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관계, 국제법적 접근이 필요하다
한일관계, 국제법적 접근이 필요하다
  • 김상겸 동국대 법학과 교수
  • 승인 2019.08.23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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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국가로서 일본은 오랜 역사에서 보듯이 주변 국가들의 국민을 왜구라 불리던 해적을 통하여 약탈하였다. 역사 속의 일본은 우리나라가 조선일 때 1592년부터 1598년까지 침략하여 수많은 조선인을 살상하고 수많은 문화재를 강탈하였다. 그 후 19세기 말 국제관계에 소극적이었던 조선을 침탈하기 시작하여 1910년 식민지로 만들었다. 우리나라는 1945년 일본이 연합군에 항복할 때까지 식민지로 철저하게 유린당했다.

1948년 대한민국이 건국된 이후 1·2공화국에서 한일관계는 단절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1963년 3공화국이 시작되면서 한일관계의 복원문제가 제기되었고, 그 결과 1965년 우리나라는 일본과 한일기본조약을 체결하고 정식으로 국교를 수립하였다.

1965년 12월 17일 박정희 대통령이 한일조약 비준서에 서명하는 모습. 이후락 비서실장, 정일권 국무총리,이동원 외무장관, 김동조 주일대사 등이 배석했다.
1965년 12월 17일 박정희 대통령이 한일조약 비준서에 서명하는 모습. 이후락 비서실장, 정일권 국무총리,이동원 외무장관, 김동조 주일대사 등이 배석했다.

굴곡진 역사 속의 한일관계

한일기본조약은 제2조에서 “1910년 8월 22일 및 그 이전에 대한제국과 일본제국 간에 체결된 모든 조약 및 협정이 이미 무효임을 확인한다”라고 하여, 1905년 을사늑약을 비롯하여 과거에 일본과 맺었던 불평등조약과 협정 등은 모두 무효가 되었다. 한일기본조약을 통하여 역사적으로 말도 안 되는 불평등한 한일관계는 일단 국제법적으로 정리되었다. 물론 이런 조약 하나로 역사적으로 침탈당했던 상처가 원상회복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독일 스스로 밝혔듯이 한 번 전범국가는 영원히 전범국가로 인류의 역사에 남는 것처럼, 일본 역시 전범국가로서 과거의 잘못은 영원히 인류사에 기록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독일과 달리 일본은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반성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일본의 이런 태도를 바꾸게 만들기도 어려워 한일관계는 발전적으로 나가기가 쉽지 않았다. 오랜 역사 속에서 우리나라는 일본에 거의 일방적으로 침탈을 당하였다. 역사적으로 이런 비정상적 관계에 있던 국가들이 정상적인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는 1965년 양국이 국교를 수립한 후에도 지속적인 갈등관계를 보여준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물론 혹자는 우리나라 경제가 일본과 관계 개선을 통하여 더 발전할 수 있었다고 한다. 국가 간의 관계는 국익이 우선 고려된다는 점에서 양국은 서로의 이익을 위하여 노력하였기 때문에 양국의 갈등이 수위를 벗어난 적은 없었다. 근래에 오면서 일본의 식민지 때 위안부, 강제징용 피해자 문제가 확산되면서 한일관계는 악화되고 있다. 이런 문제의 기저에는 일본이 과거의 잘못을 진심으로 반성하고 피해를 배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1945년 이후 일본의 이런 태도를 알고 있었고, 역사를 부인하는 일본을 수없이 경험하였다. 그렇지만 이에 대하여 우리는 그동안 이성적으로 접근하여 일본의 잘못을 지적하면서 정상적인 한일관계를 구축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못하였다.

1965년 우리나라는 일본과 한일기본조약을 체결하였다. 그 조약의 체결 당사자는 대한민국과 일본이다. 당시 정부가 누구에 의하여 구성되었고, 어떤 조약을 체결하였는지를 불문하고, 양국이 대등한 관계에서 서로가 합의하여 체결한 이상 국제법적으로 문제 삼기는 어렵다. 물론 당시 국민의 반일감정이 컸기 때문에 한일국교수립에는 어려움이 많았고 굴욕외교라는 비난을 받았다.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도록 수출무역관리령을 개정한다는 일본 정부의 관보가 7일 게시되었다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도록 수출무역관리령을 개정한다는 일본 정부의 관보가 7일 게시되었다

역사적 사실과 현재 규범 조화 노력

2007년 우리나라 정부는 외교관례를 무시하고 1965년 한일회담에 관한 내용을 공개하였다. 그런데 공개된 내용을 보면 당시 정부가 한일회담을 위하여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시 일본과 협상으로 우리가 받은 돈은 무상 3억 달러, 유상 2억 달러와 상업차관 3억 달러 등 총 8억 달러를 1966년부터 1975년까지 10년간에 걸쳐 받았다. 이 돈은 공식적으로는 식민지배로 인한 배상이 아니라 경제협력을 위한 지원이었다.

