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반대 세력을 제거하라!” 뮬러 특검 보고서의 후폭풍
“트럼프 반대 세력을 제거하라!” 뮬러 특검 보고서의 후폭풍
  • 전경웅 미래한국 객원기자
  • 승인 2019.04.16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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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1월 대선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러시아 당국의 공모, 러시아 정보기관 개입 등에 대한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팀의 수사가 마무리됐다.

로버트 바 법무장관은 지난 24일(현지시간) 하원에 4쪽짜리 요약 보고서를 제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와 공모했다는 근거는 없다”는 내용이었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 지지층 사이에서는 “대통령이 이제 대대적인 ‘딥 스테이트’ 제거 작전을 실시할 것”이라는 소문이 퍼졌다.
 

뮬러 특검 보고서와 트럼프, 그리고 딥 스테이트

딥 스테이트는 당초 공산국가나 독재국가에서 표면에 보이는 정치인이 아니라 뒤에 숨어 나라를 좌지우지 하는 실세들이 조직화한 것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소련의 ‘노멘클라투라’, 중국 공산당의 원로들, 과거 미얀마를 수십 년 동안 장악했던 네윈과 지지 세력, 터키의 에르도안 지지 세력 등을 말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2017년부터 다른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11월 대선 레이스 시작 이후 “이 나라를 망치는 것은 ‘딥 스테이트’로 나는 그들을 박멸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주류 언론을 통해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언론들이 트럼프를 미치광이로 조롱하기 위해 딥 스테이트를 다루기는 했다. “딥 스테이트가 미국을 지배하고 있다”는 트럼프의 주장은 사실 믿기 어려운 음모론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트럼프가 대선에 승리한 뒤 그를 지지하던 사람들은 딥 스테이트 문제를 음모론에서 사실 영역으로 끄집어냈다.

2017년 3월 트럼프 대선 승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매체 브라이트바트는 딥 스테이트에 대해 보도했다. 브라이트바트는 “오바마 정부에서 일했던 일부 인사들이 트럼프 정부를 시작부터 방해하고 있다”며 “그들은 ‘딥 스테이트’와 연결된 자들”이라고 주장했다.

매체는 트럼프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인용, “러시아 해킹 의혹 등을 앞세워 진짜 스캔들을 감추려는 게 ‘딥 스테이트’의 목적”이라며 “오바마 정권 관계자들은 경찰국가들이나 하는 행동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조용한 쿠데타를 준비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스티브 킹 공화당 하원의원도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오바마 정권이 이끌고 있는 ‘딥 스테이트’가 권력을 잡는 것을 막아야 한다”며 “오바마 전 대통령이 퇴임 후에도 워싱턴을 떠나지 않는 것도 ‘딥 스테이트’ 활동과 관련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주장은 미국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 주장이 단지 트럼프를 지지하는 언론과 일부 정치인의 주장에 불과했다면 딥 스테이트 이야기는 그 해에 모두 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2017년 9월 미국의 대형 온라인 커뮤니티에 이상한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한국의 디시인사이드나 일간베스트저장소와 비슷한, 비주류 문화를 표방하는 ‘4chan’ 등에 ‘Qanon’이라는 필명을 쓰는 사람이 ‘딥 스테이트’ 조직, 그 중에서도 범죄조직인 ‘카발(Cabal)’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처음 사람들의 반응은 “무슨 미친 놈이냐”는 식이었다. 그러나 그가 주장한 것이 몇 달 뒤에 현실이 되고, 트럼프 대통령도 트위터 등 SNS를 통해 여기에 반응하면서 Qanon의 주장은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Qanon은 소위 글로벌리스트라 불리는, 세계정부주의자들이 사실상 전 세계를 장악하고, 언론과 금융을 조종해 정치인들을 좌지우지하고 있으며, 미국 또한 민주당에 파고 든 글로벌리스트가 전면에 나서면서 나라가 해체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Qanon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런 글로벌리스트의 척결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으며, 뮬러 특검 수사를 역이용해 글로벌리스트들이 민주당을 앞세워 만든 ‘러시아와의 공모설’을 무력화하는 동시에 그들을 공격해 모두 감옥에 집어넣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미국을 애국주의자들을 위한 국가로 만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러시아 공모설은 사실이 아님을 밝힌 뮬러특검 보고서는 트럼프에게 날개를 달아 주었다.
'트럼프-러시아 공모설은 사실이 아님을 밝힌 뮬러특검 보고서는 트럼프에게 날개를 달아 주었다.

