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대기업은 정권의 전리품이 아니다
[심층분석] 대기업은 정권의 전리품이 아니다
  •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
  • 승인 2019.02.08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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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이 20조원을 풀면 200만명에게 1000만원씩 지급할 수 있다.’

2018년 7월 15일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한 말이다. 공산당식 발상이라는 비판이 일자, 홍 원내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몇몇 재벌에 갇혀 있는 자본을 가계로, 국민경제의 선순환구조로 흘러가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취지의 말이 그렇게 잘못된 것인지 되묻고 싶다”고 항변했다.

삼성이 2015년부터 2017년까지 20조를 들여 자사주를 매입해 소각한 것을 지적한 발언이었다. 홍 원내대표는 “자사주 매입에 사용되는 잉여 이익을 국민경제에 생산적으로 재투입될 수 있도록 유인하는 일이 지금 우리 정치가 고민해야 할 지점”이라고도 했다.

홍 원내대표의 주장을 보면 삼성은 ‘공공의 적’에 가깝다. 국민경제에 이바지할 수 있는 20조원을 기업가치 높이자고 써 버리니 말이다. 하지만 홍 원내대표는 삼성의 기업가치가 상승해야 해외에서 더 많은 자본을 더 유리하게 조달해 생산 자금으로 투자할 수 있다는 원리는 모르는 것이다.
 

재벌 적폐청산을 주장하던 문재인 대통령은 1월15일 청와대에서 "2019년 기업인과의 대화' 행사를 마치고 경내를 산책하고 있다.
재벌 적폐청산을 주장하던 문재인 대통령은 1월15일 청와대에서 "2019년 기업인과의 대화' 행사를 마치고 경내를 산책하고 있다.

삼성은 지난 해 향후 3년간 총 180조원을 투자하고 4만명을 신규 채용하는 경제 활성화·일자리 창출 방안을 내놨다. 삼성전자가 미래성장동력으로 공을 들이고 있는 △인공지능(AI) △5G(5세대 이동통신) △바이오 △전장부품 등 4대 미래 성장사업에만 25조원이 투자된다.

여기에 30조원이 투입되는 평택 반도체 2라인 신설을 비롯해 평택 3·4라인과 디스플레이 증설 투자 등을 합해 삼성전자에서만 향후 160조원의 투자가 단계적으로 실행된다. 180조원 중 삼성의 국내 130조원 투자에 따른 고용 유발 효과를 계산하면 △반도체 디스플레이 투자에 따른 고용 유발 40만명 △생산에 따른 고용 유발 30만명 등 약 70만명에 달할 것으로 기대된다.

삼성은 이 천문학적 자금을 어디서 조달할까. 경제를 모르는 이들은 삼성전자의 지난해 유보금 269조 5924억 원이 그 재원일 것이라고 쉽게 생각한다. 하지만 이 금액은 현금이 아니라 이미 삼성전자가 설비투자 등으로 이익금을 처분해 누적된 장부상의 자산 표시다. 이 가운데 삼성이 현금성 자산으로 가지고 있는 금액은 20%도 되지 않는다. 삼성이 향후 3년간 180조 원을 투자하려면, 삼성은 이윤만으로는 안 되고 해외자본시장에서 증자나 채권을 통해 자금을 조달해야 한다.

이때 중요한 것이 삼성의 기업가치이고, 기업가치는 이익률 뿐만 아니라 배당률과 같은 것도 중요하다. 그러려면 유통주식 수가 줄어들어야 한다. 삼성전자의 경우 실적 부진이 겹쳐 수익가치가 하락한 상태다. 결국 주당 배당가치가 올라야 해외에서 자금 유치가 유리해지는 것이다. 더구나 삼성의 주식가치가 자사주 매입 소각으로 올라가면 그 만큼 삼성에 투자한 국민연금의 배당액도 많아진다. 이것이 홍 원내대표가 말한 국민경제 선순환이 아니면 무엇일까.

홍 원내대표의 ‘삼성 20조원 국민 분배론’은 문재인 정권이 국내 재벌대기업을 어떤 식으로 보고 있는지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자신의 대선공약으로 ‘재벌개혁’을 내놓았다. 누가 누구를 개혁해야 하는 것일까.

연금사회주의가 재벌개혁이라는 문재인 정부

문재인 정부가 재벌을 개혁한다면서 야심차게 꺼낸 카드 중에는 ‘국민연금 스튜어드십 코드’라는 것이 있다. 한마디로 대기업 경영에 국민연금이 주주로 참여해 총수의 경영 독주를 막고 소액주주를 보호하며, 사회공헌을 이끌어 낸다는 발상이다. 하지만 그러한 ‘선한 동기’는 주소를 잘못 찾았다.

