로 일컬어지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대책’을 직접 발표했다. 문재인케어의 골자는 다음과 같다.

1. 정부가 더 많이 부담함으로써(보장성 강화) 개인의 의료비 부담을 줄여주겠다. 특히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의 의료비를 획기적으로 줄여주고, 민간보험료 부담도 낮춰주겠다.

2. 개인의 의료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건강보험에서 보장하지 않던 부분(비급여)을 없애겠다. 대표적으로 대학병원의 특진비를 없애고 상급병실료도 건강보험에서 부담하겠다. 간병비도 건강보험에서 부담하겠다.

3. 문재인케어의 실현을 위해 추가로 필요한 재원은 그 동안 쌓아 뒀던 흑자재정에서 조달하고 부족한 부분은 국가재정(국세)에서 충당하겠다. 보험료는 평상시보다 더 많이 올리지 않겠다.

 

문재인케어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건강보험 혜택을 늘려서 환자들의 의료비 부담은 줄이되, 건강보험료 부담은 늘리지 않겠다’라는 것이다. 국민과 환자의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 이 때문에 문재인케어가 발표된 후 시민단체에서는 환영 일색일 뿐 한 마디의 비판적인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의사협회 등 의사단체만이 강력한 반대를 천명하며 저항을 예고했고, 이에 따라 ‘문재인케어를 저지할 단 한 명의 후보’라는 구호를 들고 나온 비교적 젊은 40대 의사가 의사협회장에 당선이 되는 파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의사들이 문재인케어에 대해 강력한 반대 목소리를 내자 시민단체들은 더욱 더 강력한 찬성 의지를 표명하고 있는 상황이다. 의사협회가 문재인케어 반대를 위해 5월 20일 대규모집회를 예고한 상황에서 의사들이 문재인케어를 반대하는 이유를 정리해 본다.

문재인케어의 배경, 내용, 그리고 반론

정부가 주장하는 문재인케어의 필요성과 내용에 대해 하나씩 팩트를 점검하고 반론을 달면 다음과 같다.

1. ‘국민의 의료비 본인부담률은 OECD 평균의 두 배다’

팩트다. 그런데 표현이 틀렸다. 이렇게 말하면 마치 국민이 OECD 평균의 2배 의료비를 쓰는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실제는 그 반대다. 대한민국 국민이 1인당 지출하는 총의료비(개인.정부부담 합산, 구매력평가지수 반영)는 OECD 평균의 64%에 불과하다. 대한민국 국민의 의료비부담률은 OECD 평균의 절반을 조금 넘는 수치다. 대통령이 말한 것은 의료비 중 ‘본인의 부담비율’이다. 만일 “국민이 쓰는 의료비 중 정부가 책임지는 부담률은 OECD 평균의 절반에 불과합니다”라고 말했더라면 오해의 소지가 없었을 것이다.

2. 건강보험 보장률이 낮다 보니, 가구당 월평균 건강보험료가 9만원인데 비해, 민간 의료보험료 지출이 28만원에 달한다.

팩트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빠진 것이 있다. “건강보험 보장률이 낮다 보니 민간보험료로 건강보험료의 3배 가까운 비용을 내고 있다. 건강보험료를 더 내고 민간보험료 부담을 그보다 많이 줄이는 제도로 바꿔야  한다”라고 정부가 이렇게 발표했다면 의사들은 지금처럼 강력히 저항하지 않았을 것이다. 참고로 민간의료보험사가 보험 운영을 위해 지출하는 사업비는 건강보험의 최대 7배에 이른다.
 


3. 치료비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비급여 문제를 해결하겠다. 앞으로는 미용, 성형과 같이 명백하게 보험 대상에서 제외할 것 이외에는 모두 건강보험을 적용하겠다.

