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절 100주년 특별기획] 3·1 독립운동 폄하하는 북한 김씨집단
[ 3·1절 100주년 특별기획] 3·1 독립운동 폄하하는 북한 김씨집단
  • 유동열 미래한국 편집위원·자유민주연구원장
  • 승인 2019.03.22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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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3·1 운동이 일어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3·1운동은 일본 제국주의의 정치적 억압과 경제적 수탈 및 민족말살정책에 항거한 민족 독립운동이었다. 이를 계기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었고 우리 선열들의 간고한 희생으로 독립투쟁을 통해 광복을 맞이하게 되었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해 문재인 정부는 북한에 3·1절 기념행사를 남북이 공동으로 주관할 것을 제의했으나 북한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지난 2월 21일 북한은 이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 명의의 전화통지문을 보내 3·1절 공동기념행사 개최는 어렵겠다는 입장을 공식 통보해왔다.

또한 올초 일부 언론에서는 3월 1일을 전후해서 김정은이 서울을 답방할 것이라고 보도했으나, 그후 김정은은 보란 듯이 2월 27~28일 트럼프와의 베트남회담 일정을 잡아 결국 오보였음이 밝혀졌다. 또한 문재인 정부는 상해임시정부 100주년 기념행사를 북한에 제의했다가 외면 당하기도 했다.

북한이 3·1운동을 어떻게 해석하고 평가하는지를 정확히 안다면 3.1절 남북 공동기념 행사나 그 기간 중 김정은의 서울 답방은 원천적으로 실현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가 이를 추진했다는 것은 북한의 역사관에 대해 무지함을 여실히 보여준 것이다.

3·1절 100주년을 맞은 1일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을 찾은 시민들이 길게 줄을 서서 관람을 하고 있다.
3·1절 100주년을 맞은 1일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을 찾은 시민들이 길게 줄을 서서 관람을 하고 있다.

3·1절 남북공동 기념행사, 북한 반대로 무산

북한에서는 3·1운동을 ‘3·1봉기’ 또는 ‘3·1 인민봉기’로 표현한다. 이는 인류역사를 계급투쟁적 시각에서 해석하는 공산주의 역사관을 대변하는 북한식 용어 표현이다. 북한판 력사사전, 정치사전, 조선전사, 조선대백과사전 등의 문헌에서 3·1 운동을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특히 북한은 김일성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조선노동당출판사, 1992판, 1999년 계승본판) 제1권 제1장에서는 ‘독립만세의 메아리’(35~50쪽)라는 소제목으로 총 15쪽을 할애하여 3·1운동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3·1운동을 통해 김일성 일가의 우상화를 기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3·1운동 평가

첫째, 북한은 3·1운동의 성격을 “1919년 일제의 야만적 식민지 통치를 반대하며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이룩하기 위하여 싸운 조선 인민의 전민족적 반일애국투쟁”(북한 력사사전 등)으로 규정하고 있다. 김일성전집 제3권에 의하면, 김일성은 3·1운동에 대해 우리 민족이 일본 제국주의자들에게 커다란 반격을 준 날이라고 치켜 세우고 있으나, 후술하는 내용에서 보듯이 실패한 투쟁으로 간주하며 폄하하고 있다.

둘째, 3·1 운동 당시 김일성 일가의 활약상을 날조하여 선전하고 있다. 당시 김일성의 아버지인 김형직이 혁명의 씨앗을 뿌려놓은 덕에 평양숭실학교의 애국적 청년학생들이 주동하여 3·1운동이 발생하여 거세게 투쟁했다는 것이다. 북한 <력사사전>(1973)에 의하면, “김형직 선생께서 뿌리신 반일애국사상과 혁명의 불씨는 3·1봉기를 계기로 이르는 곳마다 세차게 타번지였다. 김형직선생께서 키우신 애국적인 인사들과 청년학생들은 평양과 강동, 만경대와 중강을 비롯한 국내외의 여러 곳에서 봉기군중의 앞장에 서서 일제침략자들과 그 주구들의 죄상을 폭로 규탄하면서 원쑤들의 탄압을 박차고 완강하게 싸웠다. 투쟁은 료원의 불길처럼 전국 방방곡곡에 퍼져갔다”라고 선전하고 있다.

