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우상, ‘최고 존엄’은 유령이다
북한의 우상, ‘최고 존엄’은 유령이다
  • 이애란 자유통일문화원 원장
  • 승인 2018.07.06 10:51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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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이 사망하기 전부터 김정일은 누가 뭐라고 해도 북한의 1인자였다. 김정일의 공식적인 정치 입문은 1967년 당의 핵심부서인 조직지도부 과장부터이며 1971년 당 조직지도부 부부장, 1973년 당 중앙위원회 선전선동부 부장을 거쳐 중앙위원회 조직 및 선전담당 비서 겸 조직지도부 부장, 3대혁명 소조운동 총책임자가 되면서 북한의 실제적인 실무 책임자로 활약하기 시작했다.

김정일은 1974년 2월 당 정치위원회 위원(지금의 정치국원)이 되면서 ‘친애하는 동지’ 또는 ‘영광스러운 당중앙’으로 호칭됐고 김일성의 후계자로 공식 확정됐으며 1980년 제6차 당대회에서 당중앙위원회 위원, 정치국 상무위원, 비서국 비서, 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면서 공식적인 2인자가 됐지만 실제로는 1인자였다. 이때부터 김정일의 공식적인 호칭은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로 변경됐고 김일성에게 심려를 끼치는 것은 죄악이라고 하면서 북한의 모든 문제에 대해 김정일에게 먼저 보고하도록 하는 ‘제의서 정치’를 통해 북한의 모든 실권은 김정일이 장악했으며 김일성은 간판에 불과했다.

김정일의 ‘유훈통치’가 가능했던 이유

북한의 일반 주민들에게까지도 김일성은 대외활동만 하고 국내의 모든 실권은 김정일이 쥐고 있다고 상식으로 돼 있었기 때문에 김정일에 대한 충성 경쟁은 김일성에 버금갈 정도였다.

그랬기 때문에 김일성이 사망했어도 김정일은 3년 동안 김일성의 자리였던 조선노동당 총비서직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주석직을 공석으로 두고 유훈통치를 할 수 있었다. 그런 가운데 198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북한의 식량난과 경제난은 1990년대 들어서면서 더 심각해졌고 김일성이 사망한 후 북한 주민 300만 명이 굶어죽을 정도로 악화됐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김정일은 교활하게도 주석직과 노동당 총비서직을 비워두고 김일성의 유훈을 관철해야 한다는 미명하에 극도의 식량난과 경제난 책임을 ‘김일성의 혁명 위업을 계승하고 김일성의 업적인 사회주의를 지키기 위해 치러야 하는 희생’으로 전가해 자신의 권력욕을 김일성의 혁명 위업 계승과 완성으로 미화했다.

김일성의 유훈을 관철해야 한다는 논리는 간단하다. 일제 식민지에서 북한 주민을 해방하고 토지개혁과 사회주의혁명을 통해 배급제와 무상치료제, 무료교육제도 등 인민들의 먹고, 입고, 쓰고 사는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줬다고 자랑하는 김일성의 혁명 위업인 사회주의체제를 지키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이것은 폐쇄된 곳에서 세뇌된 북한 주민 수백만명을 굶겨 죽여도 반항 한 마디 없이 순종하게 만드는 최고의 통치전략이었다. 그래서 김정일은 김일성 사망 이후 더욱 더 김일성 우상화에 집착했다. 3년간 북한 주민 300만명을 굶겨 죽이면서도 김일성의 시체를 보관하는 금수산 기념궁전 건설에는 북한 주민 3년분 식량에 맞먹는 8억9000만 달러를 탕진했다.

김정일이 죽자 이번에는 김정일의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28세의 어린 김정은이 북한의 최고 권력으로 내세워졌다. 그런데 이번에도 또 죽은 김일성이 전면에 나섰다. 이번에 나선 김일성은 1945년 등장했던 ‘청년 김일성’이었다. 66년 전 만주에서 싸우다가 귀국한 김일성의 모양을 만들어내느라 북한의 최고지도자의 패션은 1940년대로 복귀했고 20대의 김정은은 김일성처럼 보이기 위해 노력했다. 김일성을 한 번도 만나본 적조차 없다는 김정은이 김일성의 외모를 닮으려 하는 것이다.

