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크탱크로부터 듣는다] 국가채무, 무엇이 왜 논란인가?
[싱크탱크로부터 듣는다] 국가채무, 무엇이 왜 논란인가?
  • 옥동석 인천대 무역학과 교수
  • 승인 2019.06.24 10: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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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GDP대비 국가채무비율 40%’ 기준의 근거를 질문했다. 질문은 과학적 근거를 묻는 것이었지만 반응은 정치적 논란으로 비화되고 있다. 민주당은 40% 기준의 근거가 없기에 국가채무를 늘려서라도 경기를 부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제부총리도 여기에 부응하며 국가채무비율을 내년에 40%, 2022년에 45%까지 확대하겠다고 천명했다. 반면 한국당은 질문의 궁극적 의도를 경계하며 국가채무비율을 40%로 제한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여야의 이러한 정치적 대립은 내년 예산안이 국회를 통과할 때까지 뜨겁게 달아오를 전망이다.
 

사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재정적자, 국가채무 등 정부가 의무적으로 준수해야 하는 총량적 재정준칙도 없이 그때그때 재정을 운영해왔다. 물론 국가재정법 제18조에서는 수지균형의 준칙을 천명하고 있지만 이 규정이 사문화된 것은 이미 오래 전의 일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기획재정부는 단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매년 경기부양의 필요성을 지적하며 재정의 역할과 조기집행을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다. 재정적자와 국가채무를 제한하는 재정준칙이 확립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학계와 전문가들 사이에서 줄곧 제기되었으나 정치권의 반향은 지금까지 냉랭하기만 하다.

기획재정부가 재정준칙의 필요성을 인정하기 시작한 것은 2015년 12월 우리나라의 장기재정 전망 결과를 확인한 이후이다. 2012년부터 국회예산정책처는 2060년까지의 장기재정전망을 발표하며 우리나라 재정의 지속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했는데 마침내 기획재정부도 이 지적에 동의한 것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5월 23일 “내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40%를 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5월 23일 “내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40%를 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이러한 인식 하에 2016년 10월 기획재정부는 ‘재정건전화법’을 발의했다. 여기에는 국가채무 45%, 재정수지 -3%의 재정준칙을 제안하고 있다. 같은 해 12월에는 민주당에서도 대체법안이 발의되었는데, 신규 국가채무를 전년도 GDP대비 0.35%로 제한하는 준칙을 제시했다. 이 두 법안은 2017년 대통령 선거 속에서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재정건전화법이 표류한 지 3년 만에 우리는 다시 재정준칙을 확립할 수 있는 호기를 맞이하고 있다. 대통령이 질문한 국가채무비율의 근거는 오직 재정준칙이라는 규범을 통해서만 설명될 수 있다. 지금까지 유명무실했고 또 암묵적으로만 인정되었던 국가채무비율의 기준을 재정준칙의 형태로 분명하고도 명확하게 확립해야 한다.

文대통령의 40% 국가채무비율의 근거 질문, 재정준칙 마련에 호기

국가채무에 대한 정치권의 반향이 메아리치는 이 시기에 우리는 모든 정치인들이 엄중하게 준수할 수밖에 없는 재정준칙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실효성 있는 재정준칙을 위해서는 다음 네 가지 사항들을 유의해야 한다.

첫째, 재정준칙은 재정의 중장기적 지속 가능성을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 적어도 2060년에 달성해야 할 국가채무비율의 장기적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최소 10년 단위의 중기적인 목표를 제시해야 한다. 물론 여기서는 우리의 경제 상황과 재정에 대한 종합진단을 필요로 한다.

국가채무비율의 적정 수준 정부의 발권력, 징세력 그리고 재정관리역량에 결정적으로 좌우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섬세한 이론적 접근이 정책적 판단을 대신할 수는 없기에 경험적 규칙을 중시할 수밖에 없다. 특히 복지국가의 대명사로 불리는 북유럽 노르딕 국가들의 정부채무비율이 45∼50% 이내에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둘째, 매 정권의 재정 성과를 정기적으로 평가함으로써 정치인들의 재정준칙 준수를 독려해야 한다. 그 어떤 정부도 예외 없이 경기부양과 국가채무 증가의 유혹을 받는다. 정치인과 정당들의 건전하지 않은 정책과 공약사업에 대해 객관적인 검증이 지속적으로 이뤄질 때 이들이 선거과정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재정운용의 문제점을 정책토론의 장으로 끌어낼 수 있도록 다양한 재정분석과 권고를 적극적으로 제기하는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한다. 정권별로 국가채무비율, 공기업부채, 연금채무와 충당금의 변화, 의무지출과 경직성경비의 비율 등 재정 전망에 영향을 주는 모든 사항들이 낱낱이 밝혀질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재정준칙의 준수 여부를 감시하는 정치중립적 기구(특히 위원회)가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국회예산정책처(NABO)가 가장 유력한 대안이 될 수 있지만 정치적 중립성과 전문성을 획기적으로 강화한다는 전제 하에서만 가능하다. NABO 운영을 처장에 의한 독임제 대신 금융통화위원회와 같은 위원회 제도로 바꾸고, 위원들의 임기가 4∼6년 또는 그 이상이 되도록 해야 한다.

위원회와 NABO의 관계도 금융통화위원회와 한국은행처럼 규정하되, NABO는 한국은행과 달리 연구와 보고기능에만 주력해야 한다. 우리는 2016년 OECD 보고서의 NABO 평가를 주목한다. NABO는 국회의장이 대표하는 정치적 견해에 좌우되기에 정치적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는다.

넷째, 재정준칙의 확립, 정치중립적 기구의 설치 등 이들 모두에 대해 여야의 만장일치 또는 최소한 2/3 이상의 동의를 얻어내야 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의결 요건이 지켜질 때 비로소 다음 정부에서도 이를 파기할 명분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대의민주주의는 본질적으로 재정포퓰리즘과 정부팽창을 유발한다.

선거과정에서 선거구민들은 다양한 요구를 경쟁적으로 제시하고, 정치인들은 당선 욕구로 기회주의적 재정운용의 유혹을 받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정치인들의 합리적 욕구를 즉흥적 여론이 아니라 합리적 제도로 막아내야 한다.

국가재정에서는 ‘공유지의 비극’이 극명하게 나타나기에, 개인들의 합리적 이익추구가 우리 공동체의 영구적인 파멸을 초래할 수 있다. 우리 모두가 재정준칙의 합의를 지켜낼 수 있을 때 비로소 대한민국도 보존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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