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에 대못 박는 국가교육위원회
교육에 대못 박는 국가교육위원회
  • 심임섭 복잡성교육연구소 소장
  • 승인 2019.04.24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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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년간 국가교육위원회 설립 관련 정책 연구 보고서나 토론회 발제문들은 하나같이, 지금 정부가 추진하는 것과 같이 교육정책 결정에서 초월적 권력을 행사하는 그런 외국의 국가 수준의 교육위원회 사례는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진보 교육계가 뽕 맞은 것처럼(?) 사모하는 핀란드의 경우, 있었던 국가교육위원회도 교육문화부 산하 국가교육청 이사회로 축소해 집행기관의 역할을 하는 쪽으로 2017년 개혁했다. 프랑스나 미국, 일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명칭은 다르지만 국가 수준의 그 어느 교육 관련 위원회도 교육을 담당하는 중앙행정부 산하 자문기구로 그 역할과 소임을 다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정부여당과 국가교육회의(의장 김진경, 전 전교조 정책실장, 노무현 정부 대통령 비서실 교육문화비서관)가 추진하는 국가교육위원회는 이러한 객관적 사실과 달리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대통령직속 국가교육위원회 설치에 대해 우려하는 것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은 위원회식 교육, 포퓰리즘으로 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대통령직속 국가교육위원회 설치에 대해 우려하는 것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은 위원회식 교육, 포퓰리즘으로 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추진하는 쪽에서는 정파를 초월한 중장기적 교육정책 수립의 필요성을 주장하면서 실제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일관되게 추진된 핀란드의 교육정책 사례를 들기도 하지만 핀란드는 인구 수백만의 소국이다. 정파를 초월한 정책(bipartisan)을 관철시키는 데 드는 비용이나 이념 갈등이 북한이 한쪽에 버티고 있는 5000만 인구의 대한민국과는 비교가 안 된다. 국가교육위원회가 정파를 초월한 교육정책기구가 될 것이라는 생각은 너무 순진한 생각이다.

또한 정치적 논리가 아닌 교육적 논리가 작동하는, 교육의 전문성과 자주성을 보장하기 위한 기구라고 하지만, 실제 법안을 보면 국가적 수준에서 한편에 기획하는 국가교육위원회와 다른 한편에 그에 기속되는 인적 물적 교육자원을 배치하는 이분법적 구도가 너무도 확연하다.

이것은 적나라한 몽상적 테일러리즘(Taylorism)일 뿐이다. 테일러가 20세기에 기획한 과학적 관리주의는 머리는 경영자가 쓰고 그에 따라 그대로 인적 물적 자원이 움직여 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결국 이 정부는 변화의 속도가 빠르고 예측이 불가능한 4차 산업혁명의 소용돌이가 몰아치는 21세기에 한물간 20세기 아젠다인 국가교육위원회를 구상하고 있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시대에는 중장기적 정책이나 정책의 단절이 문제가 아니다. 반대로 정책의 역동성과 민첩성 및 대응성이 문제가 된다. 복잡성의 시대인 4차 산업혁명시대는 우리가 무엇을 모르는지도 모르는 시대다. 교육정책의 개입 지점(entry point)도 모르게 되는 시대에 웬 거대한 중장기적 국가교육위원회인가. 이는 무거운 바위를 교육시스템 위에 올려놓는 꼴이다.

특이하게도 국가교육위원회 설립에 대해서만은 한국교총과 전교조, 시도교육감들이 합심일체가 되어 국회 교육위원회 의장을 찾아다니면서까지 그 설립에 적극적이다. 이는 국가교육위원회가 교육계의 기득권을 강화하는 거대한 성 쌓기임을 반증하는 것이다. 한국교총과 전교조, 시도교육감 등 교육계는 거대한 교육의 사일로 스트럭처(기득권 보장 및 유지 장치)를 만드는 데 마다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안 그래도 지금 대한민국의 교육 시스템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기득권의 거대한 캐슬이건만, 그 거대한 성을 창조적으로 파괴하려고 하기보다는 더 높게 성벽을 쌓고자 하는 것이다.

