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기획 리포트] 낙태죄 헌법불합치가 남긴 문제들
[미래기획 리포트] 낙태죄 헌법불합치가 남긴 문제들
  • 박주연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9.04.30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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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11일 헌법재판소가 형법상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고 2020년 12월까지 법을 개정하라고 선고했다. 이에 대해 모자보건법의 경우 폐지 수준의 전면 개정이 필요하다고 여성계는 촉구하고 있고 의료·종교계 등에서는 사회적 논의가 더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문제는 낙태를 단순한 의학적 관점에서 죄의 유무를 따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이에 대해 어떤 점들이 낙태 합법화 이후 필요한 것인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낙태죄 폐지를 주장하는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헌법재판소 앞에서 낙태죄 헌법불합치 선고에 환호하고 있다.
낙태죄 폐지를 주장하는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헌법재판소 앞에서 낙태죄 헌법불합치 선고에 환호하고 있다.

낙태보다 출산을 돕는 문화가 필요하다
 

신동일 한경대 법학과 교수
신동일 한경대 법학과 교수

21세기 우리가 고민해봐야 하는 지점은 현재의 법제도이다. 우리 사회가 가진 가치와 문화를 잘 보여주는 것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법도 포함된다. 우리 법은 생명에 대해 엄격하고 철저한 보호를 명령한다. 다만, 법을 연구하는 학자로서 아쉬운 것은 우리 법은 다른 국가와 비교하면 무엇을 해야 할지는 분명한 반면, 어떻게 해야 할지가 확실히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독일의 경우를 간단히 설명하면 낙태는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예외적으로 12 주 미만의 사유를 충족하면 상담을 통해 임신중단이 가능해진다. 그에 대한 구체적인 사항을 규정한 법률이 1992년 ‘임신갈등을 회피하고 조절하기 위한 법률’(Gesetz zur Vermeidung und Bewa ¨ltigung von Schwangerschaftskonflikten (Schwangerschaftskonfliktgesetz - SchKG), 약칭 임신갈등법이다.

이 법률의 주요 내용은 첫째 법률에서 정한 상담소의 설치, 상담 내용, 지원 프로그램의 구체적 내용, 특별한 경우의 상담 사항(장애인 임신이나 장애가 예상되는 태아, 미성년임신 등), 임부의 요청에 따른 익명출산과 입양, 익명출산 시 법적인 처리, 장래 출산한 아동의 출생증명 열람권 등이다. 법률은 매우 구체적인데 상담윤리를 정한 규정(제5조)에서는 태아의 생명권을 존중해 모든 상담이 진행되도록 하고, 이 상담 내용은 익명 처리해 주정부가 관리 감독한다.

또한 실질적 지원을 위해 법률전문가, 사회심리학자, 교육심리학자, 의료인, 장애아 양육 경험인 등을 상담에 포함시킬 수 있다.(제6조) 상담소는 모든 사람이 이용할 수 있는 장소에 두며, 비용은 모두 무료이다. 또한 임부에 대한 실질적 지원도 구체적이다. 임신전 성교육과 같은 사항도 포함하며 임신 전후의 상담도 가능하다.

만일 임부가 상담에도 불구하고 임신중단을 결정하는 경우 주정부는 그에 맞는 시설을 이용토록 한다. 임신중단을 위한 시설에 근무하는 어떤 누구도 그 수술에 의무적으로 참여할 필요는 없다. 모든 임신중단에 대한 사항은 연방통계청과 주정부에 보고되며(제15조 이하) 모든 지원에 대한 구체적인 사항이 규정된다.(제19조) 이에 따르면 사회보장에 따른 지원대상자와 노동지원대상자 등 다른 법률에서 중복된 지원은 이 법률에 따른 지원으로 대체되며 그 지원 대상이 아닌 경우는 임부의 요청에 따라 이 법률이 제공하는 주거, 교육, 양육, 산후조리까지 지원될 수 있다. 모든 임신중단 지원사항은 형법적 금지요건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증명서가 첨부되어야 한다. 지원은 구체적이고 즉각적일 것이 규정되어 있다.

