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최고인민회의가 남긴 것...김정은 ‘국가주석’직 만들지 않고 헌법 위 존재만 확인…‘김조국’ 정체 의문
북한 최고인민회의가 남긴 것...김정은 ‘국가주석’직 만들지 않고 헌법 위 존재만 확인…‘김조국’ 정체 의문
  • 전경웅 미래한국 객원기자
  • 승인 2019.05.01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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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는 지난 10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7기 4차 전원회의를, 11일에는 최고인민회의를 열었다. 이때 일어난 일 가운데는 예전과 다른 모습들이 적지 않았다. 김정은의 지위에 대한 규정, 연로한 세대의 퇴출과 새로운 측근들의 승진 등이 그것이다. 또한 ‘김조국’이라는 정체 불명의 인물이 등장했다.

먼저 지난 10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체회의 내용을 보면, 김정은은 외부의 추측과 달리 ‘국가주석’직을 만들지 않았다. 대신 행정부인 ‘국무위원회’와 입법부인 ‘최고인민회의’ 위에 군림한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헌법 위의 존재’가 된 것이다. 이어 노동당 중앙위 전체회의에서 ‘자력갱생 대진군’을 국가전략목표로 제시하고, 당 중앙위원회, 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 당 중앙검사위원회, 내각 각료, 각 도당 위원장을 교체했다.

김정은은 노동당 핵심 직위와 내각 각료들을 갈아 치우기 전에 고위 간부들을 향해 “사회주의 건설에서 ‘자력갱생’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최룡해로 ‘최고인민회의’를, 김재룡으로 ‘내각’을 관리

김정은은 지난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미북정상회담의 기본 취지, 현재 북한이 처한 상황을 설명한 뒤 “자립적 민족경제에 뿌리를 둔 자력갱생을 통해 사회주의 건설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정은은 “(핵무기와 경제 발전을 동시에 추진한다는) 우리의 노선이 천만 번 옳았다는 것을 절감하게 됐다. 자력갱생과 자립적 민족경제는 우리식 사회주의 존립의 기초이자 혁명의 존망을 좌우하는 생명선”이라고 주장했다. 구체적으로는 ‘과학기술 개발’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김정은은 “노동당의 과학교육 중시, 인재 중시 정책을 철저히 관철하는 것이 자기가 일하는 곳뿐만 아니라 북한 사회주의 건설의 미래가 달려 있다는 점을 명심하고 과학교육 발전을 위해 모든 것을 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과학자와 기술자들은 발을 자기 땅에 붙이고, 눈은 세계를 보라는 당의 의도에 맞춰 발전된 기술을 창조적으로 받아들이는 한편 교육체계를 개선해 인재들을 늘려야 한다”면서 “과학교육 사업에 국가적 투자를 늘리라”고 명령했다.

김정은은 “이번 전체회의는 자력갱생을 북한 공산혁명의 영원한 생명선으로 내세워 자립경제 건설의 토대를 마련한 김일성과 김정일의 업적을 옹호하고 빛내며 사회주의 강국 건설의 위업을 전진시켜 나가는 데서 중요한 이정표를 마련한 역사적 계기로 만들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각 조직들에 경제 발전에 매진할 것을 독려하면서 ‘자력갱생’을 위한 ‘절약투쟁’과 ‘사상교육’을 강화하라고 지시했다. 동시에 ‘자력갱생 대진군’을 수십 번 강조했다. 국내 언론들이 핵심 주제라고 보도한 “제재로 우리를 굴복시킬 수 있다고 혈안이 돼 오판하는 적대세력들에게 심각한 타격을 줘야 한다”는 주장은 사실 곁가지였다.
 

노동당 중앙위 전체회의서 부각된 인물들

이번 노동당 중앙위 전체회의에서는 김정은 집권 이후 충성을 맹세한 사람들이 자기 자리를 지키거나 진급했다. 당 조직지도부 부부장 최휘, 국가보위상 정경택은 북한 핵심 권력층인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이 됐다. 자강도 도당위원장 김재룡도 정치국 위원이 됐다. 조직지도부 부부장으로 김정은의 현지지도를 자주 수행해 한때 한국에서 ‘실세’로 알려졌던 조용원은 정치국 후보위원에 임명됐다.

모란봉 악단을 이끌고 한국에도 왔던 현송월, 대북제재를 위반하고 수출하는 북한산 석탄 생산의 책임자인 석탄공업상 문명학, 김씨 일가의 비자금을 총괄 관리하는 노동당 39호 실장 신룡만, 비료 생산에서부터 석유 정제, 로켓 엔진 연료까지 책임지는 화학공업상 장길룡, 군수경제 총괄 책임자인 조춘룡 제2경제위원회 위원장, 김정은의 대변인으로 불리는 최선희 외무성 부상, 과거 대동신용은행 다롄지점장으로 일하다 미국 금융제재 대상이 된 김철삼 등은 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이 됐다.

