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 전투의지, 품위 없는 정당에 미래 없다
이념, 전투의지, 품위 없는 정당에 미래 없다
  •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 승인 2018.06.27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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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문1: 당의 체질 개선을 위해서는 사람이 바뀌어야 한다. 선거패배에 책임을 지고 의원직을 사퇴하거나 차기 불출마선언을 하는 사람이 나와야 한다. ‘인적 청산’이 ‘당 해산’에 비해 훨씬 합리적이다. 그리고 유권자에게도 감동적이다. 성찰이든 개혁이든 혁신이든 그 시작은 자기가 가진 것을 내려놓는 것이어야 한다. 절박함이 묻어나야 개혁과 혁신에 무게가 실린다.

발문2: 자유한국당은 ‘변화를 쫒아가지 못해’ 몰락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얼버무릴 일이 아니다. 어떤 변화를 못 쫓아갔다는 것인가. 보수가치가 유권자들로부터 외면당한 것이 아니다. 자유한국당 사람들이 ‘인간적으로’ 싫은 것이다. 혹여 ‘좌클릭’에서 보수의 돌파구를 찾으려 구한다면 이는 치명적 오류가 아닐 수 없다.


한국 정치사에 오래 남을 사진으로 기억될 것이다. 우선 당혹스럽다. 유권자에게 한 없이 겸손해야 하지만 무릎을 꿇는다고 진정성이 더해지는 것은 아니다. 이런 장면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한국정치의 후진성을 드러내는 상징일 수 있다.

김성태 권한대행은 중앙당 해체를 선언했다. 당 혁신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을 위한 위원회와 당의 ‘질서 있는 해체’와 혁신을 위한 구태청산TF를 동시에 가동하겠다고 한다. 수구적 보수, 냉전적 보수를 버리고 합리성에 기반 한 새로운 이념적 지표를 세우겠다는 것이다. 새로운 이념적 지평에서 인적·조직 혁신, 새로운 당 이념에 집중해 다시 시작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개혁과 혁신이 구두선(口頭禪)은 아니다.

‘당의 질서 있는 해체’ 발언은 가히 충격적이다. 이는 과장된 어법이기도 하다. ‘질서 있는 해체’는 기업구조조정 용어이다. 기업은 많은 인적 물적 자원을 가진 조직이기 때문에 질서 있는 해체가 필요하다. 정당(政黨)은 소중한 정치자산이다. 해산을 쉽게 입에 올려서는 안 된다. 영국 보수당의 역사는 올해로 184년이다. 영국 보수당의 장수는 정도(正道)를 걸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시장의 자유, 기회의 평등, 법치(法治) 등 불변하는 보수의 가치를 지킨 덕분이다. 한국당에 필요한 것은 보수 가치의 복원이지 ‘다시 헤쳐모여’가 아니다.

당의 체질 개선을 위해서는 사람이 바뀌어야 한다. 선거패배에 책임을 지고 의원직을 사퇴하거나 차기 불출마선언을 하는 사람이 나와야 한다. ‘인적 청산’이 ‘당 해산’에 비해 훨씬 합리적이다. 그리고 유권자에게도 감동적이다. 성찰이든 개혁이든 혁신이든 그 시작은 자기가 가진 것을 내려놓는 것이어야 한다. 절박함이 묻어나야 개혁과 혁신에 무게가 실린다.

일각에서는 반성과 혁신을 빌미로 물러나야 할 보수 정치인이 자신의 정치생명을 연명하고 당권을 장악하려는 것이 아닌 가 ‘의심의 눈초리’로 사태를 지켜보고 있다. 이 같은 시선을 야속하게 볼 것인 가 아니면 ‘합리적 의심’으로 볼 것인가. 당을 해산하고 당명을 새로 짓는다 손치더라도 사람이 안 바뀌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 가. 지금 수술대에 올라야 할 환자는 ‘보수 가치’가 아니라, 보수를 표방하며 무임승차해 온 ‘보수정치인’ 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당을 좌지우지해 온 당직자들이다.

