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당은 내부적으로 붕괴했다”
“한국당은 내부적으로 붕괴했다”
  • 김범수 미래한국 발행인
  • 승인 2018.07.03 12: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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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인터뷰] 이문열에게 보수의 길을 묻다
광장의 집단주의와 우상화는 현대 사회의 악몽

인터뷰 | 김범수 미래한국 발행인 ·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
사진 | 한정석 편집위원 / 정리 | 박주연 미래한국 기자

대한민국을 견인하던 보수 세력이 궤멸 위기에 놓여 표류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조기 대선과 최근 6·13 지방선거의 참패 이후 난파선이 돼 버린 자유한국당은 숨만 붙어 있는 죽은 정당이라는 조소와 비판 속에서 비대위 구성을 놓고도 내분에 휩싸여 있고 혁신 방향을 제시할 큰 어른도 보이지 않는다. 대한민국은 급격한 정부의 대북정책 수정과 대외정세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북한체제보다 먼저 ‘레짐체인지’가 될 수 있다는 전망마저 나오고 있다.    

이러한 차에 본지 미래한국이 지난 6월 23일 소설가 이문열 선생을 경기도 이천 부악문원으로 찾아가 만났다. 보수정치세력의 진로와 혁신 전망을 비롯해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미  대통령의 행보, 그리고 우리 시대의 특성 등 시국과 시대 상황 전반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다.

6월말 경기도 부악문원에서 만난 작가 이문열 선생 

- 현재 대한민국 상황은 국가적 말기 현상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혼란스러워 보입니다. 보수 한국당은 문재인 대통령의 ‘적폐청산’의 대상으로서 탄핵과 최근 두 번의 선거를 거치면서 궤멸 직전까지 가 있는 모습입니다. 우선 최근 지방선거 결과를 어떻게 보셨습니까.

이번 선거 내내 일방적인 분위기가 계속됐는데 어떤 여론 조작이 있었거나 우리가 알지 못하는 소위 밑바닥 민심이라는 것이 표출될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기대도 가졌죠. 하지만 이렇게까지 한국당이 참패할 줄은 몰랐습니다. 선거가 끝나고 기자 5명이 찾아온 적이 있습니다. 비슷한 이야기를 묻습디다. 그래서 ‘난 아무것도 모르겠다. 내가 오히려 당신들에게 물어보자’고 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 80% 근처까지 올랐는데 사실 그 정도의 지도자 지지율은 전에 없던 일 아닙니까. 히틀러나 스탈린이나 그런 지지율이 나오지 현재 상황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숨은 표가 선거에서 조금은 드러날 것이라고 했는데 아니었지요. 그런데 5명의 기자들은 일련의 모든 상황을 낙관하고 있어 놀랐습니다. 대부분 중도보수성향의 기자들이었는데도 말이지요.

한국당 재건 쉽지 않을 것, 태극기 상징성 잃어

- 다음 총선까지인 근 2년간 큰 정치적 스케줄이 없는 상황에서 보수 한국당은 어디서부터 재건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만약 문재인 정부가 경제문제 등 실정을 한다고 해서 국민의 지지가 다시 보수정당으로 돌아올 것 같지도 않습니다. 

현재 한국당을 옛날 한나라당 중심의 가치로 끌어간다는 생각을 할 수 없는 것처럼 지리멸렬해진 태극기로 앞으로 무엇을 할 수는 없을 겁니다. 처음 상당히 강력한 힘으로 사람들을 흡수하던 태극기는 상징으로서 힘을 잃었어요. 한국당 내부적으로도 붕괴했고 상징으로서의 태극기도 힘이 빠졌으니 당연히 어렵지요.

한국당은 내부적으로 붕괴돼서 재건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어려울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에요. 내가 살아 있을 동안 제대로 대처하는 걸 제대로 보겠나 싶을 정도입니다. 한국당이 보수우파의 주축이 돼야 하는데 그 자체가 썩었습니다. 원인은 다른 데 있을지 몰라도 내부가 곪았다는 것 내부적으로 붕괴했다는 것은 재건 작업이 매우 어렵고 힘들다는 뜻입니다.

- 탄핵문제에 대해 보수내에서 아직도 정리가 안 돼 혼란이 큽니다. 한쪽은 탄핵 발의가 부당했고 헌재판결도 인정할 수 없다고 하고, 다른 한 쪽은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탄핵에 대해 이미 주권자인 국민이 추인했으니 승복하고 모두 다 내려놓고 재출발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이런 마당에 한국당 의원 전체가 책임을 지고 불출마 선언을 하고 대신 남은 임기 동안 문재인 대통령을 견제하는 역할을 하도록 하는 데 합의된다면 어떤 기회가 올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어떻게 보십니까. 탄핵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정리해야 할까요?   