북한에서 최고권력은 최고지도자가 어디 소속인가에 따라 달라진다. 김정은은 현재 국무위원회 위원장이면서 노동당 중앙위원회와 정치국을 통해 북한을 다스리고 있다. 또한 내각 총리였던 박봉주, 당 군수공업부장 리만건은 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 됐다. 리만건은 김재룡 자강도 도당비서, 당 군수공업부장을 지냈던 태종수와 함께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도 맡았다. 리만건은 당 중앙위원회 부장도 겸직했다.

당 중앙위는 상무위원이 최고의 권력자이지만 중앙위원 또한 한국으로 따지면 장·차관급이다. 당 군사위원회는 북한의 모든 무력을 지휘한다. 이번에 이런 당 위원회에 이름을 올린 사람들은 모두 김정은 집권 이후 발탁돼 전면에 나선 이들이다.

이튿날인 11일 최고인민회의에서는 국무위원과 내각 각료들이 새로 임명됐다. 미북 간 비핵화 협상을 할 동안 김영철보다 뒤로 빠져 있던 최룡해는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을, 김재룡 자강도 당위원장이 내각 총리를 맡았다. 기존 내각 총리였던 박봉주는 당 국무위원회 부위원장이 됐다. 최룡해가 박봉주의 윗사람이 된 것이다.

국무위원으로는 리만건 당 조직지도부장, 리수용 당 국제부장, 김영철 당 통일전선부장, 태종수 당 군수공업부장, 리용호 외무상, 김수길 북한군 총정치국장, 노광철 인민무력상, 정경택 국가보위상, 최부일 인민보안상,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선임됐다.

북한의 ‘명목상 국가원수’이자 실질적으로 2인자로 불리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최룡해가 맡았다. 1928년생으로 김일성 때부터 김정일을 거쳐 김정은 때까지 일했던 김영남은 이번에 은퇴를 했다.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부위원장은 태형철 고등교육상 겸 김일성 종합대학 총장과 김영대 조선사회민주당 중앙위원장이 맡았다. 서기장은 정영국이 됐다.

장관급으로 알려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위원에는 당 통일전선부장 김영철, 평양시 당 위원장 김능오, 강지영 북한적십자중앙위 위원장, 주영길 조선직업총동맹 위원장, 김창엽 조선농업근로자동맹 중앙위원장, 장춘실 조선사회주의여성동맹 위원장, 박명철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서기국장, 리명철 노동당 중앙위원회 실장, 강수린 조선불교도연맹 위원장, 강명철 조선그리스도교연맹 위원장, 리철이 임명됐다.

2차 미북정상회담 결렬로 징계를 당할 것이라던 추측이 나왔던 김영철은 무사했다. 김정은의 멘토로 알려진 리수용 전 외무상은 최고인민회의 외교위원장이 됐다. 리용호 외무상과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장은 외교위원으로 임명됐다. 즉 김정은은 2차 미북정상회담 결렬 이후 대남·대미 전략 담당자로 리수용과 김영철을 지목한 것이다. 리수용과 리용호, 최선희가 미국을 담당하면, 리선권이 한국을 맡는 식이다. 김영철은 대남사업부서를 이끌고 한국과 미국을 동시에 상대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 관련 소식통들에 따르면 김혁철 국무위원회 대미특별대표, 미북정상회담 중 실수를 했던 신혜영 등은 철직이나 숙청과 같은 강도 높은 징계가 아니라 각각 원 소속 부서로 복귀하는 경징계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북한은 최고인민회의에서 헌법도 수정·보충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어떤 조문을 고쳤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2018년 예산 결산과 2019년 예산안 검토도 있었다. 전년에 비해 얼마나 좋아졌고, 얼마를 더 쓸 것인지 등은 언급했지만, 액수를 드러내지 않고 퍼센트로만 밝혀 별다른 의미가 없었다.
 

하노이 회담 실패에도 불구하고 김영철은 건재함을 과시했다.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차회의가 지난 11일 만수대의사당에서 열린 가운데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원안)이 주석단에 앉아 있다.
하노이 회담 실패에도 불구하고 김영철은 건재함을 과시했다.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차회의가 지난 11일 만수대의사당에서 열린 가운데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원안)이 주석단에 앉아 있다.

