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통계로 본 우파 승리 조건
[심층분석] 통계로 본 우파 승리 조건
  • 고성혁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9.07.17 10:5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17년 5월 10일 19대 대선 결과는 문재인 41.09%, 홍준표 24.04% 안철수 21.42% 유승민 6.8%였다. 양자구도로 치렀던 18대 대선에서 문재인의 득표율은 48.2%였다. 숫자만 본다면 탄핵정국 하에서도 문재인의 득표율은 오히려 7.1%나 떨어졌다. 그래도 19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우파성향의 표가 갈렸기 때문이다. 통계적 해석을 한다면 反문재인 지지자(홍준표+안철수+유승민)의 득표율은 52.26%로 과반수가 넘는다. 약 52%라는 숫자는 무슨 의미일까?

18대 대선에서 박근혜의 득표율은 51.55%였다. 19대 대선에서 반문재인 득표율과 근접한 숫자다. 어떤 상황에서도 소위 문재인을 지지하는 좌파보다는 문재인을 반대하는 우파성향의 표가 높다는 사실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하더라도 유권자가 대선에서 보여주는 표는 좌파에 절대적이지 않다. 세월호 침몰로 박근혜 대통령이 맹폭을 받았지만 2014년 통진당 해산이 잘됐다고 한 국민들이 63.8%였다.

1990년 1월 22일 집권 여당인 민주정의당이 제2야당 통일민주당, 제3야당 신민주공화당과 합당해 통합 민주자유당을 출범시켰다. 반DJ 연합으로 김영삼은 정권을 잡을 수 있었다.
1990년 1월 22일 집권 여당인 민주정의당이 제2야당 통일민주당, 제3야당 신민주공화당과 합당해 통합 민주자유당을 출범시켰다. 반DJ 연합으로 김영삼은 정권을 잡을 수 있었다.

2016년 2월 북한 핵실험으로 인한 개성공단 폐쇄를 발표한 것에 국민들이 54.8%가 지지했다. 사드 배치에 대해서는 67.7%가 찬성할 정도로 국민들의 국가관은 변함없다. 세부항목으로 본다면 대한민국의 보수층은 참으로 두텁고 넓다. 웬만해서는 보수 주류 정당의 지지율은 30%대 이하로 하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 번 지지율이 폭락하면 혁명적인 쇄신을 통하지 않고서는 회복하기 힘들다. 현재 한국당 지지율이 오르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이 승리할 수 있었던 결정적 요인은 DJP연합이었다. 캐스팅보트 성격의 김종필의 표를 흡수했기 때문에 승리했다. 그래도 겨우 30만 표차로 이회창을 이겼다. 만약 김대중이 유신잔당이라고 하여 김종필을 배척했다면 결코 승리하지 못했을 것이다. 김대중은 그동안 지켜온 이념적 순혈주의를 포기하고 현실세계의 정치구도를 직시했다. 불리한 다자구도를 유리한 양자구도로 바꿨다. 김종필을 끌어들인 결과 승리했다. 바로 지금 우파는 김대중의 ‘현실정치 계산법’을 받아들여야 한다. 김대중의 DJP연합을 우파의 DJP연합으로 만드는 지혜가 필요하다.

정미경 한국당 최고위원은 본지 <미래한국>과의 인터뷰에서 한국당이 승리할 수 있는 길을 한마디로 말했다. ‘기호 3번’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선 우파성향의 표가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으로 분산되어 있다.(*애국당 조원진의 득표율은 0.1%였기 때문에 논외로 한다). 결국 양자구도가 아닌 다자구도라면 앞으로의 대선에서도 우파가 승리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 이것이 현실이다.

<표1>을 보면 광역단체 비례대표 득표율이 당시 한나라당은 53.76%, 열린우리당 21.62%, 민주당 9.93%, 충남을 기반으로 한 보수 정당인 국민중심당 2.23%, 민주노동당 12/06%다. 민주당은 2004년 열린우리당을 탈당하지 않은 세력들이 호남을 기반으로 암중모색하다 결국은 2006년 열린우리당에 참패했다. 정리하면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선거를 잘 이끌어서가 아니라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분열로 한나라당에 유리한 다자구도가 조성되었기 때문이다. 6공화국을 연 87체제에서 노태우가 승리할 수 있었던 것도 당시 소위 민주세력이 분산되어 있었기에 가능했다. 선거 결과 통계자료를 보면 답이 나온다. 그러나 2019년 현재는 1987년, 그리고 2006년과는 정반대의 상황이 되었다. 우파는 분산되어 있는 다자구도다. 어떤 방식으로 선거를 하든 우파에 불리할 수밖에 없다. 선거는 구도 싸움이다. 보수는 유리한 구도부터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보수우파 DJP연합’이든 ‘기호 3번’을 없애든 말이다.