이상적으로 참 좋은 이야기지만 내 생각엔 한국당 의원 중 그걸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겁니다. 내가 탄핵 촛불사태가 일어나고 딱 한번 칼럼을 통해 말한 적 있는데 ‘보수는 죽어야 산다, 탄핵을 당하는게 죽는 길 중에 하나’라는 취지로 썼지요.

그런데 초장에 너무 잘라 말했다는 기분이 듭디다. 그래서 촛불이 꼭 아리랑 축전과 같았다고 희석시켰어요. 그런데 그쪽(좌파)에서는 이쪽(보수)이 죽어야 한다는 이야기에는 시비를 안 걸고 아리랑 축전 같다는 것만 갖고 색깔론이라고 욕을 했어요. 어쨌든 굉장히 난감해진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잘못한 것은 저들이 이렇게 준비된 이성적인 집단인 줄 미처 몰랐다는 겁니다. 전임 대통령들을 마치 조선시대에 죽은 사람을 관에서 꺼내 다시 허리를 자르는 벌을 주듯 그런 일들을 할 줄은 몰랐습니다. 처음부터 너무 일사불란해서 수상쩍긴 했지만 이정도 일 줄은 몰랐는데 그때 조금만 이 사람들을 알았다면 쉽게 탄핵에 동의 안했을 거예요.

- 한국당에서는 비대위를 구성하면서도 계파 싸움을 벌이며 진통을 겪고 있는 모습입니다. 문화적, 비정치적 상징성을 가진 선생님과 같은 분들, 친박이나 비박 모두가 수용할 수 있고 보수의 가치를 이해하는 분이 방향을 제시해 주시면 좋겠다는 기대가 있습니다. 

돌이켜보니 어쩌다 보니 보수가 되었는데 저도 어떤 색깔로 일방적으로 비쳐지면 머뭇거리고 돌아보곤 합니다. 아마도 (월북한) 내 아버지에 대한 상처도 영향이 있을 겁니다. 어쩌다 일시적인 격정으로 보다 못해 한마디 한 것들이 모여 오늘날 이렇게 돼버렸는데 나는 의도적으로 계획된 보수의 길을 간 게 아니에요. 그렇기에 보수철학과 이념 속에 깊이 들어가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또 이만큼 빠져 있으니 나오기도 어렵고요. 사실 내가 10여년전 미국으로 갈 때 속으로는 ‘이 기회에 옛날처럼 돌아갈 길이 없을까’ 모색을 해봤어요. 근데 그때는 이미 늦었더라고요. 미국 가서 생각해보니 “사실 난 보수가 아니다” 이런 말이 통하지 않을 것 같더라고요. 하하하.

허무맹랑한 요행을 바라는 사람들

- 보수와 한국당이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지금의 상황이 계속되다가는 자칫 영원히 죽게 되는 것이 아닐지 우려됩니다. 장례식을 치러 국민들로부터 사망선고를 받아들이면 차라리 새로운 세력과 가능성이 생길 수 있지 않을까요.

한국당내 소위 친박이란 말도, 친박을 한다는 것 자체도 염치없는 거에요. 물론 파당싸움이 있어서 이명박파가 구박을 한 것도 있긴 하겠지만 이른바 친박연대가 만들어진 이후 그들의 행태는 대부분 변치 않고 이어져 왔지요. 내 생각엔 (친박이) 절대 죽지 않아요. 고기가 노는 물 자체가 없어지기 전에는.

지난번 인명진 비대위는 생각보다 잘 했다고 봅니다. 100점은 아니지만 무난히 잘했다고 보고 70점 이상은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 내가 한국당에 가면 무슨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고 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아요. 내가 보기엔 화타가 와도 약이 없어요. 목숨은 붙어 있는데 장례를 하겠다고 하면 ‘내가 왜 죽어’ 하고 벌떡 일어날 겁니다.

장례식을 하기 위해 비대위원을 모시는 사람이 한 명도 없을 겁니다. 그래도 어떻게든 고치고 수습해서 다시 써보려는 사람들이 그 목적에 맞는 사람을 모으기 때문에 한국당을 장례 치를 사람은 안 될 겁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한국당의 장례식을 치르자는 제의는 유의미하고 힘 있는 제의이긴 하지만 당내에서는 통할 것 같지 않습니다.