팩트가 아니다. 팩트가 될 수도 없다. 모든 의학적 비급여를 없앤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실현한 나라는 아마도 북한 외에는 없을 것이다.) 심지어 사회주의의료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영국·캐나다·뉴질랜드도 비급여가 존재한다. 모든 의료행위를 급여화 한다는 것은 모든 의료행위에 대해 국가 곧 모든 국민이 책임을 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급여가 남아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의료에는 필수의료 뿐 아니라 선택의료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회에 수천만 원 하는 고가의 치료를 모두 국가재정으로 감당할 수 없다. 불요불급한 의료나 고가의 새로운 신의료기술을 모두 국가재정으로 감당할 수도 없다. 비급여 진료를 모두 없애겠다는 것은 국민의 선택의 기회를 없애는 것이다. 국민의 선택권을 없애지 않는 한, 비급여를 모두 없앤다는 것은 실현 불가능한 일이다. 정부는 급여화 하지 못할 비급여를 ‘예비급여’라는 이름으로 이름만 바꿔 존치 시킬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그것은 국민을 속이는 일이다.

4. 환자의 부담이 큰 3대 비급여를 단계적으로 해결하겠다. 예약도 힘들고, 비싼 비용을 내야 했던 대학병원 특진을 없애겠다.

문재인케어는 ‘선택진료비 폐지’를 공약했고 이 공약은 올해 초부터 실행됐다. 선택진료비 폐지에 따라 환자들의 부담은 줄어들었다. 그러나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안 그래도 심각한 대형병원 집중화 현상이 더 심해진 것이다. 선택진료비 폐지에 따라 일부 대형병원의 문턱이 낮아지자 지방병원과 중소병원에 다니던 환자들이 서울의 대형병원에서 진료를 받기를 희망해 집중화 현상이 더 악화되었다.

이것은 중소병원과 특히 지방병원의 경영이 악화되고, 지방병원의 공동화 현상은 필수적으로 진료의 질 하락을 가져온다. 진료전달체계가 미비한 상태에서 대형병원의 문턱을 먼저 낮춘 것이 문제다. 그리고 3대 비급여를 없애는 것은 큰 재원이 드는 일이다. “단계적으로 해결하겠다”가 아니라 “단계적으로 해결해 나가기 위해 노력하겠다”가 되어야 했다.

5.상급 병실료도 2인실까지 보험을 적용하겠다. 1인실의 경우에도 1인실 입원이 꼭 필요한 환자에게는 건강보험 혜택을 주겠다.

지난 4월, 정부는 오는 7월부터 2,3인 병실에 건강보험이 적용된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동시에 상대적으로 저렴한 일반병상 의무 비율을 확대한다고 발표했다. 현재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은 병원별로 전체 병상 중 4~6인실을 70% 이상만 확보하도록 규정되어 있으나 이를 80%로 상향한다는 것이다. 건강보험 적용 확대를 위해 다인실 비중 확대를 의무화한 것이다. 그런데 2015년 메르스 사태가 대한민국을 덮쳤을 때 정부는 “감염 위험을 줄이기 위해 다인실 비중을 줄여야 한다”라고 말했었다. 국민의 안전보다 정부의 선심정책이 우선인 것이다.

6. 간병이 필요한 모든 환자의 간병에 대해 건강보험을 적용하겠다. ‘보호자 없는 병원’을 늘려가겠다.

