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인권을 위한 제언 - 북한인권기록보존소 제대로 운영해야
북한인권을 위한 제언 - 북한인권기록보존소 제대로 운영해야
  • 김태훈 미래한국 편집위원·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
  • 승인 2019.08.28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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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인권기록보존소는 북한 주민의 인권 보호·증진을 위해 북한인권 관련 자료의 보존·관리 등을 관장하는 북한인권법의 핵심 기구이다. 이 기구는 2016년 제정된 북한인권법이 그해 9월 4일 시행되자 10월 11일 법무부 산하기관으로 설립되었다.

그런데 법무부는 지난 8월 5일 처음으로 검사가 아닌 일반직 공무원을 북한인권기록보존소장으로 임명했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이후 북한인권기록보존소 파견 검사를 소장을 포함해 4명이던 인원을 2명으로 줄였고, 당시 정부과천청사에 있던 북한인권기록보존소를 법무연수원 용인분원으로 이전하더니 결국 올해 인사에선 아예 파견 검사를 없애버렸다.

통일 후 북한의 인권 침해자에 대한 형사처벌을 염두에 두고 설립된 기구에서 법률 전문가가 배제된 것이다. 법무부는 ‘법무부의 탈검찰화’라고 인사 배경을 설명했지만 북한 눈치를 보며 북한인권을 외면해 온 현 정부의 북한인권법 사문화(死文化) 작업의 완결판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현 정부 들어 북한인권기록보존소의 운영이 유명무실해지고 있다.
현 정부 들어 북한인권기록보존소의 운영이 유명무실해지고 있다.

북한인권기록보존소, 왜 중요한가

북한인권기록보존소의 설립 근거인 북한인권법은 2004년 미국에서 북한인권법이 통과되자 2005년 8월 11일 김문수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 처음 발의하며 논의가 시작됐다. 당시 발의한 북한인권법안(제9조)에서는 북한인권기록보존소를 국가인권위원회에 두는 것으로 규정되어 있었다.

이후 17대 국회에서 3건, 18대 국회에서 5건이 제출됐지만 모두 여야 합의에 이르지 못하며 자동 폐기됐다. 열린우리당과 민주통합당·새정치민주연합으로 이어진 현 여권은 줄곧 “북한인권법은 북한에 대한 내정간섭이자 외교 결례”라고 주장해왔다. 정치권의 북한인권법 제정 논의가 지지부진하자 이명박 정부 시절 국가인권위원회는 자체적으로 2011년 3월 15일 북한인권기록보존소 역할을 하는 북한인권침해신고센터를 출범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2014년 2월 17일 역사적인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의 보고서 권고를 계기로 국제사회의 북한인권에 대한 관심이 획기적으로 증폭되자 국내에서도 북한인권법 제정의 추동력이 살아났다. 당시 COI는 북한의 인권 침해는 조직적이고(systematic) 광범위하며(widespread) 심각하여(gross) 많은 경우 최고위층 수준에서 결정된 정책에 따른 반인도범죄(crimes against humanity)에 해당하므로 유엔 안보리가 보호책임(responsibility to protect; R2P) 원칙에 따라 가장 책임 있는 자를 처벌하기 위해 북한 상황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회부하거나 특별재판소(ad hoc tribunal)를 설치해야 한다고 유엔 인권이사회 및 유엔 총회에 권고했다.

이에 따라 2014년, 2015년 유엔 인권이사회 및 유엔 총회에서 COI의 권고를 채택했고, 유엔 안보리에서도 북한인권 상황을 논의하기 시작했으며, 2015년 6월 23일에는 북한의 반인도범죄를 비롯한 제반 인권 침해 상황에 대한 모니터링 및 책임확보를 위한 증거수집과 기록 및 보존활동을 하는 유엔 현장기반조직(field-based structure), 즉 유엔 북한인권 현장사무소가 서울에 설치되기에 이르렀다.
 

탈북 모자의 죽음은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북한 주민이든 탈북민이든 이들의 인권은 우리 사회의 숙다제.
탈북 모자의 죽음은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북한 주민이든 탈북민이든 이들의 인권은 우리 사회의 숙제다.

따라서 당사국인 대한민국이 이러한 국제사회의 흐름에 부응하여 북한의 인권 침해 사례와 증거를 체계적이고 구체적으로 수집, 기록, 보존하는 것은 현안 과제가 되었고, 이러한 역할을 위한 제도적 틀인 북한인권기록보존소는 북한인권법의 상징으로서 본질적인 부분을 이루게 되었다.

이에 2014년 12월 여야가 처음으로 각자의 북한인권법안(案)을 국회에 상정했으나 북한인권기록보존소의 성격과 어디에 설치할지를 놓고 의견이 대립했다. 당시 여당은 본래 뜻에 맞게 인권 침해 가해자들에 대한 형사처벌과 증거 확보를 위한 법무부 설치를, 당시 야당(현 여권)은 단순 조사와 연구에 초점을 맞춘 통일부 설치를 주장했다. 결국 여야는 통일부에 북한인권기록센터를 둔 뒤 관련 기록을 3개월 이내 법무부 산하 북한인권기록보존소에 이관한다는 식으로 절충했다(북한인권법 제13조).

