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의 망상(妄想) ‘이대로’
자유한국당의 망상(妄想) ‘이대로’
  •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
  • 승인 2019.07.17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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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정당과 선거를 연구하는 정치학자들은 자유민주사회에 갈등이 적어도 한 세기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게 벌어지는 현상에 주목한다. 이를 통해 정당과 선거가 결국 다양한 층위의 사회 갈등에 대응하는 구조로 변화하고 발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정당들은 다양한 이념과 노선으로 출현하게 되고 어느 하나의 정당이 모든 이슈에서 국민들을 만족시키기 어렵기에 ‘핵심정당’을 중심으로 선거에서 연합이나 연대가 이뤄지게 된다는 점도 알게 됐다. 이러한 현상은 의회우월주의가 심화되는 정치 사회에서 더 활발하게 등장하게 된다. 반면, 대통령중심제로 양당제가 고착화된 미국과 같은 경우 진보와 보수, 보수와 진보 간에 이념적 대결 양상이 더 첨예해지는 현상으로 등장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자유한국당이 국민 앞에 고백과 인적 혁신을 통한 통치 정당성을 회복하지 못하면 현재의 지지율조차 모래성이 될 수 도있다.
자유한국당이 국민 앞에 고백과 인적 혁신을 통한 통치 정당성을 회복하지 못하면 현재의 지지율조차 모래성이 될 수 도있다.

이러한 문제는 SNS와 같은 사회적 관계 미디어들의 확산으로 더 심화되는 양상을 보인다. 따라서 2020년 한국 총선에서도 자당 중심의 선거전략 보다는 연합과 연대를 통한 전선 통일을 하는 진영이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는 예측은 설득력이 있다. 다만, 이때 중요한 것이 ‘통치정당성’을 확보하고 있는 정치 세력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자유한국당의 보수통합은 철저하게 통치적 정당성의 관점에서 ‘포섭과 배제’의 원리가 필요하게 된다. 그 기준은 지난 탄핵에 대한 수용과 거부일 수밖에 없다.

탄핵은 이미 주권자의 의지에 의해 승인되었다고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고, 이를 뒤집으려면 자유한국당이 ‘현실장악(De facto)’의 능력으로 탄핵무효와 불복종 운동을 국민적 차원에서 전개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당에는 그럴 수 있는 능력도 명분도 없다.

따라서 한국당이 보수통합을 한다면 지지율과 관계없이 통치정당성을 국민들로부터 여전히 유효하게 인정받는 바른미래당과 당 대 당으로 하는 것이 우선이며, 탄핵불복의 자유공화당과는 단절하는 것이 정도(正導)일 수밖에 없게 된다. 이 원칙이 주권자 일반과 대한민국의 헌정에 부합한다. 그리고 대한민국 헌법은 그저 명문(銘文)으로만 존재하는 ‘장식헌법’의 국가 단계를 지났다. 그렇기에 ‘적폐청산’을 내세운 현재 문재인 정권의 여러 위헌적 통치의 후과도 결국 불행할 수밖에 없다고 전망되는 것이다.
 

탄핵 이후의 한국당

칭기즈칸 시대로부터 내려오는 몽골의 속담에는 이런 것이 있다. ‘만일 전투 중에 자신이 탄 말이 죽었다는 것을 안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답은 ‘말에서 즉시 내리는 것’이다. 죽은 말 위에 올라타서 곡하거나 비장한 투지를 다짐하는 것은 해답이 아니라는 것이 초원을 주름잡았던 몽골인들의 경험적 지혜다.

이 속담은 지난 탄핵으로 통치 정당성을 상실한 자유한국당과 보수가 ‘죽은 말’인 박근혜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한국당은 박근혜라는 정치토템을 중심으로 구축된 정치세력이었다. 그런 한국당은 의원 수 100명이 넘는 제1야당이었고, 탄핵반대 투쟁에서 30만이 넘는 우파 시민들의 지지행동에도 불구하고 ‘탄핵은 기각’이라는 망상 속에서 안일하게 시간을 보내다 무참하게 패배했다. 한때 박근혜 전 대통령을 등에 업고 호가호위하던 이들은 탄핵소추에 나선 탈당파 바른미래당에 책임을 떠넘겼다.

하지만 팩트는 당시 한국당 소속 의원 중 절반 이상이 탄핵소추의결에 찬성했다는 사실이다. 그들 가운데 대부분은 ‘대통령이 자진 하야하느니 차라리 탄핵심판을 받아보자’고 했던 이들이었지만, 나머지 탄핵소추에 반대했던 이들은 광화문 광장에 몰려드는 수많은 촛불시민들과 언론에 이렇다 할 대안을 말하지 못하던 무책임한 이들이었다.