19대 대선에서 자유한국당 홍준표의 득표율은 24.04%였다. 그런데 최근 여론조사 결과도 마찬가지다. 한국갤럽이 6월 25~27일 1003명을 상대로 “만일 내일이 국회의원 선거일이라면 어느 정당에 투표할 것이냐”고 물은 결과 민주당 39%, 한국당 24%, 바른미래당 7%로 나왔다.

한국당 투표 의향은 20대 13%, 30대 11%, 40대 17%에 그쳤다.(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탄핵사태 이후 새누리당에서 자유한국당으로, 그리고 김병준 비대위시대와 황교안 대표의 선출, 장기간의 장외투쟁 등 여러 퍼포먼스를 거쳤지만 한국당 지지율은 24%에서 변함이 없다. 최고지지율이라고 해봐야 30%를 잠시 조금 넘었을 뿐이다. 그리고 또다시 20%대 박스권에 갇혀 있다.

박스권에 갇힌 한국당 지지율

특히 절망적인 것은 젊은 층의 한국당 지지율은 10%대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또 눈여겨 볼 사항은 정당에 대한 지지율이 아니라 비호감도다. 일종의 안티(ANTI)다. 한국갤럽이 5일 발표한 자료 중에는 정당에 대한 비호감도 조사도 있다. 비호감도는 우리공화당 72%, 한국당이 65% 바른미래당 57%, 민주당 39%, 정의당 37%다. 사실 지지율보다 비호감도가 향후 지지율 변화를 더 민감하게 예측할 수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속된 말로 ‘고춧가루 뿌리기가 더 쉽다’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표 2>는 탄핵 이후 각정당의 지지율이다. 한국당의 지지율은 탄핵정국 시기인 2007년 2월 9일 조사가 13.8%다. 사실 19대 대선에서 한국당은 득표율 15%를 못 넘겨서 선거비를 보전 받지 못할까봐 걱정까지 했다. 대선이 끝난 후에도 13%대를 기록했다. 2017년 홍준표 당 대표가 혁신의지를 밝히며 박근혜와의 결별의사를 밝히자 16%대로 상승했고, 2017년 10월 박근혜 제명 의사를 밝히자 드디어 20%로 상승했다. 지방선거에 패배하자 다시 16%대로 하락했으며 홍준표 대표가 물러나고 김병준 비대위 체제가 들어서자 19%대로 다시 상승했다. 그래도 20%를 넘지 못했다.

이후 2018년 11월 29일 발표에서 자유한국당 지지도는 2년 만에 25%를 넘어섰다. 이는 PK·50대·자영업층과, TK·PK·50대이상·보수층·자영업층이 자유한국당 지지로 선회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자유한국당이 유일하게 1위를 기록하는 층이 자영업자가 되었다. 이것도 한국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문재인 정권의 경제 실정에 따른 반사이익이다. 2019년 2월 8일 29.7%를 기록했다. 전당대회 분위기에 편승, 오세훈과 홍준표 지지자 일부가 자유한국당 지지로 다시 돌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황교안 당 대표 선출 후인 3월 7일 발표에서는 29.8%를 기록했다. 전당대회 컨벤션 효과가 전혀 없었다. 2019년 5월 9일 34.8%를 찍었다. 패스트트랙과 공수처 설치에 대한 불안 심리로 일부 중도보수층이 자유한국당을 지지했기 때문이다.

한국당 지지율이 하향평준화 된 이유는 뭘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근본적인 것은 한국당이 박근혜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황교안 대표 취임 이후 사무총장과 부총장, 대표 비서실장, 대변인 등 주요 당직을 소위 친박이 독점하면서 당 주류로 복귀했다.

