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국 출생 탈북청소년 어떻게 할 것인가 ‘경계에 선 아이들에게 희망을’
제3국 출생 탈북청소년 어떻게 할 것인가 ‘경계에 선 아이들에게 희망을’
  • 김상민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8.07.12 13:1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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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세이브NK가 주최하고 심재철 국회의원실이 주관한 다큐멘터리 <경계에 선 아이들> 시사회가 6월 19일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개최된 가운데 2부 순서로 관객과의 대화가 이어졌다. 손문경 세이브NK 사무처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번 순서에서 한옥정 탈북가수, 전사라 다음학교 교감, 김석향 이화여대 북한학 교수, 오진하 탈북민 영화감독의 발언을 소개한다. 다큐멘터리 영상을 시청한 이들이 털어놓은 소감은 관객들의 마음을 다시 울렸다.
 

 


“다큐영상 보는 내내 아팠다…아직도 제3국 떠도는 아이들 기억했으면” 

한옥정  탈북예술인

북한에서 가수 활동하다가 21세에 중국으로 팔려가 인신매매로 낳은 제 아이가 스무 살입니다. 현재는 남한에 와서 대학에 진학했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어요. 시사회 영상을 보는 내내 싫었습니다. 솔직한 말씀을 드리면 기억하고 싶지 않은 걸 꺼낸다는 자체가 싫었기 때문에 몹시 아팠습니다.

다큐에 출연한 학생들과 부모님들이 굉장히 큰 용기를 낸 것 같아요. 아픈 상처를 얘기한다는 게 정말 쉽지 않았을 겁니다. 저처럼 얘기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큐라는 건 남는 기록이니까요. 제 딸에게 이 영상을 찍으라고 했다면 그 아이는 승낙했을까,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정말 쉽지 않았을 것이고, 도망갔을 겁니다. 저는 두 친구들의 용기에 먼저 박수를 보내고 싶어요. 저는 오늘 눈물이 이렇게 날 줄 알고 화장을 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경계란 말도 너무 싫었고, 경계선에 선 아이들이란 말도 엄마 입장에서 너무 가슴 아프기 때문에 제목 자체도 싫었습니다. 고백하면 오늘 다른 행사를 핑계를 대서라도 안 오고 싶었습니다. 너무 아프니까요. 제가 방송 출연할 때 경험을 해봐서 압니다. 나의 아픔을 털어놨을 때 같이 울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잘 알고 있어요. 함께 울고 공감해주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힘이 되거든요.

오늘 하루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다큐를 통해 자유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것만 해도 얼마나 고마운지, 또 다른 학생들한테는 큰 도전이 될 것 같습니다. 저 영상이 ‘난 혼자가 아니다’라는 걸 아이들이 잘 알게 해주는, 제3국에서 아직까지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다른 아이들한테 희망을 주는 한 알의 밀알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멋진 영상 만들어준 세이브NK에 감사하고 함께 울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남한에 도착한 아이들은 그나마 축복받은 아이들입니다. 우리가 오늘 놓치지 말아야 할 건 아직도 제3국을 떠도는, 부모가 북송 당했던 아이들입니다. 그 아이들을 기억하는 게 오늘 행사의 포인트라고 생각합니다. 남한에서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해도 굶어죽을 일, 잡혀갈 일은 없습니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지금 경계선에 서 있는 아이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제3국에 있는 아이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여기 와서 사는 사람들은 기초생활수급자와 같은 좋은 복지제도가 있고, 북한이탈주민이나 제3국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위한 좋은 법안들도 있습니다.

이런 제도는 마음만 있다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지만 지금 베트남, 중국, 몽골, 라오스 이런 나라들을 돌아다니고 있는, 숫자에 잡히지도 않는 숨어 사는 아이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런 아이들은 북한이란 나라가 현존해서 난민이란 지위조차 얻을 수 없어요. 엄마가 쫓겨 다니면 아이들도 쫓겨 다닙니다. 그 아이들을 어떻게 도와줘야 할 것인가가 더 중요하고 잊지 말아야 할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 품에 안긴 사람들은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아직도 대한민국에 오지 못하고 그 경계선에 서 있는 아이들을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제3국 출생 아이들에게도 온전한 탈북학생 지원 혜택을”   

탈북민 대안학교 다음학교 교감
탈북민 대안학교 다음학교 교감


세이브NK로부터 제안을 받고 저희 학생들한테 다큐에 출연하는 것이 어떤 기회가 될 수 있을까 고민해봤습니다. 얼마 전 남북 정상회담 이후 저희 학생과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너희는 이번 남북 정상회담을 어떻게 생각하니” 북한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얘기하고 싶다고 하더군요. “너 먼저 잘 갔구나” “대한민국에 잘 갔다” 이런 말을 듣고 싶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한테는 어떤 이야기를 듣고 싶으냐고 물었습니다.

