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강기동과 한국 반도체.... 반도체 코리아의 진정한 신화 '강기동'
[신간] 강기동과 한국 반도체.... 반도체 코리아의 진정한 신화 '강기동'
  • 김민성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8.11.01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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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코리아’의 진정한 신화,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름 강기동 

오늘날 우리나라의 반도체 산업은 세계 시장의 20퍼센트 이상을 점유할 정도로 눈부신 성장을 이룩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반도체 코리아’를 이끄는 몇몇 대기업의 이름만을 알고 있을 뿐, 그 씨앗을 뿌린 진정한 선구자의 존재를 잊고 지내 왔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름, 바로 ‘강기동’이다. 강기동 박사는 미국 유학과 모토롤라 반도체 연구소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1973년 한국 최초의 반도체 소자 제조 공장인 ‘한국반도체주식회사’를 설립했다.

조립업을 반도체 산업으로 알고 있던 기술 후진국 우리나라에 첨단 반도체 제조 기술을 본격 이식한 것이다. 그는 이 공장에서 전자 손목시계용 시계 칩 KS-5001을 개발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고 한국의 반도체 기술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그러나 한국반도체주식회사는 얼마 지나지 않아 삼성에 인수되었고, 강기동 박사는 큰 좌절감을 안은 채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 후에도 반도체 산업에 뜻을 품은 국내 대기업들의 요청으로 여러 차례 반도체 사업 계획을 세웠으나, 한국으로 다시 오지 않고 미국에 머물렀다. 

『강기동과 한국 반도체』는 대한민국 반도체의 아버지라 할 강기동 박사의 자서전이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직접 써 내려간 긴 글 속에 반도체에 바친 인생의 이야기를 담았다. 무엇보다 첨단 반도체 제조 기술을 한국으로 가져오기까지의 헌신적인 노력과, 한국반도체주식회사의 삼성 인수에 얽힌 진실을 가감 없이 밝혔다. 그는 스스로를 정치와 권력 다툼에 무지했던 실패한 사업가라 일컫지만, 이 책에는 오직 반도체만을 생각했던 천재 연구자이자 정직한 인간 강기동이 일군 ‘성공’이 오롯이 담겨 있다. 
 

아마추어무선에 빠진 소년, 한국 반도체 산업의 선구자가 되다 

1934년 함흥에서 태어난 강기동은 경기고를 거쳐 서울대 전기공학과에 입학했다. 소년 시절부터 아마추어무선에 큰 매력을 느껴, 대학 재학 중에 한국아마추어무선연맹(KARL)을 창설하기도 했다. 이후 미국으로 유학하여 오하이오 주립대학 반도체연구소에서 본격적으로 반도체를 연구하기 시작했고, 박사 학위를 받은 후 모토롤라 사 반도체 사업부에서 최첨단 반도체 생산 기술을 연구했다. 그는 이때부터 모국에 반도체 생산 기술을 이식하고자 하는 포부를 품고 꾸준히 방법을 모색했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1973년 경기도 부천에 한국반도체주식회사 공장을 설립했고, 오일쇼크로 인한 어려움과 여러 압박에도 불구하고 불굴의 의지로 마침내 독자 기술로 전자 손목시계용 칩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시계 칩의 성공 이후 그에게는 오히려 불행이 뒤따랐다. 피땀으로 일군 한국반도체주식회사를 삼성에 넘겨주어야 했고, 빈손으로 미국에 돌아왔다. 그가 떠나고 ‘한국반도체’는 ‘삼성반도체’가 되었고 오늘날의 삼성전자로 이어졌다.

강기동 박사는 이후에도 한국의 여러 기업들과 반도체 사업 계획을 세웠고, 그중 현대의 자문에 응하여 수립해 준 반도체 사업 계획을 바탕으로 현대전자가 설립되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반도체 산업을 이끄는 두 기업의 모태가 그의 손에서 만들어진 셈이다. 이처럼 한국 반도체 산업에 선구적인 공헌을 한 그이지만, 미국에서 보낸 지금까지의 삶은 평탄치 않았다. 하지만 강기동 박사는 이제 그간 풀어놓지 않았던 진실을 밝히고, 회한과 원망보다는 한국의 반도체 산업을 지금처럼 발전시켜 준 모든 이들에게 고마워하는 마음으로 삶을 회고하며 이 책을 펴냈다. 

“나같이 되지 말라” - 거장의 뼈아픈 충고 

강기동은 하이테크의 불모지 한국에 최첨단 반도체 소자를 제조하는 원천 기술을 이식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유학 시절 우연한 기회에 반도체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지만 곧 그 분야에 빠져들었고, 오하이오 주립대학 반도체 연구소에서의 우수한 성과를 인정받아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하지만 그는 학교가 아닌 산업 현장으로 향했다. 모토롤라 반도체 사업부에서 연구팀을 이끌며, 오늘과 내일이 다르게 발전하는 반도체 업계에서 기술력의 정점에 있었다.

그의 실력은 미 국방성에서 비밀 프로젝트를 의뢰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는 늘 조국에 최첨단 반도체 기술을 이식할 것을 꿈꾸었고, 각고의 노력 끝에 마침내 한국에 반도체 웨이퍼 생산 공장을 설립했다. 하지만 전자공업의 황무지인 한국에서 반도체 ‘조립’이 아닌 제조 사업은 제대로 이해받지 못했고, 그는 수많은 오해와 무지에서 비롯된 규제를 견디며 자신의 계획을 실천했다. 1975년, 강기동 박사는 마침내 최신의 C-MOS LSI 기술을 적용한 손목시계용 전자 칩을 개발하여 국내 전자업계에 일대 변혁을 일으키고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오로지 기술 개발에 매진한 정직한 엔지니어였던 강기동 사장은 어느새 자신이 세운 ‘한국반도체주식회사’의 권력 다툼에서 가장자리로 밀려나 있었고, 결국 회사마저 대기업의 손에 넘겨준 채 빈손으로 미국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자신의 모든 것, 인생을 걸고 시작했던 한국에서의 반도체 사업이었다. 미국으로 돌아와 수십 년이 흐른 지금, 그는 후학들에게 “나같이 되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의 발전에 누구보다 큰 공을 세운 노(老)거장의 회한이 느껴지는 충고의 말이다. 이제 그는 지난 일에 대한 원망과 서운함을 내려놓고 오늘날 세계 반도체 산업을 견인하는 한국의 대기업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품고 지낸다. 이 책은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의 뿌리인 강기동 박사에게 조금이나마 아름다운 명예를 되찾아 주고자 하는 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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