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병호 소장 “빚더미로 먹고 살아 온 국민과 정부, 이제는 분수를 지키자”
공병호 소장 “빚더미로 먹고 살아 온 국민과 정부, 이제는 분수를 지키자”
  •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
  • 승인 2019.01.15 14: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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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  
사진 홍정석 미래한국 기자

2004년 공병호 공병호연구소 소장(전 자유기업원 원장)은 그의 베스트셀러 <10년후, 한국>에서 대한민국이 맞게 될 암울한 현실을 정확하게 진단해 화제를 모았다. 2016년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3년 후, 한국은 없다>라는 책으로 대한민국 보고서를 썼다. 그가 말한 3년 후인 2018년 12월 말에 <미래한국>은 공병호 소장을 만나 우리 사회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들었다.
 

공병호 공병호연구소 소장

-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어떻게 진단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경제 중심의 사고를 하다 보니 모든 걸 지갑의 문제로 생각합니다. 정치 등의 문제는 상황에 따라 변화가 있기에 조금 나빠도 크게 문제가 없는데, 안보나 경제 문제는 나라의 명운을 결정할 수 있는 중요한 문제이죠. 국내 대표적인 기업의 영업전선에 계신 분들을 만나 대화를 해보면, 그분들은 ‘시장이 무너지는 소리가 하루가 다르다’고 말들 합니다. 그러면 이 어려움을 극복할 힘이 우리에게 있겠는가 하는 문제가 남습니다.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고비용 구조가 완벽하게 굳어진 사회 같습니다.

제품이나 서비스를 판매할 때 그 고비용 구조가 다 전가되는 거예요. 일본 장기불황 때처럼 내부에서 가격 파괴도 잘 안 일어납니다. 임금은 정체되거나 내려가는데, 그러면 가격도 내려가야 하죠. 문제는 유통업자도 고비용 구조가 되어 가격을 낮추기가 힘든 상황이 된 것이죠. 산업경쟁력 차원에서 볼 때, 현재 있는 것으로 먹고 사는 것이지 내일을 준비하는 게 거의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박근혜 정부가 집권했을 때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상황이 심각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더 심각한 건 다수의 국민이 ‘우리는 이 정도는 살아야 한다’는 식으로 자기 형편을 과대평가하는 점입니다. 하지만 세상사는 그렇지 않죠. ‘이 정도 살아야 한다’가 아니라 ‘너희가 어느 정도의 생산성을 올릴 수 있고, 지불능력이 있느냐’입니다. 지금은 은퇴하셨지만 KDI 유종호 교수가 쓴 90년대 논문을 보면 개발연대를 평가하면서 박정희 정부의 큰 공으로, 정책이 집행된 후 문제가 발생하면 빠른 속도로 교정할 수 있었던 것을 꼽았습니다. 그 점이 큰 경쟁력이었다고 평가한 글이 있습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처럼) 이렇게 고집을 부리면 문제가 많죠.
 

- 박사님은 <3년 후 한국은 없다>에서 시스템을 이야기하셨습니다. 우리 사회가 벼락치기로 성적이 좋을 수 있지만 평소 공부를 안 하면 문제가 된다고 하셨는데, 그런 시각의 틀은 한국 사회를 평가할 때도 적절한 평가틀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스템이 왜 중요하고, 우리는 시스템을 어떻게 고쳐나가야 합니까.

지난 박근혜 정부 2년차에 제가 가졌던 문제 인식은 우리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이었어요. 창조경제니 뭐니 말도 안 되는 짓거리를 하는 걸 보면서 이 나라는 가능성이 별로 없다고 느꼈습니다. 그 후 상황은 더 악화됐죠. 지금은 멀쩡한 직업 수백만 개씩 없애고 있으니까요. 1997년 환란 경험을 할 때 느꼈던 문제 인식을 지금 많이 느낍니다.

