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우여 곡절 끝에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가 열렸다. 모두가 예상했던 대로 민주당 청문위원들은 조국 후보자에 대한 변호에 자신들의 정치적 운명이 달렸다는 듯이 임했다.
하지만 그날, 진보 진영의 한겨레신문에서는 젊은 기자들이 데스크의 조국 비판기사 삭제에 항의해 국장급 간부들의 퇴진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사내 곳곳에 붙였고, 이는 맥 빠진 청문회보다 어찌 보면 더 뜨거운 관심사가 되어 버렸다. 좌파 또는 진보라 불리는 진영 내에서 조국 후보자에 대한 충돌은 다가오는 총선에 새로운 정치 지형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과 조국이 불러올 ‘진보의 禍’
진보 진영의 파열음은 그들의 본진인 민주당이 아니라 문재인 정권을 지지하는 외곽으로부터 세차게 터져 나왔다. 그 중심에는 ‘조국’이라는 대단히 상징적 인물이 자리한다. 왜 그가 한 가운데 서게 되었을까.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은 끝까지 조국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이러한 문제에 대해 한때 친노(親盧)진영에서 정치철학의 이론가로 활약했던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미래한국>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참고 12p 기사)“노무현 정부가 실패한 후, 친노는 자신들의 진영 이익을 대변할 인물의 소환이 필요했습니다. 그렇게 소환된 이가 바로 문재인입니다. 문제는 문재인은 정치를 해서는 안 될 사람이었다는 것이죠.”
김근식 교수의 이 짧은 한마디는 현재 문재인 정권의 알파와 오메가를 모두 설명한다. 다시 말해 문재인과 조국은 어떤 주체성을 가진 개인으로서 정치인이 아니라, 친노로 상징되는 집단성의 ‘정치적 토템’이라는 이야기다. 그런 토템은 말하거나 듣거나 행동하는 모든 것들이 그들을 숭배하고 따르는 신도들의 요구에 복속된다.
이들에게 정치적 사고의 유연함은 기대할 수도 없거니와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문제를 올바른 방향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결단도 기대할 수 없다. 김근식 교수의 해석에 따르면 문재인과 조국은 자신들을 지지하고 떠받들어 주는 이들의 ‘완전한 포로’이며 ‘완전한 사육’ 대상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조국 후보자는 청문회에서 ‘법무부 장관이 되어야 하는 것은 나의 개인적 결정과는 상관이 없는 것’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친노라는 집단성이 표출하는 그 방향과 사명이 문재인과 조국의 방향과 사명인 것이고, 그렇기에 만일 이들이 단 한 발자국이라도 이 트랙을 벗어나게 되면 그들은 안희정, 이재명처럼 가차 없이 버려질 뿐이다. 이 점이 같은 추종자들을 거느렸다고 볼 수 있는 박근혜와는 100% 다른 모습이다.
보수의 토템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추종자들이 기꺼이 복종했다면, 진보의 토템 문재인과 조국은 추종자들에게 복종해야 하는 운명이 다른 것이다. 그런 조국과 문재인에게는 박근혜와는 다른 유형의 禍가 있다. 바로 ‘노무현을 잃었다’는 트라우마를 가진, 그래서 극단적일 수밖에 없는 ‘친노’ 세력에게 문재인과 조국이 끌려왔고, 이들의 ‘끌림’에 의해 민주당과 관료들이 끌려왔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러한 극렬 친노가 진보에 ‘과잉대표성’을 갖는다는 점이다. 진보의 다수는 이들과 생각이 같지 않았다. 그 결과가 지금 ‘조국의 禍’를 부르고 있다고 볼 수 있다.그 결과, 소수 과잉대표성에 끌려온 문재인 정부는 국정에서 판판이 실패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합리성이 필요한 현실을 광기의 포퓰리즘이 자신들의 방식으로 재구성해 버렸기 때문이다.
권력을 둘러싼 분열과 통합은 ‘표로 하는 전쟁’이라는 민주주의 선거제도에서 피할 수 없게 된다. 이때 집권 세력의 분열은 이전 선거에서 얻은 득표율이 지지율 밑으로 하락하는 시점에서 그 단초들이 제공된다.
이를 위해서는 득표율과 지지율의 차이, 그리고 총선에서 정당을 선택하게 되는 유권자의 이유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먼저 유권자들은 어떤 이유로 지지하던 정당을 선거에서 바꾸게 되는지, 그리고 ‘무당파’나 ‘중도’로 분류되는 유권자들의 속성이 무엇인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정치학계에 보고된 다수의 경험적 연구들에 의하면, 유권자는 총선에서 ‘정당일체감’이라는 것을 갖는다.
유권자는 언제든 지지 정당을 바꾼다
이 정당일체감은 선거 시, 특정 정당에 대해 유권자들이 느끼는 선호감이다. 이때 문제가 되는 것이 지지 정당이 없는 무당파(無黨派)들인데, 이제까지 학계에 보고된 다수의 연구들에 의하면, 무당 층은 우리가 쉽게 생각하는 ‘정치적 무관심 층’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정치에 관심이 높고 주변에 여론 영향력을 가진 이들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즉 정치에 관심이 높은 이들일수록, 집권 여당이나 야당 모두 만족스럽지 않을 경우 무당파가 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주변에 정치적 메시지를 포기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와 함께 중도(中道) 성향이라고 여론조사에서 응답하는 유권자들이라도 사실 대부분은 선호하는 정당은 있으며, 따라서 지지하는 정당이 없다고 해도 선호하는 정당에 대해 ‘정당편향성’을 갖는다는 사실이다.