간병비는 환자의 가족에게 큰 부담이 되기 때문에 간병비를 급여화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문재인케어는 간호와 간병을 병합해 서비스를 하는 간호간병 통합서비스를 통해 급여화를 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런데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간병이 필요한 모든 환자’의 기준이 모호하다. 둘째, 병원마다 시설과 규모가 크게 다르고 간호사의 업무량이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인 간호.간병 통합이 쉽지 않다. 이런 준비 없이 추진된다면 지키지 못할 약속이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7. 고액의 의료비 때문에 가계가 파탄 나는 일이 없도록 만들겠다. 2018년부터 연간 본인부담 상한액을 대폭 낮추겠다. 본인부담 상한제 인하의 혜택을 받는 환자가 현재 70만 명에서 2022년 190만 명으로 세 배 가까이 늘어나게 될 것이다. 특히, 하위 30% 저소득층의 연간 본인부담 상한액을 100만 원 이하로 낮추고, 비급여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해서 실질적인 의료비 100만 원 상한제를 실현하겠다. 당장 올해 하반기 중으로, 15세 이하 어린이 입원진료비의 본인부담률을 현행 20%에서 5%로 낮추고, 중증치매환자의 본인부담률을 10%로 낮추겠다. 어르신들 틀니 부담도 덜어드리겠다.

의료비 때문에 재정 파탄에 빠지는 가구를 구제하는 일은 매우 시급하고 중대한 일이다. 그런데 하위 30% 저소득층의 연간 본인부담 상한액을 100만 원 이하로 낮추려면 누군가는 그 재원을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 어린이 입원진료비의 본인부담률을 낮추는 것도 마찬가지고 중증치매환자의 본인부담률을 낮추는 것도, 어르신들의 틀니 부담을 줄이는 것도 모두 마찬가지다. 이 공약을 지키기 위해 누가 얼마나 더 많은 재원 부담을 떠안아야 할까? 국가건강보험재정의 안전성은 국민의 생명이 달린 중요한 문제다. 그러나 정확한 시뮬레이션조차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퍼주기 공약만 서둘러 앞서 발표됐다.
 

8. 전체적으로는 전 국민의 의료비 부담이 평균 18% 감소하고, 저소득층은 46% 감소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낮은 의료비 부담’ 뿐이 아니다. 동시에 ‘양질의 의료서비스’가 담보되어야 한다. 그러나 ‘더 많은 혜택’만을 약속하고 ‘그에 따르는 부담은 없을 것이다’라고 외친다면 그 계획은 실현 가능성이, 더욱이 지속가능한 실현 가능성이 매우 낮을 수밖에 없다.

9. 민간의료보험료 지출 경감으로 가계 가처분 소득이 늘게 된다.

민간의료보험료의 지출 경감이 일어나려면 민간의료보험을 해지해야 한다. 그런데 일단 그 자체가 가입자들에게는 손해다.
 

10. 앞으로 10년 동안의 보험료 인상이 지난 10년간의 평균보다 높지 않도록 관리해 나갈 것이다. 

혜택은 훨씬 더 늘리는데 건강보험료의 추가 인상은 하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향후 5년간은 그 동안 20조 이상 쌓아 놓은 흑자재정을 쓴다고 쳐도 그 이후에 대한 대책이 불투명하다. 더욱이 ‘낮은 의료비 부담’은 ‘의료수요의 증가’를 가져온다. 이용률이 증가하는 것이다.
 

11. 국민의 세금과 보험료가 한 푼도 허투루 쓰이지 않도록 비효율적이고 낭비적인 지출은 철저히 관리해 나가겠다. 국민 부담은 최소화하면서 국민 혜택을 극대화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겠다.
정부는 의료소비자에게는 장밋빛 미래를 약속하고, 의료공급자들에게는 채찍을 휘두르게 될 것이다. 의사들은 그런 상황이 필히 벌어질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12. 의료계의 걱정도 잘 알고 있다. 비보험 진료에 의존하지 않아도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적정한 보험수가를 보장하겠다.

‘비보험 진료에 의존하지 않고서 진료가 가능한 적정한 보험수가 보장’은 단 한 번도 지켜지지 않은 약속이고 지켜질 수 없는 구조다. 더욱이 정부는 보험료의 추가 부담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13. 의료계와 환자가 함께 만족할 수 있는 좋은 의료제도를 만들겠다.

이 중대한 제도 변화가 의료계와 아무런 사전 협의 없이, 시범사업도 없이, 준비과정 없이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한 지 불과 3개월만에 발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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