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오해하지 않는 연습, 오해받지 않을 권리.... 타인이라는 감옥에서 나를 지키는 힘
[신간] 오해하지 않는 연습, 오해받지 않을 권리.... 타인이라는 감옥에서 나를 지키는 힘
  • 김민성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8.11.01 06: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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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보광은 자상하지만 가부장적인 아버지 아래서 유순하고 순종적인 아이로 자랐다. 대학 시절 모든 인간이 평등하고 행복한 세상을 꿈꾸며 학생운동에 참여했고, 그 현장에서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정반대의 성향을 지닌 남편과의 결혼 생활과, 인간의 욕구에 대한 깊은 탐구 의식이 그녀를 심리학으로 이끌었다. 

성철 스님의 열반을 계기로 불교에 입문, 이듬해 당시 종정이던 혜암 스님으로부터 화두를 받아 시골로 내려갔다. 이후 16년간 참선에 정진하던 그녀는 다시 진화생물학을 접하면서 남편과 상처 치유 공부를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얻은 깨달음을 주변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해 3년여에 걸쳐 심리 상담을 진행했다. 그 결과 서로를 오해하고 데면데면하게 지내던 부부들이 친밀감을 회복하고 관계가 돈독해짐은 물론, 부모와 자녀, 형제간에도 서로의 기질과 성향의 차이를 알게 됨으로써 다툼이 줄어들고 대화가 활발해지는 것을 발견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종교와 과학, 정신세계와 물질세계를 아우르는 폭넓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우리 삶을 해명하고자 한다. 그녀는 자신의 삶이 ‘상처 치유’라는 새로운 세상을 만나기 이전과 이후로 나뉠 수 있다고 말할 만큼 이 과정을 중요하게 평가한다. 그리고 이 경함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은 마음으로 새로운 집필을 구상 중이다.

살다 보면 말을 섞을수록 어쩐지 대화가 더 꼬이는 사람이 있다. 어떤 이는 내 말과 행동의 의미를 척하면 척 캐치하는데, 또 어떤 이는 같은 모국어를 쓰는 게 맞나 의심스러울 정도로 괴상한 반응이 돌아온다. 전자하고만 함께 살고 일하고 대화한다면 좋겠지만 많은 사람에게 세상은 나와 다른 '외계어'를 쓰는 후자들로 가득하다. 더 곤란한 건, 멀쩡했던 사람도 꼭 가까운 관계가 되면 우주 최강 외계인으로 돌변한다는 점이다. 

이 책의 저자에게는 인생 최대 외계인이 남편이었다. 함께 장을 보고 밭을 일구고 이웃을 불러 티타임을 보내는 지극히 평범하고 고요한 일상 속에서도,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크고 작은 갈등이 발생했다. 조용하고 독립적인 일상을 추구하는 저자에게 표현이 거침없고 모든 에너지가 밖으로 발산되는 남편은 '이해해야 할 대상'이라기보다 '가급적 피해야 할 대상'에 가까웠다. 해묵은 불만을 오랫동안 부둥켜안고 살았던 저자는 남편과 함께 애착 이론과 이마고IMAGO 부부 치료 이론을 공부하면서 마침내, 꼬일 대로 꼬인 관계를 한 올, 한 올 풀어나갈 실마리를 발견했다. 바로 그 과정에서 얻은 깨달음, 관계 개선에 꼭 필요한 지혜들을 더 많은 사람과 공유하기 위해 이 책을 엮었다. 

저자가 상처 치유 공부를 통해 가장 먼저 얻은 수확은, 남편의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의 진짜 이유, 무시하거나 모르는 척하는 것밖엔 달리 방도가 없었던 태도들을 전혀 다른 각도에서 보기 시작했다는 거다. 그것을 가능하게 해준 것이 '기질'과 '애착 유형'에 대한 이해였다. 이 책은 사람들이 가진 고유의 기질과 어린 시절 형성된 애착 성향을 토대로 타인의 마음에 한 발짝 더 다가가는 법을 전한다. 

인간의 심리를 파악하는 도구로 오래전부터 성격 유형 검사가 전해져왔다. 기업에서 사원들 간 특성을 파악하는 용도로 쓰이기도 하는 MBTI, 에니어그램 등이 그것이다. 성격을 몇 가지 유형으로 구분 짓고 그 특성을 진단하는 것을 두고, '흥미로우나 알면 위험한 시도'라 보는 시각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사람을 제한된 틀 속에 가둬 재단하는 과정에 다시 또 하나의 오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다. 