이후 여야 합의로 2016년 3월 2일 최종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의원 236명이 참석해 찬성 212명, 기권 24명으로 가결됐다(표결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맡고 있던 문재인 대통령은 본회의에 참석을 안 했다). 반대는 하나도 없었다. 나아가 2016년 9월 4일 북한인권법이 시행되며 같은 해 10월 11일 북한인권기록보존소가 문을 열었던 것이다.

북한인권기록보존소는 서독의 잘츠기터 중앙법무기록보존소 제도도 감안한 것이었다. 1961년 8월 13일 베를린 장벽 구축 후 서독 정부는 장벽 건설 및 동독 내의 정치적 폭력행위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고, 공소시효에 관계없이 동독의 비인도적, 반법치국가적 범죄행위 등에 대한 자료를 수집보존함으로써 향후 형사소추를 가능케 하기로 결의하고, 같은 해 11월 24일 니더작센 주 잘츠기터 시에 중앙법무기록보존소를 설치했다.

처음 검사 1인과 보조인력 2인으로 출발했다가 1962년 말 7명으로 인원이 증가했다. 그 후 통일 시까지 4만 1390건 8만 명의 자료를 수집하여 구 동독의 불법잔재 청산 나아가 전환기 정의(transitional justice)의 수립, 즉 혐의자들에 대한 형사소추에 필요한 자료, 동독지역 판검사 등 사법공무원 재임용자료, 피해자 복권이나 피해보상 및 판결 재심사 근거자료 제공 등에 큰 기여를 했다.
 

김태훈 미래한국 편집위원·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
김태훈 미래한국 편집위원·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

현행 북한인권기록보존소 관련 규정

북한인권법 및 그 시행령 상 북한인권기록보존소 관련 규정은 다음과 같다.

북한인권법 제13조(북한인권기록센터) ① 북한주민의 인권상황과 인권증진을 위한 정보를 수집·기록하기 위하여 통일부에 북한인권기록센터(이하 “기록센터”라 한다)를 둔다.

② 기록센터는 다음 각 호의 사항을 수행하고 각종 자료 및 정보의 수집·연구·보존·발간 등을 담당한다.

1. 북한주민의 인권 실태 조사·연구에 관한 사항

2. 국군포로, 납북자, 이산가족과 관련된 사항

3. 그 밖에 위원회가 심의하고 통일부장관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사항

④ 기록센터에는 센터장 1명을 두며, 센터장은 고위공무원단에 속하는 공무원 또는 북한인권과 관련하여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민간전문가 중에서 통일부장관이 임명 또는 위촉한다.

⑤ 기록센터에서 수집·기록한 자료는 3개월마다 법무부에 이관하며, 북한인권기록 관련 자료를 보존·관리하기 위하여 법무부에 담당기구를 둔다.

⑥ 그 밖에 기록센터의 구성·운영 등에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북한인권법 시행령 제14조(기록센터의 운영) ① 법 제13조제1항에 따른 북한인권기록센터(이하 “기록센터”라 한다) 소속 공무원은 같은 조 제2항에 따라 자료나 정보 수집 목적으로 관계인의 진술을 통하여 정보를 수집하는 경우에는 해당 내용을 통일부령으로 정하는 문답서(問答書)에 기록하여야 하며, 문답서 끝 부분에 해당 관계인의 기명날인 또는 서명을 받아야 한다. 다만, 진술 내용이 복잡하거나 해당 관계인이 원하는 경우에는 통일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자필 진술서를 작성하여 제출하게 할 수 있다.

② 기록센터 소속 공무원은 제1항에 따라 관계인의 진술을 수집하는 경우에는 북한주민에 대한 인권 침해 사례와 그 증거를 체계적으로 수집·기록하여야 하며, 이를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해당 관계인의 동의를 받은 후 그 진술 과정을 녹화할 수 있다.

③ 통일부장관은 법 제13조제2항에 따라 기록센터에서 수집·기록한 자료의 현황을 매분기 종료 후 10일 이내에 법무부장관에게 통보하여야 하며, 통보한 자료의 원본을 법 제13조제5항에 따라 매 분기 종료 후 20일 이내에 법무부장관에게 이관하여야 한다.

④ 통일부장관은 기록센터의 운영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관계 행정기관의 장에게 공무원의 파견을 요청할 수 있다.

⑤ 제1항부터 제4항까지에서 규정한 사항 외에 기록센터의 운영에 필요한 사항은 통일부령으로 정한다.

북한인권법 시행령 제15조(북한인권기록보존소) ① 법 제13조제5항에 따라 법무부에 두는 담당기구의 명칭은 “북한인권기록보존소”로 한다.

