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좌담] “상무(尙武)정신은 호전성 아닌 국민의 시대적 용기”
[기획좌담] “상무(尙武)정신은 호전성 아닌 국민의 시대적 용기”
  • 박주연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9.07.03 10: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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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 온창일 전 육사 교수, 신원식 전 합참차장
사회 |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
정리 | 박주연 미래한국 기자 / 사진 | 문종혁 미래한국 인턴기자

상무정신이 희미해져 가는 나라들의 운명은 역사 속에 패자들로 기록됐다. 그래서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는 말이 있다. ‘전쟁은 정치의 연속’이라는 군사 사상가 클라우제비츠의 말은 결국 평화를 지키려면 그러한 국민들의 의지가 정치적으로 총화 되어야 함을 뜻한다. 날로 격화되는 동아시아 질서 속에서 한국인의 상무정신은 살아 있을까. 전 육사 교수 온창일 박사와 전 합참차장 신원식 예비역 중장을 초대해 <미래한국>이 이야기를 나눠봤다.
 

한정석 = 동아시아 질서가 격변하는 가운데 우리 군과 국민에게 상무정신이 필요하다는 주장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상무정신이란 정확히 무엇입니까. 안보의식과 동의어로 이해하면 될까요?

온창일 = 정치 논문인 ‘신민설’을 쓴 중국 청나라 말기 사상가이자 교육자이자 정치가인 양계초(량치차오 梁啓超, 1873~1929)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양계초는 청 말기 아편전쟁 이후에 일어난 양무운동(洋務運動)이 1895년 청일전쟁에서 대패한 후 실패했다고 봤습니다.

양무운동이란 상무정신에 바탕을 둔 운동으로 서양의 무기체계나 무술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해서 군함도 사 모으고 한 것인데, 청일전쟁 패배 후에 그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온창일 전 육사 교수
온창일 전 육사 교수

상무정신에 기반한 군민의 자질이 확보가 안 되면 그런 식으로 군사력을 키워봐야 소용이 없다는 겁니다. 상무정신은 불가능을 모르는 정신력, 돈키호테식이 아닌 도전정신이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담력이 있어 두려움을 몰라야 하고, 그 다음으로 체력을 갖춘 국민의 정신이 말하자면 상무정신이라고 합니다.

저는 상무정신이 오늘날 큰 의미가 있다고 봐요. 그런데 이런 정신이 하루아침에 길러지느냐는 겁니다. 상무정신은 정치·사회·문화적인 요소가 복합적으로 다 녹아 있거든요.

양계초는 강유위(캉유웨이 康有爲, 1858. 3. 19~1927. 3. 31) 제자예요. 양계초가 1890년 17세 때 강유위를 만나게 되는데, 이 사람은 양명학을 중시한 사람으로, 근심 없이 편안하게 생활하는 것을 근본으로 하는 학문은 쓸모없다고 주장한 사람이지요. 또 그 이전에 제나라 재상 관중이 주장한 ‘사순(四順)’과 ‘사유(四維)’가 있습니다.

사순이란 첫째, 백성은 근심과 고생을 싫어하니 통치자는 그들을 즐겁게 해줘야 한다는 것 둘째, 백성은 가난과 천함을 싫어하기 때문에 백성을 부자로 만들고 귀하게 대해줘야 한다는 것 세 번째가 중요한데 백성은 위험에 빠지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안전하게 해줘야 한다는 겁니다. 네 번째가 자신이 죽고 후손이 없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오래 살도록 만들어주고 자식을 번성하게 해야 한다는 것으로 굉장히 중요한 요소들입니다.

관자(管子)를 보면 또 하나 국가가 위태로울 수 있는 경우가 나와 있어요. 그것은 위험을 위험으로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 또 능력이 없는 자가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경우라고 했지요. 정치는 다른 게 없습니다.

국리민복(國利民福) 즉 국가를 이롭게 하고 백성을 복되게 해야 하는 겁니다. 그 다음 군(軍)의 존재 이유인 ‘국태민안(國泰民安)’이에요. 국가를 태평스럽게 하고 민(民)을 안전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 두 가지 축이 있어야 국가가 위태롭지 않다는 겁니다. 어느 것 하나 경중을 따질 수 없어요.

