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를 호령하던 전대협(1987년 건설된 전국대학총학생회협의체의 약칭. 1993년 해체하여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으로 전환했다. 기치는 “구국의 강철대오(나라를 구하기 위해 나선 강철과 같은 무리)”다.)이 문재인 정부 아래에서 부활했다.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정부에서 저항의 상징이 되살아난 것은 뜻밖의 일이다.
전대협이 본격적으로 주목을 받은 건 만우절인 4월 1일 전국의 대학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서초구 대법원 등에 붙었던 대자보 사건이었다. 북한 국무위원장 김정은과 전대협 명의의 대자보 두 장이 나란히 붙었다.
김정은의 ‘남조선 학생들에게 보내는 서신’과 전대협 명의의 ‘남조선의 체제를 전복하자’는 제목의 대자보였다. 디자인이며 어투며 북한식으로 얼핏 북한 당국이 제작한 대자보처럼 보였다. 그러나 대자보는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소득주도성장, 최저임금 등 각종 정책을 비판한 내용이었다. 전대협은 문재인 정부의 일탈적 방향과 국정운영에 저항하는 청년대학생들이 모여 만든 단체로 80년대 학생운동을 주도했던 전대협과는 무관한 단체다.
이들이 모임 명칭을 전대협이라고 지은 것은 현 정부를 풍자하기 위해서 이지 다른 뜻은 없다고 한다. 만우절 패러디와 풍자를 통한 대자보 공론화는 국민의 관심을 끌었다. 과거 전대협과 다르다는 의미의 신(新)전대협으로 불리는 이들. <미래한국>은 신전대협 대변인으로 활동하는 김정식 씨와 최근 전화 인터뷰를 했다.
- 대자보 사건 언론 보도 이후 신전대협이 많이 알려졌습니다. 보도 전과 후 달라진 점이 있나요?
여론 반응보다 경찰 반응이 뜨거워요. 그래서인지 여러 변호사 분들이 도움을 주겠다고 연락하셔서 그 부분을 대비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세력을 과시한다거나 조직력을 과시하기 위해 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여론의 관심을 받든 아니든 저희는 변함이 없습니다.
- 도움을 주시겠다는 법조인들은 어떤 분들인가요.
그분들의 소속까지는 모르겠습니다. 대표적으로 말씀드리면 이언주 의원님과 같이 활동하시는 이인철 변호사 같은 분들이 있고요. 변호사님들이 꽤 많이 있어요. 개인적으로 도와주시겠다고 연락주시는 분들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보수성향 단체 소속이신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 언론에 따르면 주거에 무단으로 침입한다든지 지문을 채취하거나 폐쇄회로(CCTV)로 신원을 확인한다든지 하는 방식으로 경찰 수사가 위법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 같은데, 실제 상황은 어떤가요.
네, 언론을 통해 아셨겠지만 그런 일이 있습니다. 가장 최근에는 이런 일이 있었어요. 어제(17일) 수원경찰서에서 전대협 활동하는 또 다른 친구한테 전화가 왔다고 합니다. 경찰서에 출석하는 게 어떠냐는 취지로 말을 했다고 해요.
- 경찰에 출석하려면 어떤 혐의점이 구체적으로 있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경찰이 어떤 혐의를 대던가요?
경범죄라고 합니다.
- 경범죄요?
네, 모욕죄나 명예훼손도 아니고 경범죄라고 하는데, 어떻게든 벌금이라도 때리겠다는 생각이 아닌가 싶습니다.
풍자 대자보에 영장 없이 가택 진입한 경찰
실제 전대협 회원들에 대한 경찰 수사는 이해하기 힘든 형태로 진행되는 모양새다. 지난 4월 5일 오후 서울 집에서 쉬고 있던 전대협 소속 A씨는 느닷없이 문을 열고 들어온 2명의 건장한 남성과 맞닥뜨렸다. 경찰 신분을 밝힌 이들은 A씨가 “왜 오셨느냐”고 묻자 “수사를 한다”고 답했다. A씨가 다시 “무슨 수사냐”고 묻자 “옥외광고물 불법부착 수사”라고 답했다고 한다. 문재인 정부를 신랄하게 풍자한 대자보를 전국 각지에 붙인 것이 ‘가택 무단침입 조사’의 이유가 된 셈이다.
- 관련된 전대협 회원들이 많이 있을 텐데, 현재 경찰로부터 연락받은 회원들은 몇 명이나 됩니까?
경찰 전화를 받은 사람은 대여섯 명 정도인데, 관할서도 다르고, 담당자도 다 다릅니다. 혐의도 다 달라요. 제가 볼 때 경찰에서 수사를 정당화할 논리를 짜는 것 같아요. 저희도 기사를 통해 경찰 쪽 반응을 보고 있는데 경찰 측에서 어떤 죄목을 적용할지 난감해하고 고민이라는 기사가 나오긴 하더라고요. 어떻게든 뭘 하나 엮긴 엮어야겠는데, 딱히 죄목을 정할 수 없으니까... 우선 추이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 다른 회원들이 받는다는 혐의는 어떤 것들인가요.
