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신사와 선비
[신간] 신사와 선비
  • 김민성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8.07.04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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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는 선비가 있었고, 서양 중세에는 기사가 있었다. 그 시기 일본에는 사무라이가 있었다. 이들은 각기 사회를 떠받치는 중추 세력이었다. 하지만 걸어간 길은 저마다 달랐다. 특히 중세 기사도는 신사도로 발전했고, 이어 근대 시민의 교양으로 활짝 꽃을 피운다. 

역사가 백승종 교수는 유럽 문화의 요체라 할 수 있는 기사도와 신사도의 본질과 역사에 주목한다. 저자가 신사도에 주목한 이유는, 신사의 가치관과 태도가 서구사회의 발전에 중요한 동력을 제공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중세 기사도에 뿌리를 둔 신사도는 근대 시민사회의 미덕으로 승화되었다. 신사도는 공교육을 통해서 근대시민의 보편적 가치로 전환되었다. 지난 천 년 동안 기사도를 계승한 신사도는 유럽사회의 변화를 추동한 힘이었다. 

“현대 서구 시민들은 직접적, 간접적으로 신사도의 영향을 받고 있다. 그들은 수백 년 전 중세 기사들이 그랬듯, 기꺼이 정의의 편에 서고 개인의 명예를 중시하기를 원한다. 어려운 처지일지라도 기품을 잃지 않으려 애쓴다. 깍듯한 예의와 절도 있는 생활을 높이 평가한다. 다급한 위기의 순간에도 아이와 여성보터 보호하는 것을 확고한 원칙으로 삼는다. 또 모든 경쟁에서 ‘페어플레이’를 추구한다. 현대 서구의 시민들은 이상을 실천하고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스스로를 기꺼이 희생하는 이들을 존경한다. 서구의 시민교육은 과거의 기사나 신사처럼 고상한 기질과 품성을 가진 이를 모범으로 여기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중세 기사도의 이상은 현대에도 살아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제 선비가 만든 나라 조선으로 눈길을 돌려보자. 선비의 길은 “아름답고 안타까운” 길이었다. 선비는 도덕적 가치를 가장 소중히 여겼다. 선비는 기사나 사무라이와 다른 독특한 세계관을 가진 지식인이었다. 조선 500년 동안 선비의 길은 더욱 세련되고 빛났다. 조선시대에는 고매한 인품과 매서운 절개를 몸소 보여준 선비가 많았다. 저자는 선비들의 철학적 모색과 일상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이를 통해 우리는 선비의 진면목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선비의 길에는 분명 한계도 있었다. 

“조선은 500년간 성리학 근본주의에 빠져 있었다. 성리학만을 정학으로 믿고 살아 선비들의 시야가 좁아졌다. 사상의 자유와 관용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새로운 문문을 수용하고, 기술과 과학을 발전시키려는 의지도 빈약했다. 성리학 근본주의가 근대의 길목에서 우리의 발목을 잡았다.”

급기야 조선 왕조가 멸망하면서 선비의 길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다. 선비정신은 명맥조차 잇지 못하고 있다. 서구사회가 자신들의 전통을 시대에 맞게 계승하면서 발전해온 것과는 사뭇 달랐다. 

이제 저자는 이렇게 묻는다. “선비의 길에도 과연 그에 상응하는 변화가 일어날 수 있을까?”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저자는 선비문화가 한국의 미래를 밝혀줄 가능성이 있는지를 깊이 탐구한다.

우리는 서구 시민의 교양이 어떻게 태동하고 발전했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 또한 조선시대 선비들이 지녔던 고결한 이념과 도덕적 가치는 구시대의 유물로 간주한다. “그래서인지 현대 한국사회는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잃어버린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도덕적 준거를 망각한 지 오래이다. 지도층의 부패와 몰염치는 도를 넘었다.” 
저자는 서구 사회가 걸어간 길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우리의 지나간 역사를 되돌아봐야 할 때라고 강조한다. 중세의 기사도와 신사도가 성립되고, 그것이 근대시민의 교양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보았듯이 전통을 계승한다는 것은 과거를 그대로 복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우리 전통사회의 본질을 다각도로 살펴보고, 그 속에서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찾아보자는 것이다. 

기사도와 신사도, 시민의 교양으로 활짝 피어나다

이 책 1부는 신사의 역사를 탐색한다. 신사의 길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중세 기사도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먼저 저자는 기사의 행동규범인 ‘기사도’가 탄생한 배경을 살펴본다. 우리가 알고 있는 기사의 이미지는 이렇다. 명예를 중시하며 약자를 보호하는 용감한 무사. 그런데 실제 중세 사회의 기사는 이와 전혀 달랐다. 저자에 따르면, 기사는 전쟁에 나가지 않을 때는 평민들을 상대로 약탈을 일삼았고, 자기들끼리 이권을 두고 싸움을 벌이기 일쑤였다. 기사들의 일탈은 당시 유럽 사회의 안정을 위협했다고 한다. 

로마교황청은 사회의 안정을 위해 기사에게 도덕적 규범을 요구한다. “이에 부응하여 기사는 기독교 신앙에 기초하여 이웃을 사랑하고 겸손을 실천하며 타인에 대한 관용을 베풀겠다고 서약했다. 또 여성과 아동 등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겠다고 약속했다. 아울러 강한 적을 만나더라도 용맹하게 싸우겠다고 선언했다.” 

이것이 기사도다. 이렇게 탄생한 기사도 정신은 십자군 원정을 통해 전 유럽으로 확산되었고, 서양 중세 귀족문화의 정수를 이루었다. 