실제로 정치는 무(武)를 존중해야 하고, 무는 정치를 존중해야 합니다. 정치와 무가 국가 존립을 보장하는 두 축이에요. 무만 있어도 안 되고 정치만 있어도 안 된다는 것이지요. 과거 소련이 무너진 게 무만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국리민복이 없었거든. 그럼 무너져요.

신원식 전 합참차장
신원식 전 합참차장

한 = 상무정신이란 것은 전쟁을 좋아하는 호전적인 의미가 아니라, 위기에 맞설 수 있는 용기를 말하는 것이군요?

온 = 그렇습니다. 위협에 맞설 수 있는 소위 용기와 수단과 정신을 말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실제로 이런 정신을 갖추려면 정치가 보장해줘야 해요. 정치가 국민을 위해야 민이 국가를 위하지요. 상호 얽혀 있어요. 정치가 민을 위하지 않고 무를 존중하지 않으면 무가 보호해야 할 대상이 없어지는 겁니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국가 가치체계를 부정하면 무의 방향성이 없어져요. 상무정신이 있다 하더라도 방향이 없으면 제대로 되지 않지요.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은 정치인데 정치는 민을 위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민이 가진 것을 불리고 누리는 혜택을 많게 해야 민은 국가의식보다도 내가 가진 것을 지킨다는 의미에서 무를 지킨다, 이래서 상무정신이지요.

상무정신은 호전성 아닌, 자유 수호 의지

한 = 영국 사람들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자유로운 것 같지만 국가 위기 시에 발휘되는 어떤 상무정신이 있는 것 같더군요.

온 = 영국뿐 아니라 미국도 그렇습니다. 내가 이 체제의 국가로부터 이익을 본다고 생각하도록 만들 때 그 이익을 지키기 위해 싸운다는 것이지요. 지킬 것이 있을 때 싸운다는 겁니다. 임진왜란 때 선조가 도망가니까 백성들이 ‘왜 당신만 살려고 도망가느냐’ 그랬다고. 이렇게 되면 국가의식이 없어져요.
 

신원식 = 우리는 상무정신을 말할 때 엄밀하게 말해 문무의 균형을 의미하는데 이건 대개 유럽의 경우입니다. 동양은 무게추가 문(文)에 지나치게 기울어져 있는 문무의 불균형 상태인데 서양은 좀 다르거든요. 서양의 문명은 페니키아에서 크레타를 거쳐 그리스로 문화적 전통이 이어졌는데 오늘날 모든 서양 문명은 그리스로부터 시작됐다고 봐야겠죠.

그러니까 그리스 철학이라고 하잖아요. 동양은 아마도 춘추전국시대의 제자백가 이후 아류들이 주류를 이룬 것이라고 봐야겠죠. 이런 말씀을 왜 드리느냐 하면, 무를 바라보는 관점이 서양과 동양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는 무(武) 병력 군사 이런 문제가 사회의 가장 높은 시스템에 있는 자유시민만의 특권입니다.

반면에 동양은 못난 사람들에 징벌적으로 병역이 부과되면서 그 영역에 있는 문제들이었죠. 얼마나 못났으면 병사로 뽑혀서 병역을 지느냐, 이렇게 사고의 첫 출발이 다릅니다. 서양의 경우 그리스 폴리스 간 오랫동안 내전 형태의 전쟁이 많았습니다.

일본도 뒤에 중앙집권화 돼 갔지만 상당 기간 다이묘끼리 내전 형태로 독립성이 유지되면서 무사문화가 발달했거든요. 특정한 지역에서 군웅들이 할거하면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이기 때문에 자기들이 스스로 지켜야 됐습니다. 요새 같으면 문관인 동시에 수틀리면 칼 뽑고 전쟁하러 나가야 됐어요. 그렇지 않으면 국민을 보호할 수도 없고 존경도 받을 수 없는 겁니다.

그리스로 다시 돌아와 이야기하면, 이후 로마시대에 들어 많은 전투를 하다 서서히 중앙집권체제가 잡히면서 무를 천시하는 분위기가 팽배해집니다. 그러다보니 용병을 많이 쓰게 되면서 결국 망하게 되죠.

