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내일을 위한 역사학 강의....21세기, 역사학의 길을 묻다
[신간] 내일을 위한 역사학 강의....21세기, 역사학의 길을 묻다
  • 김민석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8.05.29 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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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기봉은 경기대학교 사학과 교수. 한국연구재단 인문학단장과 역사학회 부회장을 역임했다. 독일 빌레펠트 대학에서 「역사주의와 신문화사―포스트모던 역사 서술을 위하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전문 역사학과 대중 역사문화의 경계를 넘나들며 꾸준히 역사비평을 해왔다. 

본래 전공이 역사학의 과거, 현재, 미래를 조망하는 ‘역사학의 역사’를 다루는 사학사인 그는, 최근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시대 “역사(학)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Historia, Quo Vadis”에 관심을 두고 있다. 인간의 지능을 능가하는 인공지능이 등장한다면, 그것은 역사학의 기능을 대체하는 것을 넘어 역사의 종말을 초래할 수 있다. 그는 이러한 인공지능의 도전을 역사학자의 미래만이 아니라 인류 종 전체의 운명이 걸린 문제로 인식하고, 앞으로 역사학과 인문학이 나아갈 길을 모색하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히스토리아, 쿠오바디스』 『‘역사란 무엇인가’를 넘어서』 『역사를 통한 동아시아 공동체 만들기』 『팩션 시대, 영화와 역사를 중매하다』 『역사들이 속삭인다』 『포스트모더니즘과 역사학』(공저), 『가족의 빅뱅』(공저) 등이 있다.

질주하는 과학기술은 머지않은 장래에 사이보그나 복제인간 같은 새로운 인류 종種을 만들어낼 것이다. 그런 포스트휴먼 시대가 마침내 현실로 나타나면, 현생 인류인 사피엔스는 과거의 네안데르탈인처럼 멸종해버리고 마는 역사의 종말이 올지도 모른다. 이 같은 종말론에 직면해서 오늘의 역사학이 물어야 할 근본적 질문은 “우리는 어디서 왔고, 무엇이며, 어디로 가는가”라는 인문학 3문問이다._111쪽 

종래의 인류 문명사가 지식과 정보를 기억하는 것에 토대를 두고 전개됐다면, 빅데이터의 출현은 최초로 ‘기억’보다 ‘망각’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쪽으로 인식의 전환을 가져왔다. 역사학이 사라진 과거를 기억하기 위해 문자 기록을 남기는 것으로 성립한 학문이라면, 이런 인식의 전환은 앞으로 “역사학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정체성과 기능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제기한다. 또한 2016년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국 결과(4:1)는 인공지능 시대를 예고하며,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적 능력을 초월하는 ‘기술적 특이점’이 실제 도래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했다. 과학기술이 창조한 ‘포스트휴먼’의 출현으로 현생 인류 종의 종말까지 언급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역사학과 인문학 위기를 넘어 인류의 앞날은 어디를 향할 것인가? 

역사학을 학문의 틀에 가두지 않고 그 경계를 넘어 사극, 역사소설 등 대중 역사문화 전반을 아우르며 활발히 역사비평 작업을 해온 역사학자 김기봉의 『내일을 위한 역사학 강의―21세기, 역사학의 길을 묻다』가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역사학은 “우리는 어디서 왔고, 누구며, 어디로 가는가”라는, “인류의 과거, 현재, 미래에 관해 묻는 ‘인문학 3문三問’을 가장 직접적으로 다루는” 학문이다. 이 책은 이 질문의 답을 탐구하며 인간 삶에 대한 성찰을 멈추지 않아 온 저자의 그간의 작업들과 연장선상에 있다. 이 책이 더욱 특별한 이유는 역사를 과거의 이야기가 아닌, 급변하는 오늘의 디지털 환경과 연관 지어 시사점을 던지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과학기술의 발달은 인간의 생각과 삶, 일을 비롯한 모든 측면에서 혁명적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알파고를 창조한 구글 딥마인드 CEO 데미스 허사비스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현재 알파고의 인력 대부분이 (보통의 인간처럼 여러 가지 일을 수행하는) 범용 인공지능 개발에 매달리고 있”으며, “2년 내로 구체적인 성과”가 나와 “10년 뒤면 이런 인공지능의 활용이 인간 사회에서 아주 일반적인 일”이 되리라 예상했다. 

역사학과 인문학은 이러한 변화의 직격탄을 맞았다. “디지털 시대로의 전환”은 과거의 사실을 탐구하는 “데이터 학문”인 역사학의 기반을 뒤흔들며 위기를 초래했다. 이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을 오래전부터 주시해온 저자는 이 책을 통해,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로 대변되는 “어제의 역사학”의 그늘에서 벗어나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 시대에 걸맞은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제시하며, 역사와 역사학의 향방을 그려본다. 

출간된 지 반세기가 지났음에도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는 “지금까지도 우리 대학에서 ‘역사학 입문’ 교재로 사용”되며, “역사 성경”처럼 여겨지고 있다. 1960년대 냉전기를 풍미했던 시대정신을 반영해 쓰인 이 책이 과연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여전히 통용될 수 있을까? 