Qanon의 등장 “트럼프, 범죄조직 ‘카발’과 전쟁 벌일 것”

Qanon의 이야기는 말도 안 되는 것처럼 생각됐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 이후 펼치고 있는 정책들을 보면 한결같이 글로벌리즘의 대척점에 서 있다. 멕시코 국경에 대형 장벽 설치, 이슬람 극단주의자가 득세하는 나라 국민들의 입국 금지, 대규모 이민 중단, 세계 기업들에게 미국 내 일자리 만들기 종용, 중국과 EU, 일본, 인도, 한국을 향한 무역적자 문제 제기, 해외미군 주둔비용 분담금 대폭 인상, 국방예산 인상을 위해 ‘진보적 정책기관’의 예산 삭감 등 모두 ‘패트리어티즘’에 부합하는 정책들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펼치는 정책과 행보를 본 미국인들은 Qanon의 말을 믿기 시작했다. 하지만 주류 언론과 지식인은 여전히 Qanon과 딥 스테이트 이야기를 외면했다. 대선 때 트럼프 캠프에서 활동했던 코리 르완도스키와 데이비드 보시는 2018년 11월 <트럼프의 적들: 딥 스테이트>라는 책을 출간했다. 이 책은 2017년에 출간했던 <렛 트럼프, 비 트럼프>의 후속작이었다.

코리 르완도스키와 데이비드 보시는 책에서 “백악관, 의회는 물론 주요 정보기관, 사법기관, 군 내부에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 추진을 방해하고, 그를 탄핵하려는 적들이 존재한다”면서 “이들은 트럼프가 집권한 뒤 2년 가까운 시간 동안 일종의 ‘레지스탕스 조직’을 형성해 활동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미 정부와 의회에 숨어 있는 세력들이 트럼프에 반발하게 된 이유는 ‘깊은 증오’라고 지적했다. 자신들이 트럼프로부터 직접 피해를 입은 게 아님에도 감정적으로 매우 미워한다는 설명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들 입에서 다시 딥 스테이트가 나오자 지지층들은 이것이 사실에 가깝다고 믿기 시작했다. 여기에 유튜브와 트위터 등에 UFO 신봉자, 음모론자 등이 가세하면서 Qanon의 주장을 중심으로 ‘트럼프 대 딥 스테이트’의 싸움에 대한, 다양한 주장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백미는 역시 딥 스테이트의 다른 이름 카발(Cabal)이다.

트럼프 지지자들이 유튜브나 블로그, 매체 기고문을 통해 밝힌 카발은 트럼프가 싸우고 있는 딥 스테이트 조직 가운데서도 수많은 범죄를 저지른 자들을 묶어 부르는 명칭이다. 카발은 아동 성착취, 인신매매, 마약과 무기밀매, 장기매매 등에 관여하고 있고, 이를 통해 엄청난 부와 권력을 쌓은 부자와 정치인, 이들의 비호 아래 정부에서 수십 년 동안 일하며, 실질적으로는 대통령이나 부통령보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정보기관 관계자들을 가리켰다.

