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보는 눈] 국민연금과 페이비언 사회주의
[시대를 보는 눈] 국민연금과 페이비언 사회주의
  • 이종윤 미래한국 상임고문 한국기독교학술원 원장
  • 승인 2019.04.19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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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유럽에는 무수한 사상이 등장했다. 그중 어떤 것은 살아남았고 어떤 것은 쓰레기통에 버려졌다. 19세기에 등장했던 사회주의 사상 가운데 마르크스주의와 함께 살아남은 사상이 페이비언 사회주의라 할 수 있다.

마르크스는 1850~80년대까지 유럽 사회의 사회주의 운동에 큰 영향을 끼쳤고 그 후 러시아·중국의 혁명 과정에서 전 세계로 흩어져 20세기 역사는 마르크스를 빼놓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다.

1990년대 소련과 동구권의 붕괴, 중국의 자본주의적 개혁 등으로 마르크스사상은 한 번의 성장과 쇠퇴의 사이클을 끝낸 상황이 되었다. 페이비언 사회주의는 1884년 결성된 이후 사회 전면에 한 번도 등장한 적이 없고, 사람들의 관심을 끈 적도 영향력을 미치지도 못했지만 21세기에 접어든 지금 여전히 활력을 유지하고 있다.
 

이종윤 미래한국 상임고문 한국기독교학술원 원장
이종윤 미래한국 상임고문 한국기독교학술원 원장

영국 노동당 전 토니 블레어 총리, 고든 브라운, 로빈쿡, 잭스트로 등이 모두 페이비언협회(Fabian Society) 멤버들이고, 이들은 “1온스의 이론에 1톤의 실천을 결합”시키려 했다는 비난을 받을 정도로 이론보다는 실증과 실천을 강조했지만 그 스스로 권력을 잡으려 하거나 회원 수를 늘리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전후 복지국가의 전형은 영국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 기초를 마련한 W. H. 베버리지도 페이비언 사상에 영향을 받았고 페어비언이란 말은 로마제국 막시무스(Quintus Fabius Maximus)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그는 소모전과 지연전술에 뛰어난 인물로 혁명 같은 전면전을 통해 단번에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려 하지 않고 장기간 노력으로 성과를 거들 수 있다는 견해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

침투작전(Permeation)이라는 ‘가랑비에 옷 젖는 것처럼 꾸준한 설득과 대화를 통해 자발적 동의를 중요 방식으로 삼는 것’이 페이비언 사회주의다. 추상적이고 이론적인 설득보다는 실증적으로 밝혀진 사실을 강조했다. 밝혀진 사실 앞에 양식 있는 사람이라면 설득될 것으로 봤던 것이다. 땅콩사건으로 항공기 회항, 총수 일가의 갑질행위 등을 방송 매체를 통해 연일 비난하면서 재벌 총수의 퇴진을 국민에게 설득(?)했고 마침내 국민연금을 동원해 개인기업을 국유화 하는 일에 성공(?)을 한 것이다.

페이비언은 시민 교육을 유난히 강조하는데 점진주의적 방법의 불가피성에 대한 근거도 여기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들의 주장은 대중주의도 민주적 귀족주의도 아니고 엘리트 위주의 민주주의라고 비난받기도 하지만 제도개혁과 인간개조라는 순환 논법에서 탈퇴해 점진적 제도 개혁과 인간 육성을 동시에 수행해 나갈 때 목표로 하는 사회주의에 안착할 수 있다 한다.

페이비언은 생산과 기업을 점진적으로 국유화(Nationalisation), 시영화(Municipalisation)할 것을 주장하는 동시에, 경제적 지대(Economic rent)를 모두 조세로 징수하고 시민을 위해 사용한다고 주장한다. 일종의 시장 사회주의인데 국유화론에 문제점은 없는가? 대의제 자치정부를 국유화, 시영화를 통해 산업민주주의로 끌고 간다는 주장이다. 이들은 시장과 국가의 역할로 포괄적 원칙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자신을 포함한 인간이 진정 행복해지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이들이라 평한다면 지나치게 미화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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