저자는 제1부에서 그간 역사 종교의 ‘숨은 신’으로 군림해온 E. H. 카의 역사관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며, “과학으로서 역사의 정체성”과 “진보의 과정으로서 역사”에 대한 믿음을 설파하는 『역사란 무엇인가』에 “비판의 망치질”을 가한다. “카의 시대와 마찬가지로 한국 사회는 여전히 진보와 보수의 진영 논리로 역사 담론 투쟁을 벌이는 어제의 역사학 프레임에 갇혀 있다”고 지적하며, 역사의 우상을 파괴하는 것에서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새로운 답을 찾아나간다. 그동안 카의 역사관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추상적인 대결”에 그쳤을 뿐, 이 책에서처럼 구체적인 구절을 언급하며 새로이 생각해보아야 할 지점들을 짚어내는 시도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저자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그의 정의가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이 아니라 문제의 시작임을 밝히며, 카를 비롯해 국가, 민족, 사회, 진보, 혁명, 계급 등 근대의 거대 담론 역사학 프레임에 대항하는 시도로 등장한 탈근대 역사 이론을 제2부에서 “오늘의 역사학”으로 소개한다. 

김춘수의 시 「꽃」의 한 구절처럼, 역사가에 의해 ‘이름’으로 불리지 않은 것은 의미 없는 ‘몸짓’에 불과하다. 즉, ‘과거를 부르는 이름을 짓는 작명가’인 역사가에게 호명된 과거만이 역사로 기억된다. 저자는 역사를 과거 실재로 보는 것이 아니라 역사가가 붙인 이름으로 “인식론적 전환”을 시도하는 탈근대 역사 이론의 대표적 역사 서술로 ‘미시사’를 꼽는다. 미시사는 ‘아래로부터의 역사’ 관점으로 “역사로부터 소외당하고 배제된 사람들을 구원한다”는 문제의식으로, 무의미하다고 여겨진 작고 일상적인 것들을 현미경적으로 관찰한다. 

이 같은 시각으로 저자는 제주 4.3, 노근리 사건 등 이념 논쟁에 휘말려 한국사에서 배제된 이들을 역사화하고 역사교육의 현장으로 불러올 것을 천명한다. “진정한 의미의 사회 통합을 이루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들 간의 갈등과 반목이 아니라 소통과 화합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먼저 과거 그들과의 역사적 화해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하며, 민족 화해와 한반도 통일이라는 ‘미래를 위한 기억 만들기’를 위한 역사교육의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고 밝힌다. 

이와 더불어 저자는 제3부에서 유사 이래 가장 크고 빠른 문명사적 변화와 연관 지어 다각도로 ‘내일의 역사학’을 전망한다. 먼저 글로벌 시대와 다문화 사회를 맞아, 일제 식민사학의 유산인 한국사·동양사·서양사로 나누는 3분과 체제를 청산하고, 민족사의 한계를 뛰어넘는 글로벌 한국사 모델을 지향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또한 역사학이 외면 받는 현실에서 사극이 전성기를 구가하는 이유를 살피면서, 사극을 ‘현실의 역사’가 이루지 못한 숱한 가능성을 품은 ‘꿈꾸는 역사’로 바라보는 관점을 제안한다. 역사학이 지식에서 상상력으로 중심 이동을 시도할 때 사극은 많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마지막으로 새롭게 등장한 문명사의 유형인 ‘빅히스토리’를 통해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의 도전에 직면하여 전환기를 맞은 인류 역사와 역사학의 미래에 관해 고찰한다. 

역사는 과학이 아닌 이야기다. 이 이야기를 구성하는 3요소는 인간?시간?공간이라는 ‘3간三間’이다. 어떤 역사를 쓰느냐는 이 3요소를 어떤 식으로 조합해서 방정식을 구성하느냐로 결정된다.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물음 역시 이 3간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답이 나올 수 있다. 따라서 ‘역사란 무엇인가’에 한 가지 정답은 없고 역사가들에 의해 여러 해답이 제시될 수 있는 것이다. 

역사학과 인문학은 인간 삶의 길을 안내하는 지도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시대, 지금까지와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나가게 된 인류는 새로이 길을 만들어나가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이런 처지에 놓인 ‘신인류’에게 과거의 지도는 그 유용성을 상실하게 되었다. 하지만 과학기술이 제공하는 지식과 정보의 알고리즘이 제시하는 것은 객관적인 사실관계일 뿐 우리 인간에게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주지는 못한다. 따라서 저자는 과거를 기억하는 학문의 입지에 집착하기보다는 “미래의 가능성에 대한 사고의 지평을 넓혀주는 역사적 상상력을 제고하는 방향”으로 역사학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함을 역설한다. 이로써 역사를 공부하는 학생들뿐 아니라 일반 독자들에게 역사의식에 눈뜨게 하는 출발점이자 다가올 미래를 향한 나침판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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