- 문재인 정부가 적폐청산을 국정과제로 들고 나오는 것을 보면서 ‘아 이 사람들이 단순히 권력과 정권을 차지하겠다는 게 아니라 국가체제를 바꾸겠다는 역사적 차원의 프로그램을 갖고 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종착점이 어디라고 보십니까. 어디선가 ‘1천만 명의 정신적 보트피플’의 양산 가능성을 말하셨던데요.

대한민국 미래에 낙관론을 말하는 5명의 기자들을 만난 적 있어요. 그들이 맞다면 저의 이야기 역시 전형적인 기우인 셈이지요. 이번 지방선거에서 제일 중요한 이슈였던 게 미북회담인데 이 상황에 대해서도 저는 기자들에게 비관적으로 물어봤어요. 이 회담도 결국 1954년 제네바 회담이거나 1973년 파리협정이 아니냐, 몰락의 한 단계가 아니냐고 물었더니 다들 낙관한다고 답하더군요.

백낙청 씨가 마침 그 즈음에 우리가 지금 연방제로 가고 있다는 주장을 한 게 있어서 연방제에 대해서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논의되는 연방이라는 것은 기본구조가 김대중 씨와 김정일이 말한 그 연방일겁니다. 논의가 진행되려면 두 연방이 똑같이 아주 민주적이고 평등한 연방이어야 된단 말이지요.

연방 중에서 DJ와 김정일의 연방이 가장 낙관적일 것이고, 미국식이면 중간쯤 되고 스탈린식일 수도 있다고 기자들에 설명하고 여기에 대해 당신들은 낙관하느냐 아니면 비관하느냐 물으니 다들 잘 될 거라고 말해요. 전부 낙관론에 휩싸여 있더군요.

현재 상태에서 우리는 경우의 수를 가지고 계속 낙관으로 믿고 가는 것인데 전 이해가 안 돼요. 미북회담도 우리가 원하는 대로 비핵화 되고 연방제도 이상적인 방향으로 가고 그 식으로 통일로 갈 때 어떻게 모두 낙관적인 결과를 바랄 수 있습니까. 지구상에서 한 번도 된 적이 없는 통일, 지구상에서 대립하던 두 국가가 통일을 추진하면서 겨우 어디 도착하게 되느냐면 남북한이 동등한 상태에서의 통일입니다.

그런데 그런 통일이 잘될지 안 될지도 모르는 것이지요. 매우 불확실합니다. 결국 어쩌면 경우의 수가 나올 때마다 그때마다 잘 되기를 바라면서 그냥 가는 거예요. 어떻게 보면 허무맹랑한 요행을 바라는 것인데, 근데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들 하더라고요. 

- 어디선가는 ‘문재인 정부가 북한을 다루는 솜씨가 미숙해 보인다’는 말을 하셨던데, 오히려 프로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요. 

북한을 잘 다루는 것은 잘 알아서가 아니라 워낙 바탕이 비슷하니 그런 걸 겁니다. 저는 그 사람들이 북한을 객관적으로 잘 알고 이해한다고 생각이 안 들어요. 우리 국민을 다루는 기술 측면에서는 성공했다 할 수 있겠지만, 그 기술이란 것도 사실 서투르기 짝이 없지요. 문제는 반격할 힘이 보수내에 전혀 감지되지 않고 또 가까운 시일 내에 반격이 작동할 것 같지 않으니 그 친구들이 실수해도 별로 위험스러워 보이지 않다는 겁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정원 특활비를 사용했다고 법률적으로 문제 삼고 하는데 지금 이 정권은 정상적인 사회가 되면 자승자박이 될 일들을 많이 벌입니다. 예를 들어 지난 해 추석과 올해 음력설에 고속도로 통행료를 안 받았잖아요. 대략 750억인가 된다고 합디다. 미리 책정된 예산을 쓴 게 아니라 어디서 끌어다 쓴 것일 텐데, 정부가 도로공사에 그 통행료를 물어주지 않는다면 유용한 게 되지요. 박근혜 정부가 특활비 받아 쓴 것과 다를 바 없지요.

그나마 시비가 덜할 수 있는 게 남북협력기금을 쓴 것일 텐데 목적에 맞게 쓴 것이라면 몰라도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댄 잣대로 하면 그것도 걸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렇게 이 정부하는 게 엉성한 일들이 많지만 문제는 책임 물을 기회가 안 올 것 같다는 겁니다.