보다 구체적인 사항은 익명출산(제25조 이하)이다. 익명출산이란 임부가 자신의 임신, 임신 중단, 출산 등의 사항에서 신분을 노출하고 싶지 않을 때를 위한 제도이다. 이 제도에 따르면 임부의 정보는 철저히 비밀로 유지된다. 상담 뿐 아니라, 출산의 경우도 본명이 아니라 다른 이름으로 출생신고 등을 마칠 수 있다. 또한 본인의 이후 교육이나 노동기회에서도 익명을 사용할 수 있으며 그 이름으로 생활하는 데 충분한 법적 여건을 제공한다.

이 법률은 임부만이 아니라 출생한 아동의 권리 역시 보호하고 있다. 출생 후 본인의 신분을 새로 정해지고 입양 등의 조치에 불편함이 없도록 한다. 또한 만 16세가 되면 본인의 생물적 모와 부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본명 출생증명서를 열람할 수 있다. 이를 익명출산한 어머니가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경우 1차적인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최종 결정은 법원이 한다.

법원의 절차 역시 결정 전에는 어머니의 신분이 노출되지 않도록 하고(제31조와 제32조) 사건 관할과 심사 내용을 법으로 지정하고 있다. 이와 별도로 상담에 대한 이의가 있을 경우 판단할 법원도 지정한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인공 임신중절의 확대를 바라지 않는다. 윤리적인 이유가 아니라 우리 법률이 태아의 생명에 위협적인 판단을 조심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법적인 검토보다 일회적인 정치나 사회적 주장만 증가하고 있다고 보인다. 이런 현상은 어쩌면 현대사회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지 모른다. 비약해서 말하면 문명의 실패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낙태의 ‘죄(罪)’적 성격 더 널리 알려야
 

김혜윤 건강과가정을위한학부모연합(건학연) 공동대표
김혜윤 건강과가정을위한학부모연합(건학연) 공동대표

1960년대 당시 급속한 인구증가를 억제하기 위해 정부는 가족계획사업을 시행했고 각종 정책이 효과를 거두면서 가족계획 실천율은 증가하고 그 결과 출산율은 감소되었다. 이러한 산아제한정책으로 정부와 사회는 낙태를 묵인하게 되었으며 시대의 변화와 성에 대한 인식이 개방적으로 변하면서 성관계, 순결, 혼전 동거에 대한 인식의 변화, 미혼모를 바라보는 사회적 편견으로 낙태를 바라보는 인식이 관대해졌다.

낙태죄가 논란이 되면서 낙태반대 입장 측은 낙태죄 유지를 위해 전력을 다했다. 그러나 언제까지 이렇게 막을 수만은 없다. 정말 중요한 낙태예방교육이 함께 병행되어야 한다.

낙태 당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연령은 20대이다. 올바른 성교육의 부재와 그에 따른 결과가 이렇게 나오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동안의 성교육과 낙태예방을 위한 접근 방법은 미비하면서 수동적이었다. 형식적이고 딱딱한 내용의 교육이 아닌 이해하기 쉬운 교육과 감각적인 접근방법을 모색해 다방면에서 올바른 성교육과 낙태예방교육이 실천되어야 한다.

또한 낙태 이유 중 높은 부분이 경제적 양육의 어려움, 사회활동에 지장, 자녀 계획상 원치 않아서였으며 이는 행복추구권, 자기결정권과 같이 생명중시보다는 자신의 삶의 질과 만족에 더 높은 비중이 있음을 볼 수 있다. 여성의 행복추구권과 자기결정권은 생명과 같은 선상에 놓여 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도덕적 관점에서도 허용될 수 없는 문제임에도 그릇된 성의 인식과 성교육의 부재로 인한 결과이다.