한선교 사무총장 후임을 찾을 때는 비박 이진복 의원이 유력했지만 친박이 반발하면서 또 친박(박맹우)이 차지했다. 지난 5일에는 박근혜 청와대 정무수석 출신인 김재원 의원이 비박 황영철 의원을 밀어내고 국회 예결위원장을 차지했다. 탄핵사태에 대해 책임 지고 정계 은퇴나 의원직 사퇴를 택한 친박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잠시 숨죽이고 있었을 뿐이다. 그들은 황교안 체제를 기회 삼아 한국당의 전면에 다시 등장했다. 이것을 보는 보수 우파 유권자들은 뭐라 생각할까? 결과는 한국당 지지율 24%가 말해주고 있다. 당 밖에서는 ‘박근혜 그림자’를 걷어내지 못한다면 또 한번 ‘탄핵민심의 심판’을 당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당이 아무리 ‘문재인 정권 심판’, ‘문재인 경제파탄’ 책임을 주장하더라도 ‘박근혜 그림자’를 극복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反 이회창 연합으로 손을 맞잡은 김종필, 김대중, 박태준
反 이회창 연합으로 손을 맞잡은 김종필, 김대중, 박태준

항상 판을 갈아엎은 쪽이 승리했다

한국의 우파는 항상 판을 새로 짜고 승리했다. 전임 정권을 계승한 적이 없다. 박정희 대통령은 혁명으로 정권을 잡았다. 이승만 정권을 이어받지 않았다. 전두환의 5공화국 역시 마찬가지다. 겉보기엔 육사 출신이 정권을 이어받은 것처럼 보여도 내부적으로는 완전한 인적청산을 했다. 박정희 정권의 2인자였던 김종필조차 부정축재자로 몰아 정치에서 배제시켰다. 6공화국 첫 번째 정부였던 노태우 정부 역시 마찬가지였다. 육사 동기이자 정치적 동지였던 전두환을 백담사로 유배시켰다.

노태우 사람으로 모두 물갈이했다. 김영삼 정부 역시 마찬가지였다. 노태우와 손잡고 정권을 잡은 김영삼이었다. 그러나 집권 후 군내부 하나회 숙청을 비롯해서 과거 전-노 정권과는 완전히 결별했다. 1992년 김영삼 후보의 대통령 당선은 민정계에서 민주계로의 정파 교체였기에 가능했다. 1997년 신한국당의 정권 실패는 근본적으로 이회창 후보가 김영삼 전 대통령에 의해 만들어진 후보라는 이미지 때문이다.

2002년 노무현 후보의 당선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교동계에 대항하여 노무현, 정동영 등의 주축이 된 쇄신파가 반기를 들어 만들어낸 정파 교체였다. 노무현 나름의 판 뒤엎기 전략이 성공했다. 반대로 2007년 당시 여권의 집권 실패는 친노세력들의 계속 집권을 위해 이전투구하다 정권을 넘겨 준 경우다. 내부 분열이 있었다.

결국 정권은 새누리당으로 교체가 이뤄졌다. 2012년의 이명박 전 대통령도 김태호, 정운찬 등을 내세워 친이 정권의 연장을 노렸지만 결국 박근혜 대통령을 차기로 인정함으로써 정당간 정권 교체를 막아냈다. 박근혜 정부는 겉으로는 이명박 정부를 이어 우파 정부가 들어선 것처럼 보였을지라도 속사정은 전혀 달랐다.

사실상 정권 교체다. 이명박 정부와는 딴판이었던 것이 바로 박근혜 정부였다. 그런데 현재 한국당의 모습은 박근혜 정부 때 그 사람이 그 사람 아니던가? 전여옥 전 의원은 본지 <미래한국>과의 인터뷰에서 황교안 대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황교안 대표를 보면 마치 이회창 대표를 보는 것 같아요. 주변 병풍을 친 사람들을 보면 고개가 절로 돌아가거든요.”

언론에 비친 황교안 체제 리더십

현재 부동층으로 나와 있는 유권자의 대부분은 과거 새누리당을 지지했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현재 문재인도 싫지만 자유한국당도 싫다는 것이다. 문재인의 경제 파탄과 패스트트랙 파동, 그리고 외교 실패, 북한 어선 삼척항 입항 등 좋은 소재에도 불구하고 한국당 지지율은 답보 상태다. 예전 같으면 한국당 지지율이 50%를 육박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것은 그 만큼 탄핵 당한 자유한국당에 대한 불신이 크다는 것이다. 여기에 황교안 대표의 리더십에 대한 불안감도 한 몫하고 있다. 언론에서는 한국당 황교안 대표의 리더십에 의문을 표하는 기사를 내보내고 있다. 기존 황교안 지지자들도 역시 마찬가지 우려를 하고 있다. 특히 7월 7일 하루만 하더라도 많은 언론들이 황교안 대표에 대한 부정적인 기사를 내보냈다. 대략적 제목만 간추려 봤다.