아마 구한말 당시 밖의(외국) 상황을 아는 선각자들도 저와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 같아요. ‘우리는 도저히 스스로 개화가 안 되는구나’ 하는 심정 말이죠. 젊은 날 젊음을 낭비하면 반드시 비용을 치르게 되는 것처럼 자원낭비의 대가는 반드시 치르게 돼 있습니다. 어렵게 번 자원을 소중하게 활용해야 하는데, 한국은 지난 20년 동안 관치 경제로 자원낭비가 일상화된 사회가 됐습니다. 자원낭비의 가장 큰 사례는 재정지출 증가율이 경제성장률의 2배 이상이라는 사실입니다.

여기에 저금리 정책으로 지난 20년 사이 가격 메커니즘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기업을 제외하고 국가는 국가대로, 가계는 가계대로 모든 주체들이 부채를 늘리며 자원을 낭비해왔다는 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1~2년은 과거 20년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엄청나게 야만적인 자원낭비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나라 전체가 완벽한 고비용 체제가 된 것이죠.
 

형편에 맞지 않는 삶이 나태와 불만 불러

- 시스템 문제에서 시대정신이 잘못됐다는 평가를 내리셨는데 어떤 점에서 그렇습니까.

우리 선조들은 기본적으로 자활자립 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자기 삶은 마땅히 자기가 책임져야 한다는 인식이 강했지 않습니까? 그래서 살기 위해 몸부림 쳤고, 그랬기 때문에 산업 기반을 만든 것이죠. 세상사를 관통하는 원칙이란 돈으로 일어설 수 없는 겁니다. 자활에 대한 의지와 열망, 긴장감이나 위기감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이 부족합니다. 저는 2011년 서울시 무상급식 논쟁을 아주 중요한 사건으로 봅니다. 훗날 역사에서 한국호의 경로를 완전히 바꾼 사건으로 기억될 겁니다.

무상급식이 뭐 그리 문제냐지만, 무상급식이 되면 유아수당, 아동수당, 청년수당 등 별별 수당이 나오게 돼 있다고 봤습니다. 지금은 수당이 마치 보통명사처럼 돼 있잖습니까? 대다수 사람들은 마땅히 받아야 할 수당으로 여기고 있죠. 정신이 무너지면 그 다음은 물질이 무너지게 돼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공장과 설비는 구매하면 되지만 사람 정신이 무너지는 건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 사회는 예를 들어 기독교 문화에 바탕을 둔 직업윤리, 근로윤리 이런 철학적 배경을 가진 사회가 아니죠. 단지 배가 고팠기 때문에 열심히 일했던 겁니다.

우리가 일본을 비판하지만 그래도 바로 옆에 우리보다 먼저 개방하고 산업화된 나라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기술도 카피하고 산업 모델도 카피해서 경제적 부를 이룬 것 아니겠어요? 우리는 미국이 갖고 있는 빛과 그림자가 무엇인지 또 일본의 빛과 그림자는 무엇인지 주변을 두루 보고 현실주의자가 돼야 하지, 이상주의와 관념에 사로잡혀선 곤란합니다. 우리 처지와 형편에 비해 씀씀이가 늘어나거나 스스로 과장되게 행동하면 위기를 꼭 부릅니다.

행동은 정신적 기반과 사고에서 비롯되는 것이니까요. 우리의 정신적 면은 복원하기 어려울 정도로 망가진 것 같습니다. 갈수록 유튜브나 SNS가 발달하기 때문에 점점 더 생각하는 힘은 약해지고 보이는 것, 즉흥적인 것, 단기적인 것에 매몰되고 있어요. 당장의 돈에 갇혀 2차, 3차 사고를 못하면 어려움을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저는 한국 사회의 정신적 기반이 어떻게 변화해가고 무너져가는지 30년 이상 오랫동안 지켜봤습니다.
 

- 어느 사회든 경제성장을 하려면 선대로부터 자본 축적이 이뤄져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1970년대 경제발전도 그 이전 선대들이 절약한 것을 바탕으로 한 것인데, 지금은 소비가 대세죠. 그러나 하이에크, 미제스 등 자유주의 학자들은 자본축적이 돼 저축이 이뤄져야 그것이 경제발전 토대가 된다고 보는데요, 지금의 소비 위주의 성장 사고방식과는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자본축적이 안 돼 있기 때문에 서울의 웬만한 빌딩들이 외국 자본에 넘어간 것 아니겠어요? 경제성장 과정에서 증시도 과실은 외국계 자본이 많이 가져가는 시스템이 돼 있습니다. 국내 자본축적이 부족한 이유죠. 부자나라와 아닌 나라의 차이는 장기간 자본축적의 역사를 갖고 있는지, 아닌지 여부입니다. 자본은 축적해야 하고, 아껴 써야 하고 다음 세대로 넘겨야 하고 그것이 재투자돼야 한다는 확고한 생각이 있습니다.