Qanon은 트럼프가 2018년을 기점으로 카발을 해체하기 위한 작업에 돌입했다며 “조만간 트럼프에 반대하던 유명 정치인들이 체포·처형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유명 상원의원과 고위급 장성, 전직 정보기관장이 공개적으로 체포·처형된다는 주장은 거짓말 같았다. 그러나 Qanon이 지목한 정치인과 고위 군 관계자는 얼마 지나지 않아 숨졌고, 전직 정보기관장은 갑작스러운 지병의 악화로 응급실에 실려 가는 일이 생겼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일이 2018년 12월 초 바레인 소재 美해군 5함대 사령관 스콧 스터니 해군 중장이 관사에서 머리에 총을 맞은 시신으로 발견된 사건이다. 스터니 중장의 사망과 관련해서는 구구한 추측이 나왔지만 명확하게 설명되는 것은 없었다. Qanon의 지지자들은 그가 중동에서 3차 세계대전을 벌이려 했다고 주장했다. 아무튼 스터니 중장 사망 이후 ‘트럼프 대 카발의 전쟁’이 곧 시작될 것이라는 소문이 온라인에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9년 2월 미국 LA에서 일어난 일로 ‘카발 소탕작전’이 시작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Deep state의 주축인 미국의 기득권 언론을 트럼프가 땅에 묻는 풍자 만화(Co n s e r v a t i v e D a i l y News).
Deep state의 주축인 미국의 기득권 언론을 트럼프가 땅에 묻는 풍자 만화(Co n s e r v a t i v e D a i l y News).

야밤 LA에 미군 최정예 특수부대 예고 없이 출현

지난 2월 4일 오후 11시 15분(현지시간) LA 도심지인 윌셔 가 일대가 갑자기 통제됐다. 놀란 LA 시민들은 교통 통제를 하는 경찰들에게 물었지만 그들 또한 자세히 모르는 눈치였다. LA 시민들은 유튜브와 페이스북 등에 이 모습을 영상으로 생중계하기 시작했다. 얼마 뒤 검은색 군용 헬기 6대가 건물 사이를 날면서 도로에 착륙했다. 헬기에서는 군인들이 내렸다. 복면에 야간투시경, 방탄복을 입은 군인들은 섬광탄(테러 진압, 인질 구출 등에 사용하는 특수폭탄)을 터뜨리며 어떤 건물로 진입했다. 군인들의 방탄 헬멧, 야간투시경, 자동소총 등 장비와 이들의 몸놀림을 보면 특수부대로 보였다.

이 군인들은 몇 분 뒤 건물에서 나왔다. 총 인원은 27명. 이 가운데 16명은 소형 헬기 4대에, 11명은 중형 헬기에 탑승하고 사라졌다. 중형 헬기에 타던 군인 가운데 두 사람은 손에 커다란 가방을 들고 나왔다. 제보를 받은 LA지역 방송국은 놀라서 헬기까지 띄워 생중계했다. 헬기와 군인들이 화제가 되자 몇 시간 뒤 지역 경찰과 미군은 “육군의 단순한 항공 시뮬레이션 훈련”이라며 “오는 9일까지 LA 일대에서 이와 비슷한 훈련을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논란과 관심은 줄어들지 않았다. 군사 전문가들은 LA 도심에 나타난 소형 헬기는 MH-6 리틀버드, 중형 헬기는 MH-60S 나이트 호크 또는 MH-60M 블랙호크라고 분석했다. 그리고 이런 기종을 쓰는 부대는 미 육군 160특수작전항공연대(160th SOAR)라고 지적했다. 이들의 정체를 놓고 다시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1주일이 지난 뒤 대충 결론이 나왔다. 군인들은 합동특수전사령부(JSOC) 육군 75레인저 연대 소속 정찰중대 또는 1특전단 델타 분견대(1st SFOD-D, 일명 델타 포스), 해군특수전연구개발단(DEVGRU, 일명 네이비실 6팀) 소속, 헬기는 JSOC에 배속된 합동항공부대(JAV)일 것이라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이처럼 LA 도심에 나타난 특수부대의 정체에 대해서는 의견이 모아졌지만, 대체 왜 나타났는지, 무슨 훈련이었는지는 전혀 파악되지 않았다. 군에 대한 문민통제가 강력한 미국에서는 예고 없이 도심에서, 그것도 자정 무렵에 특수부대 훈련을 벌이는 경우가 거의 없다.