“많은 분들, 심지어 학자들도 오해하고 있는데, 연금스튜어드십 코드는 우리 국민연금과 같은 정부 공적기관이 참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자율적인 민간 투자기관들이 협약으로 하는 것이지, 정부가 개입하고 간섭하는 것은 사유재산권에 대한 침해에 해당합니다.”

최광 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의 말이다. 최광 전 이사장의 설명에 의하면 우리나라 국민연금관리공단은 복지부 장관의 감독 관할 하에 있다. 이러한 정부 관리 공적기관이 민간기업의 주주로서 경영에 관여하게 되면 민간기업 경영에 정치적 입김이 작용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아울러 스튜어드십 코드로 국민연금은 주주로서 다른 주주들에 대해 경영 책임을 져야 한다. 문제는 공공기관인 국민연금의 누가 행위에 책임을 지느냐는 것이다. 그 책임은 감독기관인 복지부와 심지어 대통령일 수도 있다. 한 마디로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대부분의 국가들은 정부나 정치권의 외풍을 차단하는 장치를 마련해 독립성을 보장한다. 캐나다공적연금(CPP)의 경우 1998년 별도의 공사인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CPPIB)를 설립해 기금운용의 독립성을 보장했다. 네덜란드공적연금(ABP)은 2008년 민간 자회사인 자산운용공사(APG)를 설립해 기금 운용을 위임하고 있으며 스웨덴공적연금(AP)은 6가지 기금으로 분리, 독립적으로 운영되며 정부는 회계감사기관을 통해 기금운용 결과만 보고 받는다. 반면 한국의 국민연금은 독립적이어야 할 투자본부장의 인사 검증을 청와대가 한다. 이러한 시스템에서 연금스튜어드십 코드는 정치권 고양이에게 민간기업 생선가게를 맡기는 경우라 할 수 있다. 중국 공산당이 기업내 위원회를 설치해 기업들을 관치로 장악해 나가는 것과 발상이 같다.

문재인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 대표 시절인 2017년 1월 10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재벌 퍽폐청산, 진정한 시장경제로 가는 길'이라는 주제로  연설을 하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 대표 시절인 2017년 1월 10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재벌 퍽폐청산, 진정한 시장경제로 가는 길'이라는 주제로 연설을 하였다.

기업사냥 늑대 무리에게 문을 열어 주는 상법개정안

문재인 정부가 경제민주화라는 이름으로 대기업을 공공의 적으로 삼는 정책에는 상법개정안이 있다. △집중투표제 △이중대표소송 △감사위원 분리 선임 △전자투표제도 의무화가 기본 골자다. 소액주주들을 보호한다는 취지지만, 상법개정안의 본질적인 문제점은 경영자로 하여금 경영권 방어에 무장해제를 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무능한 경영자가 대주주일 경우, 소액주주들의 권익보호를 위해 이들이 경영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주는 것은 나쁘지 않다.

하지만, 자칫 소액주주들을 보호한다면 선한 의도가 종종 나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데 문제점이 있다. 비유하자면 양떼를 지키는 목동은 늑대 한 마리는 어떻게든 상대할 수 있지만, 늑대들이 떼를 지어 공격하면 당해낼 수 없는 것과 같다. 이때 늑대 떼는 헤지펀드들이고 목동은 경영자다. 투기적 헤지펀드들은 공시의무가 있는 지분율 밑으로 주식을 비공개로 매집한 다음, 서로 연대해서 ‘울프 팩(wolf pack)’이라는 전술로 경영권 탈취에 나선다.

미국의 가장 큰 대형서점 체인인 ‘반스앤노블(Barnes and Noble)’이 그렇게 공격 당했다. 이 회사를 처음 공격한 헤지펀드는 반스앤노블 주식을 18.7%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공시하지 않고 숨어 있는 다른 동조 헤지펀드들이 보유한 지분을 합쳐 36.14%를 확보했다. 13.87%만 더 확보하면 기존 경영진들을 완전히 몰아낼 수 있는 상황이었다. 문제는 이런 헤지펀드들이 기업의 단기적 가치 상승만을 만들어 먹튀를 한다는 점에 있다.