우리나라는 1965년 일본과 국교를 정상화하고 기본조약을 체결하면서 대일청구권 중 징용된 자들의 미수금과 전쟁에 의한 피해에 대한 보상을 구체화하였다. 그리고 제5차 한일회담 예비회담에서는 개인청구권 문제와 관련하여 개인에 대해서는 국내에서 조치하겠다고 하였다. 이로 인하여 식민지 때의 기본적인 문제는 한일기본조약을 통하여 정리되었다. 물론 이런 문제 이외에도 위안부 문제 등은 별도로 양국 간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위안부 문제는 발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2015년 한일간의 합의를 통하여 형식적인 여부를 떠나 일본의 사죄와 반성 표명이 있었고, 화해·치유재단의 설립을 통하여 피해자의 명예와 존엄의 회복 및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한 사업을 시작하였다. 물론 이런 일본과 협상, 재단의 설립 등에 대하여 피해자, 시민단체와 정치권 등에서는 반대하였고, 현 정부에 와서는 재단 해산과 위안부 문제를 원점에서부터 다시 시작하고 있다.

이런 일련의 과정 속에서 2018. 10. 30. 대법원은 일제 식민지 때 강제동원되었던 피해자들이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원고승소 판결을 내렸다. 일본은 이 판결에 대하여 당연히 반발하였고, 한일관계는 새로운 갈등국면에 들어가게 되었다. 일본이 대법원 판결의 기속력을 인정하지 않는 이상, 우리나라가 이를 강제 집행할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에 해당 기업의 자산이 있으면 이에 대하여 강제집행할 수 있다고 볼 수 있으나, 이로 인한 한일 간의 외교분쟁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한일관계가 악화되면서 2019. 7. 일본은 한국에 대하여 수출규제에 나섰다. 이는 우리나라에 대한 일본의 경제적 보복조치임에는 분명하다. 이렇게 한일 양국은 점차 해결하기 어려운 길로 가고 있다. 이런 상황으로 가게 된 것에는 과거를 반성하지 않은 일본의 태도에 원인이 있기도 하지만, 비이성적인 반일감정에만 경도되고 있는 우리의 태도에도 문제가 있다.
 

세계화 시대의 이성적 외교와 국익우선원칙

우리나라와 일본 간의 관계는 단지 국가와 국가 간의 관계라고 하기에는 역사적으로 너무 상처받고 피해 입은 것이 많아 이성적인 외교관계가 수립되기 쉽지 않다. 더구나 일본은 과거의 잘못에 사죄와 반성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 진정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무조건 일본의 잘못만 따지면서 일본과 관계를 정립하겠다면 한일관계는 정상적으로 진행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나라 국민의 다수는 여전히 일본에 대하여 좋은 감정을 갖고 있지 않다고 본다. 이런 현상은 아마 일본 국민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된다.

이런 상황이 발생하게 된 것에는 일본의 왜곡된 역사관, 후안무치한 과거사에 대한 인식 등이 크지만, 그렇다고 국가 간에 이를 문제 삼아 일방적으로 단교하거나 시비를 걸기도 어렵다. 일본에 문제가 있다고, 우리가 동일한 기준과 관점에서 대응하게 된다면 국가 간에는 전혀 해결할 방법이 없게 된다.

그동안 우리나라 헌법재판소와 사법부에 청구되었던 대일배상사건의 판결에 대한 의미와 내용들을 보면 국제법적 관점에서 문제를 보고 접근하려는 태도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손해배상에 대한 시각이 우리나라와 일본이 상반되고 있는 것은 사법부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문제는 우리나라 국내문제가 아니고 국제문제이다. 일본이 거부하면 해결할 방법이 없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일본과 관계에서 국제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과거 우리나라 정부가 어떤 정부였든 국제관계에서는 우리나라를 대표할 뿐이다. 외국이 우리나라 사정을 이해하여 새롭게 협상을 하자고 한다면 몰라도 과거 정부가 체결했던 협정을 무효화하는 것은 국제법질서를 위배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책임은 조약이나 협정을 위배한 국가가 지게 된다. 우리는 일본과 관계에서 보다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외교관계에서 강경 대응은 그만큼 정당성을 확보하였거나 국제적 지지와 협조를 받거나, 아니면 상응하는 국력을 갖고 있다면 가능하다.