14세기 르네상스의 도래와 함께 중세사회는 해체되기 시작했고, 기사도도 기억에서 잊혀갔다. 그런데 근대에 들어 기사도가 부활했다. 중세 기사들의 가치관이 달라진 상황에 맞게 변형되어 ‘신사도’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잊혔던 기사도가 되살아난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산업혁명이 주요한 원인이라고 설명한다. 산업혁명으로 생산은 크게 증가했으나 소수의 자본가들이 점점 더 많은 부(富)를 독차지하게 되었다. 때문에 대다수 노동자들은 극도의 빈곤에 시달려야 했다. 노동자와 빈민층의 불만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근대 서구인들은 사회적 차별과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 중세 기사도를 근대적으로 해석해 다시 불러냈다. “기사들이 숭상한 예절과 기독교적 도덕관념이 근대의 옷을 입고 화려하게 부활한 것이다. 이는 시민사회의 이상인 자유와 평등을 구현하는 데 기여했다. 기사도라는 중세적 유산이 신사도로 변형되어, 근대시민국가의 건설에 이바지한 것이었다.”

신사도가 유럽에서 확고하게 자리 잡은 데는 공교육의 역할이 컸다. 서구인들은 시민의식을 고양하기 위해 학교에서 신사도를 가르쳤다. 신사도는 공교육을 통해서 근대시민의 보편적 가치로 전환될 수 있었던 셈이다. 이제 신사도는 현대의 ‘시민의식’으로 진화하게 된다.

아름답고, 안타까운 선비의 길

2부에서는 선비의 길을 따라가 본다. 저자는 선비라는 존재의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살펴봄으로써 선비를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스스로 인격을 수양하고 언행을 바로잡아 새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확신했다. 저자는 선비들의 정신세계를 두 가지 개념을 통해 설명한다. 바로 ‘수기치인’과 ‘천인합일’이다. 두 개념에서 선비들이 추구한 이상이 무엇인지, 존경받는 선비들은 그 이상에 도달하기 위해 어떻게 살았는지 더듬어볼 수 있다. 

“서양의 기사와 신사, 일본의 사무라이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철학적 고원함, 이것이 선비의 특징이었다. 세파에 시달리면서도 고상한 뜻을 끝끝내 버리지 않는 것이 선비였다. 조선 사회에는 절개가 유난히 높은 선비들이 많았다. 그들이 현세를 이상사회로 바꾸지는 못했으나, 윤리의 시대를 연 것은 엄연한 사실이었다. 선비들은 명분과 절개를 숭상함으로써 조선 사회를 전형적인 성리학 사회로 바꿔놓았다. 그들은 한국의 역사에 새 장을 썼다.”

그러나 아름다움 뒤에는 짙은 그늘이 있었다. 수백 년 동안 오직 성리학만을 경전으로 떠받들다 보니 서자 차별, 당쟁, 문체반정, 위정척사 등 심각한 폐단이 나타났다. 선비의 시야는 너무 협소했다. 

19세기 말 세상은 급변하고 있었다. 근대화에 성공한 서구열강과 일본의 침략에 조선은 대항할 여력이 없었다. 선비는 조선의 멸망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봐야만 했다. 그와 함께 ‘선비정신’도 힘을 잃고 말았다. 

선비의 역사는 한국 사회의 미래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

3부에서는 조선시대 선비의 본질을 탐구하고, 선비정신이 어떻게 계승될 수 있는지를 모색한다. 저자는 우선 마을에 살면서 마을을 무대로 활발하게 활동한 선비의 삶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많은 선비가 시골 마을에 살면서 서당을 운영하고 이웃사람들을 일깨웠다. 

“이것이 조선 사회를 역사상 독특한 사회로 만들었다. 이런 배경이 있었기에 외적의 침략을 받으면 각지에서 의병들이 우후죽순처럼 일어났고, 조선시대 마을의 문화적 수준이 매우 높았다. 조선왕조는 중앙집권적 국가로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조선은 ‘마을공화국’의 연맹체였다. 선비들이 건설한 조선 사회의 실상은 우리가 지레짐작하는 것과는 큰 차이가 난다.” 

선비는 ‘공동체’라는 위대한 유산을 남겼다. 조선시대에는 다양한 계회(契會)가 있었다. 마을공동체와 다양한 조직은 든든한 사회안전망 역할을 했다. 이 책에서 다각도로 보여주는 조선시대 마을과 선비의 모습을 통해 불평등과 차별을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서구 사회는 자신들의 문화전통을 계승해 당면한 과제를 하나씩 해결했다. 우리는 선비의 길을 다시 되짚어보고 그 속에서 우리가 나아갈 길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인간은 역사적 존재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낳고 길러준 문화적 토양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세상에는 이른바 문화적 유전자라고 불리는 공동의 문화유산이 존재한다. 우리가 역사 속 선비의 길을 논의하는 것은 그 유산을 계승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저자는 조선왕조가 일제의 침략에 무너졌지만 선비정신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라고 본다. 

“20세기에도 청렴하고 고결한 선비들이 많았다.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안중근 의사부터 민족시인 백석, 김홍섭 판사, 정의로운 선비 심산 김창숙 등 이름을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조선의 문화적 전통을 한국 사회가 물려받은 것이다. 만일 우리가 이러한 문화적 전통을 계승할 수 있다면, 21세기의 한국 사회는 지금보다 훨씬 공정하고 행복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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