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진단] 나라 망치는 재정중독과 추경만능
[전문가진단] 나라 망치는 재정중독과 추경만능
  • 최 광 미래한국 편집고문·전 보건복지부 장관
  • 승인 2019.04.24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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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경정예산 편성이 공식화되었다. 당초 추경편성 계획이 없다더니 지난 3월 문재인 대통령이 ‘미세먼지대책용 추경’을 언급하고 여당 당직자가 추경편성 불을 지피더니 정부 입장이 바뀌었다. 3월 말 나온 국제통화기금(IMF)의 추경편성 권고와 최근 산불 사태가 추경편성에 쐐기를 박는 역할을 했다.

금년 본예산 집행이 세 달 밖에 안 된 상태에서 추경편성 논의가 이뤄지는 것은 작년에 이어 참으로 특이하다. 작년의 경우 추경예산이 4월 6일 제출되었다. 정부의 판단대로 4월 말 올해 추경예산이 제출되면 추경예산의 제출일이 직전 회계연도 결산보고서 제출일보다도 두 해 연속 앞서는 기현상이 문재인 정부 들어 발생하는 셈이다. 작년 가계부도 다 정산하지 않은 채 올해 예산을 늘리는 작업을 하려 한다.

산 편성을 위한 당정협의를 4월 18일 국회의원회관에서 가졌다
선심예산 편성이라는 비난의 소리에도 불구하고 더불어민주당은 2019년도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위한 당정협의를 4월 18일 국회의원회관에서 가졌다

국가 재정운용의 형식과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대통령과 정치가들의 즉흥적 판단에 의해 짜깁기 추경이 구체화되고 있고 전문가 관료들은 중심을 잡지 못하고 허둥대고 있다. 미세먼지도 일자리도 선제적 경기 대응도 모두 핑계이다. 올해 본예산에 미세 먼지예산이 1조 9000억 원이나 들어 있다. 일자리 예산도 이미 본예산에 23조 원이나 편성되어 있다. 정부는 선제적 경기 대응과 일자리를 위해 추경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경제가 견실한 흐름”이고 “고용 상황이 나아졌다”고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스스럼없이 하고 있다.

당초 미세먼지대책을 두고 추경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더니 이후 경기부양, 포항지진 후속 대책, 강원도 산불 피해 복구 등이 줄줄이 추가되면서 추경의 진짜 목적을 가늠하기 어렵게 되었다. 국민들은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금년 추경편성은 한마디로 막가파적 내용이 막무가내로 이뤄질 모양이다. 막가파적이라 함은 내년 총선에 올인 하는 정치적 추경이란 뜻이고 막무가내라 함은 추경편성 자체가 탈법적이고 그 내용에서 타당성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말이다.

추경편성을 논하기 전에 현 정부 들어 재정지출이 얼마나 확대되고 있는지를 수치를 가지고 먼저 살펴보자. 언론과 전문가들은 금년 2019년 예산을 ‘슈퍼 예산’이라 하는데 그 이유는 금년도 예산액이 종전에 비해 이례적으로 크게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그 내용을 재정지출 규모, 민자사업 규모, 조세지출 규모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선거를 위한 원칙 없는 선심성 재정확대 우려

2019년 본예산에서 총지출은 469.6조 원으로 2018년 본예산(428.8조 원) 대비 9.5%, 추경(432.7조 원) 대비 8.5% 증대한 것이다. 2005년부터 2018년까지 총지출 규모가 연평균 5.7% 증가했던 사실에 비춰보면 그리고 금년 예상 경제성장률이 2.7%인 점을 고려하면 2019년 총지출 증가율 8.5%는 참으로 높은 것이다. 그래서 금년 예산을 슈퍼 예산이라 불린다.

일반 국민들이 잘 모르는 사업이 하나 있다. 정부의 사업인데도 정부 예산으로 하지 않고 민간에 외상으로 사업을 발주하는 것이다. ‘사회기반시설에 대한 민간투자법’에 따른 임대형 민자사업(BTL, Build-Transfer-Lease)이 그것이다. 민자사업은 민간이 자금을 투자하여 사회기반시설을 건설한(build) 후 국가나 지자체로 소유권을 이전하고(transfer) 일정 기간 후 정부로부터 투자비를 회수한다. 상당한 규모의 사업이 추진되고 있는데도 현재 투입되는 예산이 없으므로 정부지출 또는 국가채무 통제를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2019년 실시할 임대형 민자사업의 총한도액은 4238억 원으로 2018년에 비해 무려 20.4%가 증가한 규모이다.