다시 말해 서구 유럽은 끊임없이 전쟁, 내전을 계속해야 했기 때문에 영주가 됐든 기사가 됐든 늘 대접도 받고, 창 들고 나가 싸워야 백성들이 따랐기 때문에 이런 역사 속에서 문무가 균형을 이뤄 발전하게 됩니다. 기사나 왕조차 나가 돌진해야 하니까 최고의 무사도 됐지만 동시에 최고의 지성도 된 것이죠.

문학, 미술, 음악 등 예술도 바로 전장에 나가 싸우는 이 사람들이 들어줬기 때문에 발전할 수 있게 된 겁니다. 그 밑에 가서 밥이라도 벌어먹으려면 그랬어야 했으니까요. 그러니까 당대의 모든 지성과 교양이 바로 무사계급에서 비롯된 것이죠. 동양은 제자백가가 끝나면 중앙집권체제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 이후 중국 전체로 볼 때 두 개 정도로 분할이 되는데, 중간에 우리가 말하는 5호16국이라고 당나라가 멸망한 뒤에 북방에서는 여러 국가가 난립하게 됩니다. 전부 무장이 장악했죠. 그리고 다시 중앙집권적 통치로 가게 된 후에는 군웅이 할거하면 안 되니까 무를 천시하기 시작한 거예요. 이런 사실들을 볼 때 무를 천시하는 역사적 전통이 있다고 봅니다.

임진왜란, 관이 아니라 백성들의 상무의식이 나라 지켜

한 = 우리 사회를 놓고 보면 어떻습니까?

우리 사회를 보자면 이렇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깔아 놓은 중화학공업에 날개를 달아준 것은 전두환 정권 때였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분들을 굉장히 폄하하지 않습니까. 물론 북한의 공작도 있겠지만, 우리 지성계 자체에 그런 분위기가 분명히 있어요. 제가 이번에 어떤 모임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 문인들은 자신들이 성취하지 못한 채, 특히 고려 중기 이후로 나라를 조각조각 내 놓고 싸움이나 하다가 갑자기 한 천년 만에 군인지도자가 나와 나라를 엄청나게 부강하게 만들어 놓으니 시샘을 한 것이라고요. ‘나보다 지적인 능력은 아래인데 쟤가 성취를 해?’ 머슴이 갑자기 일을 잘하니 양반이 시샘하는 식의 그런 분위기와 맞물려 있다고 보는 것이죠. 사실 우리는 1990년 이후 즉 김영삼 정권 이후 과거에 빠져 있던 그런 사상으로 빠르게 돌아간 것이라고 봅니다.

분명한 것은 문무의 균형을 이룬 서양이 지금도 세계를 지배하고 있고, 그것을(상무정신을) 따른 것이 근대화였고, 문명이 되었던 겁니다. 무인의 정신이 사회의 자유와 법치를 만드는 등 중요한 뿌리가 되었고요. 무를 천시하고 가볍게 보는 지금의 사회 분위기는 단지 우리가 군인들을 천시하는 게 아니라 무인정신과 관계된 것이라고 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제 생각을 덧붙이고 싶습니다. 무인들은 명예를 중시합니다. 그것은 인간이 아닌 신과의 약속이에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누가 보든 안 보든 나의 의무를 다 하는 것이에요. 동양의 문(文) 문화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내가 어떤 평가를 받는가가 중요한 것으로 결국 체면과 연결돼 있고, 반면에 무인은 결국은 신으로부터 평가를 받는 겁니다. 그래야 전쟁이 나도 목숨을 걸고 싸우죠. 그 다음으로 무인은 결과를 중시합니다.

승부가 결정되면 승복을 하죠. 그런데 문인들은 승복을 안 합니다. 유일하게 승복할 때가 권력을 잡았을 때입니다. 그래도 상대인 정적이 말을 잘 안들을 것 같으면 삼족을 멸해 씨를 말려야 되는 거거든요. 그러다보니까 무인은 대개 적을 외부에서 찾습니다. 문인은 내부에서 적을 찾아요.

외부에는 한없이 관대한데 내부 권력을 잡으면 제로섬 게임이라 삼족을 멸해야 후환이 없거든요. 그런 형태가 우리나라로 치면 각료를 갈아치우라는 식으로 난리가 납니다. 미국은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그 상황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것으로 인식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무슨 사고를 당했을 때 그것으로 내부 싸움했지 다시 당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준비한 적이 없어요. 그러니까 오천년 동안 침략을 당한 것 아니겠습니까.
 

