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보는 3·1운동과 임시정부 - 대한민국의 근대사 위치 정립이 필요하다
새롭게 보는 3·1운동과 임시정부 - 대한민국의 근대사 위치 정립이 필요하다
  • 박명수 미래한국 편집위원· 서울신대 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장
  • 승인 2019.06.14 10: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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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은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과거 한국 사회는 3·1운동에 대해서는 많은 관심을 가졌지만, 임시정부에 대해서는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한국 사회가 3·1운동과 임시정부를 함께 기념하는 것은 큰 의의가 있다고 본다.

3·1운동이 특정한 시기에 일어난 독립운동이라면, 임시정부의 수립은 이것을 보다 구체화한 건국운동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 둘은 나눠 생각할 수 없다. 독립운동은 항상 국가의 건설을 전제로 하는데, 지금까지 우리는 일본에서 독립하는 것만 생각했지, 우리의 선조들이 어떤 나라를 세우려고 하는가에 대해서는 깊은 관심을 갖지 않았다.
 

최재형과 문창범을 중심으로 하는 전로한족중앙총회 결성 장소 안내판
최재형과 문창범을 중심으로 하는 전로한족중앙총회 결성 장소 안내판

3·1운동과 민족자결주의

3·1운동은 미국 대통령 윌슨이 제창한 민족자결주의의 영향을 받아 시작되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졌다. 윌슨은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면서 미국이 전쟁에 참전하는 이유는 전쟁을 종식시키고, 인류사회에 평화를 가져오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런 세상이 오기 위해서는 강대국(통치자)이 약소민족(피통치자)의 동의 없이 식민지를 만드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결론이 민족자결주의였다. 이것은 오랫동안 서구 기독교사회가 추구해 오던 민주주의 원칙에 근거한 것이다.

일본은 1910년 한일병합 이래 줄곧 자신들은 조선을 문명사회로 이끌었고, 조선인들은 자신들의 통치에 만족하고 있다고 선전해 왔다. 세계는 이런 일본의 선전에 넘어갔다. 그래서 1차 세계대전이 끝난 다음에 한국인들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일본의 조선통치의 실상을 알리고, 한국은 일본의 통치에서 벗어나 자주국이 되고, 한국인들은 일본의 노예에서 벗어나 자주민이 되기를 원한다는 것은 온 세상에 알리는 것이었다. 이것이 기미독립선언서이다.
 

임시정부가 지향하는 국가는?

이 같은 독립운동은 필연적으로 건국운동으로 이어진다. 1919년 3·1운동 이후 국내와 국외의 많은 독립운동가들은 상해로 몰려들었다. 이들은 어떤 나라를 세울 것인가를 놓고 많은 논의를 했다. 독립운동가들은 새 나라의 국호를 대한민국이라고 하고, 그 대한민국이 지향하는 건국이념을 담은 임시정부 헌법을 만들었다. 이 헌법 속에 우리 민족이 원하는 국가가 설계되었고 그 중요 요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것이다. 사실 1910년 한일병합 이후 이상설을 중심으로하는 일부 인사들은 고종을 중심으로 하는 전제국가를 다시금 회복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런 복벽주의는 1차 세계대전 이후 새롭게 불어 닥친 민주주의의 물결 앞에 더 이상 힘을 쓸 수 없었다. 특별히 미국교포들은 새 나라는 기독교정신과 민주주의에 기초한 국가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임시헌법을 기초한 조소앙은 미국의 헌법을 많이 참조했다.

둘째, 대한민국의 주권은 모든 국민에게 있다는 것이다. 이 헌법은 남녀, 귀천, 빈부의 계급이 없고, 모두에게 투표권과 참정권이 있다고 선언하고 있다. 당시 많은 국가들은 한편으로는 오랫동안 지탱해온 봉건적인 남녀차별과 신분제도를 유지하며, 다른 한편으로 1917년 일어난 볼셰비키 혁명처럼 이 모든 것을 부정하고 노동자와 농민에게만 주권을 허락하는 공산주의도 있었다. 하지만 대한민국 헌법은 이 양 극단을 배격하고, 모든 사람이 다 같이 참여하는 대중민주주의를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 대한민국은 권력의 집중을 반대하고, 삼권분립을 지향한다는 것이다. 당시 볼셰비키 혁명의 영향을 받은 러시아에 거주하는 한인들 가운데서는 소비에트, 즉 인민위원회 정부를 지지했다. 이들은 국가의 주인은 노동자와 농민, 즉 인민이고, 이들을 대표하는 인민위원회가 입법, 사법, 행정의 모든 권한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안창호를 중심으로 하는 민족주의자들은 이것을 반대했다. 권력의 집중은 독재를 가져오기 때문에 삼권분립을 통해서 권력을 분산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넷째, 대한민국은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국가라는 것이다. 임시헌법은 신앙, 집회, 표현의 자유 뿐만이 아니라, 사적 소유와 영업의 자유까지 보장하고 있다. 여기에서 먼저 언급되고 있는 것이 신앙의 자유이며, 이것은 오랫동안 기독교인들이 주장해 온 것이다. 또한 이 헌법은 자본주의의 기초가 되는 사적 소유권과 시장질서의 근간이 되는 영업의 자유를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임시정부가 종교의 자유와 시장경제를 보장하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박명수 미래한국 편집위원·  서울신대 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장
박명수 미래한국 편집위원· 서울신대 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장

해방 후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남은 과제

1945년 8월 15일 해방되었을 때, 한반도에서는 두 가지 흐름이 있었다. 하나는 1919년 3·1운동과 임시정부의 정신을 계승하자는 민주공화국 세력과 이것을 반대하고, 공산주의 국가를 만들자는 인민공화국 세력이다. 공산주의자들은 3·1운동은 노동자와 농민을 해방시켜 주지 못했기 때문에 실패한 혁명이며, 임시정부는 부르주아에 근거한 정부이기 때문에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민족주의자들은 3·1운동과 임시정부를 통해서 나타나는 우리 민족의 열망은 민주주의 국가 건설이며, 이것은 특정 계급에 근거한 국가가 아니라 남녀, 귀천, 빈부에 관계없이 모든 국민이 주인이 되는 나라라고 강조했다. 그 결과 남한에서는 민주공화국이 북한에서는 인민공화국이 수립되었다.

2019년 3·1운동과 임시정부 100주년을 맞이하여, 우리는 한국 근대사에서 대한민국의 위치를 분명하게 확립해야 할 것이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3·1운동과 임시정부의 정신을 계승한 민족의 정통성을 가진 국가이다. 이제 남은 과제는 북한 땅에도 이런 정통성이 있는 국가가 수립되어 오늘의 대한민국처럼 정치적인 권리, 경제적인 풍요, 종교적인 자유를 누리도록 하는 것이다. 3·1정신과 임시정부의 건국이념은 남한만이 아니라 한반도 전체의 이념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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