저자 역시 이런 면에 대해 조심스러운 생각을 비쳤다. 다만 많은 상담 심리사가 부모의 양육 방식이나 트라우마 등을 놓고 한 사람의 심리 상태와 일생을 판단하고 진단하는 사실을 미루어볼 때, 기질과 애착 유형을 토대로 자신과 타인의 행동 심리를 이해하고 분석하는 것이 결코 가볍거나 편파적인 시도라고는 볼 수 없다. 오히려 내담자 부모의 기질이나 특성을 명확히 알지 못한 채 '결과적 사실'만을 두고 접근하는 심리 상담이야말로, 갈등의 진실과 관계의 본질적인 문제를 파악하는 기능 면에서는 빈약하다 볼 수 있다. 모든 관계의 갈등은 양쪽의 상호작용으로 발발하는 문제이므로 자신의 마음을 아는 것만큼이나 상대방의 심리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까운 사이에 서로의 애착 성향을 공유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상대방의 어린 시절 상처와 마주하게 되므로, 그 자체로도 서로의 생각을 헤아리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이 책이 독자에게 궁극적으로 권하는 것은 ‘자신을 올바로 파악하고 돌보는 마음’이다. 저자는 이것이 ‘관계를 통해 훈련해야만 진정한 가치를 발휘한다’고 강조한다. 결국 모든 사람의 기질과 성격은 관계 속에서 부대끼고 충돌하는 과정을 통해 발현되기 때문이다. 

사람이 힘이 아닌 짐이 될 때, 오해를 풀고자 시작한 대화가 숨을 옥죄는 지옥이 될 때, 우리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혼자 웅크리고 숨어들 동굴이 아니다. 더 건강하고 더 안전한 관계를 건설하는 힘과 용기다. 저자는 평생 인생이 가벼웠던 적이 없었다. 자신의 자리를 묵묵히 지키며 주어진 임무를 다하고 좋아하는 일로 일상을 꾸리면서도, 늘 어딘가 심각하고 가라앉은 마음을 안고 살았다.

그리고 지난 7년간 남편과 함께 상처 치유 공부를 하면서 그 허전한 마음의 실체를 발견했고, 남편과의 관계를 회복해가며 비로소 ‘함께 걷는 삶’의 기쁨을 손에 넣었다. 시시때때로 그녀의 불쾌감과 죄책감을 건드렸던 남편은 이제 그녀에게 “당신은 나를 유일하게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이 진심 어린 한마디는 그녀에게 다시 한 움큼의 행복을 가져다준다. 각자의 욕구와 불만이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 함께 추적하고 공유한 두 사람은 이제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 때로 이해되지 않는 행동을 해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수긍해주는 진정한 짝이 되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사귄다는 건 곧 ‘서로에 대한 오해를 끝없이 해명하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깊고 긴밀한 관계일수록 상대방의 오해는 더 아프게 마음을 찌른다. 더 큰 마음을 주면, 더 자주 설명하면, 더 많이 이해하려 노력하면 잘 지낼 수 있을 거란 믿음은 때로 칼이 되어 돌아온다. 아끼는 누군가의 행동과 말들 배면에 숨은 의도를 나름대로 해석하고 이해하려는 순간순간 우리는 또 다른 오해를 품고, 해묵은 오해들이 극명하게 충돌할 때 자포자기 심정으로 서로를 비난하거나 등을 돌린다. 

당신은 누군가에게 온전히 이해받은 경험이 있는가? 없다면 바꿔 묻겠다. 당신은 당신 자신을 온전히 이해한 적이 있는가? 가까운 사람을 오해하지 않고 또 이해받으며 함께 행복한 관계를 그려나가려면, 가장 먼저 자신의 맨얼굴을 주시해야 한다. 이 책은 그동안 당신이 꽁꽁 숨겨왔거나 외면했던 진짜 얼굴을 꺼내어 마주할 수 있게 돕는다. 그 얼굴을 만나는 순간, 이제껏 당신을 괴롭혀왔고 어쩌면 평생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았던 당신 곁의 그 사람도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될 것이다. ‘함께’라는 말 속에서 너무 오래 고독했다면 그녀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라. 오해하지 않고 오해받지 않을 권리를 챙기는 연습, 이것이 그 오랜 고독을 떨치고 일어날 분명한 시발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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