현대사회에서 국가관계는 형식적으로 평등관계에서 출발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국력으로 관계를 설정하게 된다. 우리나라는 일본과 관계에서 역사적으로 도덕적 우위에 있다. 그런데 이런 도덕적 우위는 현실적 국제관계에서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외교는 국익우선원칙을 준수해야 한다. 우리나라 헌법을 보면 제46조 제2항에 “국회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라고 규정하여 국회의원의 국익우선의무를 강조하고 있다.

이 조항은 비록 국회의원에게 부과한 의무를 규정하고 있지만,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의원에게 부여된 의무라는 점에서 국익우선원칙이 중요한 헌법상 원칙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한일관계에서 국익이 무엇인지 모두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국가 간에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 오로지 국익우선원칙에 따라 국가 간의 관계가 정립될 뿐이다.

프랑스 국민은 독일을 영원한 원수이며 적으로 생각하지만 현실에서 양국은 유럽연합에 속한 회원국으로서 서로 협조하면서 경쟁하는 관계이다. 물론 우리나라가 일본과 관계에서 독일과 프랑스처럼 동일한 관점에서 양국관계를 생각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단순한 반일감정만으로 일본에 대응할 수는 없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국회에서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배제 조치에 따른 대응 방안을 논의하는 고위 ·당정·청 협의를 가졌다. / 연합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국회에서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배제 조치에 따른 대응 방안을 논의하는 고위 ·당정·청 협의를 가졌다. / 연합

프랑스와 독일에서 배워야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응하여 전 세계에 일본의 부당성을 호소하고 일본제품 불매운동과 일본여행을 하지 않는다고 우리에게 이익이 되는 것은 거의 없다. 그저 우리의 반일감정을 충족시킬 뿐이다. 이 세계화된 시대에 감정은 국가외교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현 정부도 국민의 반일감정을 부추기거나 바라보는 것은 자신의 책무를 방기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우리나라가 일본을 긍정적으로 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외교적으로 우리나라가 일본을 적극적으로 대하는 것은 국익을 위하여 필수적인 것이다.

발제문에서 보듯이 한일관계에 갈등이 증폭하여 악화되면 서로 불이익만 커질 뿐이다. 외교 문제는 이성과 합리적인 방법으로 풀어야 하고 감정적 대응은 자제해야 한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일본과 관계에서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경우가 많았다. 일본 문제는 외교적으로 풀어가야 한다. 국가 간에는 일방적인 요구가 실현되기 어렵다. 국제적으로 식민지로 인한 피해배상을 공식적으로 요구하기는 어렵다. 그렇게 되면 과거 많은 식민지를 가졌던 선진국들의 지지를 받기 어려울 것이다. 지금 친일·반일 문제로 일본과 외교관계를 풀어나가려는 것은 해결 방법이 아닌 것을 가지고 해결하려는 것과 같다.

우선 그동안 한일관계에서 발생했던 문제를 보다 면밀하게 국제법적 관점에서 풀어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정부나 언론은 반일감정을 자극할 수 있는 언행을 하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 외교관계에서도 언행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우리나라가 일본과 관계에서 어떤 관점과 기준을 갖고 대응할 것인지 원칙을 정해야 한다. 일본은 우리나라의 영원한 적이라는 것과 과거 침략하여 저지른 만행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국가 간에 적대시하면서 외교관계를 정립하고 나아갈 수는 없다.

외교 문제에 있어서 국가기관은 무엇이 국익을 위한 것인지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법에서도 이익형량의 원칙은 중요한 판단의 근거이며 방법이다. 원칙적으로 일본과 맺은 협정은 준수해야 하고, 그 협정을 파기할 만큼 잘못이나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지 않는 한 이행해야 한다. 우리는 일본의 잘못을 국제사회가 인정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지, 반일감정만으로 문제를 해결해 보려는 것은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드는 것이다. 이제 한일관계도 이성적으로 국제법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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