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대를 보는 눈 ] 6·25 한국전쟁은 성전(聖戰)이었나?
[ 시대를 보는 눈 ] 6·25 한국전쟁은 성전(聖戰)이었나?
  • 이종윤 미래한국 상임고문 한국기독교학술원 원장
  • 승인 2019.06.27 10: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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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란 인류역사상 국가공동체의 출현과 함께 시작되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무자비한 괴물이요 악마의 종합예술이라고도 한다. 사람들은 전쟁을 하면서도 평화를 위해 한다고 말한다. 평화를 위해서라도 전쟁을 알고 대처할 수 밖에 없다는 말이다. 인간의 정치적 욕망은 끊임없이 계속되기 때문에 유사 이래 지금까지 5600년 동안 크고 작은 전쟁이 1만 4500번 있었고 약 35억 명이 생명을 잃었다고 한다.

구약성경에서 430여년간의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 42명의 왕들이 나타났지만 하나님의 뜻을 따라 정의와 공의를 실천하여 하나님의 뜻을 따른 왕은 히스기야와 요시아왕 뿐이고 나머지 왕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다고 한다. 하나님 뜻을 따른 왕들은 전쟁에서 승리했고 거역한 이들은 패배했다.

따라서 왕들의 전쟁 승패는 하나님 편에서 하나님 뜻을 준행하였느냐에 따라 결정되었다. “전쟁의 승패는 칼과 창에 있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삼상17:47)라고 다윗은 선언했다. 특히 신명기에서 이스라엘의 원수 즉 하나님의 원수를 ‘진멸하되(herem) 네 하나님 주께서 네가 명하신대로 하라’(신20:16-17)한다.
 

이종윤 미래한국 상임고문 한국기독교학술원 원장
이종윤 미래한국 상임고문 한국기독교학술원 원장

만일 6·25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보스니아전쟁에서 대량 학살이 일어났다면 이를 집행한 자는 모두 전시 재판감이었을 것이다. ‘원수를 진멸하라’는 말씀은 구약성경의 주변적이고 파편적인 것이 아니라 구약 전체를 관통하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약속의 땅에 있던 가나안 7족은 진멸하며… 그들이 그 신들에게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너희에게 본받게 할까 해서이다’(신7:12; 20:18).

따라서 헤렘의 규칙을 깨뜨리는 것은 신성모독이며 그런 자는 ‘바쳐지게 된다.’ 여리고성에서 헤렘규칙을 어기고 바쳐진 물건을 탐낸 아간과 그 가족은 진멸되었고 생축과 재산은 불살랐다.(수7:24-26) 이스라엘 백성은 거룩한 전쟁에 동참하도록 부름을 받는다.

이때 하나님은 ‘만군의 주님’ ‘용사’시며, 오른손을 높이 드시고 바로와 그 군대를 홍해에서 심판하시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구원을 주셨다.(출15:6, 12, 16) 따라서 구약에서의 전쟁은 냉정한 흡혈귀 같은 전쟁의 신이 남녀노소를 무차별하게 진멸하는 것이 아니라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세상과 자기 백성을 정의로 심판하시고 의로운 자를 구원하시는 구속사적 맥락에서 제시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신학자 어거스틴은 세상적 차원에서 전쟁의 불가피성과 정당한 전쟁을 인정하는 근거를 구하지 않고 궁극적인 천상의 평화와 연결시켜 논의의 폭을 확장했다.

어거스틴은 정당한 전쟁을 궁극적 하나님 나라의 평화 달성을 위한 불가피한 과정으로 재평가함으로 평화주의적 탈현실적 한계를 넘어섰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정당한 전쟁에 대한 어거스틴의 숙고는 지상의 도성에서 현실적으로 치르는 전쟁의 윤리성과 한계성을 넘어 하나님의 도성의 항구적 평화를 이루고자 하는 적극적인 신학적 실천이다.

6·25 한국전쟁의 결과는 ‘복음화된 통일조국’ 건설해 세계복음화에 쓰임 받는 백성이 되게 하는 것이다. 이 기도가 오늘도 계속되기를 소원하면서 하나님의 자비와 권능만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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