최고인민회의 하루 전 등장한 ‘김조국’ 미스터리

한편 최고인민회의 하루 전인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체회의 결과가 국내에 알려지자 통일부 등 정부와 관련 분야를 취재하는 기자들 사이에서 술렁임이 일었다. 지금까지 전혀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 갑자기 노동당 핵심 요직 3곳을 차지한 것이다. 그의 이름은 ‘김조국’이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 보도에 따르면 김조국은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에 임명됐다.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은 한국으로 치면 장관급 또는 부총리급이다. 최룡해가 이 자리를 거쳤다.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은 김여정이 맡았던 자리기도 하다. 당 중앙군사위원회는 김정은의 명령에 따라 북한의 군사력, 군수산업 분야를 총괄 관리하는 곳이다. 이런 엄청난 자리들을 동시에 세 곳이나 차지한 사람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다.

이날 통일부 관계자들은 “김조국은 누구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허둥대는 모습을 보였다. 정부가 운영하는 북한정보데이터베이스에도 김조국이라는 이름은 없었다. 북한 문제를 오래 다뤄온 기자들 또한 당황했다. 갑자기 튀어나와 고위직을 차지한 김조국에 대한 정보가 없는 것은 물론 이튿날 최고인민회의에서는 그의 이름이 아예 언급되지 않은 것이다.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는 “김조국이라는 이름은 처음 들어본다”며 “북한 소식을 사실상 실시간으로 파악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그가 누구인지 모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성민 대표는 ‘김조국’의 이름에 주목했다. 북한에서는 평범한 사람들이 이름에 ‘조국’을 잘 붙이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이름을 대놓고 사용할 사람들로 김씨 일가를 꼽았다. 김 대표는 “혹시 김일성이 낳은 서자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추측했다. 김일성이 서자가 태어난 것을 안 뒤에 “너는 커서 조국을 위해 봉사하라”며 ‘조국’이라는 이름을 붙여준 게 아니냐는 추측이었다.

다른 한 편에서는 김조국이라는 이름이 가명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름이 워낙 특이해 눈에 띄기 쉬운데 그런 인물이 장관급 인사로 임명된 때 공개됐다는 점이 이상하다고 지적했다. 어떤 이들은 여기에 더해 “혹시 남파 공작원의 가명 아니냐”고 반문했다. 요직을 차지한 것으로 볼 때 북한 노동당 내부 서열이 50위권 이내일 텐데 과거 남파간첩으로 활약했던 이선실이 한때 당 서열 22위까지 올랐던 사례로 보면 김조국도 그런 인물 아니냐는 지적이었다.
 

김정은 “우리 이익 관련 문제에 양보나 타협 없다…美 결단 기다린다”

김정은은 12일에는 최고인민회의 연설을 통해 향후 한국과 미국을 향해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 내비쳤다. 한국을 향해서는 어설픈 ‘중재자’ 역할을 관두라고 비판했고, 미국에게는 “올해까지는 3차 미북정상회담을 가질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김정은은 이날 연설에서 “국가 건설에서 자주의 혁명노선을 견지하는 것은 우리 공화국의 일관되고도 확고부동한 입장”이라며 “우리는 그 어떤 도전과 난관이 앞을 막아서도 우리나라와 인민의 근본이익과 관련된 문제에서는 티끌만한 양보나 타협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정은은 “최근 수 년 동안 제국주의와의 결사적 대결 속에서 (핵개발과 경제 발전) 병진의 역사적 대업을 성취하고 평화를 향한 정세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우리 공화국의 전략적 지위와 영향력은 날로 강화되고 있다”며 “나라에서 거창한 대규모 건설사업을 벌이는 것은 돈이 남아돌아서가 아니라 세상에서 제일 좋은 우리 인민들에게 보다 행복하고 문명적인 생활을 마련해주기 위해서”라고 주장했다.

한국을 향해서는 “오지랖 넓은 ‘중재자’니 ‘촉진자’니 하는 행세를 할 게 아니라 민족의 일원으로서 제 정신을 갖고 제가 할 소리는 당당히 하면서 민족의 이익을 옹호하는 당사자가 대야 한다”며 “말로서가 아니라 실천적 행동으로 그 진심을 보여주는 용단을 내려야 한다”고 비난했다. 김정은은 또한 “남측이 외세 의존 정책에 종지부를 찍고 모든 것을 남북관계 개선에 복종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은은 미국을 향해서는 “제재 해제에 급급해 미국과의 정상회담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올해 말까지는 인내심을 갖고 미국의 용단을 기다려보겠지만 지난번처럼 좋은 기회를 다시 얻기는 분명 힘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올바른 자세를 갖고 우리와 공유할 수 있는 (비핵화) 방법론을 찾는 조건에서 3차 미북정상회담을 하자고 한다면 한 번은 더 해볼 용의가 있다”고 생색을 냈다. ‘빅딜’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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