국가교육위원회 설치와 함께 나오는 말이 시도단위로의 임파워먼트다. 그러나 임파워먼트 그 자체만으로는 의미가 없다. 진보교육감들이 초기부터 주장한 그러한 임파워먼트는 글로벌한 정책 수준에서 보면 이제는 한물간 얘기다. 국가교육위원회와 같은 초월적 하이어라키와 칸막이를 놔둔 상태에서의 임파워먼트는 그저 위에서 기획하고 설계한 것에 너의 영혼까지 바쳐서 알아서 기라는 것으로 그 효과는 커녕 조직의 비효율성과 비효과성 등이 이미 드러났기 때문이다. 진보교육감들의 학교 혁신(?) 정책에 대한 상당수 현장 교사들의 불만과 반감도 이러한 철지난 정책의 강압적 시행이 그 핵심적 이유이다.

국가교육위원회를 만드는 이유가 정권이 바뀌거나 하여도 쉽게 뒤집지 못할 중장기적 정책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는데, 4차 산업혁명시대에 필요한 국가의 역할은 민첩한 정책 결정이지 중장기적으로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여 쉽게 뒤집지 못할 정책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국민의 의견조차도 끌리고 쏠리고 들끓기(Clay Shirky, Here Comes Everybody) 때문이다. 따라서 다른 나라들은 국가기구를 가급적 초월적 하이어라키와 그에 통제되는 테일러리즘식 칸막이를 줄여 행정과 정책의 역동성과 대응성 및 능률화를 꾀하는 방향으로의 혁신을 위해 분투하고 있다.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3월 26일 대통령 직속기구로 국가교육위원회 설치법안을 발의했다.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3월 26일 대통령 직속기구로 국가교육위원회 설치법안을 발의했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은 위원회식 교육, 포퓰리즘으로 갈 것

국가교육위원회를 만들려고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일부 연구보고서에 언급된 것처럼 교육부를 염두에 둔 반관료주의, 반신자유주의라는 정서이다.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이 아닌 안티 정신에 의한 구상은 결국 대립적 구도에 모든 것을 가두게 되고, 새로운 시스템에 대한 창조적 사고를 가로막아 20세기의 시스템으로 회귀하는 결과가 되기 마련이다. 국가교육위원회 정책연구 논의가 본격화된 2012 경기도교육청 연구보고서에도 핀란드의 20세기 철지난 정책이 시사하는 바가 많다고 서술되어 있는 것이 회귀적 퇴행적 사고의 예이다.

염려되는 것 중의 하나는 안 그래도 아님 말고 식의 정치적 결과에 대한 책임 윤리가 박약한 한국 정치에서 정권을 초월한 국가교육위원회 설치 및 운영은 교육정책 결과에 대한 책임 윤리의 실종을 가속화 할 것이다.

민주주의와 지방자치의 발달, 4차 산업혁명, 저출산 고령화 사회, 남북관계 변화 등에 대비해서 중장기 교육정책을 수립할 독립적인 국가교육위원회가 필요하다고 하나, 중장기적 계획 역시 정부의 책임 하에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다만 중장기계획과 함께 민첩하고 역동적인 거버넌스를 확립하기 위한 혁신이 이뤄져야 한다. 정부 조직은 집행만하고 정치적으로 책임질 수 없거나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초월적 기구가 중장기적 기획을 수립한다는 것은 또 다른 형태의 책임 정치 회피이다. 지난번 대입공론화위원회와 같이 하청에 재하청이 이뤄지면서 책임 회피와 포퓰리즘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와 같이 이번에 문재인 정부가 국가교육회의를 통해 추진하는 국가교육위원회 입법안은 철지난 정책을 국가적 수준에서 관철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안민석, 설훈 등 더불어민주당 의원 44명과 바른미래당 의원 1명이 발의하기 전에 의견을 묻기 위해 각급학교에 내려 보낸 법안에 의하면 사실상 대한민국의 모든 교육정책을 국가교육위원회의가 심의·의결하도록 하고 있다.

제12조(소관 사무) ① 위원회는 다음 각 호의 사무를 수행한다.

1. 미래 사회 대비 국가 교육 비전 및 중장기 계획 수립에 관한 사항

2. 국가 인적자원개발정책, 학제, 교원정책, 대학입학정책의 장기적 방향 수립에 관한 사항

3. 교육과정의 연구·개발·고시에 관한 사항

4. 지방교육자치 강화 지원 및 조정, 교육과 지역사회 연계 지원에 관한 사항

5. 교육정책에 대한 국민 의견 수렴에 관한 사항

6. 대통령, 중앙행정기관의 장, 시·도교육감 등이 요청하는 자문에 관한 사항

7. 그 밖에 다른 법령에 따라 위원회의 소관으로 규정한 사항

나아가 교육부는 물론 지방교육자치 단체도 국가교육위원회의 기본 계획에 따라 소관 사무를 추진하도록 하고 있다.