“이제 너희는 짐이 아니야”란 말이 듣고 싶답니다. “우리는 짐이 아니에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어요.” 준비하지 않고 아이들과 즉흥적으로 이런 대화를 나눴는데, 저는 속으로 ‘이건 한국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넌 이렇게까지 성숙하게 생각할 수 있구나’ 하고 많은 배움과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제가 그런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이 다큐를 알아야 하고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아이들을 모르기 때문에 미디어나 다른 곳에서 부정적으로 표현할 때가 많습니다. 탈북청소년들은 2011년부터 줄어들기 시작해서 이젠 제3국 출생 탈북학생들이 더 많아졌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이 아이들이 통일 한국을 위해 어떻게 쓰임을 받을 수 있을지, 이번 기회가 하나의 시작점이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다큐를 봤습니다.

오늘 행사에서 국회의원 한 분이 말씀하신 것처럼 이 아이들이 꼭 대학을 가야 하느냐, 다른 길도 있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저는 생각이 좀 다릅니다. 현실적으로는 이 아이들은 탈북민이지만, 대학특례입학 조건에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다른 탈북 언니들은 특례를 받아 좋은 학교를 가는데, 이 아이들은 “나는 뭘까” 영상 속 주인공 예림이가 말했던 또 하나의 짝퉁이 아닐까 고민을 많이 합니다. 그래서 저희도 이 아이들의 진로를 어떻게 선택하도록 도와줄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합니다.

저희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 이 아이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자신이 좋아하는 걸 찾고 고민하면서 진로 체험을 많이 할 수 있도록 하는 겁니다. 저는 이 어려운 문제들을, 비록 북한인권이라는 문제 속에서 풀기는 해야 하겠지만, 이 아이들이 미래로 나가야 하기 때문에 비전을 보여줄 수 있도록 풀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중국 사람들은 꼭 자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아이들이 인신매매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에도 기여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중국에 이야기할 때 그런 면도 강조하면서 그들이 그 나라에 했던 역할도 표현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다음학교가 여기까지 온 것도 참 힘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이 잘 적응하도록 여러 어려움을 극복해야 하니까요. 저희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얼마나 이 사회에 적응했느냐 척도를 대학에 진학한 아이들의 중도 탈락이 얼마나 되느냐로 결정합니다. 얼마 전에 저희 학교 포럼을 하면서 아이들이 얼마나 탈락을 했을까 살펴보니 4명이 탈락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는 결혼을 했기 때문이더라고요. 졸업하고 직장을 갖거나, 대학을 안 가도 직장을 갖거나, 다음학교가 학생들에 뭔가 공부할 수 있는 길을 제시했다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 오늘 참석하고 이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신 이완영 국회의원님에게 말씀드리면 제3국 출생 탈북청소년들은 특례입학도 정원 내 특례입니다. 이건 또 다른 벽입니다. 그리고 장학금을 받습니다. 1년을 받게 되는데, 모든 탈북청소년들은 국립대학에 가면 전액장학금을 받지만 사립대학에 갈 땐 절반만 받습니다. 그러나 제3국 출생 아이들은 남북하나재단에서 예산이 있을 경우에만 한합니다.

이런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이번 기회를 계기로 제3국 출생 아이들을 온전한 탈북청소년으로 인정해줬으면 합니다. 그 아이들이 설 수 있도록 똑같은 받침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이 아이들이 뚜벅뚜벅 자기 인생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이들의 아픈 이야기 시대의 기록으로 남겨야” 

김석향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
김석향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

영상의 메시지가 과장하려 하지 않고 있었던 일을 그대로 언급하는데, 너무 우울하거나 너무 슬프거나 너무 괴롭거나 절망적이지 않고 희망을 줘서 좋았습니다. 마지막 부분에서 다큐의 주인공들인 두 명의 친구가 탈북한 엄마들이 낳은 아이를 지속적으로 후원한다고 해서 고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2005년에 이화여대로 자리를 옮겼는데, 옮기기 전 1997년부터 1998년까지 통일부 통일교육원 교수로 있었습니다. 그때가 탈북한 여성들이 처음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때였어요. 북한이탈주민들에게 “가장 어려웠을 때가 언제예요” 물으면 1996년, 1997년이라고 말합니다.