정부 예산의 일반적 지출을 세출이라 하는데 학술적 용어로는 직접지출(direct expenditures)이라 한다. 이 직접지출에 대비하여 조세지출(tax expenditures)이 있다. 조세지출이란 조세감면·비과세·소득공제·세액공제·우대세율 적용·과세이연 등 조세특례방식으로 납세자에 대한 재정지원을 목적으로 발생하는 국가 세입의 감소를 말한다. 조세지출의 경제적 효과는 일반적 직접지출과 똑같다. 2019년 조세지출액은 47.4조 원으로 추정되는 바 직접지출액의 10%에 달하는 방대한 규모이다.

2019년 정부의 실질적 총지출은 직접지출 469.6조 원, 민자사업 0.4조 원, 조세지출 47.4조 원 하여 도합 517.4조 원에 달한다. 재정운용은 국정운영의 핵심이다. 재정정책은 여타 정책보다 훨씬 모범적이어야 하고, 형식과 내용에서 원칙과 정도(正道)를 더 따라야 한다. 그런데 현 정부의 경우 재정운영에서 원칙과 정도를 전혀 찾아보기 힘들다. 정책 목표와 수단 간에 제합성이 없고, 재정규율(fiscal discipline)은 찾아보기 힘들고, 재정건전성이란 말은 논의에서 사라진 채 재정 중독과 추경 만능에 빠져 있다.

현 정부 들어 2017년 고용시장 침체에 따른 일자리 창출과 서민생활 안정 명목으로 11.2조 원 규모의 추경을 편성했고 그리고 2018년에는 구조조정 업종 및 지역 대책 명분으로 3.8조 원의 추경하여 이미 2번이나 추경을 편성한 바 있다.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기획재정부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추경 규모 등 현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홍남기 경제부총리 / 연합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기획재정부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추경 규모 등 현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홍남기 경제부총리 / 연합

이번 4월 추경이 편성되면 집권 만 2년 만에 추경을 세 번 편성하는 새 기록을 세우게 된다. 밖으로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우나 추경을 하는 실제 속내는 재정지출 확대를 통해 경제성장률의 지속적으로 하락을 막아 경제 실정(失政) 심판론을 잠재우고, 저소득층에게 퍼주기를 함으로써 내년 총선에서 패배를 막아 정권 연장의 발판을 마련하려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정치적 목적으로 추경을 추진하다 보니 웃지 못할 상황이 구석구석 건수마다 벌어지고 있다.

금년 추경에 어떤 기상천외의 사업들이 등장할지 사뭇 기대된다. 작년 3.8조 원 규모의 ‘일자리 추경’ 때 모든 부처가 대상 사업 즉 용처를 찾지 못해 몸살을 앓았다. 노인정 공기청정기 보급, 삼도수군통제영 체험 존 조성 등 급하지도 않은 사업들이 억지로 대거 추경에 포함되었다. 배정된 예산을 쓰지도 못한 사업도 수두룩하다. ‘스마트관광 활성화 사업’, ‘전통시장 주차 환경 개선 사업’, ‘고교 취업 연계 장려 사업’ 등의 경우 집행률이 3~24%에 불과하다고 한다. 사실 국민 세금을 ‘눈먼 돈’으로 뿌리는 것도 당해 공무원으로서도 무척 어려운 일이다.

안보도 경제도 재정도 어느 하나 반듯하게 꾸려간다는 확신을 국민에게 심어주지 못하고 있는 현 정부는 재정만능 중독증에 걸려 참으로 황당한 명분들을 내세우며 각계각층에 선심성 예산 퍼주기로 표를 구걸하고 있다. 일자리를 파괴하는 정책을 펼치면서 일자리 창출을 위해 국민 세금을 투입하는 등 병 주고 약 주는 온갖 정책들이 펼쳐지고 있다.