온 = 딱 맞는 말씀입니다. 동서양의 차이는 문무의 불균형 문제예요. 미국 사람들이 정치 사회를 배울 때 이런 말을 한다고 해요. 그들 말로 기독교 십계명을 가지고는 불교를 넘을 수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저쪽 아메리카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불교에서는 ‘색즉시공공즉시색(色卽是空空卽是色)’이 있어서 그게 이걸 못 넘는데요. 물질문명이 세계를 지배하면서 그것에 따라 왔다는 것이지요. 서양에서는 사실상 문무가 같이 갑니다. 로마시대에 로마 군대들은 시민의 특권입니다.

무장도 자기 스스로 하죠. 그런 전통이 있어요. 그 사회에서 어떤 집단을 존속시키는 데 기여하지 않으면 사회에서 쓸모없는 존재가 돼요. 우리나라에서 고려 중기 이후 ‘무신의 난’은 무인들을 무시하고 천대하다 일어난 것이지요. 거란이 침공했을 때의 장수 강감찬은 문무를 겸비한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나중 금나라나 몽고가 쳐들어왔을 때 우리는 무가 없었어요. 그러니까 대장경 판각이나 했었지요.

그런 걸로는 외부 침공을 막을 수 없단 말이에요. 유약한 문명은 야만적 무력에 아주 무기력합니다. 그게 체질화 돼 이성계가 권력을 다 잡은 다음에 무를 완전히 천대했어요. 숭문천무(崇文賤武)이지요. 그래서 조선조 때 남이장군 임경업 이런 사람들이 무인으로서 뭘 하면 문인들이 역적으로 몰아 죽입니다.
 

애국적 군인이 나올 수 있는 생태계가 없다

조선조 때 군사력이 없었던 게 무인들이 훈련을 못 시켜서 그래요. 훈련시키면 ‘저놈 역적의 의도가 있는 것 아냐’ ‘역모 한다’ 그랬단 말입니다. 눈썹만 길어도 그랬어요. 그렇게 해서 조선조 때 무는 하지 말아야 할 것, (숭문천무 풍조가) 완전히 정착된 거예요. 능력 있고 경제력 있는 사람들은 방군수포(放軍收布) 했어요. 군에 안 가려면 포만 내면 되는 것이지요. 이게 병역비리의 원조입니다. 그럼 어떻게 되느냐, 능력 없고 별 볼일 없는 친구들이 병역을 가니까 악순환인 거예요.

국가 역량이 없으니 이 친구들이 민가에 가서 닭 잡아먹고 이짓 저짓 하니 백성으로부터 더 천시당해요. 이게 악순환이죠. 이것을 국가에서 방치한 겁니다. 그러다가 임진왜란, 병자호란으로 일본에 먹힌 거잖아요. 임진왜란 때 관군이 전투한 것은 하나 밖에 없어요. 그래도 우리나라가 희망은 있었던 게 일반 국민은 상무정신이 있었단 말이에요. 의병들이죠. 우리가 가망이 없는 것은 아니에요. 정치적 리더십은 형편없어도 곽재우 같은 의병이 자기 재산 털어 싸웠잖아요. 병자호란 때는 그나마도 사라졌는데, 청나라 태종이 그것을 알고 신속하게 남하하죠.

신 = 임진왜란 전후로 논공행상을 제대로 못하니까 의병을 해봤자 이익 될 게 없다는 생각에 정부에 대한 불신이 있었죠.

온 = 그렇지요. 그러다 처음과는 달리 나중에는 정부에서 의병이 도둑질한다고 해체시키고 그랬어요. 그러나 곽재우를 따르는 그 사람들만은 무시할 수 없으니까 곽재우를 함경감사를 시키는데 그만두고 초야의 산속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곽재우도 그냥 자리 지키고 있었다면 죽었겠지요.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정치적 리더십이 상무정신의 근간이 돼야 한다는 것이에요. 일반 민초들이 지켜야 될 ‘거리’를 만들어줘야죠. 그게 국리민복입니다. 그것을 만들지 않으면 정치적 리더십이 만들어지지 않아요. 또 ‘국태민안’ 군사적 리더십도 같이 만들어줘야지요. 저 사람을 따라가면 안전하다는 믿음, 그 예가 우리나라 이순신입니다.