1990년대 초반부터 어려워졌고 함경북도와 같은 곳은 1980년대 후반부터 식량 공급이 어느 정도 끊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1996년인가, 그 당시에는 학교 가는 길, 출근하는 길에 하루에도 몇 번씩 시체를 보는 일이 일상이었다고 합니다. 집 문을 열고 나가면 집 앞에 굶어죽은 시체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누가 의자에 앉아 있으면 ‘왜 여기 앉아 있느냐’ 하고 건드리면 툭하고 쓰러진답니다. 이미 죽은 것이죠. 큰 도시마다 역에 가면 아침마다 시체를 치우는 게 보안사에서 하는 아주 중요한 일 중의 하나였다고 할 정도로 굉장히 어려웠던 시절이 1996~1998년이라고 합니다. 그때부터 여자들이 탈북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2001년인가 그때 (북한과 중국) 국경 쪽을 다니는데 저를 안내해주던 분이 이런 이야기를 들려줬어요. 20대 건강하고 예쁜 여자들은 그때 중국 돈으로 1만 위안, 5천 위안 정도, 나이가 40대 정도 되면 2천 위안에서 3천 위안 정도로 값이 정해져 있다고 합니다. 그때 충격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때부터 이 문제를 기록으로 남기자, 학술 논문으로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못한 이유는 바로 한옥정 씨처럼 이 이야기에 아파하고 밖으로 꺼내길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인터뷰를 해보니 본인들이 자신의 이야기가 알려지길 원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참았습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이들이 괜찮다고 할 때가 되면 이들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백년, 이백년 뒤 김일성·김정일·김정은 정권을 평가하기 위해 기록으로 남겨야 하지만, 본인들이 원하지 않아 참고 있었습니다.

이들의 이야기를 언제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흘러 아이들은 성장했고, 엄마 인생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아, 이걸 기록으로 남길 수도 있겠구나’ 했는데, 이 상황에서 마침 먼저 시도를 해주신 게 세이브NK입니다. 저는 이들의 이야기가 슬프고 괴롭지만 우리 민족의 역사 중 하나여서 시대의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선왕조실록이 없었다면 어떻게 그 시대를 우리가 알겠어요. 다만 이런 이야기를 하면 한옥정 씨와 같은 분이 울거나 항의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전 조금 더 기다리고 있어요. 본인들의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분들이 조금 더 많아지는 그때를 위해서 전 준비하고 있습니다.

영상을 보면 조유나 학생이 “엄마가 날 데려온 데 대해 굉장히 감사하게 생각해요. 그렇긴 한데 엄마는 아빠가 정말 싫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란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이 아이는 어릴 때 아빠가 많이 사랑해줘서 좋은 기억이 많은 거예요. ‘그런데 우리 아빠가 그렇게 나쁜 사람이었을까? ’이게 아이 입장에서는 굉장히 괴로웠을 것 같아요. 저도 처음 1997~1998년 이런 사실들을 접하고는 “어떻게 사람을 돈 주고 사고팔아” 라는 생각으로 분노하고 중국 남자들을 굉장히 나쁘게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도 결국 피해자라는 생각을 충분히 하게 됐습니다. 중국의 정책에 따라 이분들은 결혼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았고요, 돈을 지불하고 여자를 사는 게 유일하게 결혼할 수 있는 방법이었을 거예요. 그것이 자녀를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던 거 같아요. 그런데 왜 여자들을 가두고 두들겨 패고 시장에 혼자 가지도 못하게 했냐고 물었더니 그분들이 말하기 도망갈까 걱정됐기 때문이랍니다. 돈을 주고 산 그 여성이 한국으로 도망가면 자신보다 훨씬 좋은 조건을 줄 남자들을 만날 수도 있고, 훨씬 편하게 살 수 있으니 도망가게 되면 자신은 부인도 잃고 자신의 생명과도 같은 자녀도 잃게 되는 것이죠. 그런 폭력은 두려움의 소산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중국 남성들 대부분은 교육 수준이 높지 않고 중국 시골에서 농사만 짓고 살던 경우가 많아요. 본인이 이렇게 만난 아내를 정말 사랑해도 그 사랑을 표현할 능력이 없었던 겁니다. 그런 걸 배워본 적이 없으니까요.