그러나 경제학자들 중 일부는 소비를 촉진해서 경제 해결을 도모해야 한다고 하죠. 중급 경제 국가, 자본축적 역사가 짧은 국가들은 일종의 그런 전통이론을 추종하는 것이 올바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나이 들면서 내린 결론은 기업이론이든 경제이론이든 많은 부분들이 자연계 보편적 질서와 어긋나면 별로 좋은 이론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금도 보시면 나라가 현상유지로 가고 있지 않습니까? 사람이든 조직이든 나라든 갖고 있는 걸 지켜야겠다고 하는 순간부터 바로 쪼그라들거든요. 자연계가 그걸 허용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계속 확장하고 공세를 취하고 개척하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최소한의 현재가 보장된 단 말이죠. 나라를 이끄는 사람들은 그런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빚더미로 먹고 살 던 시대 끝내야’

- 저성장 고착화 문제가 대두돼 있는데, 이 문제는 해결하기 어렵다고 보시는지요?

사람이 하는 일이니 극복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겠죠. 그러나 현재(정부)와 같은 경제철학과 경제정책 기조를 유지하는 한 한국은 장기불황 국면으로 걸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일본처럼 오래 버틸 수 없을 겁니다. 우리가 일본을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는데 일본은 노벨상을 27개나 받은 나라입니다.

2001년 이후 17개를 받았고, 대부분 이공계 계통의 상이죠. 지적 인프라나 과학 인프라가 우리와는 게임이 안 되는 국가에요. 일본이 메이지 유신 이후 축적한 국부와 대외자산은 천문학적인 규모입니다. 빚의 대부분을 내국인이 갖고 있기 때문에 환란을 겪지 않고 부채를 지금까지 끌어오고 있는 것이죠.

우리는 그렇게 못할 겁니다. 우리는 하루살이나 마찬가지예요. 국민들이 그걸 알아야 합니다. 당장 돈 벌어 기름 사고, 원자재 사는 하루살이를 살아가고 있는데, 자본축적이 안 돼 있는 나라이기 때문이죠. 미국에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면 10년 먹고 살고 일본은 5년, 한국은 6개월 밖에 안 된다는 것 아닙니까. 시장 차이도 있고요. 우리는 여전히 배고파해야 합니다. 열심히 일해야 겨울에 연료 때가며 살 수 있다는 것이죠. 관광 수입이 있는 것도 아니고, 대외자산이 있어 돈이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요. 이런 사실을 왜 모르는지 모르겠어요. 온 국민들이 빚더미에 앉아 있잖아요.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가 몇 번 더 금리 올리면 우리가 얼마나 힘들어지겠어요.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서는 대기업은 돈을 쌓아둔 반면 중소기업은 허덕이면서 부의 양극화가 너무 심하다, 그래서 소득주도성장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저는 시야를 넓혀 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지금 상황은 기술 변혁에 따라 전 세계적으로 소득이 이퀄라이징(Equalizing: 균등화) 돼가는 과정이란 말이에요. 미국 중부 러스트벨트(Rust Belt : 몰락한 제조업 지대) 사람들이 트럼프 대통령을 뽑았잖아요. 그 사람들은 (몰락이) 억울하겠지만 그동안 미국인들이 누리고 있던 프리미엄이 줄어드는 과정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똑같은 논리로 한국인들이 그동안 과도하게 누리고 있던 프리미엄이 줄어드는 과정으로 이해해야 해요. 우리보다 베트남이나 중국이 수십 분의 1의 비용으로 만들어낼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상대적이고 글로벌한 차원에서 우리 문제를 이해해야 합니다. 지금은 고급 기술과 재능을 가진 인재가 아니면 임금 수준이 계속 내려갈 수밖에 없는 거예요.