낙태가 왜 나쁜 것인지 알리기 위해 다방면의 전문가들이 협력해 낙태의 실상을 알리는 캠페인을 꾸준히 진행해야 할 것이다. 낙태의 피해자는 여성과 아이임을 감안해 딱딱하며 무섭고 불편한 캠페인이 아닌 ‘생명은 사랑이고 책임’이라는 주제 아래 따뜻하고 편안하게 다가가 낙태의 인식을 개선해야 한다. 여성이 죄인인 것처럼 몰아가는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또한 종교계는 사회적 책임을 가지고 낙태예방을 위한 적극적인 동참으로 모든 생명이 의미가 있으며 보호받을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교육하고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미국의 낙태반대 운동의 역사엔 언제나 기독교와 가톨릭이 중심에 있었다. 그 결과 미국의 낙태반대 운동 중 하나인 ‘생명을 위한 행진’ 규모는 1973년 시민 20여 명으로 시작해 현재 60만 명까지 동참하는 놀라운 성장을 이뤘다.

정부는 출산율 저하로 인한 인구절벽문제에 부딪치고 있는 현실에서 낙태죄 논란으로 인한 불분명한 태도를 보이고 있으며 여성가족부, 최영애 인권위원회 위원장은 마땅히 보호받아야 할 생명을 논함에 있어 낙태를 지지하는 편향된 입장을 보이고 있다. 국가는 마땅히 어떠한 생명이라도 지키고 보호할 의무가 있다. 정부는 하위기관들의 낙태 지지 의사를 통제함과 동시에 사회와 함께 협력해 낙태 예방과 근절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서울 종로구 북촌로 헌법재판소 앞에서 18일 생명사랑국민연합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판결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서울 종로구 북촌로 헌법재판소 앞에서 18일 생명사랑국민연합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판결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낙태예방 대책

1) 학교에서 건전하고 올바른 성교육을 통한 성에 대한 인식 전환과 책임을 교육해야 한다.

2) 성인에게는 올바른 피임방법을 알리는 캠페인이 필요하다.

3) 낙태시술 과정의 교육적 설명과 생명의 존엄함을 가르쳐야 한다.

4) 국가는 법적으로 임신의 책임을 남성도 함께 지게 해야 한다.

5) 국가에서는 미혼모들의 눈높이에 맞춘 현실적인 복지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6) 낙태에 대한 관대한 시선을 개선시키고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버려야 한다.

7) 의료계, 법조계, 정계, 교육계, 문화계, 언론계, 종교계, 시민단체 등 각 분야에서 낙태예방을 위한 전문가들이 일어나 행동해야 한다.

8) 정부의 정기적인 낙태실태조사로 낙태 예방을 위한 현실적인 대응방안을 수립해야 한다.

생명경시, 낙태형 사고(思考)를 경계한다
 

백상현 국민일보 기자
백상현 국민일보 기자

낙태 논란에서 단골처럼 등장하는 것이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충돌한다’는 주장이다. 여성의 자기결정권은 낙태할 수 있는 권리로 이어지는데 낙태권이란 용어 밑에는 태아가 인간이 아니라는 잠재의식이 깔려 있다. 낙태 논란의 위험성은 여성이 자기결정권을 강조할 경우 태아의 죽음으로 이어진다는 데 있다.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행복추구권·자기결정권은 다른 차원의 문제지만 낙태옹호론자들은 이를 같은 위치에 놓으려 한다. 젊은층의 경제적 부담 경감, 행복추구권을 보장하기 위해 국가가 앞장서 노년층의 안락사를 적극적 허용해야 한다는 논리와 어떤 측면에서는 아주 유사하다.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는 생명의 문제가 보편화된다면 정치적, 법적으로 언젠가 적당한 선에서 타협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교계와 시민단체는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근본적으로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만약 낙태행위에 대해 처벌하지 않는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낙태행위가 이뤄져 생명경시 풍조가 확산될 게 뻔하기 때문이다.