탄핵정국이던 2016년 12월 한 일간지 칼럼에서 이문열 작가는 '보수여 죽어라, 죽기 전에...'라고 썼지만
동시에 촛불집회를 비판했다고 해서 진보좌파 진영의 맹비난을 받았다.  

- 최근 미북회담은 어떻게 보셨습니까. 김정은체제를 강하게 압박하는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 기대를 걸던 일부 보수진영에서는 미북회담 이후 기대를 접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일부는 여전히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체제를 변화시킬 무슨 ‘신의 한수’를 갖고 움직이고 있다는 좀 허황된 기대도 갖는 것 같습니다.   

자세히 모르겠지만 그 사람의 과거 이력과 직업을 가지고 판단한다면 지금까지는 성공적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의 그 방식이 계속적으로 성공할지는 모르겠어요. 불만 많은 백인사회, 미국 사회에서는 먹힐지 몰라도 세계 전략으로 통할지 보장이 없거든요. 트럼프 대통령이 뭘 믿고 저러는지 알 수가 없어요.

물론 자기 죽을 짓은 안하겠지요. 뭔가 믿는 구석이 있으니까 밀고 나가는데, 내가 보기엔 김정은을 너무 얕보는 듯 해요. 김정은을 칭찬하는 것도 애 달래는 것처럼 보이지요. 트럼프 대통령의 수완이 썩 미덥지는 않아요. 어떤 확신이나 계산이 서 있어서 하는 것 같지 않고 한번 던져보는 거 같아요.

- 중국이나 러시아에 문제에 대해서도 우리 사회에서는 전혀 정리가 안돼 있는 것 같습니다. 북한만큼은 아니더라도 비정상적인 국가 체제가 아닌가요. 

언론이 왜 그 정리를 안 해 주는지 모르겠는데, 러시아가 아무리 이빨 빠진 호랑이라고 해도 러시아는 중국과 맞먹는 영향력을 그쪽 세계에서 갖고 있을 거예요. 이 게임에서는 중국과 러시아가 김정은을 구하지 않으면 안 되는, 뒷돈을 대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있는 것 같아요. 나는 그 상황이 된 게 굉장히 불안하고 불길합니다.

이제 더 이상 트럼프와 김정은만의 게임이 아니고, 중국과 러시아가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려고 하는데, 그렇게 되면 옛날 6자회담 그 판으로 돌아가는 것이지요. 현재로선 누구도 예측이 불가능합니다.

집단주의가 부르는 우상화의 악몽

- 정치에 있어서 이념과 가치 중심이 아닌 특정 정치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우상화 현상이 심각해 보입니다. 이른바 ‘문빠’와 ‘박빠’의 문제인데,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자를 욕하기 전에 탄핵된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자들도 그 정도에 있어서 만만치 않아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한 것이 매스컴의 특성이 만들어낸 현상 같습니다. 인터넷과 SNS에서 나타나는 현상이 내가 보기엔 좋지 않은 의미에서 어떤 광장의 특징 같아요. 고대부터 중세까지 마녀사냥을 하고 검투사가 모이는 곳, 그런 좋지 않은 의미의 광장이 인터넷에 발현되고 불확실성을 만들어 내는 것 같아요.

사실 박근혜와 문재인 시대의 문제가 아니라 그런 현상은 노무현 대통령 때부터 시작됐거든요. 내가 이걸 왜 기억하느냐면 그때 이상한 경험을 했기 때문이에요.

2002년 월드컵 때 서울역 광장에 빨간 옷을 입고 모여 응원하는 모습이 이상하더군요. ‘안방, 거실에서 시청하면 될 텐데 왜 모여서 저럴까’ 했던 것이죠. 어느 날 영국 특파원에게 ‘당신은 저 현상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해가 되느냐’고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그 영국 기자는 이전엔 이런 일이 없었느냐고 되묻길래 군중이 몰려다니긴 해도 이런 일은 이전엔 없었다고 말해지요.

전 축구를 보는데 난데없이 왜 뿔 달린 악마가 등장했는지 왜 악마의 개념이 등장했는지 이상했어요. 그 영국 친구가 예언자처럼 이런 말을 하더군요. 자기도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히틀러 시대 뮌헨 광장이 떠올려지는 현대 사회의 악몽이라고. 그러면서 한국에서 굉장히 의미 있는 중요한 어떤 일이 벌어질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고 말하더군요.