거기다 AI가 들어오면서 기계가 사람을 대체하고 있죠. 예를 들면 투잡, 쓰리잡을 해야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은 대학에서 중급 인재를 많이 배출하죠. 앞으로 임금이 오를 가능성이 없는 거예요. 이미 과도한 프리미엄을 많이 누리고 왔기 때문이죠. 한국 사람들이 답답한 것은 지나치게 자기중심적, 우리 중심적, 자국 중심적으로 생각한다는 겁니다. 우리가 접하는 정보라는 것이 일간지의 국제코너 뿐이에요. 그나마 그 코너도 신문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참 작죠. 외국에 비해 항상 정보 격차가 있는 거예요.

편협하고 강퍅한 세계관 뜯어 고치자

- 말씀을 들으니 마치 구한말 상황이 연상되는군요.

구한말 정보가 유입되던 유일한 채널이 중국 채널이었어요. 그래서 망했잖아요. 일본은 정보채널이 마카오, 홍콩, 광저우 등 다양하게 있었기 때문에 ‘What’s Going On’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확하게 본 것 아니겠어요? 한국은 굉장히 협소하고 편협한 거예요. 저는 지금 청와대 분들 가운데 국제 자본시장에 정통한 보좌진이 있는지 모르겠어요. 만약 지금 옛날 같은 자본시장 혼란이 발생하면 1997년 데자뷔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삼성하고 SK하이닉스를 제외하면 지금 한국 상장기업들도 매출이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잖아요. 현실을 봐야죠.

소득주도성장이란 건 엄청나게 허황된 이론입니다. 대통령이 작년(2017년) 청와대 티타임 하던 그때 처음으로 소득주도성장을 언급했더군요. 저는 그말을 듣고 ‘세상에 임금주도성장이란 게 어디 있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홍장표 당시 수석 말씀은 월드뱅크나 IMF에서 나온 말이라고 하는데, 그건 정치적 레토릭으로 쓰일 수 있겠지만 현실에서는 검증을 받아야 하는 것이죠. 학계에서 아무 검증도 안 된 이론을 한국 사회에 그대로 적용하고 실험하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멀쩡한 일자리 죽이고 기계로 대체하고, 그것도 안 되는 사람은 해외로 나가고 지금 그 상황 아닙니까. 좀 미안한 이야기지만 한국 사람들이 현실을 똑바로 봐야 할 건, 우리가 지금 겪는 고통은 그동안 누리고 있던 프리미엄이 줄어드는 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점이에요. 내려앉는 과정이죠. 그걸 못 참겠다고 해서 소득주도성장과 같은 잘못된 정책을 펴면 많이 망가지게 됩니다.

- 고비용 구조를 개혁하려면 창조적 파괴를 통해 4차 산업같이 고부가가치 산업을 전개해야 할 텐데, 규제 문제가 풀리지 않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그렇게 하려면 관(官)이 처분하는 재원이 줄어야 합니다. 관에 종사하는 사람이 줄어야 할 것 아닙니까. 외환위기 끝나고 20년 정도는 진보정권이든 보수정권이든 고정비 성격의 관주도를 줄이는 데 매진하자는 공감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대통령 한명 등장한 후 갑작스럽게 아무 논의도 없이 ‘거대정부’를 대세로 가자니 이게 얼마나 반이성적인 주장입니까.

탈원전의 경우도, 원자력산업 하나 나오려면 70년 이상 걸리는데, 지금 정부 하는 걸 보세요. 진짜 반이성적, 반지성적이라는 생각이 들죠. 삼성이 반도체에 막대한 투자를 했지만 아직 산업다운 산업이 안 보이잖아요. 돈 벌어본 사람은 수입원 하나 만드는 게 창업만큼 어렵다는 걸 압니다.