현 정부를 탄생시킨 촛불세력의 구호로 자주 등장했던 것이 헌법 제1조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공화국의 핵심적 가치는 인치(人治) 즉 사람에 의한 지배가 아닌 법치(法治) 즉 법에 의한 지배이다. 현 정부에서 법치는 법조문에서만 존재한다. 정부와 여당이 재정운영에서 탈법과 위법을 되풀이하는데도 야당 정치인들마저 자신의 지역구 사업에 매몰되어 공생하고 있다.

추경편성 대상으로 정부 여당에 의해 제시된 사업을 망라해 보면 미세먼지 대응, 산불 피해 복구, 지진피해 보상, 위기지역 지원, 수출·투자 활력 제고, 서민생활 안정 등이다. 어느 것도 추경편성 요건에 해당되지 않는다. 국가재정법의 추경편성 요건은 ▲전쟁이나 대규모 자연재해가 발생한 경우 ▲경기침체, 대량실업, 남북관계의 변화, 경제협력 등 대내외 여건의 중대 변화가 발생하는 경우 ▲법령에 따라 국가가 지급해야 하는 지출이 발생하는 경우 등이다. 정부 여당이 내세우는 사업들 중 어느 사업이 추경편성 법적 요건에 부합하는가?
 

늘어만 가는 정부예산
늘어만 가는 정부예산

예비비로도 충분한 예산, 무리한 추경 편성 필요 없어

현재 거론되고 있는 추경편성 대상 사업들 거의 대부분이 이미 편성된 본예산의 예비비로 충당하거나, 금년 본예산에 포함된 것을 일부 전용하거나, 아니면 시간을 두고 내년 본 예산에 반영해 나가도 충분하다고 본다.

예비비는 헌법에 근거하고 국가재정법에 규정되어 있는 바 예산의 편성 및 심의 시점에서 예측할 수 없는 지출에 충당하기 위해 총액으로 국회의 승인을 얻어 세출예산에 계상하였다가 필요할 때 사용하는 금액이다. 예비비 제도는 예산 성립 후 변화한 여건 또는 정세 변동에 대응하여 예산집행의 신축성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이다. 예비비에는 일반회계 세출 총액의 1% 이내를 한도로 편성하면서 사용 용도가 제한되지 않는 일반예비비와 예산 총칙에서 용도를 제한하여 편성하는 목적예비비로 구분된다.

2019년 예비비 총액은 3조 원으로, 일반예비비 1.2조 원과 목적예비비 1.8조 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2019년 예산총칙의 예비비 조항에 따르면 목적예비비 대상은 재해대책비, 인건비, 환율변동에 따른 원화 부족액 보전 경비, 법적 의무지출의 미지급금 및 부족액, 지역 혁신성장사업 및 지역전략사업 재정지원, 구조조정으로 어려움을 겪는 지역 및 업종에 대한 재정지원, 소방안전교부세 부족분 등이다.

미세먼지, 산불 대책, 지진피해 보상, 위기지역 지원 등은 금년 예산 총칙의 일반회계 목적예비비 1.8조 원으로 충당이 가능하며 필요하면 일반예비비 1.2조 원의 동원도 자연스레 가능하다. 미세먼지나 산불피해 대책은 추경을 편성하지도 않고도 예비비 총액 3조 원으로도 깔끔히 해결된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법도 원칙도 지키지 않고 소신까지 없는 경제부총리의 모습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추경의 편성은 재원 확보를 전제로 한다. 추경 재원은 세계잉여금, 기금·특별회계 여유 자금, 적자국채 등 세 가지다. 정부의 ‘2018 회계연도 국가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추경에 쓸 수 있는 세계잉여금은 약 600억 원에 불과하다. 한국은행 잉여금(3300억 원)과 기금 잉여금(1조 3000억 원) 등 모두를 더해도 총 가용재원은 1조 6900억 원에 불과해 추경 편성을 위한 재원 마련을 위해서는 국채의 추가 발행이 불가피하다.

대상사업이 건실하고 국가적으로 타당하다면 적자 국채 발행을 감내해야 하지만 선심성 낭비성 부실 사업에 국채를 발행하는 것은 후세대에게 추가 부담을 지우는 잘못된 정책이다. 국채 발행을 통한 재원조달은 미래소비를 현재로 앞당기는 행위이다. 큰 정부는 개인의 자율적 선택권을 위축시키며 미래소비보다 현재소비를 확대하도록 강요하는 바 문제는 이것이 지속가능하지 않을 수 있는 데 있다.