전직 레인저 출신 군사전문기자와 항공전문매체 ‘더 애비에이셔니스트’ 설립자는 “2012년 4월 시카고, LA, 뉴욕, 워싱턴에서 특수부대가 헬기를 동원한 훈련을 실시한 적이 있었고, 가장 최근에는 2018년 4월 뉴욕 맨하튼에서 야간 훈련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적지 않은 미국인들은 이런 설명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카발과 관련이 있다고 단정 지었다. 그 근거는 특수부대가 진입한 건물의 소유주, 그가 운영하는 기업들의 목록이었다. 해당 기업들은 과거 각종 정치적 범죄와 국제범죄와의 연루 의혹을 받았던 인물 소유였다. 심지어 CIA의 비밀공작에 연루됐다는 의혹도 있었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이 드디어 카발 조직 소탕작전에 돌입했다”는 주장이 온라인과 SNS에 넘치기 시작했다.

Qanon은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에야 정보기관과 군 수뇌부 설득에 성공해 ‘카발’ 소탕작전에 나서기로 했다”면서 “앞으로 태풍이 불어 닥쳐도 선량한 미국인들은 너무 놀라지 말라, 트럼프를 중심으로 한 사람들이 미국의 주권을 미국인에게 돌려줄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그는 “트럼프에 동조하는 정보기관과 군 지휘관들은 대통령 명령을 기반으로 특수부대와 국방부 계약업체(민간군사업체)를 동원해 ‘카발’ 조직원을 소탕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LA 도심에 등장한 특수부대가 카발 소탕작전을 폈다는 주장은 이를 근거로 한 것이었다.

뮬러 특검 보고서 나온 뒤 더 거세지는 딥스테이트-카발 음모론

지난 2월 이런 일이 일어난 지 두 달이 채 안 돼 뮬러 특검 보고서가 나오면서 Qanon의 주장을 믿는 사람은 더 늘어나는 추세다. 이들은 Qanon 문구가 새겨진 옷과 모자를 쓰고 나오는가 하면,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 등에 ‘트럼프-러시아 공모설’을 조롱하는 글을 올리고 있다. 이와 함께 민주당 내에서도 좌익 성향의 정치인들, 기득권 정치인들, 이들을 비호하는 주류 언론들을 향해서는 “너희는 곧 무너질 것”이라고 비난을 퍼붓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 버락 오바마, 조지 소로스, CNN,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등이 그 대상이다.

하지만 이 주장이 다른 나라 언론을 통해서는 여전히 전해지지 않는 이유는 UFO 음모론을 주장하는 사람들과의 관계 때문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코리 굿’과 ‘데이비드 윌콕’이다. 이들은 “딥 스테이트, 특히 카발이 UFO의 존재를 숨기고, 인류를 속이고 있으며, 트럼프는 여기에 반대되는 외계인 측과 손을 잡고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현재 아랍어, 러시아어, 스페인어, 한글, 일본어 등 세계 각국 언어로 번역돼 유튜브와 SNS를 통해 전 세계로 퍼지고 있다.

코리 굿과 데이비드 윌콕은 미국 전역을 돌며 강연을 한 적도 있다. 이들이 대중 강연을 하거나 동영상 속에서 “여러분에게 트럼프를 지지하라고 말하지는 않겠지만, 그가 지금 우리 대신 ‘카발’과 싸우고 있고, ‘카발’이 숨기려는 비밀을 세상에 밝히려 노력 중”이라고 여러 차례 이야기한다.

Qanon의 주장이나 트럼프 대통령이 말한 카발이 실존하는지는 알 수 없다. UFO 또한 마찬가지다. 어쨌든 지금 미국에서 유행하는 음모론과 트럼프 대통령, 그리고 반대파 간의 갈등은 점점 더 흥미진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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