탄핵은 헌법재판소에서 만장일치로 인용됐다. 황교안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은 ‘이제 탄핵결과에 승복하고 법치로 나아가자’고 기자회견에서 말했다. 이로써 자유한국당은 통치적 정당성을 잃었고 박근혜와 함께 정치적으로 탄핵됐다. 국민들의 탄핵 지지율은 78%를 넘었다.
 

하지만 한국당은 국민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탄핵소추 절차와 심판에 하자가 있어서 수용할 수 없다는 태극기 시민 세력의 목소리는 거셌지만, 그렇다고 한국당이 그 목소리와 주장을 정치적으로 수용해서 ‘위헌 탄핵 불복’ 운동을 편 것도 아니었다. 단 한 사람의 친박 의원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함께 순장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여전히 ‘탄핵책임은 탈당파’라는 치졸한 담론을 견지했다. 그 대신 ‘샤이 보수 40%’로 승리할 수 있다면서 대선에서 대통령 후보를 냈다. 당시 홍준표 후보는 당선 가능성이 전혀 없었다. 민주당의 문재인 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겨루고 있을 때, 한국당 홍준표 후보와 한국당 지지자들이 손에 쥔 카드는 대통령 티켓이 아니라 캐스팅보트였다.

대선 결과는 황당했다. 문재인 후보는 1위로 금메달을 목에 걸어 행복했고, 홍준표 후보는 안철수 후조를 누르고 2위로 목에 은메달을 건 것에 흐뭇했으며, 안철수 후보 역시 홍준표 후보와 비등한 결과로 동메달을 따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굳힌 것에 만족했다. 문재인 정권이면 어떻고, 야당이면 또 어떤가 말이다.

정치적인 것의 본질은 적과 동지의 질서이고, 그렇기에 선거는 최선이 아니라, 최악을 막는 선택이라는 것이 의회주의 정치철학에서는 기초에 해당한다. 즉 내쪽이 승리할 수 없다면 주된 정적이 승리하지 못하도록 다른 정치세력과 연대하고 연합하는 것이 선거의 근본 전략일 수밖에 없다. 이미 의회주의가 우월한 선진국들에서는 이러한 ‘선거연합’이나 ‘정당연대’는 보편적 현상에 속한다. 한국은 대통령제를 하지만, 정당정치의 후진성으로 인해 양당제가 튼튼치 않다.

결국 선거에서 정당간 연대와 선거연합은 필수적일 수밖에 없으며, 이미 그런 현상은 1990년 3당 합당을 시작으로 DJP연합, 노무현-정몽준-JP연대, 이명박-뉴라이트 연합, 민주당-통진당 연대 등을 통해 점차 우리 정치 현실에 깊이 작동하고 있다. 그래서 묻게 되는 것이다. ‘져도 홍준표로 져야 한다’거나 ‘안철수가 아니라면 차라리 문재인이 낫다’던 이들은 지금 만족스러운가. 공자는 논어에서 말한다. ‘唯上知與下愚不移(유상지여하우불이)’, 가장 지혜로운 사람과 가장 어리석은 사람은 바뀔 리 없다는 뜻이다.

공자는 그런 어리석은 하우(下愚)들과 함께 우직함을 올곧음으로 내세워 사기를 도모하는(詐而已矣) 이들을 경계했다. 문제는 그런 정치적 하우(下愚)들과 사짜(詐者)들이 여전히 보수 통합을 가로막고 있다는 사실이다. 문재인과 민주당으로서는 참으로 ‘쓸모 있는 바보들’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보수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전선의 재정립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다.
 

2002년 노무현 후보는 정몽준 후보를 끌어들임으로써 이회창 후보를 꺾을 수 있었다.
2002년 노무현 후보는 정몽준 후보를 끌어들임으로써 이회창 후보를 꺾을 수 있었다.