가치와 철학은 정당의 존재근거

자유한국당은 보수가치를 깊이 천착하는 노력을 기울였는지를 자문해야 한다. “미제스, 하이에크, 바스띠아, 프리드만”의 책을 일독한 적이 있는 가. 시간을 내기 힘들었다면 외부 인사를 초정해 보수가 견지해야 할 가치에 대해 진지한 토론을 한 적이 있는 가. 가치와 철학은 정당의 존재 근거다. 가치와 철학에 대해 깊은 고민하지 않았다면 정당이란 말 자체가 사치다. ‘유사(類似) 정당’일 뿐이다. 정확히는 친목모임이다.

자유한국당은 유독 “한국에서만 보수정당이 고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가. 범세계적으로 보수가치와 보수정당이 정치적 주류를 이루고 있다. “트럼프, 메이, 메르켈, 마크롱, 아베” 등은 각자 지향점은 다소 다르더라도 보수 정당의 지도자들이다. 보수의 이념과 가치가 범세계적으로 수용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보수정당은 개인에게 선택의 자유를 보장하고 가족 공동체의 가치와 법의 보호를 기본 철학으로 삼는다. 정부개입이 아닌 ‘시장의 활력’을 통해 경기를 활성화시키려는 노력을 공히 기울이고 있다. “국민의 삶을 책임지는 국가”, “국가가 최대의 고용주라는 주장”은 우리나라에만 있다. 철지난 사회주의 향수에 젖어있다는 방증이다.

한국적 현실에서 보수 가치를 가진 개인들이 줄어든 것이 아니다. 유권자 입장에서는 보수 가치를 정책으로 담아낼 신뢰할만한 정당을 발견할 수 없었다. 자유한국당은 보수 가치를 결집시켜 정치적으로 그리고 정책적으로 유권자에게 제시하는 데 무능했다. 그러면서도 보수층에게 무제한적인 정치적 충성심과 지지를 요구했다. 이는 심각한 무임승차다.

자유한국당은 ‘변화를 쫒아가지 못해’ 몰락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얼버무릴 일이 아니다. 어떤 변화를 못 쫓아갔다는 것인가. 보수가치가 유권자들로부터 외면당한 것이 아니다. 자유한국당 사람들이 ‘인간적으로’ 싫은 것이다. 혹여 ‘좌클릭’에서 보수의 돌파구를 찾으려 구한다면 이는 치명적 오류가 아닐 수 없다.

자기반성과 자학은 다르다

박근혜 대통령의 불통과 무능을 인정한다손 치더라도 이는 탄핵사유가 될 수 없다. 닉슨대통령은 유최판결이 확정되었기 때문에 탄핵된 것이다. 하지만 박근혜대통령은 기소상태에서 탄핵당한 것이다. 이는 ‘법치’를 허문 것이다. 법치를 허무는 데 많은 구여권 인사들이 협조했다.

한국당 임시 지도부는 ‘국정농단세력, 적폐세력, 수구세력’임을 인정하고 반성하겠다고 한다. 그렇다면 민주당의 프레임에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다. 이를 스스로 인정한다면 한국당의 재기는 불가능하다. 풍설이 아닌 국정농단의 실체를 밝히고 싸웠어야 했다. 탄핵의 방아쇠가 된 ‘태블렛 PC의 진실’을 밝혔어야 했다. 그리고 무엇이 적폐인자를 따졌어야 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하지 않았다. 정당과 군대는 기본적으로 전투조직이다. 전투력을 상실한 군대는 백전백패이다. 정당도 마찬가지다. 전투의지가 없는 정당엔 미래가 없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의 지방선거는 야권의 숙명이다. 억울함을 호소할 데도 억울함을 받아줄 데도 없다. 이 같은 사실을 감안한다면, “한국당이 적폐세력이라 국정농단세력이라 졌다”는 자학은 하지 말라는 것이다. 현재와 같은 방송 미디어 현실을 타파하지 않고서는 향후 총선과 대선도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치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실은 저절로 개선되지 않는다. 중앙당을 해체하느니, 구폐정착T/F를 만드느니 보다 “어떻게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세울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골리앗과 싸워야 한다. 이것이 공당의 모습이다.

품위 상실의 혹독한 댓가

품위는 일종의 매력자본(erotic capital)이다. 품위를 잃으면 사람을 감동시킬 수 없다. 홍준표 대표는 남에게 큰 손해를 준 것이 없음에도 인심을 잃었다. 홍대표는 일련의 남북대화 기류 속에서도 "다음 대통령은 김정은이가 될는지 모르겠다", "위장평화쇼"라는 비하발언을 쏟아냈다. “개는 짖어도 기차는 간다” 등의 여과되지 않은 발언도 부정적 이미지를 키웠다. 가장 큰 독설은 “춘향인 줄 알았더니 향단이”라는 발언이다.