국가 차원에서 원전이 가진 중요성이란 다시는 그런 비즈니스를 잡기 어려운 귀한 산업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그걸 난도질하고 있으니. (정부) 그 사람들 비난하자는 게 아니고 생각을 좀 해보란 거예요. 원전을 기반으로 다른 산업 클러스트가 형성돼 있는데 이게 무너지기 시작하면 어떻게 됩니까. 영국 자동차산업처럼 넘어가게 되는 거예요. 서비스업? 한국 사람은 서비스업 체질이 아니에요. 한국 사람은 내기에 강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목표를 정해놓고 역습을 해서 시간을 맞추는 데 굉장히 능한 사람들이에요.

한국 사람들은 똘똘하고 눈썰미가 뛰어나요. 한국은 삼성 롯데 현대와 같이 글로벌 비즈니스에서 경쟁할 수 있는 회사가 등장했기 때문에 다른 분야로 혁신의 전파 속도가 굉장히 빠른 사회가 됐습니다. 그리고 제조업 기반이 다른 나라에 비해 굵직하게 있고요.

그렇기 때문에 잘 될 수 있는 인프라가 좋은 사회인 겁니다. (정부가) 그냥 손을 좀 떼면 되는 겁니다. 드론이 왜 안 나오고, 모빌 비즈니스가 왜 안 뜨냐, 그 많은 우수한 인재들이 가 있는 메디컬 비즈니스가 왜 안 뜨냐 이거예요, 한국은 사업할 때 왜 이렇게 도장 받을 곳이 많은가, 웬만하면 안 해주는 쪽으로 하잖아요. 한국은 지금 자원의 문제가 아니라 생각의 문제예요.
 

- 말씀하신대로 분명히 맞는 방향이 있는데도 소득주도성장이나 탈원전과 같은 결정이 일어나는 걸 보면 궁금합니다. 생각이 미숙해 그런 결정을 하는 건 아닐 텐데요.

이데올로기가 너무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요. 그 중에서도 한국인 머리엔 조선조 생각이 너무 많아요. 관념적이고 실용주의적이지 않죠. 어쩌면 우리 피에 그런 게 많이 흐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나치게 낭만적이고 현실적인 부분이 부족합니다.

그 다음 우리 사회 전반적으로 이성, 지성, 합리, 논리 이런 부분을 존중하는 마음이 미흡한 점이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고요. 그리고 지금 집권세력 중 많은 분들이 젊은 시절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은 사람들이란 점도 영향을 미친다고 봐요. 그분들 행동을 보면 젊은 날 사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거든요.
 

- 진보좌파는 그렇다 하더라도, 보수우파가 집권했다고 특별히 경제정책이 좀 더 이성적이거나 자유주의적이거나 시장주의적이라고 보이지 않는 문제는 어떻게 보십니까.

그 당시 지도자들의 지적 역량이 많이 떨어지는 것이죠. 반듯한 경제철학이나 신념이 부재했기 때문에 생각이 깊은 사람이 볼 때 너무나 우스운 프로젝트가 국정의 중요 어젠다가 되는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벌어지지 않았습니까? 지성의 부재가 굉장히 크다는 것이죠. 미국 같은 경우는 누가 대통령이 되든 싱크탱크 같은 것들이 활성화돼 있기 때문에 다년간 훈련받은 사람들이 조각, 보좌진에 포함돼 반이성적 정책은 잘 나오지 않아요. 약간의 운영적 차이는 있지만 문제 있고 얼토당토않은 정책은 걸러지고 정제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고도성장을 통해 눈에 보이는 성장은 잘 했지만 눈에 보이지 않은 영역에서는 아직도 많은 부분의 축적이 필요한 사회입니다. 간단한 예를 들어 정권이 바뀌면 모든 권력이 행정부 수장에 집중되죠. 독립적인 감사원이나 검찰, 국세청 이런 권력까지 그래요. 그때마다 자괴감이 느껴지죠. 대통령이 무슨 신처럼 돼버리잖아요. 그리고 정치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연구소가 하나도 없습니다. 이런 현실에 낙담하게 되는 거예요.

그래도 1990년대에는 반대 목소리를 내도 좀 용인이 되는 등 자유가 상당히 살아 있었어요. 지금은 어떤 연구소든 입을 다물어야 하고 아무도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상황이죠. 얼마나 슬픈 일이에요. 그런 면에서 사회가 훨씬 후퇴하는 듯합니다. 예컨대 탈원전 한다면 심각한 논쟁이 있어야 할 것 아니에요?