‘정치연합’과 새로운 보수의 중심 형성

1990년 1월, 5공화국의 후신세력인 민주정의당(민정당) 세력은 6월 혁명이라는 정치적 위기 속에서도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으나, 계속되는 국민들의 민주화 및 군사정권 청산 요구는 이들에게 부담이 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1988년 13대 국회의원 총선거 결과 민정당이 과반수 의석 확보에 실패하자, 노태우 정부는 여소야대 정국을 타개하기 위해 이른바 ‘보수대연합(4당 합당)’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이는 민정당이 1986년 신한민주당에 처음 제안했던 것으로, 당시에는 야권에서 호응이 없어 결실을 거두지 못했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 김영삼 민주당 총재, 김종필 공화당 총재 등이 4당 구도로는 각자 본인들의 집권이 요원하다는 계산을 하고 있던 것이다. 3당은 1990년 내각제 개헌 등을 조건으로 통합에 합의했으며, ‘구국의 결단’이라는 명분 아래 3당 합당을 발표했다. 3당의 국회 의석수를 합치면 개헌 저지선을 훌쩍 넘긴다는 점, 각각 TK, PK, 충청 지역에 기반을 두고 있던 3당의 통합으로 사실상 호남 외의 지역들이 모두 연합하는 구도가 됐다는 점 등에서 통합 신당은 ‘괴물 여당’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3당 합당의 여파로 노태우 대통령은 취임 2년 만에 80%에 육박하는 높은 지지율을 기록한 적도 있었다. 이러한 3당 합당은 5공세력의 군부 중심의 정부를 평화적으로 우파의 문민정부로 이양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물론 이후 YS 문민정부의 5공세력에 대한 청산 과정은 정치철학적으로 많은 문제점을 남긴 것도 사실이지만, 무엇보다 당시 극좌세력과 종북세력을 배제한 우파 정치세력의 통합이었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노태우 정부에 이어 YS가 당선되었을 때 국민 지지율이 80%가 넘었다는 점에서 일단 3당 합당은 정치적으로 성공작으로 평가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의 보수정치세력은 국가주의적 정치 인물들에서 자유주의 성향의 리버럴한 새로운 인물들로 채워져 나갔다. 그러나 여전히 관치주의적 경제운용과 세계화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97년 IMF 사태라는 불행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YS 정권이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잃어가고 있을 때, DJ는 정치 복귀를 선언했다. 1996년 4월 11일 치러진 대한민국 15대 총선에서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한 김대중 총재는 79석이라는 저조한 성적을 기록하며 대권 가도에 적신호가 켜진다. 당시 김대중 총재의 정책참모기구였던 아태재단의 상임고문인 이강래는 호남 고립 구도를 깨기 위해서는 김종필의 자유민주연합(자민련)과 연합하는 방안을 보고서 형식으로 조언한다.

김대중 총재는 이를 적극 수용하고 96년 중순부터 자민련과의 정책 공조를 추진하기에 이른다. DJP연합은 단순한 정치적 연합이 아닌 정치적 성향이 상반되었던 김대중-김종필의 연합이었기에 많은 이론적 연구가 수반되었다.

김대중 총재는 이를 위해 영국의 거국내각, 독일의 신호등 연정 등 다양한 사례를 조사해 이론적 근거를 만들었다. DJP연합은 김종필-박태준과의 연합으로 그동안 계속 김대중을 괴롭혔던 색깔론 시비를 차단할 수 있었다. 호남 외에는 표의 확장성이 떨어졌던 김대중에게 충청과 대구, 경북에서 엄청난 표의 확장을 불러왔다. 주요 거점이었던 충청을 선점함으로써 대권 가도에 유리한 고지를 점령했다.

DJP연합은 단지 김대중 정부를 탄생시키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97년 선거에서 단기 필마로 출마해 500만 표를 얻었던 이인제의 국민신당은 DJ의 새천년민주당과 합당했고 이만섭, 서석제, 원유철 등이 합류했다. 이후 2000년 총선에서 이인제는 선거본부를 총괄 지휘하며 호남기반의 민주당을 충청과 경기지역으로 확대함으로써 민주당을 전국 정당화하는 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 1996년 15대 총선에서 79석의 민주당은 2000년 16대 총선에서 115석으로 확대됐다.

문제는 DJ가 민주당의 보수 성향 혼합으로 내부 전선에 균열을 우려해 소위 ‘젊은피’라는 이름으로 386운동권들을 대거 유입했다는 점이다. 그 결과 이들은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정권을 탄생시키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하게 되고 민주당의 중도 리버럴적 이념 지형은 급속히 축소되어 갔다.

정치가 종교와 본질적으로 같다면, 주권자에 대한 대의자들의 십계명 가운데 가장 중요한 계명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너의 주권자를 네 몸같이 사랑하라’. 그래서 한국당은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우리의 주권자는 누구인가, 탄핵을 찬성하는 이들인가, 아니면 불복하는 이들인가.’ 그것이 통치 정당성을 회복하는 질문이다.

한국당이 국민 앞에 고백과 인적 혁신으로 통치 정당성을 회복하지 못하면 지금의 반사적 지지율은 모래성에 불과하다. 한국당이 바라는 대로 여권이 총선 전에 친문 대 반문으로 분열된다면 국민들의 관심은 한국당이 아니라 여권의 반문세력들일 것이고, 한국당이 도로 친박당으로 간다면 새로운 보수의 중심은 한국당을 버리고 재편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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