이보다 더 부적절하고 품위를 손상하는 말은 없다. 재판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 과반수 이상의 득표로 당선됐다. 국민들이 옛 향수에 젖어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국민들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탄핵당시 새누리당 의원들의 행태”이다. 유죄확정이 아닌 공소장이 탄핵절차를 정당화 시키지는 않는다. 법치 붕과에 대해 한번이라도 진솔하게 국민들에게 사과한 적이 있는 가. 그 수많은 이합집산을 하면서도 이 문제에 대해 명쾌하게 선을 긋지 못했다.

홍 대표가 주도한 공천도 실패했다. ‘문재인 정부 방송장악 저지’라는 명분을 내세워 공천했던 배현진 후보가 낙선했다. 전략공천을 한다고 인지도가 갑자기 높아질 수는 없다. 자유한국당은 ‘문재인 정부 방송장악’ 저지를 말로만 외쳤다. 배현진 카드가 자유한국당의 투쟁을 대신해 줄 수는 없다. 전투력을 상실한 그냥 웰빙 정당이었다.

경제에 오만한 문재인 정부, 대가를 치룰 것

문재인 정부 1년차인 현재 한국경제는 미증유의 위기상황에 놓여있다. 실업률(3월 현재)은 4.5%로 2001년 이후 17년 만에 가장 높으며, 청년 실업률은 11.6%에 이른다. 전년 동월 대비 취업자 수 증가는 2018 년 2월 이후 3개월 연속 10만명 초반 대에 머물러 고용절벽이 현실화되고 있다. 제조업 평균 가동률(3월 현재)도 70.3%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최고조였던 2009년 이후 9년 만에 최저이다.

경제위기는 이미 문재인 정부 출범부터 잉태되었다. 경제는 초기화(reset)되지 않기 때문에 ‘2017년 5월’ 당시의 경제 현실을 냉정하게 천착했어야 했다. 세계성장률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는 ‘저성장국가’로 전락한 한국경제의 역동성을 복원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였음에도 당시 위기 상황을 직시하지 않았다. 집권 후 첫 행선지는 ‘인천공항공사’였고 첫 정책 작품은 ‘11조원 추경’ 편성이었다. 정부는 한국 경제에 대한 긴 호흡의 정책구상을 전혀 갖지 못했다.

정부는 ‘사후적인 물리적 평등’의 실현을 위해 ‘국가개입주의’의 길로 들어섰다. 국가가 ‘최대의 고용주’여야 하며, ‘국민의 삶을 책임지는 국가’라는 국정운영 구호가 ‘국가개입주의’를 웅변하는 것이다.

문정부는 오만했다. 정권은 선거를 통해 국가경영을 임기동안 위임받은 대리인으로 정권이 국가위에 있을 수 없다. 문재인 정부는 집권을 ‘국가접수’로 여긴 것이 아닌 가 의심된다. 정부산하 16개 위원회 외부인사의 62%가 민변과 참여연대 등 좌파시민단체 출신이라고 한다. 다양성을 확보하지 못한 편협한 ‘인재 풀’에 매이면 집단오류를 범할 수 있다. 쏠림현상은 당연한 귀결이다.

문재인 정부의 정책행태는 독선적이고 정직하지도 않다. 국가 정책은 기업 전략과 달리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소득주도성장은 이론적으로 정책적으로 그 유효성이 충분히 확인되지 않았음에도 이를 맹신(盲信)했다. 2018년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도 소득주도성장을 맹신했기 때문이다. 임금이 급격히 오르면 한계계층에게 피해가 집중되고 이들이 속한 저소득층의 소득이 감소해 소득분배가 악화된다. 상식적인 내용이다. 통계청의 '올해 1분기 가계소득동향 조사'가 이를 확인해 주고 있다.

이 같은 엄연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는 통계를 오독해 가면서까지 자신의 정책실패를 가리고 있다. '근로자가구의 근로소득'을 기준으로 하면 소득주도성장의 긍정적인 효과가 90%라는 견강부회가 그것이다. 근로자 가구에는 무직 또는 자영업자 그리고 실업자가 빠진다. 최저인금 인상으로 피해를 본 사람들은 제외시킨 정책효과 분석은 일종의 정권의 ‘도덕적 해이’다. 심하게 말하면 ‘정책사기’다.