신 = 말씀하신 대로 정치적 리더십과 함께 특히 중요한 것은 정치적 함의로 애국적 군인이 나올 수 있는 생태계를 국가와 국민이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순전히 운에 기대서 천년 만에 한명 나올까 말까 하는 그런 천운만 기다려야 하죠. 삼국시대에는 내전의 형태가 늘 있었기 때문에 무인들이 숭상을 받았습니다. 천수를 누렸어요. 대표적으로 김유신 장군 아닙니까.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으로 천수를 누리고 삼대를 모색하면서 다 했거든요. 상무정신이 살아 있는 시대와 사회에서는 군인이 행복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나 한 몸 던져 나라를 구해야겠다’는 군인이 있는 시대, 사회는 불행하죠. 그런 군인은 참 아름답고 훌륭한 귀감은 됩니다만 어떤가요. 자기 희생으로 자신만 죽으면 다행인데 자기 처자식까지 쓰레기가 된다면 안 되는 얘기죠. 이순신 장군을 따라 배우는 것은 군인들한테 시키는 것이고, 국민들한테는 위기의 때가 되면 제2의 이순신이 계속 나올 수 있도록 종합적인 생태계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고 봅니다.

국가를 위해 희생한 사람이 행복한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해주고, 그 사람이 죽으면 그 후손들이 물질적 보상과 정신적으로 존경받을 수 있는 명가(名家)로서 자존심을 지킬 수 있도록 해줘야 해요. 국가를 위해 희생했는데 본인들은 과거 어려운 시절처럼 자식교육하나 똑바로 못 시킬 정도로 곤궁해져서 엉망진창으로 살아야 하는데, 국민들은 ‘천사야 나와라’ 하고 또 빈다? 하늘이 박정희 같은 천사를 보내주면 뭐합니까? 자기들 아쉬움이 해결되면 또 쓰레기통에 집어넣기를 반복하는데요.

온 = 상지대에서 제가 경험한 일을 상무정신의 상징적인 예로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국정치를 강의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그 학교에서 강의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그 당시에는 이승만, 박정희는 죽일 놈으로 한국 정치 분위기가 완전히 기울어져 있었지요. 그러나 그런 분위기지만 승낙하고 아무나 볼 수 있도록 PPT로 만들어 강의록 자체를 자유게시판에 공개해버렸습니다. 강의하면서 사실은 사실대로 이야기하면 된다, 왜곡시키지 말고 공과를 다 부각시키라고 했지요.

그랬더니 학부형들이 제 강의를 들을 수 있느냐고 해요. 한 학기 딱 하고 나서 어떤 학생이 제게 대한민국이 굉장히 자랑스럽다는 내용으로 편지를 보냈더군요. 그때는 노무현 존경한다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제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노무현 같은 사람이 북한에서 대통령 될 수 있느냐? 불가능하다. 노무현이 대통령 될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든 사람이 누구냐? 이승만 아니냐.” 저쪽은 삼대세습이고 우리는 대통령 이름만 해도 수없이 나왔어요. 시련은 있었지만, 어느 쪽 시스템이 제대로 된 것이냐 이겁니다. 60년대 70년대 초까지만 해도 북한 GNP나 GDP가 우리보다 더 높았습니다.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지요. 그 초석을 다진 게 누구냐, 박정희 아니냐, 나도 박정희가 유신체제로 독재했다는 걸 안다, 하지만 그걸 반대하다 감옥 간 이들 중 ‘너는 공부가 부족하니 미국 가서 공부하고 와라’ 하고 쓸 만한 놈들 국가가 돈 대서 공부시킨 사람도 박정희라고 얘기해줬지요. 내 강의에 클레임을 건 사람들이 없었어요. 객관적인 사실의 공과를 따지라는 것이지요. 국민교육을 시키더라도 이렇게 해야지 어느 부분만 신성시하거나 과만 부각해서는 안 되는 겁니다.
 