?지지율 하락에 상임위 갈등까지...‘난기류’ 빠진 한국당(뉴스1)

● ‘도로 친박당’ 비판...흔들리는 황교안號(매일경제)

● 황교안號 ‘내우외환’...지지율 하락에 당내 위기감 고조(연합뉴스)

● 지지율 하락·당내 위기감 고조…한국당 황교안 체제 ‘내우외환’(국제신문)

● 지지율 하락·계파 갈등…흔들리는 ‘황교안 리더십’(부산일보)

● 황교안 “리더십 없이 우왕좌왕했다는 지적, 사실인 부분 많다”(조선일보)

● 정상화 뒤집은 한국당, 황교안 리더십도 시험대(중앙일보)

● 국회 등원 갈등, 사무총장 인선 파열음...흔들리는 ‘황교안 리더십’(한국경제)

●  “답답하다”…내부서도 ‘쓴소리’ 나오는 황교안 리더십(뉴스핌)

SNS에서도 이런 기류는 감지된다. 특히 당내 인사들의 실언에 따른 구설이 있따르자 황교안 대표는 6월 5일 한국당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황교안 대표는 계속되는 막말 논란에 대해 “제가 당 대표로서 당을 적절하게 지휘하고 또 관리하지 못한 책임을 통감한다”며 “지금까지의 잘못에 대해 돌을 맞을 일이 있다면 제가 감당하겠다는 말씀을 드렸고 그럴 각오지만 더 이상의 잘못은 용납할 수 없다. 국민 마음에 상처를 주고 신뢰를 떨어뜨리는 언행이 나온다면 엄정하게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이 발언이 있고 난 후 도리어 황교안 대표를 비판하는 글들이 페이스북 등 SNS에 많이 올라왔다. ‘야당이 말로 싸워야 하는데 입 틀어막으면 뭐하나?’, ‘구설 싫어하는 관료 출신의 한계’, ‘할 말 한 것 같은데 무슨 막말?’이라면서 소위 ‘입틀막’을 비판하는 글들이 올라왔다. 그 이후부터 한국당과 황교안 대표의 지지율은 하락곡선을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당내에서는 황교안 대표 눈치를 보느라고 제대로 된 조언을 못하는 듯하다.
 

에도 막부를 무너뜨린 삿초동맹의 지혜가 필요한 한국당

일본의 에도, 도쿠가와 막부를 무너뜨리고 메이지 유신으로 넘어가는 데는 앙숙이던 사쓰마번(카고시마)과 조슈번(야마구치)의 동맹이 결정타였다. 이른바 삿초 동맹이다. 특히 사쓰마번은 임진왜란 때 끌고간 도공을 집단이주시켜 도자기를 만들도록 했다. 이들이 만든 도자기는 훗날 유럽에서 일본 도자기의 붐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나 조슈번과 사쓰마번은 앙숙이었다. 마치 영·호남 같은 사이였다. 이들이 싸우는 한, 에도 막부는 건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앙숙들이 갑자기 화해를 하고 동맹을 맺었다. 오직 에도 막부를 무너뜨리기 위해 손을 잡았다. 막후 메신저는 그 유명한 사카모토 료마였다. 사카모토 료마의 활약과 중재로 앙숙이던 조슈번과 사츠마번은 동맹을 맺고 결국 에도 막부를 무너뜨렸다.

김용태 한국당 의원은 본지 <미래한국>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누차 말씀대로 황교안 대표가 문재인에 반대하는 반문재인 연합, 그러니까 거듭 말씀드리지만 문재인에 반대하는 인사들, 유승민 안철수 심지어 김종인까지 손을 잡아서 최대한 반문재인세력을 키워내는 것이 오늘날 우파 DJP연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반대로 우리공화당하고 연대해서 탄핵 찬성 대 탄핵 반대로 가면 문재인 쪽이 원하는 아주 최악의 결과가 될 겁니다.”

현재 한국에선 좌파 막부가 산처럼 버티고 있다. 자유한국당 혼자 힘으로는 절대로 좌파 막부를 이길 수 없다. 에도 막부를 무너뜨린 삿초동맹의 지혜가 한국당에 필요하다. 한국판 삿초동맹이든 우파 DJP연합이든 말이다.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