또한 김일성의 어머니(강반석)와 고모(김형복)의 활약상과 당시 8세에 불과했던 김일성이 독립만세를 부르며 시위에 참여했다고 선전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학자들은 북한에서 김일성이 3·1운동에 단순 참여가 아니라 이를 주도했다라고 선전한다는데 그런 북한 문헌을 찾아 볼 수 없다. 어린 나이에 김일성이 3·1운동에 참여해서 애국적 정열을 키웠고, 일찍부터 반일 애국주의 사상과 혁명적 계급의식을 강하게 키워나갔다는 정도이다. 북한의 역사 왜곡과 날조에 체계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도 이러한 확인되지 않는 주장은 삼가야 한다.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를 보면 “3·1 인민봉기는 면밀하게 계획되고 추진되었다… 그때 여덟살이었던 나도 다 꿰진 신발을 신고 시위대렬에 끼여 만세를 부르며 보통문 앞에까지 갔다...나도 형복 고모와 함께 어머니를 따라 만경봉에 올라가 만세를 부르며 밤늦게까지 있다가 내려오군 하였다.

어머니는 군중들이 마실 물과 햇불로 쓸겨릅대를 나르느라고 바쁘게 보내였다… 3·1 인민봉기는 나를 인민의 대오 속에 세워주고 나의 망막에 우리 민족의 참다운 영상을 새겨준 첫 계기였다. 내마음 속에 우레가 되어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던 독립만세의 메아리에 귀를 기울일 때 마다 나는 우리 인민의 백절불굴의 투쟁정신과 영웅성을 두고 다함없는 자부심을 느끼군 한다”(제1권 36-44쪽)

이는 북한 당국이 김일성 일가를 우상화하기 위한 역사날조의 일환이다. 북한 주장에 의하면 “김일성 일가는 대대로 조국의 독립과 인민의 자유와 해방을 위해 외래 침략자들과 싸워온 애국적이며 혁명적인 가정이다. 그의 증조부 김응우는 1866년 미국의 ‘샤만호’를 격침시키는 싸움의 선두에 섰던 열렬한 애국자이다. 그의 조부 김보현과 조모 리보익은 민족적 절개를 굳건히 지키고 침략자에 항거하여 싸운 애국자이다.

그의 아버지 김형직은 조국의 독립과 인민의 자유와 해방을 위해 전 생애를 바친 불요불굴의 혁명투사이며, 반일 민족해방운동의 탁월한 지도자이고, 민족주의운동으로부터 공산주의운동에로의 방향을 전환한 위대한 선구자이다. 김일성의 어머니 강반석은 자신의 모든 것을 조국의 광복과 여성해방을 위하여 다바쳐 싸운 열렬한 혁명투사이며, 공산주의 여성운동의 시초를 열어놓은 탁월한 지도자이다”라고 선전한다. 그러나 김일성의 가계는 역사적 문건들에 자신들의 이름을 남길 만한 행동을 하지 않고 평범한 서민의 삶을 살다가 간 보통 사람들이었다.

셋째, 북한은 3·1 운동이 실패할 수 밖에 없었다며 3·1봉기와 같은 혁명투쟁은 탁월한 수령의 영도와 혁명적 당의 지도가 없이는 어떤 혁명운동이든지 승리할 수 없다고 평가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북한에 3·1절 100주년 공동행사를 제안했지만 거절당했다. 북한은 3·1 만세운동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북한에 3·1절 100주년 공동행사를 제안했지만 거절당했다. 북한은 3·1 만세운동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3·1운동 실패 원인, 수령의 혁명적 영도 부재

북한 <력사사전>(1973)에 의하면 “ 3·1봉기는 인민대중의 혁명투쟁이 오직 탁월한 수령의 령도 밑에 옳은 투쟁강령을 내세우고 조직적으로 전개될 때만이 제국주의 침략세력에 결정적인 타격을 주고 승리할 수 있다”고 강변하고 있다. 또한 북한 김일성선집 1권(1963)에 의하면 김일성의 발언을 인용하며 “3·1운동이 실패한 가장 주요한 원인은 이 운동을 령도할만한 혁명적 계급과 혁명적당이 없는데 있었습니다”(50쪽)라고 주장한다.

김일성 회고록에서는 3·1 인민봉기를 통해 강력한 지도 역량이 없이는 어떤 운동이든지 승리할 수 없다는 교훈을 확인했다고 주장한다. 결국 김일성과 같은 탁월한 수령(현재는 김정은)의 영도 없이는 혁명이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조는 민족주의계열의 독립운동과 일부 사회주의계열의 항일운동을 부정하고 오로지 김일성이 영도했다는 항일무장투쟁만이 조선해방을 쟁취했다는 북한 주장을 정당화할 시 단골로 사용하는 논조이다. 김일성은 북한이 주장하듯이 독자적으로 조선해방을 위해 백두산을 근거지로 항일무장군사조직이라는 조선인민혁명군을 지휘하며 고난의 행군 끝에 간고한 항일무장투쟁을 주도하여 조선독립을 성취한 것이 아니라, 1920년대는 일부 공산계열의 비적활동을 1930년대에는 중국공산당을 위해, 1940년대는 소련공산당을 위해 일부 항일활동을 전개한 것에 불과함을 지적한다.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에 관련한 북한 당국의 선전은 철저한 역사 날조이다.