과연 그 현상이 어떻게 변해 가는지 유심히 관찰해가고 있었는데, 그게 미선이 효순이 촛불로 옮겨 가더라고요. 월드컵 광장의 빨간 옷이 집단주의로 갔어요. 그리고 결국 이것이 대통령 선거에서 노무현 후보가 선거를 뒤집고 승리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길 수 없는 선거였지요. 박근혜의 박사모 현상도 사실 월드컵 때 빨간 옷을 입은 사람들의 변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사람들은 새로운 광장에 깃발을 꽂은 거예요. 상징으로 세울 사람은 박근혜로 결정돼 있었던 것이고요. 마녀사냥을 하고 검투사가 모이는 현대판 광장에서 상징적 인물을 내세워 집단주의로 발현되는 현상 그것이 지금 우리 사회의 악몽이 아닐까 싶습니다.

다양성을 용납하지 않으려는 좌파의 광기

- 최근 신동아지(誌)에 1980년대 이야기를 다루는 장편소설 ‘둔주곡’을 연재하고 계시지요. 아직도 진행 중인 현대사 문제를 끌어낸다는 게 괜찮으실까요.   

원래 15회로 제1부를 끝내려고 계획했는데 12회까지만 쓰고 끝을 냅니다. 우리 사회를 좀 비관하는 내용인데 내가 쓰고 싶은 대로 쓴다면 머지 않은 날에 또 무슨 적폐를 만들어 내는 일이 될 것 같아서요. 예를 들면, 1979년에서 1981년까지 3년간의 이야기를 쓰고 있는데 특히 핵심이 되는 광주 이야기, 한 번도 정면으로 해보지 못한 이야기를 다룬 것이지요. 그러나 어떤 사실이 객관적 분석결과가 될 것인지 결정이 안 됐습니다. 우리 근현대사처럼 말이지요. 우리 근현대사도 왔다 갔다 하잖습니까.

그때 광주의 일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진압된 반란’이란 견해를 갖고 있고 어떤 사람들은 그때가 시작일 뿐이었다라고 생각하고요. 솔직히 말하면 그때 광주 사람들한테도 그 일은 끝난 게 아닌 겁니다. 그 사건은 추후 평가되겠지요. 지금에 와서 그 문제가 왜 엄중한가 하면, 광주 이야기를 잘못하면 다 감옥에 집어넣겠다는 것 아닙니까. 정작 그 당시에는 제가 광주에서 온 그들과 그런 이야기들을 해도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그런 이야기를 쓴다면 아주 고약한 일들이 벌어질 거예요. 어쨌든 그런 미묘한 것들, 그 시기에 할 수 있었던 이야기들은 지금은 할 수 없는 이야기, 굉장히 쓰기 어렵고 불편한 것들이 돼버렸어요. 글쓰기가 흥이 안 나고요. 그래서 연재소설도 잠깐 유예하다시피 해서 종료하고, 다음 기회에 연재가 아닌 한 번에 전작으로 해서 책으로 내는 게 온당하다 싶어요. 끊임없이 그때그때 쓴다는 게 불길한 일로 날을 받아놓은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 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 ‘책 화형식’과 같은 고약한 일들을 당하셨죠. 당시 상황이 지금과 비교하면 어떠했습니까. 

처음 첫 장례식을 당할 땐 사람들이 우리 집 앞에 와서 고함치고 인터넷에 욕을 해 봐야 얼마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넉 달 동안 내 책 반품을 모은 게 천권이 채 안돼요. 그때 판 책 총량이 2천만권이 넘었습니다.

어떤 자료를 보니 우리나라 정신병자 비율이 0.04%인가 0.4%인가 되더라고요. 내 경우로 계산해보면 0.0016%돼요. 내 반대자가 정신병자 수보다 적은 수라고 생각해서 전혀 개의치 않았고, 말없이 구경하는 사람들은 내 팬이라고 생각했지요.

그 당시 1~2년까지는 별 문제가 없었어요. 한 7~8년 지난 뒤에야 거꾸로 상처가 됩디다. 말없이 구경하던 사람들도 내 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무정한 구경꾼이거나 결국 그 정신병자들 뒤에 가서 줄 설 놈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책 화형식이 2000년이었는데 막막한 기분이 드는 게, 지금 아무 말 없이 저 뒤에서 모니터만 보던 사람들이 완전히 돌아섰구나, 저들과 같다는 기분이 들어 끔찍했습니다. 지금은 또다시 고약한 일을 당할 수 있다는 걱정보다는 시대에 지난 늙은이로 치부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머뭇거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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