이때 중도 유권자들이 지지 정당을 바꿔 투표하거나 최종 결정을 하는 데 있어 가장 영향을 많이 끼치는 요인은 ‘교차압력’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교차압력은 한 유권자가 자신과 가까운 지인들 혹은 소속 집단의 사람들로부터 자신과 반대되는 정치적 입장을 듣게 되어 갈등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언론과 미디어가 선거에 미치는 영향력도 크지만 무엇보다 SNS와 같은 소셜미디어와 직장, 교회와 같은 커뮤니티에서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는 정당 평가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흔히 이때 집권 여당의 경제적 실패가 총선에 큰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의외로 경험적 연구들에 의하면 대선과 달리, 총선은 경제 이슈보다 ‘정당일체감’이 더 중요하다는 결론들이 많다. 그런 이유는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이나 선호하는 정당이 경제 문제를 더 잘 해결할 것이라는 기대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2016년 20대 총선의 경우가 이러한 현상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여론조사기관인 한국리서치가 2016년 총선 후 실시한 설문 조사에 의하면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 지지자들의 20%가 한 달 사이에 지지하는 정당을 변경한 것으로 집계되었다. 지지하는 정당을 바꾼 응답자들은 ‘이전에 지지한 정당에 실망하여서’라는 응답이 46%로 가장 많았고 ‘새로 마음에 드는 정당이 생겨서’라는 응답은 21%였다.
지지하는 정당에 대한 실망감이 생긴 가장 큰 이유는 ‘공천 과정에서의 문제’가 56%로 가장 많았고 ‘정당의 리더십’에 실망하였다는 응답이 24%, ‘정책공약’이 지지정당을 변경하게 된 이유라는 응답이 11%를 차지하였다.
다가오는 문재인 정권의 균열점
문재인 정부가 본격적으로 활동을 개시했던 2018년 1월, KBS가 신년특집으로 기획한 여론조사에서 ‘새해 우리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국민들은 ‘경제성장’을 1순위로 꼽았다. 문재인 정부가 매진하겠다던 ‘적폐청산’보다, 그리고 당면하고 있는 안보위기 해소보다 ‘경제성장’에 더 많은 국민들이 주목했다는 이야기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해서는 잘한다는 응답이 76%에 이르렀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경제성장(30%), 적폐청산(26%), 안보위기 해소(17%), 국민통합(14%), 복지확대(12%) 등의 순서로 꼽았다. 국가 경제가 성장해야만 비로소 일자리도 만들어지고 복지정책도 굴러갈 수 있다는 사실을 국민들이 직시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이에 ‘소득주도성장’이라는 포퓰리즘 정책을 내놓았다. ‘주 52시간 근로제’로 실업은 오히려 늘었고 최저임금을 10%이상 올려 자영업과 중소기업들의 폐업이 줄을 이었다. 참담한 결과였다.
정상적인, 그리고 상식적인 경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이라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런 정책을 문재인 정부가 고집스레 추진했던 이유를 당시에 보수 진영에서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 이유는 분명하게 드러난다. 조국 후보자의 고백처럼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해야 하기 때문에’라는 것이다. 문재인 정권의 기반인 친노세력의 포퓰리즘이 이들을 끌어 간 것이라는 설명 외에 어떤 합리적 설명이 가능할까. 이 연장선에서 한미동맹의 약화, 지소미아 폐기, 남북군사합의, 그리고 반일 모두가 설명된다.
집단적 히스테리를 가진, 그러나 진보를 대표할 만한 대중성을 갖지 않은 극단적 세력들의 대표과잉성에 문재인 정권은 포로가 되어 있다는 의심은 합리적이다. 문제는 이런 극단성을 가진 정책들은 실패와 부작용을 낳을 수밖에 없으며, 그런 부작용을 감추기 위해 포퓰리스트들의 정책은 언제나 더 극단을 향해 내달릴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나라가 멀리는 모든 것을 ‘미국 때문에’로 돌렸던 차베스의 석유 매장량 세계 4위의 ‘파탄 국가’ 베네수엘라였고, 가까이는 ‘원쑤인 미제 때문’이라며 선군주의로 300만을 아사시킨 김정일의 북한 정권이었다.
문재인 정권의 길은 그러한 파국으로 내달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가지고 있다. 정책 결정의 주체가 합리적 통치자와 전문가들이 아니라 그들을 열렬히 지지하는, 그래서 그들에게 가시적으로 힘을 보태주는 광신적 소수 대중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이 파국에 이를 때, 민주주의 체제에서 이 소수는 다수들에 의해 축출된다. 그 축출력은 정치적으로 대립되는 진영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선거에서 이겨야 하는 자기 진영 안에서 시작된다. 이러한 점에서 문재인 정권의 이념적 경로라고 할 수 있는 ‘민중민주 포퓰리즘’은 그들의 기득권과 모순을 빚게 되면서 ‘환멸성’을 일반 대중들에게 제공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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