신석훈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원에 의하면 미국 경제에서 오랫동안 혁신을 주도해 온 듀폰(Dupont)이 울프팩 공격을 받은 후 이 문제가 표면화 되고 있다. 듀폰은 공격을 받은 후 비용 절감을 통해 단기주가를 상승시켜 주주이익을 증대시킨다는 이유로 R&D 투자를 급격히 줄이고 기술연구소를 폐쇄해 수 천 명의 일자리를 없애버렸다.

최근 미국의 연구개발 분야에 대한 투자가 계속 줄고 있는데 그 원인을 지나치게 단기주가 상승에만 몰두하는 헤지펀드의 행동주의에서 찾는 견해도 있다는 것. 더구나 이러한 헤지펀드들은 옵션이나 선물, 스왑 등 다양한 금융계약과 금융기법이 발달함에 따라 헤지펀드들은 이를 이용해 더 강력한 공격력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 신 연구원의 분석이다.

이러한 최첨단 금융기법을 활용해 주식에 비례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경제적 권리’과 ‘의결권’을 자유자재로 분리하며 의결권 보유기준에 따라 부과된 공시의무를 회피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5% 이상의 주식에 대한 경제적 권리를 실제 보유하고 있으면서 주식스왑계약을 통해 의결권이 없는 상태로 만들어 공시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가 나중에 스왑계약을 해지하고 주식을 실제로 취득한 후 공시의무를 이행하는 경우가 많다.

재벌 총수를 범죄자로 예단하는 공정거래법

문재인 정부가 대기업을 공공의 적으로 삼는 반기업 정책 중에 대표적인 것은 바로 공정거래법이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범죄자를 처벌하는 것은 정의롭지만, 범죄자일 것으로 예단해서 사전 규제하는 법은 위헌이라는 점 때문이다. 예를 들어 현재 논의되고 있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에는 총수일가의 모회사와 계열사가 거래를 할 때 ‘상당량’을 거래하면 이를 일감몰아주기로 간주해 처벌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재벌 총수일가의 모회사와 계열사간의 거래는 항상 기업과 다른 주주에게 피해를 주는 부당성을 갖고 있다는 예단이 공정거래법 개정안의 본질이다. 하지만 불공정한 거래가 있다면 이는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사법적 정의를 구해야 하는 것이지, 사전 규제식으로 입법할 수 없다는 것이 법경제학자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사전적 규제들은 재산권을 침해하고 출자, 투자, 거래와 같은 기업 활동의 자유를 제약한다. 재산권 보호와 기업 활동의 자유는 헌법적 가치로서 이를 제약하는 제도적 조치는 대단히 예외적으로 허용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재벌 대기업들이 계열사를 만들어 거래를 하게 된 것은 정부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 원래는 한 기업내에 사업부로 존재하던 영역을 고용증대를 이유로 계열화, 독립화 시켰던 것이니 당연, 재벌 대기업들은 자신들이 생산하는 제품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책임을 질 수 있는 계열사에 일을 맡길 수 밖에 없다.

이러한 문제를 재벌 총수일가의 사익편취로 보는 것은 온당치 않은데 정 문제가 된다면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라고 규제하기 보다는 차라리 본사와 합병해서 사업부로 되돌아가게 만드는 것이 국민 오해를 줄일 수 있는 길이다. 미국이나 유럽 선진국들이라면 한 기업내에 사업부형태로 거래하는 것을 독립시켜 계열사로 만든 후 거래한다고 이를 처벌하겠다는 발상은 경제민주화와 아무런 관련이 없을 뿐만 아니라, 재벌 대기업을 공공의 적으로 간주하겠다는 의사표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된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몸담았던 경제개혁연대는 논평을 통해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을 정할 때 총수일가의 간접지분도 모두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단순히 자회사 보유 지분율을 50%로 정할 경우, 지분 매각 등을 통해 빠져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지주회사 제도와 관련해서도 지배력 확대의 수단으로 악용된 측면이 있기 때문에 부채비율 제한을 100%로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과 경제개혁연대에 대해서는 불멸의 전설이 하나 있다. 국내 재벌대기업의 매출액을 한국 GDP와 비교해서 경제력 집중 문제를 제기했던 사건이었다.

하지만 김상조 위원장과 경제개혁연대는 GDP가 부가가치라는 점을 까맣게 잊었거나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비교하려면 GDP와 대기업들의 부가가치를 비교했어야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재벌 대기업 총수들을 불러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러면서 대기업들의 투자를 격려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통령의 입에서 나오는 다른 말은 여전히 ‘재벌개혁’이었다. 오른쪽 깜박이를 켜고 왼쪽으로 주행하면 사고가 난다. 문제인 정부의 경제는 시한폭탄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가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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