최 광 미래한국 편집고문·전 보건복지부 장관
최 광 미래한국 편집고문·전 보건복지부 장관

재정 팽창 막는 ‘예비타당성조사’ 다시 복구해야

IMF의 권위를 빌려 추경편성을 정당화시키는 정부의 자세도 큰 문제이다. 페이지오글루(Tarhan Feyzioglu) IMF 연례협의 단장은 “최근 수출 둔화 등 부정적인 소식들이 많이 들리고 있고 투자도 둔화되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정부 당국이 정책 조치들을 통해 성장을 지원하는 노력을 할 수 있는 대규모 추경을 강력히 권고한다”고 말했다. 이 권고를 금과옥조로 재빠르게 수용하면서 정부는 추경편성을 당연한 것으로 수용하며 IMF의 위세를 업고 추경에 대한 반대를 잠재우고 있다.

연례협의 결과에서 IMF는 “잠재성장률을 강화하는 조치와 함께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재정지출을 더 확대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잠재성장 강화 조치와 재정확대를 함께 권고했는데 정부는 재정확대 권고만 수용했다. IMF는 결코 만능이 아니다. 1997년 외환위기 때 IMF의 잘못된 정책 권고로 우리는 큰 고통을 겪었으며 이에 대해 IMF가 공식적으로 사과한 바 있다. 소득 3만 달러 시대에 추경편성까지 IMF의 권고에 따라야 하는가? 창피하고 서글프다.

그간 비효율적인 대형국책사업 남발을 막아줬던 예비타당성조사[예타]를 최근 무력화시킨 것은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예타는 국가재정법 제38조에 따라 개발사업의 적정 투자시기, 재원조달 방법 등에 대한 타당성 검증을 통해 사업 추진 여부를 투명하고 공정하게 결정함으로써 예산낭비를 방지하고 재정의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이다. 1999년 도입된 이래 2018년 말까지 849건이 조사되었고 관련 사업비 규모는 378조 원에 달했다. 이 중 건수로는 64.7%인 549건이 그리고 금액으로는 59.1%인 223조 원이 타당성이 있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정부는 지난 1월 24조 원 규모의 23개 사업에 대해 예타를 면제한다고 발표했다. 이어 비수도권 공공사업에 대해 경제성 평가 비중을 대폭 낮추는 제도 개편을 발표했다. 예타의 핵심은 경제적 타당성을 조사하는 것이다. 사전에 경제성 조사를 함이 없이 국민의 세금을 낭비적 사업에 투자를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예타를 없애거나 기준을 낮추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정부의 도덕적 해이로 장기적으로 혈세를 낭비하고 국가 경쟁력을 저하시킬 것이다. 특히 지자체에서의 포퓰리즘 광풍과 혈세 낭비는 걷잡을 수 없을 것이다.

예타 없이 24조 원에 달하는 각종 사업 추진을 대대적으로 발표한 정부가 2020~2022년 3년간 총 48조 원을 투입해 도서관 체육시설 등 공공시설 확충을 골자로 하는 ‘생활 SOC 3개년 계획’을 4월 15일 발표했다. 총규모는 방대한 48조 원이나 개별 사업비는 대부분 500억 미만이라 예타도 생략될 전망이다.

법적 요건도 충족하지 못하는 추경을 무리하게 편성하는 것도 그리고 3년 후에야 시작되는 사업들을 서둘러 발표하는 생활 SOC 계획도 떨어진 지지율을 끌어올려 내년 총선 승리를 위한 선심 정책임이 분명하다.

현 정부 들어 지금까지 두 번의 추경예산과 대규모 본예산으로 손에 쥔 것이 과연 무엇인가? 경제성장, 일자리 창출, 분배 개선, 산업혁신 등 어느 정책 과제를 살펴봐도 잘된 내용이 잡히지 않는다. 일자리 참사는 그대로이고 경제성장은 계속 뒷걸음치고 있다. 재정 중독 자체가 문제이다. 국민 모두를 괴롭히는 실업과 경제 부진의 원인은 다른 곳에 있다. 원인에 대한 정확한 진단 없이 재정투입으로 땜질하려 한다. 추경 등 재정중독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에 불과하고 문제를 더 악화시킬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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