낙태 합법화를 주장하는 이들은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앞세운다. 이런 생각은 자신의 삶에 불편 요소가 생기면 언제든 제거할 수 있다는 ‘낙태형 사고’에 기인한다. 이들은 태아를 세포덩어리, 잠재적 인간으로 격하하고 정신적·육체적 역량, 생존 능력이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분명한 생명체가 아니라고 깎아내린다. 그런 논리라면 노인요양병원에서 치료받는 어르신, 상이군인, 식물인간도 생존능력이 없거나 부족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소수자의 인권을 주장하는 여성인권운동가, 동성애자, 페미니스트, 진보주의자 중 일부가 소수자 중의 소수자인 태아의 인권을 빼앗으려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국내 최대의 동성애자 단체인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는 ‘LGBT(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운동이 낙태를 선택할 권리를 지지해야 하는 이유’라는 글에서 “낙태를 선택할 권리는 인간으로서의 기본적 권리”라며 낙태를 두둔했다.

동성애자들은 “자본주의 가족제도는 여성 억압의 뿌리이자 핵심”이라면서 “LGBT들은 체제가 강요하는 남녀의 정형화된 구실과 전통적 가족상을 깨뜨리기 때문에 억압받는다”고 주장했다. 이어 “낙태권 공격은 가족제도를 강화하려는 노력과 맞닿아 있고 이 점에서 LGBT 권리와 만난다”며 낙태를 적극 지지했다. 그렇다면 이런 의문이 생긴다. 동성애자, 여성단체 활동가들의 인권이 그토록 소중하다면 태아, 탈동성애자, 북한 주민의 인권도 소중한 것 아니겠는가.

이른바 소수자이기 때문에 차별받는 게 그토록 싫다면 자기 목소리조차 낼 수 없는, 소수자 중의 소수자인 태아를 차별하는 것도 싫어해야 하는 것 아닌가.

1967년 영국이 낙태를 합법화했을 때 연간 2만 1400명의 태아가 살해당했다. 시간이 흘러 낙태가 보편화됐고 40여년 만인 2016년 낙태자 수는 연간 20만 8500명으로 폭증했다.

1967~2016년 낙태로 죽어간 태아만 850만 명입니다. 낙태 이슈가 합법화로 결론나자 영국에 선 인간배아 실험, 차별금지법을 앞세운 동성애 옹호사상, 대리모 시술, 트랜스젠더의 출산, 안락사 등 반생명적 문화가 물밀듯 밀려들었다. ‘미끄러진 경사면’ 논리에 따라 반생명 문화의 범위가 확대된 것이다.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사회·경제적 사유로 낙태하는 것이 여성의 고유 권리라고 주장한다. 낙태죄 폐지를 촉구하며 ‘나는 아기 자판기가 아니다’라고 외치는 여성단체의 주장 속에는 태아를 단순 ‘세포덩어리’로 보는 생명 경시 태도가 숨어 있다. ‘태아는 인간이 아니다’라는 전제에서 출발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교회는 창조신앙을 고백한다.

낙태, 인간배아 실험, 대리모 시술, 동성애 문화, 자살등 반생명적 사조 앞에 하나님이 지으신 생명이 함부로 다뤄지거나 조작·파괴되지 않도록 감시할 책임을 갖고 있다. 낙태죄가 존재함에도 매일 3000명 이상 낙태시술이 진행된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낙태합법화 요구가 점점 커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 논란을 바라보며 국민들이 붙들어야 할 핵심 키워드는 무엇일까요. 바로 ‘생명’과 ‘책임’이다.

우리는 “만일 부모세대가 상대적인 불편요소를 모두 제거하는 사조에 편승해 낙태를 합법화한다면 훗날 자녀세대의 불편요소로 전락해 안락사라는 이름 아래 제거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전문가들의 경고를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미혼모 시설 지원, 출산장려금 지급, 입양운동, 위탁아동보호 등 생명운동에 주력해야 할 것이다.

※ 이 기사는 지난 3월 25일 성산생명윤리연구소·생명운동연합·박인숙의원(자유한국당)실이 공동으로 주최한 국회세미나 ‘낙태죄 대안 마련 무엇이 쟁점인가’ 발제와 토론문을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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