② 제1항에 따른 북한인권기록보존소(이하 “북한인권기록보존소”라 한다)는 다음 각 호의 업무를 수행한다.

1. 법 제13조제5항에 따라 자료를 이관받기 위하여 필요한 업무

2. 법 제13조제5항에 따라 이관받은 자료(이하 “이관자료”라 한다)의 체계적인 보존·관리 업무

3. 그 밖에 이관자료를 보존·관리하기 위하여 법무부장관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업무

③ 법무부장관은 북한인권기록보존소의 운영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관계 행정기관의 장에게 공무원의 파견을 요청할 수 있다.

④ 제1항부터 제3항까지에서 규정한 사항 외에 북한인권기록보존소의 운영에 필요한 사항은 법무부령으로 정한다.
 

사문화 되어 가는 북한인권기록보존소 규정

위와 같이 현행 북한인권법과 그 시행령은 통일부에 북한 주민의 인권 상황과 인권 증진을 위한 정보를 수집, 기록하는 북한인권기록센터를, 법무부에 3개월마다 통일부로부터 이관받은 북한인권 기록 관련 자료를 보존, 관리하는 북한인권기록보존소를 두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이 북한인권 기록 관련 자료를 수집, 기록, 보존하는 기구를 통일부와 법무부로 2원화 하는 것에 대해서는 이미 입법 과정에서부터 비판이 제기되었다. 즉 북한의 인권 침해는 엄중히 책임을 물어야 할 반인도범죄를 포함하고 있으므로 마땅히 전문적인 범죄 수사기관인 검찰기구를 관장하는 법무부가 처음부터 능동적으로 조사할 수 있어야 하는데, 지금처럼 2원화 하여 법무부가 통일부 수집 자료에만 의존케 하는 것은 북한인권기록보존소로서의 기능이나 역할을 반신불수로 만들고, 나아가 억지로 통일부를 끼워 넣음으로써 남북대화와 교류협력의 주무부서인 통일부의 역할마저 약화시킬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행법상 통일부의 북한인권기록센터의 북한인권 침해 정보의 수집은 행정적 조사의 한계가 있는 것이고, 또한 처음부터 능동적으로 조사에 나설 수 없는 약화된 북한인권기록보존소의 기능을 정상화시키기 위해서는 범죄 수사와 공소유지를 담당하는 법률 전문가인 검사가 필수적로 통일부의 북한인권기록센터로부터 이관받은 북한인권기록 관련 자료를 인권 침해의 일시, 장소, 가해자, 피해자, 경위 등에 관한 요건사실에 맞게 정리하였는지를 검토하고, 필요한 경우 적극적인 사법적 조사 내지 수사를 진행하여 기록보존 및 관리업무가 충실히 되도록 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법무부가 북한인권기록보존소에서 검사를 아예 배제하는 것은 가뜩이나 취약한 북한인권기록보존소의 기능을 더 무력화 하여 북한인권법을 사문화시키는 조치라 아니할 수 없다. 북한인권기록보존소는 범죄에 해당하는 북한의 인권 침해에 대한 증거 수집과 공소 유지를 전제로 관련 기록을 수집·보존하는 기구인데, 검사의 지휘·참여 없이 업무가 제대로 돌아갈 것을 도저히 기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출범도 못하고 있는 북한인권재단

올해 9월 4일로 북한인권법이 시행된 지 3년이 되지만 북한인권재단은 출범조차 못하고 있고, 드디어 핵심기구인 북한인권기록보존소 마저 파행적인 운영을 면치 못하게 되었다. 북한인권법에 의하면 남북인권대화를 추진해야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작년 3차례, 올해 1차례 남북정상회담을 하면서도 북한인권 문제는 한번도 거론한 바 없다.

문 대통령은 지난 19일 북한과의 대화 기회가 무산된다면 언제 다시 이런 기회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알 수 없다며 남·북·미가 깨지기 쉬운 유리그릇을 다루듯 조심스럽게 한걸음씩 나아가는 신중함이 필요하다고 말하여 남북대화를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도대체 인권을 외면한 남북대화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알 수 없다. 최근 발생한 탈북 모자 아사 사건의 비극도 그 근본 원인은 현 정부의 철저한 북한인권 외면에서 비롯된 것이다.

주지하듯이 북한의 인권 상황은 전혀 개선 조짐이 없다. 지난 8월 초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실(OHCHR)이 2018년 9월부터 올해 5월 사이에 탈북민 330명 이상(대다수는 중국으로 탈출했다가 붙잡혀 구금된 여성들)을 인터뷰해 작성하여 총회에 보고한 바에 의하면, 지금도 북한 내 구금시설에서 수감자에 대한 공개처형과 구타, 성폭력 등의 인권 침해가 심각함을 알 수 있다.

11년 만에 제정된 북한인권법을 사문화시키는 것은 그야말로 반인권적인 폭거라 아니할 수 없다. 다시금 현 정부에 북한인권기록보존소와 북한인권법을 되살려 2500만 북한 주민에게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도록 맹성(猛省)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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