어떤 사람은 옥외광고물 불법부착, 아니면 명예훼손, 모욕 이런 것들이 있고요. 가장 처음엔 국가보안법 적용도 고민했던 것 같아요.
- 명예훼손이라면, 누구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건가요?
저희도 그게 궁금합니다.
- 명예훼손죄가 의심되니 무조건 나와라 이런 건가요?
차라리 출석통보서가 날아오면 어떤 혐의인지 알 텐데 그냥 전화를 하거나 불쑥불쑥 찾아오거나 이런 식이에요. 언론에서 경찰이 최초로 밝힌 이야기로는 서울지방경찰청의 지능범죄팀이 전담수사를 한다고 했는데, 실제로는 각 지역별로 경찰들이 혈안이 돼서 뒤지고 있는 형국이죠.
- 정부 비판 활동에도 여러 형태나 방법이 있었을 텐데, 특별히 전대협이란 이름과 대자보 방식을 선택한 이유는 뭔가요?
풍자와 해학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언론에서) 저희 이름을 말하면서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라고 쓰는 기자들이 있는데 그건 잘못된 것이에요. 저희는 그냥 전대협이라는 이름만 사용하는 겁니다. 전대협은 상징성을 본 따 해학적으로 만들자는 의미에서 붙인 이름이지 약칭이 아닙니다.
- 어쨌든 과거 舊(구) 전대협을 국민이 알고 있다는 전제로 이름을 만든 거네요?
네, 맞습니다. 지금은 민주당 당원조차도 현 정부 정책들 때문에 자기 삶이 어렵다, 이런 정책은 현실과 괴리감이 있다고 말하면 “너는 프락치구나”, “너는 토착왜구다”, “너는 친일 일베구나” 이런 식의 반응에 부딪혀요.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프레임을 씌울 수 없는 주체의 이름을 써보자는 취지로 전대협이란 이름을 사용하게 된 겁니다.
- 혹시 진짜 구 전대협 세대나 그 세대 운동권으로부터 항의 전화나 연락받은 건 없나요?
그러면 본인들이 우스꽝스러워진다는 걸 알고 있지 않겠어요? 속으로 지금 부글부글 하고 있을 것 같긴 합니다. 얼마 전 K신문사와 모 인터넷 언론사 기자가 저희에게 ‘내가 (구전대협)그쪽 사람들과 연락해봤는데, 자기네와 아무 관계없다더라. 왜 명의 도용하느냐’ 고 따진 경우가 있었어요. 방송을 보니까 좌편향된 패널들이 전대협 동호회가 살아있으니 윤리적으로 전대협이란 이름을 쓰면 안 된다는 말을 하더군요. 저희의 메시지를 보지 않고 메신저를 공격하려는 것으로 밖에는 생각이 안 들더라고요.
구 세대와 다른 목소리 낼 것
- 전대협의 회원들은 어떤 분들이고 구체적으로 결성한 계기가 있었나요?
기본적으로 학술 스터디 단체라고 보시면 됩니다. 정말 다양한 성격의 친구들이 있습니다. 전국적으로 퍼져 있는 사람들이 모이다보니 정말 다양한 의견이 모여요.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민주당 당원도 있고, 정의당 당원도 있습니다. 그렇게 다양한 구성원들이 모여 공감대가 형성된 부분이 지금 저희가 대자보에 담은 부분, 그리고 지난 해 ‘문재인 왕시리즈’에 담은 부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가 저희 주장과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지, 저희 뒤를 캐고 지문감식이나 CCTV로 확인해 추적하는 이런 모습밖에 안 보여주는 것은 본인들 수준을 스스로 드러낸 것밖에 안 된다고 생각해요. 과거의 대학생들은(이를 테면 586 운동권 세대) 사회적 문제나 이슈에 관심이 많았고 본인들이 세상을 바꿔야 하는 주체라는 생각이 강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요즘 청년들은 지금이 그들이 살아왔던 시대보다 더 어려운 상황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 목소리를 내야 하겠다는 취지에서 모여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 앞으로 유튜브 채널을 만들어 활동하겠다고 했는데, 계획이 어떻게 됩니까?
아직 구성단계인데 서둘러 진행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너무 자세히 밝히면 스포일러가 돼서요. (웃음) 정치쪽 일반 유튜버들과는 좀 다르게 해보자는 생각으로 기획하고 있어요. 워낙 다양한 유튜버들이 많기 때문에 차별화를 위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 가면 쓴 유튜버들이 많던데, 전대협 여러분들도 얼굴 공개하고 활동하실 건가요?
지켜보시면 알 텐데 얼굴 공개하는 일이 흔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 기존 유튜버들과 정부가 많이 긴장하겠네요. 앞으로 활동 계획과 목표 소개해주시죠.
전대협은 조직력을 과시하고 세를 보여주기 위해 대자보를 붙이려고 만든 단체가 아닙니다. 청년들이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갖고 목소리를 내야 세상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은 비단 청년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의 문제라고 보기 때문이죠.
또 표현의 자유에 대해서도 국민들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대한민국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한 것이기 때문에 그런 목적에 부합되는 것이라면 어떤 형태로든 저희가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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