노동계에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지 않으면 기업은 해외로 탈출할 수밖에 없다. 기업이 ‘국부의 원천’이다. 판박이 식의 경제민주화는 재고돼야 한다. 노키아와 코닥의 실패는 ‘변신 부족’에서 비롯된 것으로 지배구조의 문제가 아니다. 모범답안이 없는 기업지배구조 개선에 함몰되어 기업의 경영자원을 기업경쟁력 강화와 무관한 쪽으로 낭비시키지 않도록 해야 한다. 경영권이 흔들리면 기술개발에 전념할 수 없다. 국력방정식이라는 것이 있다. 국력(P) = (영토 및 인구(C)+경제력(E)+군사력(M))*(전략(S)+국민의 의지(W))(색깔 다르게)이다. 아무리 영토가 넓고 인구가 많으며 경제력이 탄탄하고 군사력이 커도 ‘국가전략과 국민의 의지’가 약하면 국력은 크게 저상된다. 문재인 정부의 국가전략은 우물안 개구리 시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경제를 운영하고 관리하는 경제 지력도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자유한국당이 그만큼 견제하고 비판할 소재가 많다는 것이다.

국력 방정식에서 힌트를 얻어 정권의 향배를 정해줄 민심지수를 설정해 볼 수 있다. 민심의 향배는 충분히 예측가능하다. 국민은 꿈이 아닌 빵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정권에 대한 민심 = [(낮은 경제관리능력+ 선거압승에 따른 독선)*(국민의 기대수준)]/ 경제성과

문정부의 경제관리 능력에 높은 점수를 줄 수 없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압승을 해서 더욱 더 정책도그마에 빠질 것으로 예측된다. 한편 “국민의 삶을 책임지는 국가”란 구호로 인해 국민의 국가에의 기대수준은 매우 높아진 상태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경제의 성과가 낮으면 정권에 대한 민심은 급격히 낮아질 것이다. 물은 배를 띠울 수 있고 뒤집을 수도 있다.

유권자들이 자유한국당에 분노한 것은 100석이 넘는 의원을 가진 거대 야당으로서 문정권의 독주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고 도대체 뭘 했냐는 것이다. 투쟁의지가 실종된 ‘초식동물’로 변한 자유한국당에 대한 질타가 이번 지방선거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선거도 끝나고 북미회담도 일단 끝났다. 술 깨면 계산서가 날라오는 법이다. 지난 2월에 졸업한 그 많은 대졸자 지금 어디에 있는 가에 관심 돌릴 때가 됐다. 직장에 있는 가 아니면 ‘방콕’하고 있는 가.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

경제는 정직하다. 지름길도 없고 용서도 없다. 전세계적으로 법인세 인하가 대세인 데 우리만 법인세를 올렸다. 무역전쟁을 치를 만큼 국익(國益) 우선주의를 외치는 데 우리는 태평성대다. 한미 간에 금리도 역전됐다. 돈은 자신을 높이 쳐주는(고금리) 곳으로 흘러들어가게 돼있다. 우리는 최저임금의 효과도 아전인수 격으로 자기합리화에 골몰하고 있다. 이번 지자체 선거 공약을 분석하면 총재정소요가 200조원을 넘는다고 한다. “그 많은 돈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를 물으면” 큰 실례가 된다고 한다. 국민들은 청년수당, 청년배당, 아동수당, 노인수당 등에 취해있다. 아직도 포퓰리즘의 주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금도 정부는 공공일자리에 목을 매고 있다. 공무원 1사람 모집공고를 내면 100명이 준비한다. 그럼 나머지 99명은 어떻게 할 것인가. 공무원 시험은 한번 뛰어들면, 시험과목 때문에 가두리가 될 수 밖에 없다.

자유한국당에게 필요한 것은 정직과 땀과 눈물 그리고 결기이다. 다음 총선에서 얼마든지 이길 수 있다. 끝으로 강조하고자 한다, “이념과 전투의자 그리고 품위를 잃으면 미래가 없다”.

※ 이 글은 6.21일 <자유포럼>의 국회 세미나실에서 있었던 토론의 발제문을 요약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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