제13조(국가교육기본계획의 수립 등) ⑤ 관계 중앙행정기관의 장 및 지방자치단체의 장은 기본계획에 따라 소관 사무에 대한 연도별 시행계획을 세우고 추진하여야 하며, 매년 시행계획에 따라 추진한 전년도의 실적과 다음연도의 시행계획을 종합하여 제출하여야 한다.

⑥ 위원회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매년 기본계획의 이행상황을 중간 점검하고 그 결과를 공개하여야 한다.

제14조(교육부장관 등과의 관계) ① 교육부장관은 제12조제1항제2호의 사무의 주요 사항의 변경에 관하여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쳐야 한다.

② 교육부장관, 관계 중앙행정기관의 장 및 지방자치단체의 장은 직접 관할하고 있는 교육 정책에 대하여 위원회의 심의 결과를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따라야 하며, 심의 결과대로 조치하기가 곤란하다고 판단되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위원회에 재심의를 요청할 수 있다.

견제력 없는 국가교육위원회를 대통령이 장악

결국 이 안이 통과되면 교육에 관한 초월적 권력을 행사하는 국가기구가 대통령 소속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다른 나라들은 하이어라키와 칸막이를 없애고 임파워먼트를 넘어 애자일(agile)한 조직을 만들어 융복합적으로 복잡성이 증대하여 예측이 불가능한 4차 산업혁명시대에 민첩하게 대처하려고 하는 국가기구의 혁신을 위해 분투하는데 이 정부는 지금 불필요한 교육 사무의 중앙 권력 강화와 기득권 유지를 위한 거대한 공룡을 또 하나 만들려 하고 있는 것이다. 저 일을 다 하려면 사무처 직원과 각종 전문위원, 자문위원 등 최소한 수백명이 필요하게 된다.

국가교육위원회가 교사 학생 학부모 시민단체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한다고 한다. 그래서 민주적이라고 한다. 그러나 의견 수렴이라는 것이 그 내막을 들여다보면 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고 합의보다는 오히려 의견 대립이 병치되는 경우가 더 많다. 복잡성과 다양성의 시대에는 더더욱 그러하다. 의견의 합의보다는 다양한 생각들을 병치시켜 나가면서 조화와 균형, 견제의 역동성 속에서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것이 최근 정책의 추세이다.

각계각층의 의견이 다 다르고 생각이 다르고 이해관계가 다른데 그걸 수렴한다는 것은 결국 수렴하는 권력자의 생각을 관철시키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이른바 인민민주주의, 인민위원회 아니면 포퓰리즘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교과서에서 자유민주주의 삭제하는 것이 매우 위험한 것이다. 조화와 균형과 견제가 작동하지 않으면 그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어느 한 세력이 권력을 독점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민주주의다. 그래서 3권이 분립되고 나름 한계가 있지만 대의민주주의가 세계적인 민주주의국가에 적용되고 있는 거 아닌가.

김진경 국가교육회의 의장이 작년 말 개최된 국가교육위원회 경청회에서 국가교육위원회는 집안 할머니처럼 권력은 없지만 각계각층의 의견을 듣는 역할을 할 것이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 그러면서 교육과정을 만들어 고시하는 일을 교육부에서 가져오겠다고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얼마나 모순되고 위선적인 워딩인가? 실제로는 교육정책과 관련된 초월적 권력을 행사하는 그런 법안을 구상하면서 권력이 없는, 여러 의견을 들어주는 집안 할머니에 비유하다니. 이건 시인의 상상력이 아니라 국민에 대한 기만이라고 본다.

무슨 욕심과 생각으로 그렇게도 국가교육위원회를 만들려고 하는지 모르겠으나 정 국가교육위원회를 만들어 자리를 만들고 또 그 자리를 차지하고 싶으면 중장기 교육정책과 대한민국의 교육과정에 대한 심의 의결기구가 아니라 그때 그때 교육 현안에 대해 유연하게 자문하는 adhocracy 성격의 자문기구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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