“통계에 잡히지 않는 제3국 탈북민들의 기구한 운명들 생각해야”

오진하  탈북민 영화감독

많은 돈이 들어간 것 같지 않은데 다큐의 완성도가 좋았습니다. 영화에 두 친구가 등장해서 끌고 갔는데 참 인상 깊었고요. 앞서 한옥정 님이 언급하셨는데, 이들의 이야기는 우리가 이미 소문이나 보도로 많이 들었던 이야기입니다. 제가 2007년에 미국 공영방송협회로부터 한 작품으로 상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 작품에는 미국의 단체와 모 방송국으로부터 의뢰를 받아, 중국에 있는 탈북민 출신 여성들이 중국인 남성에 의하여 원하지 않는 부부생활을 하는 등 인신매매의 결과와 실체를 약 4개월 동안 집중 조사한 내용이 담겼습니다. 오늘 여러분과 이 다큐를 보면서 그때 생각이 납니다. 여러분들 중 이 다큐가 충격적으로 와 닿았을 분들이 있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끔찍한 사례가 많습니다.

2007년 조사할 당시 인신매매, 강제결혼으로 인한 부부생활, 같이 산다는 표현이 아니라, 갇혀 산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정도의 사례가 떠오릅니다. 그 때 그 모습들이 하나하나 기억납니다. 그 때에도 간간이 충격적인 뉴스로 알려지긴 했습니다. 낮에는 문을 잠가 여성이 나오지 못하도록 묶어 놓고, 또 어떤 경우는 남편의 3형제가 돌아가면서 교대로 부인을 취급한다는 그런 뉴스를 봤을 겁니다. 그런데 이런 케이스는 아주 가볍고 흔한 현상이에요. 그보다 끔찍한 상황은 너무 많고 그 숫자가 통계에 잡히지 않아 알려지지 않은 경우도 그만큼 많을 겁니다.

우리 눈앞에서 발견되는 사례는 극히 일부입니다. 러시아, 몽골, 우즈베키스탄 등에 가면 더 많습니다. 탈북민 남성과 현지인 여성이 낳은 자녀들의 경우입니다. 비록 인신매매는 아니라고 할지라도 안타까운 사연은 많이 있어요. 이들은 숨어 살기 때문에 통계에 잡히지 않지만 이들 숫자도 굉장히 많습니다. 제가 2년 전에 나홋카로 여름 휴가를 갔다가 산속에서 깜짝 놀란 일이 있습니다. 동굴집이 아직도 있더라고요. 거기는 겨울에 영하 50도입니다. 두 부부가 거기서 8년을 살았데요. 남자들은 평양 사람들인데 러시아에 근로자로 파견돼 왔다가 현지 조직에서 이탈한 지 4년차 5년차 됐다고 하더군요. 이들은 한국으로는 못 오고 있어요. 현지에 부인이 있고 낳은 자녀가 있어서죠. 자녀들이 어리고 밖에 노출을 못합니다.

제가 “당신들 같은 사람들이 몇 명이나 되느냐”고 물었는데 조그만 수첩을 꺼내 여기저기 전화해 가면서 한참을 불러주더라고요. 그렇게 많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 문제를 그저 불쌍한 사람들이라고 하는 정도로 그쳐야 하는지 아니면, 다르게 접근해야 할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사실 그분들 중 어떤 분들은 저보다 학력도 높고 엄청 똑똑합니다. 우리와 다른 기구한 운명이 있는데 이제는 우리도 접근하는 방식을 생각해야 하지 않겠나 싶습니다.

오늘 이 다큐를 보면서 제 스스로에게 많은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앞으로도 이런 영상이 계속 만들어졌으면 하는 기대이고, 이런 영상들은 지금 제가 하는 작품에도 큰 격려가 된다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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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연 2018-07-13 22:44:31
애들을 정치선전의 귀염둥이로 만들고 싶으신가? 하기야 당신들이 그렇게 시러하는 종북좌파들도 보면 다 똑같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