김일성 향수를 자극해 북한 주민들의 충성심을 이끌어내 보겠다는 최악의 발버둥이지만 김일성의 향수가 아무리 진했다고 한들 20년 이상을 굶주리며 장마당에서 목숨 걸고 생존 전쟁을 치르고 있는 게 북한의 실상이다.

북한 통치의 최고 수단이었던 배급제는 기억조차 가물가물해졌고 진짜 김일성이 살아 돌아왔다고 해도 북한 주민들이 감동하기에는 그들의 고통이 너무 심해졌다.

한국처럼 자유로운 나라에서 이민을 가거나 탈남(脫南)을 하거나 망명을 하는 것은 별 위험이 따르지 않지만,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폐쇄적인 체제를 만들어 놓고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잔인한 처형을 일삼는 북한에서 탈출을 시도한다는 것은 목숨을 걸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또 본인의 목숨은 물론이고 가족의 생명도 담보로 해야만 결정할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북한 주민들은 지옥 같은 그곳에서 어쩔 수 없이 살아가고 있고 탈북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들이 탈북해야 할 때에는 그만큼 생명의 위협을 느끼거나 탈북하지 않으면 안 되는 엄청난 일이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탈북은 이런 것이다. 직계 가족은 물론이고 경우에 따라 가까운 일가친척 모두를 멸문지화(滅門之禍) 시키는 잔인한 처형이 따르는 일이다. 그래서 우리 가족 중 일부는 탈북을 망설이게 되었고, 가지 않겠다는 사람들이 있어서 우리 가족의 탈북 계획에는 엄청난 차질이 생기게 되었다.

북한의 실제적 통치자는 ‘김일성의 유령’

아마도 정치범수용소행이라는 어마어마한 처벌만 아니었다면 우리 가족은 절대로 탈북을 결정할 수 없었을 것이고, 지금도 암흑의 북한 땅에서 죽지 못해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가족 중 여러 명의 반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탈북을 단행한 것은 생명에 대한 애착과 죽더라도 정치범수용소에만은 끌려가고 싶지 않은 의지 때문이었다. 각자 그렇게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탈북을 선택했던 것이다. 사실 북한이 망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북한 주민은 아무도 없다. 북한은 꼭 망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그것은 시간 문제라는 생각을 누구나 하고 있다. 그런데 중국에 나와서 그래도 세상 돌아가는 내용을 어느 정도 알게 된 북한 주민들이 북한으로 돌아가지 않고 남한으로 가는 것은 어쩌면 지극히 상식적인 행동이다.

북한의 문제 해결은 김일성을 버리는 데서부터 시작돼야 하고, 김일성이 오판한 사회주의혁명이론이 인민에게 재앙을 가져다 줬다는 것을 인정함으로써 완성돼야 한다. 또한 김일성이 적(敵)으로 생각했던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를 선택해야만 근본적인 해결이 될 수 있는데 김정일도 김정은도 권력을 위해 김일성을 버릴 수 없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보면 김일성이 사망한 후 지난 20년 동안 북한의 실제적인 통치자는 ‘김일성의 유령’이라고 할 수 있다.

김정일은 김일성의 유훈이라는 명목으로 김일성 유령을 내세워 통치했고, 김정은은 어쩌면 흔적만 남은 김일성의 향수를 자극해 ‘김일성 유령통치’를 하고 있다.

북한 주민들의 자유와 인간다운 삶의 권리를 위해, 한반도와 세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한민족의 통일을 위해 이제 북한 주민들은 김일성 유령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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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섬 2018-07-22 17:54:34
한국 기독교는 김일성교에 전면전을 선포해야한다.아니면 다 몰살 당하게 생겼다.

박혜연 2018-07-06 11:44:01
누가 애국보수아니랄까봐? 이애란 틀딱씨~!!!! 3년여전 내가 당신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밥먹었던거 기억안나냐? 냉면이 그게뭐냐? 국물이 완전 사이다인줄 알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