넷째, 북한은 3·1운동을 부르조아지 민족주의운동으로 규정하고, 부르조아지들의 무저항주의적이고 투항주의적인 입장과 사대주의적 외세의존의 방법으로 독립을 얻으려고 했기 때문에 실패했다고 주장한다. 특히 부르조아지 민족주의자들은 더 이상 민족해방운동의 지도세력이 될 수 없다며 조선독립에 대한 국제사회의 청원 등의 노력을 들어 3·1운동 지도세력을 사대주의 세력으로 매도하고 있다.

유동열    미래한국 편집위원·자유민주연구원장
유동열 미래한국 편집위원·자유민주연구원장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를 보면 “3·1운동을 지도한 상층인물들은 력사의 교훈을 망각하고 우리 인민의 앙양된 투쟁기세에 부합하지 않게 처음부터 운동의 성격을 비폭력적인 것으로 규정하였으며 독립선언서를 작성하여 조선민족의 독립의지를 내외에 천명하는 것으로 그치고 말았다. 그들은 운동이 더 이상 확대되어 민중이 주도하는 대중적 투쟁으로 전환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1권 40쪽)라고 강변한다. 이는 3.1운동의 비폭력성을 비판하며 이후 1930년대 김일성이 주도했다는 항일무장투쟁에 독립운동과 북한 정권의 정통성을 두려는 술책이다.

다섯째, 북한은 3·1운동에 대한 평가를 통해 반미투쟁을 선동하고 있다. 북한은 3·1운동이 실패한 이유는 수령(김일성)과 같은 주체적 혁명역량이 구축되지 못한데 주된 원인이 있지만, 또한 일제의 만행과 이 운동을 압살하기 위한 미국의 책동이 연관되어 있다고 주장하며 반미의식을 고취하고 있다.

북한 <력사사전>(1973)에 의하면 “ 당시 부르조아 사대주의자들이 그처럼 기대를 걸었던 미제국주의자들은 도리여 조선인민의 애국투쟁에 대한 일제침략자들의 류혈적 탄압과 학살만행을 공공연히 비호하고 고무추동하였다.

3·1봉기는 식민지 인민들의 해방투쟁이 혁명사상에 의하여 지도되고 민족주체적 력량에 의거하여 진행될 때만이 제국주의 침략세력을 반대하여 철저하게 싸울수 있으며 나라의 참다운 자유와 독립을 쟁취할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라고 주장한다. 이는 북한이 이른바 남조선혁명의 선결과제인 반미자주화투쟁을 고무하기 위해 3·1운동을 아전인수격으로 활용한 것이다.

3·1운동의 현대사적 발현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해 우리는 3·1운동 정신을 현 시기에 맞게 계승,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우리 선열들은 3·1운동을 기점으로 독립의 기틀을 만들어 광복을 성취했으며, 해방 직후 공산당세력의 간교한 건국 방해 책동을 막아내고 1948년 8월 15일 신생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했다.

당시 대한민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45달러에 불과해 전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 중 하나였다. 특히 6·25 남침전쟁을 3년 치르면서 전국의 산업시설과 국토가 초토화되어 대한민국은 외국의 원조 없이는 지탱이 안 되고, 희망이 없는 나라였다. 이러한 대한민국이 2000년대 이르러 세계 10위권의 경제 강국으로 우뚝 섰으며, 문화예술과 체육 분야에서도 높은 위상과 경쟁력을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21세기 선진 강국을 실현해야 할 시점에 문재인 정권에 이르러 이른바 ‘적폐청산’이라는 명분 하에 대한민국의 헌법적 가치인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법치주의 및 안보가 전면적으로 유린(蹂躪)되는 총체적인 위기 상황에 직면해 있다. 또한 북한 김정은은 전대미문의 3대 폭압세습통치를 강화하며 핵과 미사일 등으로 민족생존권과 국제평화를 위협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권은 반문명적인 폭압통치자 김정은과 손을 잡고 한반도의 평화를 논하고 검증되지 않는 평화쇼를 연출하고 있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하는 이 시점에 우리 자유민주진영은 3·1운동정신을 계승하여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체제를 수호하고 김정은의 폭정으로부터 북한 동포를 해방시켜 자유민주주의 통일을 성취하는 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3·1운동과 조국 광복과 근대화, 산업화, 자유민주 발전에 목숨과 땀을 바친 선열들에 대한 최소한의 의무이며 3·1정신의 현대적 발현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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