그런 과정을 통해 정책이 양보되고 조율되는 것이죠. 소득주도성장 같은 게 나오면 학계에서 엄청난 격론이 일어야 하는 것 아니에요? 그래야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으니까요. 지식의 문제가 참 크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라도 수준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질은 빨리 성장할 수 있는데 지적 인프라라는 건 굉장히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또 그게 중요하다는 걸 사람들이 알아야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어요.

정부 여당이 그 어떤 정책을 내 놓더라도 시장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또 위기 올 것

- 말씀하신대로 이데올로기의 문제도 있겠지만 저출산이나 고령화 문제와 같은 요소들은 의지의 문제이기도 하고 자연적 문제이기도 합니다. 이 문제들이 해결 안 되면 어떤 것도 해결 안 되는 것 아닐까요?

저출산 문제는 정확히 한국의 구조조정과 연결되는 문제입니다. 교육비 부담이나 취업난이 심각하고 이건 수도권 규제와도 관련돼 있어요. 주거비 문제와도 관련돼 있죠. 젊은 사람들한테 아기 낳으라고 말하기 쉽지 않아요. 원시사회조차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하는데 아기를 낳는다는 것은 한 개인이나 가정에서 보면 큰 결정이죠. 문제는 사람들이 앞날을 다 어둡게 본다는 겁니다. 아기를 낳아 키운다는 것은 장기간에 걸친 의사결정이기 때문에 모두가 어렵게, 어둡게 보는 것이죠. 다시 말해 저출산 문제의 근본 요인은 아기를 낳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이 문제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데 있어요. 우리가 해야 될 일은 돈을 몇 백 조 투입할 것인가와 같은 자원낭비가 아니라 사람들이 출산 문제를 왜 어둡게 보느냐, 이 문제를 긍정적으로 보도록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입니다. 근원적인 문제를 찾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지, 그냥 예산 확보하고 쓰는 데 급급하면 해결될 수 없는 문제예요. 고령화 문제는 엄청난 재정부담이라든가 생산과 소비가 줄어드는 문제라든가 하는 근본적인 문제들이 있습니다.

- 저출산 문제의 해결 방법이라면 결국 이민정책으로 눈을 돌려야 하는 걸까요?

저는 이민정책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 그렇게 되면 문화적인 충돌과 같은 부정적 현상도 우려됩니다만.

그러나 다행히 우리에게는 고려인, 조선족이 있습니다. 제가 어떤 책에서 읽었는데, 사람이 들어오는 것은 그 사람이 살았던 모든 것을 갖고 들어오는 것이라고 해요. 이민정책을 고려하기 이전에 우리와 종교, 문화 등에서 공유가치가 있는 사람들에게 먼저 문호를 개방하는 것이 더 좋은 선택이라도 생각합니다. 다른 방법은 없을 것 같아요.

- 말씀 잘 들었습니다. 결론으로 <미래한국> 독자를 위해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부탁드립니다.

한국 사회가 이렇게 가다간 또 위기를 맞을 겁니다. 그리고 세계 역사를 보더라도 경제위기가 한번으로 끝난 나라는 없으니까요. 경제위기를 반복하는 건 대부분 사회가 어려움을 겪고 난 뒤 망각하기 때문에 반복해서 어려움을 겪는 거예요. 우리 역사에서 60~70년대 산업화 시기는 이례적으로 미래에 대해 계획을 세우고 준비를 하고 실천했던 기간 같습니다. 한국 근현대사에서 그 시기가 없었다면 우리가 얼마나 힘이 빠졌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시골에서 태어나 성장해서 그런지 이런 생각을 합니다. 개인이든 조직이든 나라든 삶은 녹록지 않고, 어느 시대든 삶은 힘겹다는 것이죠. 항상 현재를 넘어 미래를 준비하는 그런 자세나 마음가짐이 없으면 반드시 굴욕적인 상황에 처하는 것이 개인사나 기업사나 국가사라고 봅니다. 이런 삶의 진실을 잊어선 안 되겠죠.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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