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모든 시작의 역사... 우리와 문명의 모든 첫 순간에 관하여
[리뷰] 모든 시작의 역사... 우리와 문명의 모든 첫 순간에 관하여
  • 김나희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9.06.25 0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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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나의 원인에서 비롯된 문명의 업적은 없다. 오늘날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일상과 규범은 수많은 시작이 영향을 주고받은 지난한 진화의 시간을 거쳐 탄생했다.

이 책의 첫 문장처럼 “가장 중요한 발명들은 발명자가 없다”. 가장 먼저 춤을 춘 사람이 누구이며, 최초의 일부일처 커플이 누구인지 어떻게 밝힐 수 있겠는가? 발명자가 없으니 의도와 계획도 없다. 인류의 기원과 문명의 기초가 잘 짜인 각본의 연출물이 아니라 우연과 시행착오로 뒤섞인 장구한 혁명의 결과라는 고찰에서 《모든 시작의 역사》는 시작한다. 인류의 위대한 도약에 숨은 불가해한 수수께끼를 추적하는 과정은 우리가 잘 안다고 생각해온 문명의 발달사를 다시 쓰는 일이다. 

네 발로 움직이던 유인원이 똑바로 서서 걷게 되기까지는 수백만 년이 걸렸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한 장면처럼 단숨에, 그것도 도구를 사용하기 위해 일어서지 않았다.
 

저자는 ‘목적이 이끄는 결정론적 시각’을 경계해야 한다고 책 전반에 걸쳐 강조한다. 도구를 사용하기 위해 두 손이 자유로워져야 했으므로 직립보행이 시작되었다는 식의 추론은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네 발 걷기가 두 발 걷기로 이행한 실제 이유는 무엇일까? 기후변화로 수컷 원숭이들은 숲이 아니라 초원에서 먹이를 찾아야 했다. 나무 위가 아니라 땅에 내려와 움직여야 했고, 웅크려 앉아 땅바닥을 뒤질 일이 많아졌다. 그에 따라 신체구조가 변화했다. 직립보행은 기후변화에 따른 적응의 산물이었지, 도구를 사용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흔히 다른 사람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목적으로 말하기가 생겨났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하지만 복잡한 의사소통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사회적 결속력을 높여주는 ‘소리 그루밍’(식사하면서 내는 쩝쩝 소리 등)에서 말하기가 시작되었다는 가설이 유력하다고 한다. 또한 돈은 물물 교환을 효율적인 상거래로 변모시키려고 발명된 것이 아니라 신에게 바치는 공물이었다는 가설 또한 흥미롭다. 제물은 사적인 선물이 아니라 집단의 교환물품이었기에 규격화될 필요가 있었다. 뒤이어 가치표준을 산출해 하나의 물건이 다른 것들을 대리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돈을 낳았다는 설명이다. 

이 책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공동체’다. 인류가 출현한 조건을 다룬 직립보행과 익혀 먹기의 시작에서 공동체 형성의 토대를 마련한 종교와 언어의 시작을 거쳐 사회의 제도와 규범을 세운 법과 일부일처제의 시작으로 마무리 짓는 전개는 문명사의 결정적 장면들을 고루 보여준다. 소문과 가십을 나누는 데서 언어가 시작되었고, 타인과 정서를 나누는 데 음악과 춤이 활용되었다. 문자는 행정 문서와 장부 기록에서 비롯되었으며, 일부일처제는 성별 분업을 통해 집단생활을 안정화했다. 

저자는 대상의 기능적인 면보다 그것이 내포한 상징과 문화에 더 초점을 맞추어 공동체의 진화 과정을 톺아본다. 익혀 먹기를 다룬 2장의 경우, 인간이 불 자체를 사용하기 시작한 시점보다 요리나 축제 등에 불이 사용되기 시작한 맥락에 집중한다.

또, 숫자의 시작을 다룬 13장에서는 셈하기의 체계나 수학의 기원을 이해하는 데 머무르지 않는다. “경작지는 얼마나 큰가? 거기서 얼마나 많은 소출을 기대할 수 있나? 그것을 이루려면 얼마나 많은 노동이 필요한가? 특정한 종류의 맥주를 양조하려면 어떤 비율로 보리와 맥아가 필요한가?”와 같은 도시의 사회?경제?문화적인 문제가 숫자의 발전과 보조를 같이 했음을 밝힌다. 

위르겐 카우베는 독일의 가장 영향력 있는 권위지인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차이퉁〉의 공동발행인이자 손꼽히는 학술 분야 저술가다. “진정한 지식 논픽션의 표본”(〈프라이타그〉)이라는 찬사를 받은 《모든 시작의 역사》는 방대한 범위의 학문적 성취를 섭렵해 흥미로운 스토리텔링으로 대중에게 전달하는 저자의 실력이 유감없이 발휘된 정통 인문서다.

고고학과 철학에서 생물학과 유전학까지, 경계를 넘나드는 전방위적인 지적 호기심과 사색은 문명의 시원에 관한 기존의 통설에 의문을 표하며 독자를 사로잡는다. 직립보행에서 일부일처제까지, 문명의 16개 기둥이 어떻게 등장해 오늘을 만들어나갔는지 호기심이 동하는 독자에게 이 책은 ‘인생 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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