문무겸비의 지혜로 글로벌 강국 추구해야

한 = 그러니까 두 분의 공통된 결론은 진정한 상무정신은 ‘실용’을 위한 ‘문무겸비’로 모아지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상무정신은 우리 국가 경쟁력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신 = 문무균형의 세계관적 입장에서 저는 군인의 사고방식과 비슷한 사람들이 상공인이라고 봅니다. 농업은 상대적으로 경쟁이 덜 합니다. 농업은 자연조건에 의해 생산성이 결정지어져요. 하지만 공업은 적어도 산업혁명 이후 끊임없이 경쟁과 자기 혁신에 시달렸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원인이 과거 상무정신과 맞물리면서 서양은 농업에서 상업으로 트렌드가 옮겨가는 과정에서 굳이 상무란 말을 안 붙여도 상무정신이 상업에 곧바로 녹아들었습니다.

경쟁을 하면 결과가 바로 나오잖아요. 전쟁의 전투와 마찬가지로 기업도 성과가 바로 나오는 이 사회에서 효율이 높은 쪽이 승자라고 하는 콘센서스가 마련된 것이죠. 그러나 우리는 효율과 무관한 권력 장악으로 승부를 내는 방식이 오랫동안 진행되면서 박정희 전두환이라는 군인 대통령이 나오면서 예외적인 시기를 제외하고는 빠르게 오랫동안 익숙해져 있던 과거로 돌아가고 있기 때문에 문무가 굉장히 불균형해지고 있다고 봅니다.

아주 단순화시켜 얘기해 볼게요. 옛날 제가 중고등학교 시절엔 최고 두뇌들이 서울대 공대 이런데 갔는데 90년 이후로 똑똑한 애들은 법대, 의대, 교대 이런 학과로 진학했어요. 법대는 옛날로 치면 과거 시험을 보는 것이죠. 의대는 중인(中人)계급 중에 똑똑한 사람(의관)으로, 병을 치료했어요. 딱 조선시대로 돌아간 것이죠.

우리는 사농공상 이 익숙한 과거로 돌아가면서 무에 대한 천시가 다시 일어난 것이 아닌가 싶어요. 우선 경제적 측면에서 문무균형은 자유시장에서의 경쟁, 비교우위가 있는 것이 모든 것을 거머쥐는 시점에서 오랫동안 상승돼 온 겁니다. 그러다 경쟁이 없는 중앙집권체제로 긴 평화가 계속될 경우 문무균형에서 멀어집니다.

무한경쟁 속에서 나온 문무균형은 비교우위 결정에서 비롯되고 끊임없는 자기 혁신과 도전의 세월을 거치게 됩니다. 그렇게 하여 그 부산물로 우리가 말하는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하는 문명들을 만들어내게 됩니다.

안타까운 것은 대한민국은 잠깐 이변적인 시기를 거친 뒤 과거 봉건적이고 비경쟁적인 사회로 돌아감으로써 동력이 줄어들고 있다는 겁니다. 영국은 1등이 된 후에 풍요를 걱정했고, 미국은 1등이 되고도 풍요의 도전을 이기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2017년 기준 GDP 세계 12위인데 10위 안에도 못 들어가고 풍요에 무너지고 있어요.

이게 바로 문무균형이 무너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죠. 문무균형 그 바탕이 되는 자유시장과 글로벌 강국의 꿈을 향해 달려가는 진취적인 생각이 사라지는 순간, 국가는 현상 유지도 어렵게 됩니다. 우리 대한민국이 사라질지도 모르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섰다는 의미에서 상무정신과 그렇게 한번 연결시켜봤습니다.

온 = 저도 한 가지 덧붙이고 싶어요. 북한이 체제를 유지하는 것은 사실상 적개심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청년들이 공무원 시험에나 매달리는 현실이에요. 이런 환경에서 무슨 인센티브를 주어 이 사람들 기를 살릴 수 있겠는가 싶어요. 예를 들어 청년들 10% 정도만 데이트 하고 나머지는 결혼 생각도 못한답니다.

이런 경제 사회 환경 속에서 어떻게 이 젊은이들 기를 살려 경쟁심과 도전정신을 갖도록 할 것이냐 모두가 숙고해야 할 일입니다. 그런 점에서 국난을 극복한 이순신의 문무겸비의 리더십과 과학적이고 창의적인 정신, 그리고 유비무환의 지혜를 우리가 재발견하고 이를 청년들과 국민들의 마음 속에 어떻게 구현시킬 수 있을지, 그런 연구들과 노력들이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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