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아주 특별한 해부학 수업.... 몸을 기증한 사람들과 몸을 해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신간] 아주 특별한 해부학 수업.... 몸을 기증한 사람들과 몸을 해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 김민성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9.02.18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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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기증한 사람들과 몸을 해부하는 사람들의 ‘특별한’ 이야기 

해부학은 죽음을 통해 삶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전 세계에 의과대학 해부학 교실은 많지만, 타이완 츠지 의대의 해부학 교실은 매우 특별하다. 학생들은 단순히 해부학 지식을 전달받는 게 아니라 사람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생명을 이해할 수 있도록 배운다.

엄밀하게 진행되는 해부학 수업의 바탕에 자신의 몸을 기증한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 가족의 마음이 사랑의 뿌리를 내리고 있다. 저자 허한전 교수는 이 ‘특별한’ 수업을 고스란히 책에 담아냈다. 이 ‘특별함’ 덕분에 이 책에 수록된 열 번의 수업에서 배울 수 있는 ‘해부학 지식’은 어쩌면 ‘덤’일 수 있다. 해부학 수업이 끝나는 마지막 책장을 넘길 때 “사랑이 삶의 종착역”이라는 저자의 말에 깊이 공감하게 되기 때문이다. 츠지 의대의 이 ‘특별한’ 해부학 수업으로 여러분을 초대한다. 
 

해부대 위의 스승 그리고 인간에 대한 예의 

타이완 츠지 대학교 의과대학의 해부학 수업이 특별하기로 소문이 난 데에는 이유가 있다. 학교는 엄격한 기준을 세워 시신 기증 절차를 관리하고 교수와 학생들은 시신 앞에서 예와 정성을 다해 수업에 임한다. 기증된 순간부터 보관, 해부를 거쳐 다시 봉합되어 화장되기까지 ‘시신 스승’은 학생들에게 지식과 사랑을 전수한다. 이 스승들을 통해 죽음이 아니라 사랑이 삶의 종착역임을 학생들은 깨닫는다. 이 덕분에 1995년 이래로 츠지 대학교 의과대학의 ‘시신기증동의서’에 서명한 사람은 3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최근 들어 우리나라에서는 ‘인간에 대한 예의’를 떠올리게 하는 뉴스가 가끔 들린다. 어느 의사들은 커대버(해부용 시신) 앞에서 단체 사진을 찍고는 이 사진을 SNS에 올렸다고 한다. 심지어는 ‘커대버 성기 인증샷’을 버젓이 올린 의대생도 있단다. 사실, 해부용 시신 기증에 대해서는 정부 통계조차 없는 게 우리 실정이다. 그나마 해부학회의 자료에 따르면 해부용으로 기증되는 시신은 한 해 700여 구라고 한다. 단순 계산만 해도 츠지 의대 한 곳이 우리나라 전체보다 해부용 시신을 더 많이 기증받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저자는 책에서 열 번의 수업을 통해 ‘특별한 해부학 수업’을 열어 보인다. 인문과 해부 교육을 융합한 츠지 의대의 해부학 교실은 ‘시신 스승’뿐만 아니라 그 가족과도 소통하면서 인간에 대한 예의를 깍듯이 지키고, 학생들에게는 감동과 지식을 전수한다. 사실 자신의 몸을 기증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저자는 자신의 어머니와의 일화를 통해 시신 기증이 얼마나 무겁고 어려운 결정인가를 알고 있다. 그런 그가 ‘죽음’을 마주하는 동안 해부대 위에 ‘말없이’ 누운 ‘시신 스승’에게서 배운 큰 사랑과 희생의 가르침은 우리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세상을 떠나 싸늘하게 식은 시신을 존중할 줄 안다면 살아 있는 생명도 소중히 여길 것이다. 이는 훌륭한 의사가 반드시 갖추어야 할 조건이다.” 

해부대 위에는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다 

해부 순서에 따라 열 번의 수업으로 구성된 이 책은 곳곳에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시신 보관실에 안치된 “쭝셴 아빠”라고 불리는 어느 치과의사는 소아마비 장애가 있었지만 매주 벽지를 찾아다니며 의료 봉사를 했다.

8년간을 봉사하며 살던 쭝셴 아빠는 그만 병사하고 말았지만 자신의 시신을 기증하는 것으로 삶을 마감했다. 한편 결혼반지를 ‘반드시’ 약손가락에 끼어야 하는 이유를 해부학적으로 증명하기도 한다. 간이식 수술을 받아야 하는 아버지에게 네 아들이 서로 간을 주겠다고 해 결국 제비뽑기를 했다는 훈훈한 이야기도 있다. 술에 취한 사이 콩팥을 적출당했다는 미국의 어느 대학생이 겪은 끔찍한 이야기도 나온다. 그런가 하면, 저자는 출산한 뒤 자신의 태반을 포르말린으로 보존 처리해 실험에 사용하기도 했다. 

이러한 에피소드들은 단순히 재미만을 주기 위해 불쑥 집어넣은 것들이 아니다. 해부학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 수업 내용에 따라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이야기들은, 저자가 겪은 삶의 깊이와 생명에 대한 사랑을 증거한다. 저자는 이 이야기들을 통해 우리 마음을 때론 감동적으로, 때론 재미있게, 때론 가슴 아프게 봉합한다. 

해부학 지식과 상식의 절묘한 봉합 

일반 사람들에게 해부학은 복잡하고 신기하며 두려운 학문이다. 해부대 위에서는 도대체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교수들은 어떻게 가르치며 학생들은 어떻게 배울까? 이 책은 해부학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을 담은 첫 번째 수업으로 시작해, 손?가슴안?배 속과 생식기관?다리와 발?얼굴?뇌를 거쳐 마지막 수업인 봉합까지 진행된다.

저자는 열 번의 수업을 하는 동안 실제 인체를 섬세한 문장으로 해부한다. 해부학을 다룬 책에서 흔히 보이는 삽화가 이 책에는 없지만, 저자의 세밀한 묘사를 따라가다 보면 어떤 삽화도 보여주지 못하는 장면이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저자가 밝혔듯 이 책은 “해부학 지식과 일상이 만나는 부분을 조명”했기 때문에 의학을 전혀 모르는 독자들도 거리낌 없이 읽을 수 있다.

일례로 요골신경을 설명하면서 신혼부부에게 자주 생기는 ‘허니문 핸드’라는 질환을 소개하거나, 발가락뼈를 설명하면서 ‘하이힐’이 인체 구조에 얼마나 좋지 않은지를 소개한다. 첫 번째 수업을 거쳐 본격적으로 인체를 해부한 뒤 마지막으로 봉합까지 마치고 나면, 상식으로 알아두기에 좋은 일상의 해부학 지식을 충분히 갖출 수 있다. 저자가 이 책에서 미처 봉합하지 못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책장을 덮은 뒤 마음을 잔잔히 적시는 감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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